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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주둔 영국군
[시리즈] 영국령 홍콩 · 영국군으로 복무한 홍콩인들 2차대전 이후 영국은 냉전의 최전선에 위치한 홍콩을 방위하기 위해 제코가 석자인 상황에서도 매우 많은 병력을 배치해놨음. 한창 때인 50~60년대에는 4~6만명에 달하는 군대가 주둔했었고 한때는 전차소대도 존재했다. 타마르 해군기지에는 구축함이 포함된 해군 분견대가 정박했다. 카이탁 국제공항 한켠에는 F-4 팬텀까지 배치되어 있었다.하지만 데탕트로 중공과의 화해무드가 이어지자 영국정부는 홍콩 주둔병력을 서서히 줄여나가 3만명 정도로 고정했다. 중장비들은 대부분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동남아 우방국들에게 공여됐고 80년대부터 홍콩을 방어하는 병력 대부분은 보병부대를 중심으로 개편됐다. 참고로 홍콩은 대영제국 최후의 식민지라는 상징성 때문에 홍콩에 파병되는 부대들은 영국군에서도 역사가 깊은 메이커부대들이 주를 이뤘다. 그중에서도 특히 영국군 근위대(주: 곰털모자 쓰고 버킹엄 궁전 경비서는 걔네들 맞음.)는 1개 연대가 2년 로테이션으로 돌아가며 주둔했다. 그래서 콜드 스트림, 블랙와치, 아이리쉬 가드, 스코츠 가드, 웰시 가드의 연혁을 보면 냉전기에 홍콩에 주둔했던 경력이 서너번 이상 존재한다. 근위대들은 전투훈련은 물론이고 주기적으로 퍼레이드 같은 보여주기식 행사에 자주 동원됐다. 이 덕분에 영국군은 홍콩시민들에게 '멋지고 규율잡힌 군대'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구르카병들도 1개 대대가 상시주둔했었다. 이들은 주로 홍콩 국경에 배치되어 밀입국자들을 잡거나 홍콩경찰이 감당하지 못하는 시위진압에 투입됐다. SAS 같은 특수부대 인원들도 비정기적으로 홍콩을 방문하여 홍콩경찰 특수부대(비호대)를 교육시키는 등, 홍콩은 영국의 국방계획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1996년 홍콩반환을 1년 앞두고 영국군은 HKMSC 같은 홍콩인 부대를 해체하는 한편, 주둔부대들을 순차적으로 귀국시켰다. 그리하여 반환 한달을 남긴 시점에서는 주력부대는 대부분 빠져나갔고 행정등에 필요한 최소필요인력 100여명만 남게 됐다. 이후 6월 30일 반환행사를 마지막으로 이들도 모두 카이탁 국제공항에서 군용 수송기를 타고 영국으로 돌아갔다.홍콩에서 복무했던 전역자들의 썰을 들어보면, 홍콩시민들에 대한 이미지 메이킹 때문에 규율이 매우 빡쎘다고 한다. 게다가 홍콩의 특성상 부대 부지가 좁아서 훈련 한번 하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외출외박도 잘 나오지 않아서 흔히들 말하는 홍콩의 이국적인 분위기를 즐길 시간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작성자 : ㅇㅇ고정닉
훌쩍훌쩍 군병원 냉동고에 있는 미국 유학생 출신 이등병,,,
의문사 당한 군인들의 시신은 국가와의 법적 싸움에 중요한 증거물로 되기 때문에 냉동고에 안치되어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년을 기다리게 된다.2년전 미국 유학생 출신으로 gop에 근무하다 의문의 총상으로 사망한 김상현 이병의 사건도 마찬가지최근 김상현 이병 유가족이 사건 발생 1주기에 입장문을 발표했는데 읽어보자..고 김상현 이병 유가족 입장문안녕하세요. 김상현 이병 아빠입니다.아이가 떠나고 1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군이나 민간 경찰, 검찰 쪽에서 사건과 관련해 진전된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아직도 조사중 이라는 말만 합니다. 이렇게 더디게 진행되는데도 저희 가족은 답답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군대에서 벌어진 사건사고는 이렇게 더디게 진행해 유가족을 지치게 하는 게 전략인가 싶기도 합니다.자대배치 1달도 안돼 떠난 상현이의 사건기록을 보다 보니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GOP 투입 시 반드시 해야 하는 기본교육도 편의상 생략했으며, 갓 전입 온 신병에게 선임들의 집단 괴롭힘과 암기강요가 있는데도 간부들은 외면하고 일부 간부는 가세했다 하니 분개할 일 입니다.사고 후 일부 지휘관은 교육 미실시가 문제될 것 같아 허위로 공문서를 작성해 제출한일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소총수에서 총기교육도 없이 유탄수로 바꿔 근무를 하게 했는데 유탄수는 교육 이수 후 총기와 탄을 지급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 지휘관은 나중에 교육할 예정이었다는 궁색한 진술을 했다 합니다.사고발생 후 허위보고와 119구급대원 도착을 지연시킨 일 역시 아직도 명확한 답변이 없고 군은 조사중이란 말만 반복합니다.사고 이후 1년이 지났지만 12사단은 변화가 없는듯 합니다. 제가 아는 것만 최소 2건의 사망사건이 있었으며 외부에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그러던 중에 12사단장은 합참을 거쳐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으로 영전했다 하니 유족으로서 씁쓸합니다.아직도 차디찬 냉동고에 있는 상현이를 보면서 언제쯤 명확한 결론이 나올지 답답하게 기다리는 중입니다. 일반사람들 상식으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데 군은 외양간 고칠 생각도, 의지도 없어 보이니 앞으로 얼마나 많은 젊은 청춘들이 쓰러져갈지 걱정입니다.자식을 군에 보냈거나 보낼 부모남께 당부 말씀 드립니다. 입대한 날부터 제대하는 그날까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기록으로 남겨두세요. 군은 증거를 내밀어야 마지못해 하는 흉내라도 합니다.지금도 이 나라는 의무복무 중인 병사들을 대할 때 부를 땐 자랑스런 조국의 아들 딸, 사건 사고 나면 문제스런 너네 자식 입니다. 안타깝고 통탄스럽습니다.2023. 11. 28.고 김상현 이병 유가족 드림김상현 이병도 언젠가는 사건이 모두 밝혀져 억울함을 풀어내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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