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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성혐성 영국의 아이슬란드 점령
오늘도 이새끼다. 2차대전 당시 아이슬란드는 명목상 덴마크 왕을 국가원수로 모셨지만 1918년 조약으로 사실상 독립된 상태였다. 그래서 1940년 4월 덴마크가 독일에 점령당한 뒤로도 본국 정부와 별도로 계속 중립을 선언한다. 하지만 북대서양 한가운데를 떡 하니 차지한 위치인지라 주변에서 놔둘 리가 없었다. 당연히 독일과 영국 모두에게 구미가 당기는 상황이었고 먼저 영국이 러브콜을 보낸다. 덴마크 먹힌거 봤지? 지켜줄테니까 연합국 들어와라. 지원도 팍팍 해줄게 아 안해요 독일하고도 안놀테니 걱정마쇼 하지만 아이슬란드의 중립 선언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점점 초조해진다 사실 아이슬란드와 독일의 관계는 영국보다 많이 앞서가고 있었는데, 1930년대부터 친선 축구 대회를 여는 등 친숙한 관계였다. 더구나 1938년 독일의 글라이더 강사들이 아이슬란드로 무료교육을 한다며 비행장을 건설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독일의 인류학 연구팀이 조사를 위해 오기도 하고 U보트가 수도 레이캬비크에 입항한 적까지 있으니 영국 입장에선 충분히 불안할 만 했다. 그에 비해 영국은 민간 분야건 군사 분야건 아이슬란드와 접점이 없었고, 독일은 아예 외교관까지 파견할 정도로 차이가 컸다. 안되겠다 저거 독일에 붙을거같은데 그전에 우리가 먹자! 외무부:시발 중립국을 점령한다고? 최소한 협상이라도 하자 됐고 선 상륙 후 협상으로 간다. 우물쭈물대다 노르웨이처럼 뺏기면 어쩔래? (미친놈) 그렇게 5월 10일 순양함 2척과 구축함 2척, 그리고 815명의 병사는 레이캬비크에 기습 상륙하여 상기 목표 지점을 점령한다. 급조된 작전이라 제대로 된 지도도 없었고 부대원 중 아이슬란드어를 할 줄 아는 병사가 단 한명도 없었지만 군사 미보유국이었던 아이슬란드는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작전명인 포크답게 케이크처럼 쉽게 먹어버린 것이다. ?? 수도에 왜 영국 군인들이 돌아다니냐? '보호' 해주려고 들어왔는데, 불만이라도? (좆같은새끼) 아이슬란드는 영국에 노골적인 주권 침해라고 항의했지만, 군대 미보유국인데다 수도에 이미 군대가 들어와 있어서 누총협 상황인데 뭘 어쩌겠는가 실제로 상륙 전에 군함을 발견하고 통신을 시도했지만 씹고 입항하는 바람에 그냥 시발시발 거리면서 눈뜨고 코 베일 수 밖에 없었다 당연히 이 상황에 독일도 난리가 났다. 외교관도 구금당하고 호감작하려고 보낸 기술자랑 시민들도 영국으로 압송당해서 말 그대로 죽쒀서 개 준 꼴이었다. 저새끼들이 선수를 치네? 해군 니네 저기 탈환 가능하냐? 그게...일단 탈환은 어떻게든 해보겠지만 그다음 보급이 문제라 당시 독일군 중에 가장 상태가 안좋던 해군이 아이슬란드를 뺏어오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궁여지책으로 이카로스 작전을 입안해 보았지만 보급이 문제라 얼마 지나지 않아 폐기되고 만다. 체포 직전 독일 외교관 베르나 게를라흐도 "아이슬란드는 중립국이오!" 라며 항의해보지만 "그럼 덴마크는?" 이 한마디에 말문이 막히게 된다 어쨌거나 아이슬란드 입장에선 중립 무시하고 자기 땅에 들어온 연합군을 상당히 껄끄럽게 여겼다. 정부 차원에선 계속 중립을 표방하면서도 적당히 협조해 줬지만 민간 차원에선 영락없는 침공군으로 여겨졌다. 처음 영국 군인이 하선할 때 모여있던 아이슬란드 군중 중 한명이 영국군인 하나의 총을 뺏어서 담배꽁초를 집어넣고 다시 던져줬다는 일화도 있을 정도 이후 미국이 참전하고 랜드리스 루트로 활용되는 등 북대서양의 가치가 높아지자 캐나다와 미국도 아이슬란드에 파병해 1943년에는 주둔군이 3만에 달하게 된다. 당시 아이슬란드의 인구가 12만 정도였으니 전체 인구의 25%에 달하는 수였다. 또한 남자 인구의 50%나 됐는데, 여기서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아이슬란드 여자들이 군인들에 홀랑 빠져 버린 것이다. 유럽 구석 깡촌 남자들만 보다가 미국물 영국물 먹고 돈 많은 오빠들을 보니 눈이 돌아간 여자들은 군인 꽁무니만 보면 졸졸 따라다니기에 이른다. 이에 남자들은 당연히 불만이 많았고, 얼마나 심했는지 매춘업이 성황을 이룰 정도였는데 심지어 이 중엔 미성년자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1941년 보다못한 법무부가 조사해보니 최소 500명의 아이슬란드 여성이 군인들과 성관계를 맺었고 태어난 아이들도 255명이었다고 한다. 결국 이때 군인들과 사귄 여자들은 전후에 매춘죄와 반역죄로 처벌받게 된다. 다만 점령이 나쁜 영향만 준 건 아니고 위 사진의 레이캬비크 공항처럼 연합군이 지어주고 철수할 때 아이슬란드에 넘겨준 기반 시설들도 있었다. 지금 섬의 인프라가 저때 얼추 완성되었다고 볼 정도 그래도 중립 선언했는데 냅다 군홧발 들이민건 분명한 잘못인지라 아직도 감정은 좋지 않은 편이다. 연합군 점령 아래 아이슬란드 시기는 Ástandið, 번역하자면 ' 그 시기' 쯤 된다. 제대로 된 이름조차 붙이지 않을 정도로 불편한 시기였다. 그래도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지나도 늦지 않다고 했던가 철수 후 약 10년 뒤 벌어진 대구 전쟁에서 아이슬란드가 영국 코를 팍팍 눌러버렸으니 약간은 설욕했다고 볼 수 있겠다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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