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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판 탑건: 제 1521 항공기지
https://youtu.be/OEf16SVwV44195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미국과 소련의 공군 장성들은 미래의 전쟁에서 과거의 공중전 전술은 다소 쓸모가 없어질 것이라고 직감했다.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유감없이 보여준 핵무기의 위력은 재래식 전력의 존재 가치를 위협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으며, 이제 전쟁은 누가 상대방의 전략 폭격기를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 격추하는지에 따라 승패가 갈리게 된 것이다.이렇게 전쟁 수행 전략의 패러다임이 바뀜에 따라 전투기는 이제 더 이상은 적 전투기와 맞붙지 않아도 되었다. 전략폭격기와 버섯구름이 하늘을 뒤덮을 것이라고 예견되는 미래 전장에서 전투기에게 요구되었던 것은 무시무시한 가속도와 상승력, 그리고 적 항공기를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격추할 수 있는 능력이었던 것이다.진먼 포격전 당시 노획한 사이드와인더 미사일을 역설계하여 자기들만의 열추적 미사일(AA-2 Atoll, 또는 R-3S)을 만드는 데 성공한 소련은 자신만만했다. 적의 꼬리만 일정 시간 물고 있으면 마법처럼 날아가 적을 일격에 격추시키는 무기가 손에 들어왔던 것이다. 초음속 요격 임무의 원활한 수행을 위하여 소련은 미사일 운용에 맞추어 자신들의 최신예기를 설계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미그-21 초음속 전투기였다.미그기의 조종사들은 과거와는 사뭇 다른 항공전술을 요구받았다. 당시 소련이 사용했던 지상 관제 요격 시스템인 ‘보즈두크’는 요격에 나선 미그기들에게 직접 좌표 코드를 전송함으로서 표적까지 자동으로 보내주는 기능이 있었다. 적기의 요격은 모두 보즈두크의 결정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전투기 조종사가 직접 적을 색적할 필요도, 추격할 필요도 없었다. 미사일의 발사 한계를 초과하지 않기 위해 전투 상황을 포함한 어떠한 상황에서도 항공기에 2G를 초과하는 부하를 가하는 기동이 조종사들에게는 거의 금기시되다시피 했다.이론과 열병식은 완벽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1960년대 중반, 터키 공군의RF-84기가 소련의 영공을 침범하자 제982전투항공연대의 타라투타 대위는 자신의 미그-21PF로 해당 항공기를 요격할 것을 명령받았다. 타라투타 대위가 RF-84기에 접근하여 터키 공군 라운델임을 확인하자,지상관제소는 즉각 격추를 명령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당시 타라투타 대위가 달고 있던 무장인 R-3S는 최소 사거리 1km에 최소 항공기 속도 900km/h라는 발사 조건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조건을 달성하려면 적기가 소련 영공을 벗어나게 될 판이었던 것이다.결국 타라투타 대위는 궁여지책으로 항공기의 속도를 낮추어 발사 거리를 확보한 뒤 첫 번째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거리가 충분하지 않아 빗나가고 말았다. 어렵게 발사한 두 번째 미사일 역시 적기를 추적하지 못하고 하늘로 솟구쳤고, 설상가상으로 미사일의 매연이 엔진으로 흘러들어와 미그기의 엔진이 꺼져버렸다. 그렇게 정밀 무장을 장착한 최신예 소련제 초음속 요격기는 직선 비행하는 적의 비무장 아음속 항공기를 격추하지 못하고 기지로 돌아가야만 했다. 