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연관 갤러리
대출 갤러리 타 갤러리(0)
이 갤러리가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타 갤러리 대출 갤러리(0)
이 갤러리를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개념글 리스트
1/3
- 카나자와 여행기 목줄
- 화성공장화재, 국적 따라 목숨값 다르다... 차별인가? 난징대파티
- [속보]허웅 전 여친, 이선균 공갈사건 같은 업소출신 ㅋㅋㅋㅋㅋ 야갤러
- 대만에서 日고바야시 제약에 집단소송 시작... 사망보고 170건 은폐시도 난징대파티
- 육군 ㅇㅇ사단 사령부 정문, 초병 없고 근무자 수면중 grimoire
- 채널A) 찢 '공직선거법 재판' 9월 6일 구형, 10월 1심 선고 예상 목련피는봄
- 여성가족부 최근 정치권또움직였다 ㅇㅇ
- 사망여우 최신 영상에 박제당한 연예인...jpg ㅇㅇ
- 고교생 제자와 성관계 후 "성폭행당했다" 무고… 2심서 감형, 왜? ㅇㅇ
- 앞 안 보고 걷다가 쏙…맨홀에 빠진 소녀.jpg ㅇㅇ
- 독일) 뮌헨 근교 도시들 추천 진소담
- 독일의 이슬람 시위대가 요구하는 것 노인복지관
- 김수현이 이이경 작품 캐릭터 중에 해보고 싶었던 역할.jpg ㅇㅇ
- 日정부, 오키나와 미군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 은폐... 현지는 발칵 난징대파티
- [단독] 김도훈 대표팀 감독 제안 거절, 사령탑 선임 안갯속.jpg ㅇㅇ
동탄 경찰서 새 입장문 떳냐 !!!!
- 싱글벙글 무고 뜬 동탄 사건의 소름돋는 점20대 남성을 성추행범으로 몰고간 '50대 여성'이 허위진술 자백해서 무혐의 처분 됨하지만 만약 가해자가 일관된 진술을 했거나 피해자가 녹음을 안 했으면성범죄자 되는 것 도 억울한데 할카스 취향이라고 소문 날 뻔했음- 동탄 경찰.. 판갤러 무혐의...여자가 경찰에 "허위 신고 했다""병원에서 약을 받아 먹었는데 약 때문에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고함.그래서 무혐의......근데 기사 보니까 50대 여자라고함....50대 여자가 허위 신고를 했고,경찰은 죄없는 20초반 남자를 성범죄자 취급했고,남자는 녹음하고 유튜브에 올리고변호사 찾아가고 변호사가 열심히 일해서 입장문 쓰고남자의 어머니가 발로 뛰어다니며 녹음하고...그렇게 며칠동안 그렇게 노력하고 발버둥쳐서,마지막엔 여자가 "허위 신고 였음" ㅋ 해서겨우 무죄임이 밝혀지는 2024년 대한민국.......캬........- 울학교 에타언냐 분통터졌다 ㅋㅋㅋㅋ극찬 시발 ㅋㅋㅋㅋ - dc official App
작성자 : 시베리아다람쥐고정닉
2차세계대전 최후의 대규모 전투 시무슈 섬 전투...jpg
1945년 8월 15일 쇼와 히로히토 일왕의 항복 선언과 함께, 지난 5년간 수도없이 많은 인명을 앗아갔던 제 2차세계대전이 종전된다. 하지만 항복 선언 이후에도 몇몇 지역에선 전투가 계속되었는데... 그러나, 대부분 그저 개인 또는 소규모 집단의 적에대한 앙금으로 인한 것이었고, 그에따라 대규모 전투는 더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단 한곳 빼고 바로 쿠릴열도의 시무슈 섬 (점수도)이라는 좆만한 섬에서, 종전 선언이 된지 3일이나 지난 1945년 8월 18일, 소련군과 일본군 사이에 대규모 전투가 발생한다. 당시 시무슈 섬의 일본군은 항복 선언과 함께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무장해제 중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시무슈 섬 앞의 소련군 함선들에게서 무장해제 중인 일본군에게 대규모 포격이 가해진다. 일본군의 선제공격은 없었다. 그와 동시에 8월 18일 새벽, 소련군의 상륙이 시작된다. 일본군은 비록 무장해제 중이었지만, 3일밖에 되지 않았기에 당장 전투 태세로 돌입할 수 있는 상태였다. 