이 사건은 당시 소련 방공시스템의 총체적인 한계를 모두 보여주었다. 조종사는 적절한 근접 공중전 실력이 부족했으며, 무장은 성능과 신뢰성이 저열했고, 지상 관제 장교들은 자신들이 관제하는 항공기의 무장별 성능도 제대로 숙지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사회 특유의 한계로 인하여 아무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자 소련 군 당국은 이 사건을 조용히 덮어버렸다.이때쯤 미국 역시 자신들이 만든 고성능 미사일들의 성능을 믿고 베트남이라는 수렁에 뛰어들었고, 팬텀기들은 그 믿음을 완벽하게 부숴버렸다. 시계 밖 교전(BVR)이 본격적으로 가능한 최초의 항공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정치적 제약들과 당시 전자장비의 열악한 성능으로 인하여 북베트남이 사용한 소련제 구식 항공기들은 저고도 격투전에서 팬텀을 농락했다. 미국은 자신들의 수백만 달러짜리 전투기들이 왠 동양의 후진국의 공군한테 줄줄이 박살나는 것을 보며 큰 충격에 빠져들었다.베트남전의 진행을 보며 똑같이 충격에 빠진 나라는 아이러니하게도 소련이었다. 북베트남이 사용한 항공기들은 분명 소련제이기는 했지만, 북베트남을 가르쳐 준 비행교관들은 모두 중국인이었던 데다 그 항공기들은 소련에서는 이미 십수년 전에 몽땅 퇴역해버린 퇴물들이었다. 더군다나 소련제 항공기들은 미군기보다 훨씬 열등한 레이더와 항전장비를 장착하고 잇어 BVR은 사실상 불가능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미국보다 상황이 나쁘면 나빴지 절대 좋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좋지 않은 상황은 제3차 중동전쟁에서 여실히 펼쳐졌다. 소련제 항공기들이 승승장구하던 베트남과는 정 반대로 이집트의 보즈두크 요격 시스템과 미그-21은 이스라엘의 항공기들에게 속수무책으로 깨져나갔다. 소련은 보즈두크 방공시스템의 부끄럽고 무능력한 실패에 대해 이집트군의 무능을 탓했지만 말이다.하지만 이내 소련군은 자신들이 직접 싸움에 나설 기회를 얻게 된다. 계속되던 이스라엘의 공중 도발을 막기 위해 자신들의 조종사들을 이집트에 직접 파견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소련은 자국 남서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인 ‘마리’에 있는 공군기지를 거점으로 삼아 한 달여간의 훈련을 거쳐 이집트에 파견될 최고의 조종사들을 양성하기로 마음먹었다. 마리 공군기지의 환경은 황량한 이집트의 사막 지형과 상당히 유사했기 때문에 파견될 조종사들은 이곳에서 눈에 띄는 지형지물이 없을 때 비행하는 법 등 그들에게 필요한 실력을 배양했다. 또한 이곳에서 시행된 훈련은 기존 소련 공군의 요격형 훈련체계보다는 살짝 더 난이도가 높았다. 조종사들에게는 최대 G를 일상적으로 넘나드는 등 일반적인 훈련보다 훨씬 더 과격한 기동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자신만만하게 나름의 훈련을 마친 소련 조종사들이 마주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소련 공군이 겪은 최악의 굴욕이었다.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의 공군 조종사들은 소련의 조종사들보다 기량이 월등했다. 소련 조종사들이 마주친 바로 첫 교전부터 소련 측은 단 한 대의 이스라엘 전투기를 격추하지도 못하고 전투기 4대와 조종사 3명을 잃어야만 했다. 마리에서 소련 조종사들은 기동 여건이 좀 더 좋아지긴 했지만 결국에는 요격전 위주의 훈련을 받았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 소련에는 제트기 간의 근접 기동전과 격투전을 가르칠 수 있는 교관이 단 한명도 없었기 때문이다.이집트에서의 처절한 실패는 공군 수뇌부의 단잠을 깨우기에 차고도 넘쳤다. 소련 공군은 자신들이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찾아서 채우기로 마음먹었다. 중동에서 철수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소련 공군 수뇌부는 다름아닌 마리 공군기지에 ‘특별 항공 교육 센터’, 또는 제1521 항공기지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바야흐로 소련판 ‘탑 건’의 시작이었다.1521 항공기지는 1969년의 처참한 실패를 교훈 삼아 밑바닥부터 모든 제트 항공전 교리를 재정립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를 위해 소련 공군본부의 수많은 전술 분석가들은 매일같이 수많은 양의 데이터와 자료를 가지고 씨름해야 했다. 이들은 베트남 전쟁과 4차례에 걸친 중동전쟁에서 기록된 모든 항공전의 결과를 분석하고 취합하여 소련 공군에게 적합한 항공전 교리를 만들어 내야 하는 임무를 맡았던 것이다. 미국의 탑건에서는 우수한 조종사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내세워 도제식으로 조종사들에게 조종술을 가르쳤다면, 1521부대에서는 다름 아닌 유리 가가린 공군사관학교가 전술과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역할을 맡았다. 항공 전술 개발 과정은 훗날 리페츠크 훈련 센터에서 이어받게 된다.데이터 분석 결과가 나오기 시작하자 1521부대는 즉시 소련 공군을 위한 새로운 항공전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한 그룹이 항공기의 기동에 대한 계산을 수학적으로 이론화하면, 다른 그룹이 이 이론을 직접 항공기를 타고 성립하는지 증명해 보는 과정이 이어졌다. 이렇게 해서 정립된 일련의 전술들을 이용하여 소련 공군은‘500연습’이라는 고난이도의 전투 훈련 과정을 창설하게 된다. 500연습에서 가장 중요시된 요소는 바로 강도였다. 조종사가 500연습에서 고득점을 하려면 전체 임무 시간의60% 이상을 800km/h를 초과하여 날아다녀야 했고, 공중 기동을 수행하는 시간의 40%는 항공기의 가해지는 중력가속도가 4G이상이 되어야 했다. 이 두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면 임무는 실패한 걸로 간주되었다.500연습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변화한 부분은 바로 조종사들에게 요구되는‘전장 가시화’능력이었다. 보즈두크 방공시스템의 명령을 수동적으로 따르던 기존의 방식과는 달리, 500연습에 참가한 조종사들은 가상적기와의 교전 상황에서 15개에서 20개 정도 되는 모든 경우의 수들을 직접 생각해 내고 이를 가시화하여 그에 맞는 적절한 기동을 수행해야 했다. 이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1521부대의 가상적기 조종사들에게는 소련치고는 굉장히 파격적으로 기존 전술에 없는 기동을 수행해도 좋다는 허가가 떨어졌다. 이것이 바로 기존 항공 전술 훈련과 500연습이 차별화되는 가장 큰 요소가 되었다.가상적기 조종사들이 모두 적절한 기량을 갖추게 되자 탑건처럼 500 연습의 대상은 전 공군으로 확대되었다. 마리 항공기지에 파견된 소련 각지의 항공연대에서 차출된 파일럿들은 마리에서 혹독한 공중전 훈련을 받았고, 이들은 훈련이 끝난 후 원대 복귀하여 해당 부대에서 비행 교관 역할을 맡게 되었다. 1972년 중반이 되자 소련의 모든 미그-21 연대들은 마리에 파견되었던 조종사를 한 명씩 보유하게 되었다. 이 기조는 소련 공군이 미그 21을 제외한 다른 모든 전투기 연대에게도 500 연습을 확대하게 되는 1974년까지 유지되었다. 