솔직히 갑자기 자신들을 느닷없이 죽이려드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노 즉각 일본군도 자신들의 포로 반격을 개시함으로써, 전쟁이 끝난지 3일이나 지난 시점에서 비극의 전주곡이 울리기 시작한다. 일본군의 반격은 성공적이었다. 소련군은 상륙에 성공하기는 했으나,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는다. 시무슈 섬의 일본군은 언제나 당하기만 하는 그런 일본군과는 거리가 꽤 있었다. 일본은 미군(소련군이 아님)이 태평양을 건너 일본의 동쪽으로 공격해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는데, 이에따라 일본의 최동단이던 시무슈 섬에 중국, 태평양 전선에서 전쟁 경험을 쌓은 베테랑 병사들을 배치했던 것이었다. 게다가 시무슈 섬은 전쟁 내내 전투가 벌어진 적이 없던터라, 탄약과 장비 모두 부족함없이 넉넉하게 구비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소련군은 마치 '죽으러 오는 것'만 같았다. 병력 수 자체는 소련군 8800명, 일본군 8500명으로 소련군이 근소 우위에 있었으나, 우리가 전투의 일반 원칙, 즉 공격자가 수비자에 비해서 3:1의 수적 우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려한다면 요새에서 방어중인 일본군을 공격하는 것은 무모함, 그 자체였다. 특히 일본군 전차가 난입하여 소련군을 도륙하는데도, 소련군은 보병 대전차 전술로만 대응하였다. 그야말로 어색할 정도로 역할이 뒤바뀌어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던 것이다. 전쟁의 향방은 전장 밖에서 결정되었다. 대본영이 모든 일본군에 대한 관대한 항복을 얻기 위해서 노력할 동안, 시무슈 섬의 일본군의 분전은 모든 과정을 망칠 위험이 있었다. 히로히토 일왕의 명령에 의거하여, 시무슈 섬의 일본군에게 모든 전투 행위를 중지하라는 명령을 하달한다. 8월 18일 정오, 10명 남짓으로 구성된 일본군 협상 사절단이 소련군에게 접근하였지만, 소련군은 이 백기를 들고오는 협상 사절단에게 발포한다 그후 전투는 8월 21일이 되어서야 끝났고, 이 기간동안 일본군 1018명, 소련군 1567명이 사망했다. 물론 이정도 전사수를 뛰어넘는 초 대규모 전투는 2차세계대전 내내 수도없이 많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전쟁이 끝난지 3일이나 지난 시점에서 이정도 규모의 전투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째서 소련군은 전쟁이 끝난지 3일이나 되었는데도 무장해제중인 일본군에게 공격을 하였으며, 또 왜 이렇게까지 어이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일까? 사실, 단순히 군사 사절단만을 파견해서 종전 협상만 하면 아무런 희생없이 섬을 차지 할 수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이유는 스탈린이 조국의 아들들의 피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스탈린은 소련이 쿠릴 열도를 장악해야 한다는 주장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전장에서의 소련군의 피가 필요했던 것이다. 결국, 이로인해 희생된 것은 불쌍하고도 애꿎은 젊은이 수천명이었으며 현재는 그저 이렇게 녹이 슨 흔적만이 그때의 참상을 말해줄 뿐이다.
작성자 : 설윤아기고정닉
차단 설정
설정을 통해 게시물을 걸러서 볼 수 있습니다.
[전체 갤러리]
차단 기능을 사용합니다. 차단 등록은 20자 이내, 최대 10개까지 가능합니다.
설정된 갤러리
갤러리 선택
설정할 갤러리를 선택하세요.
[갤러리]
차단 기능을 사용합니다. 전체 설정과는 별개 적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