이제 1521 부대는 소련 전 공군의 전투기 부대에게 적절한 평가를 부과하는 임무까지 맡게 되었던 것이다.1974년 이후 소련의 모든 전투항공연대는 1년에 한번 500연습에 참가하여 부대의 전투 기량을 평가받아야 했다. 평가되는 요소는 복잡한 기동의 수행능력, 사막 지형에서의 저고도 침투, 도그파이트와 신속 대응 능력, 기동중인 적기에 대한 미사일과 기관포 사격 능력 등이 있었다. 평가는 단일 기체는 물론이고 2기 편대와 4기 편대, 심지어는 항공연대 전체에 부과되는 경우도 있었다.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다는 것은 곧 빠른 진급을 보장하는 길이었다. 500연습이 전 공군에 확대되어 시행된 이후로 소련 공군의 전술적 숙련도가 눈부시게 뛰어올랐을 뿐만 아니라, 전투조종사들에게 공중전의 양상을 능동적으로 사고하고 분석하는 능력까지 같이 길러주었다. 그러나 훈련의 발전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애석하게도 소련 공군은 중동에서 다시 한번 실패의 쓴맛을 처절하게 맛봐야 했기 때문이다.1521부대 조종사들의 기량과 분명 당대 최고였지만, 안타깝게도 소련 공군은 당시 시대에 흐름에서 한 발자국 뒤처져 있었다. 베트남전에서는 당시의 열악한 전자장비에 가려 크게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1980년대가 되자 전자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시계 밖 교전, 즉BVR이 항공전의 대세가 되었던 것이다. 이제 항공전은 소련 조종사들이 마리에서 연습했던 것처럼 적의 꼬리를 무는 것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 펼쳐질 항공전은 누가 더 좋은 레이더를 탑재했는지, 누구의 반능동 레이더 유도 미사일 시커 성능이 더 좋은지, 그리고 누구의 IFF(피아식별기)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작동하는지에 의해 결정될 것이었다. 기껏 훈련체계를 다듬어내고 보니 소련제 항공기들은 이런 세계적 흐름에서 다소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1982년에 벌어진 레바논 내전에 개입한 이스라엘 공군은 말 그대로 시리아의 공군과 방공망 전체를 삭제시켜버리는 것에 성공했다. 시리아 공군이 소련에게 직접 훈련받았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이는 소련제 항공기와 방공시스템, 그리고 훈련 체계의 신뢰성을 나락으로 보내버리는 길이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공군의 전과가 다소 부풀려진 점, 시리아에 배치된 소련 전술기들은 미그-21과 23을 필두로 한 3세대기인 반면 이스라엘의 전술기 주력은 F-15와 F-16으로 구성된 4세대기라는 점, 그냥 아랍인들이 전쟁을 잘 못한다는 점 등으로 구성된 소련 정부의 구차한 변명은 단 한 개도 통하지 못했다. 당시 소련의 최신예기였던 미그-23기는 감히 미국의 F-15는 고사하고 F-16에게도 흠집을 내지 못할 정도의 성능이었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던 것이다. 이런 성능의 격차는 1521부대의 조종사들이 고군분투한들 어찌해볼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바논에서 펼쳐진 모든 공중 충돌을 분석한 1521부대의 조종사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 마리의 조종사들은 그동안 연습해 왔던 미사일 회피 기동은 이제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아냈다. BVR상황에서는 첫 번째 미사일을 피하려고 회피 기동에 들어가는 순간 두 번째 미사일이 날아와 버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이제 마리의 교육과정은 적의 레이더를 피하고 적 미사일 가동범위의 한계를 넘어가는 쪽으로 맞춰지게 되었다. 마리 조종사들의 노력은 소련 공군에 본격적으로 최신 미그-29기들이 배치되면서 그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구형 미그-23으로 최소한 한 번 이상은 전자장비 차이가 압도적인 미그-29를 격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1984년은 소련 공군에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한 해였다. 1984년부터 소련 공군에 본격적으로 미그-29와 Su-27을 위시한 4세대기들이 대량 배치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소련과 러시아 공군 역사를 통틀어서 유일하게 미 공군보다 IRST등 특정 부분에서 앞서갔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 해는 또한 1521부대의 평가 과정이 전부 바뀐 해이기도 하다. 그동안 공군 상층부가 500연습에서 치러질 훈련 내용을 미리 피훈련부대에게 암암리에 알려주었다면, 지금부터는 그러한 행위는 일체 근절되었다. 대신 피훈련부대의 지휘관은 마리에 도착하고 나서야 전체적인 훈련 개요를 듣고 본격적인 작전을 수립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피훈련부대의 지휘관은 상급 부대의 작전 간섭 없이 독자적으로 작전 수행 방안을 논의하고 실행에 옮겨야 했다. 열병식과 보여주기식 훈련에 찌든 소련군으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조치가 아닐 수 없었다.사격술 평가도 상당 부분이 바뀌었다.기존에는 단순히 가상 표적를 격추했냐 못했냐를 두고 훈련의 성과가 갈렸다면,이제는 표적을 얼마나 빠르고 효과적으로 격추하는지에 무게를 두기 시작한 것이다. 조종사가 사격술에서 최고 점수를 받으려면 그는 표적기가 ‘보호 구역’에 진입하기 전에 격추해야만 했다. 표적기가 보호 구역에 진입한 후 격추되었다면 ‘우수’, 표적기가 보호 구역을 빠져나온 뒤 격추시켰다면 ‘보통’ 등으로 평가 단계가 세분화되었다. 이제 피훈련부대의 지휘관은 더 이상 미리 조종사들의 작전계획을 볼 수 없다는 것도 바뀐 요소 중 하나였다. 양 측의 계획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은 1521부대의 지휘관 단 한 명이었으며 이를 통해 피훈련부대의 비행계획을 반려시키는 등의 안전 조치가 취해지기도 하였다. 훈련의 대대적인 개편은 전반적으로 크게 바뀐 것은 없으면서도 작전 효율성을 크게 향상되는데 주안점을 둔 것이다.또한 1984년부터 위에 잠깐 언급했던 리페츠크 훈련 센터의 조종사들의 기량과 전투태세를 1521부대의 조종사들이 점검하기 시작했다. 리페츠크의 역할은 1521부대와는 다소 달랐다. 1521부대가 공중 전술 개발에 중점을 두었다면, 리페츠크는 조종사들의 재훈련과 기종 전환, 그리고 항공무기의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사용 방안을 교육하는 데 중점을 둔 부대였다. 리페츠크는 이러한 연유로 소련에서 가장 먼저 신형기를 수령하는 부대였으며, 신형기를 위한 교범을 만드는 것도 리페츠크의 업무 중 하나였다. 리페츠크가 1521부대에게 검수를 받게 된 건 다름이 아니라 R-73 미사일의 배치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1521부대에서 훈련을 진행한 제145 전투항공연대는 자신들의 성적이 예상보다 매우 좋지 않자 1521부대의 지휘관에게 항의를 넣었다. 자신들은 리페츠크에서 개발한 모든 수칙을 지켰음에도 항공기가 제 성능을 내지 못했다는 것이 그 사유였다. 1521부대의 지휘관은 145연대의 평가는 공정했고 성적을 절대 바꿔줄 수 없다며 단호하게 대처했고, 이 싸움이 소련 상층부의 귀에까지 들어가자 R-73 미사일의 성능을 재검사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리페츠크가 작성한 매뉴얼이 잘못되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이러한 연유에서 1년에 한번씩 리페츠크의 조종사들은 마리에서 자신들이 개발한 전략 전술 및 무장 평가를 진행하게 되었다.그러나 탑건이 지금까지도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과 달리 1521부대의 끝은 좋지 못했다. 1980년대 후반 소련의 경제 붕괴가 가속화되자 1521부대는 그들에게 필요한 새 전투기들을 수령할 수 없었다. 1990년이 돼서야 1521부대의 제1연대가 겨우 미그-29를 수령했을 뿐이었다. 제2연대의 Su-27 배치 계획은 1987년 이후 지속적으로 연기되다 결국 1991년 소련이 붕괴함으로서 휴짓조각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돈이 궁했던 신생 러시아 연방은 당연하게도 훈련 전용 부대에게 신기종을 사줄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1521부대는 소련 붕괴 이후로 단 한번의 훈련 비행도 실시하지 못했다. 마리 항공기지는 러시아가 아니라 투르크메니스탄에 있었기 때문에, 양국은 마리에 배치된 항공기들에 대해 신경전을 이어오다 1990년대 초 어느 날 러시아가 마리 항공기들을 대대적으로 수리해야겠다며 러시아 영토 내로 재배치하면서 소련판 '탑건', 마리 항공기지와 제1521 특별 항공 교육 센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여담) 1521부대의 지휘관을 지낸 콘스탄틴 마로조프는 우크라이나의 초대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2007년 나토 대사 재직 시절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단서 조항을 만드는 데 기여를 한 바 있다.
작성자 : JamesMGere고정닉
서구 주도 세계질서가 흔들리고 있는 이유...
1. 전통 열강들의 약화가장 먼저 꼽히는건 전통열강들의 약화임. 특히 유럽과 일본이 그 정도가 심각함. 사실 세계 GDP 비중으로 보면 미국도 막 2차대전 이후나 1950년대와 같은 대규모 비중 확대는없긴 함.하지만 미국은 그래도 세계 GDP 25-26% 즉 세계 gdp 4분의 1 수준은 지난 30년간 꾸준히 지켜옴. 그러나 유럽은 세계 gdp 35% 에서 20% 로 거의 반토막 났음.[ 1995년도 일본 + 독일 GDP > 미국 GDP ]게다가 유럽도 사실 최근 급격히 성장한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크로아티아 체코등 중동부 유럽의 급격한 성장 덕분에 덜해보이는거고. 기존 선진 블록이던 서유럽만 떼놓고 보면 세계 gdp 28-30% 에서 12-13% 수준으로 줄어듬.그리고 일본은 아예 1994년 세계 gdp 18% 수준에서 2024년 3% 대로 거의 6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드는것에서 그 심각성이 잘 나타남. 즉 30년전만 해도 미국 유럽 일본 3곳 이 합치면 세계 gdp 약 75-80% 로 사실상 그 외 여러 국가들 무시하고 세계 질서를 마음대로 할 수 있었음. 그에 비해 지금 미국 유럽 일본은 40% 대 후반에 불과하고.그래서 G7 같은게 옛날엔 매우 중요했던거고. 미국은 그나마 유지라도 했지만 유럽 일본이 너무 쪼그라듬. 이것의 가장 큰 이유로는 초고령화로 인한 생산인구 비중 감소와 소비 감소 그리고 자연스레 따라오는 노인부양을 위한 사회 비용 증가.실제로 유럽이나 일본은 그 많은 세금 거둬서 뭐함? 하는 한국인들이 있지만 유럽과 일본 국가 재정의 3분의1에서 2분의1 가까이가 복지 및 노인 연금 비용으로 나가고 있는중임.이는 직간접적으로 한 사회의 소비패턴과 문화 트렌드에도 영향을 끼쳐서 소비는 최대한 검소하게 하고 경로의존성으로 인해 보다 옛날것만을 추종하게 됨.그래서 실제 QR코드만해도 일본이 가장 먼저 개발했음에도 가장 빨리 상용화되고 보편화된건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인도 아프리카등 일본보다 젊은 개도국들이었음.이 뿐 아니라 2019년까지 독일 법원에서 윈도우 95를 쓰는 황당한 사태등은 얼마나 기술 혁신과 신산업 발전에 고령화가 지장을 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일각에 불과함.[ 미국 인구 피라미드 ]소프트웨어 개발자라고 이슬먹고 사는게 아닌 이상, 자신들의 아이디어와 발명을 소비해줄 시장이 있어야 하는데 사회가 늙어가면서 그에 대해 그다지 환영적이지 못하고 소비시장이 제한적이면 말 다한것이지.이민자 팽창과 히스패닉 유입으로 인한 90년대부터 2009년도까지 출산율 2를 넘으며 2차 베이비붐을 겪었던 미국이 신산업을 주도한건 사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연이 아니라는것. 물론 미국의 자본력이나 인재를 얘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90년대 2000년대 초까지 유럽이나 일본 자본력이나 대학 졸업생수가 미국이랑 견줄 수준이기도 했음. 여하튼 유럽과 일본이 초고령화로 생산 인구는 줄고 부양 인구는 늘며 혁신도 지체되서 신산업 창출까지 실패함. 그로 인해 세계 경제 비중은 급격히 감소해 유럽과 일본은 세계 gdp 53% 에서 19-20%대 로 줄어듬. 미국은 25% 대 유지중인 반면.[ 갈수록 증가하는 유럽 및 일본 노인 인구 비중 ]더 암울한점은 유럽과 일본 노인 인구 증가는 멈출줄을 모르고 있음. 게다가 그나마 유럽 일본이 쥐고 있던 제조업마저 인건비가 훨씬 싼 개도국들에게 지분을 내주기 까지 함. 더해, 이제는 그나마 고부가가치 제조업마저 털리기 시작함. 한때 호구라고 불렸던 중국에게.2. 중국의 제조업 독점[ 1980년도 중국보다 가난했던 단 두 국가 : 소말리아, 탄자니아 ]1980년대 중국은 가난했음. 너무나도 가난했던 극빈곤 국가로 인도나 동남아시아는 물론이요 아프리카조차 중국보다 잘 살았음.중국보다 가난했던 아프리카 국가는 내전중인 소말리아 같은 국가 2-3곳 정도인 수준이였음. 중국이 북한의 1인당 gdp를 추월한게 1994년도라고 하니 말 다했지.[ 북한 vs 중국 1인당 gdp ]피죽 배급도 받기 힘들어 보다 잘사는 북한에 가서 밥을 얻어먹었다는 조선족들의 일화는 1970년대 1980년대 중국의 빈곤함을 잘 보여주는 단면이고.여기에 레이달리오가 투자할때 가지고간 미국 가정용 계산기에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놀랄정도라고 하니 중국과 선진국간의 당시 격차는 그야말로 넘사벽이었음.이렇게 40년전까지 자본도 기술도 그렇다고 변변한 공장도 별로 없던 중국이 가진 유일한게 있었음. 그것은 당시 이미 10억이 넘어가던 세계 최대 규모의 인구. 그리고 중국 공산당은 서구의 자본가들에게 거절할수 없는 제안을 함.시급 50원 100원만 주면 노예처럼 부려도 되고 노동권 시위도 공산당이 다 찍어눌러주겠다는것. 결과는 알다시피 이 독이 든 성배를 기꺼이 마셨고.유럽과 미국은 생산시설을 저가 인력을 10억단위로 제공 가능한 중국에 옮겼고, 중국은 그걸 통해 자본을 축적했을뿐 아니라 서구의 생산 기술이나 방식도 다 흡수해버림.그래도 선진국 기업은 단가 낮춰 좋고 소비자는 싸게 써서 좋았기에 ' 힘들고 돈 안되는 저부가가치는 중국 니네가 해라 ~ ' 는 마인드로 외주를 준거였으나...중국이 바보도 아니고, 안 그래도 인건비가 싼 중국은 저가 인건비를 통해 남는돈으로 끊임없는 기술 개발 투자에 힘 쏟아서 세계 2-3위 투자 규모를 다툼.그 결과, 전기차, 배터리, 드론, 태양광에 레거시 반도체까지 서서히 고부가가치 제조업마저 중국이 석권해나가고 있음. 아예 인건비가 중요한 노동 집약 산업이자 해군력의 핵심인 조선업은 최근 중국이 세계 점유율 7-80% 에 육박.여기에 시진핑 이전엔 알리바바가 아마존을 그리고 텐센트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시가총액으로 추월했을 정도였으며 틱톡은 세계적 앱이 되었음.이와 같이 IT와 인공지능에서 미국이 독주해서 그렇지, 신산업에서도 사실상 미국 다음이라 하면 중국이라 할 정도로 압도적 2위 국가로 떠오른 상황임. 실제로 러시아가 전쟁 이후 서구와 단절되자 독일제나 일본제 자동차 대신 중국제 자동차를 사용하고, 독일 공작기계 대신 중국제 기계를 쓰며 인터넷 쇼핑은 알리 익스프레스가 대체하며 서구와 끊기더라도 중국이 대체제가 될 수 있음을 충분히 보여주었음.그리고 이런 러시아의 전쟁 지속은 비단 중국의 제조업 및 플랫폼 지원만이 아니라 글로벌 사우스 옛 용어로는 제 3세계의 인력 및 자원 수급이 있고.3. 글로벌 사우스의 성장[ 유럽 ( 파랑색 ) vs 비유럽 ( 빨강색 ) GDP 변화 ]채텀 하우스같은 영국 왕립 싱크탱크에서 지적하는 러시아가 온갖 미국과 유럽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무너지기는 커녕 전쟁을 지속할수 있는 이유로는 단순 중국이 아님.더 중요한게 지난 30년간 성장한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등의 신흥국들이 꼽힘. 인도가 미국 유럽 제재 이후 러시아의 석유를 대거 사들인게 좋은 사례.한국에서의 세계라 하면 인식이 기껏해야 중국 일본등 동아시아 주변국에 유럽 미국이라 상상하기 힘들지만 이미 세계 인구 중심지의 중핵은 한국이 발전모델로 삼던 선진국이 아니게 된지 오래임.몇몇 인구학자나 역사학자들은 이 현상을 두고 인구대역전이라고 부름. 전통적으로 전근대에는 인구 부양력이 토지의 비옥도와 기후의 온화함등에 종속되었음. [ 1800년 vs 2024년 아시아 인구 변화 ]그렇기에 중국 인도나 서유럽등 일부 지역 말고는 아이를 낳더라도 식량이 부족해 인구 성장이 사실상 수백년 내지 수천년 넘게 정체인곳들이 지구 대부분이었음.그러나 서구에서 발명한 비료나 농기계의 혜택을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도 보게 되었음. 그 뿐 아니라 세계화가 진전되고 수송 및 보관 기술이 발달하며 이전에는 신선도때문에 불가능했던 대규모 농산품 무역이 가능해짐.[ 19세기초까지 50% 에 육박했던 세계 영아 사망률 ]그 말은 즉슨 이전처럼 아이를 많이 낳아도 옛날처럼 굶어 죽는 기아 사태가 안 일어난다는것. 여기에 의료와 위생 개념까지 개선되며 영아사망률도 낮아짐. 결과 아이를 낳는 족족 인구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는거고.이미 세속화 및 도시화로 아이를 적게 낳게 된 서구나 동아시아와 다르게 식량과 위생문제는 어느정도 해결된 상황에서 출산율은 5-6 수준이니 인구가 폭증하게 됨. [ 유럽과 북미의 19세기 인구 대팽창 ]그리고 인구의 증가는 곧 노동력의 확대 = 소비시장의 확대 = 병력자원의 확대로 이어지며 유럽이 19세기 인구 대팽창하며 국력이 미쳐돌아가서 세계를 정복했듯, 유럽 미국 동아시아 이외 글로벌 사우스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그래서 현재 세계의 국제정치와 경제를 좌우하는 제 3의 흐름은 1에서 얘기했던 근대 미국 유럽 일본등의 열강들도, 그리고 전통적인 인구 밀집지인 동아시아나 서유럽 지역도 아님.[ 영국, 프랑스, 미국, 스페인, 네덜란드 식민지들 ]한국인에겐 생소한 지역들인 글로벌 사우스지. 이전에는 식량 생산이 적은 지역이었으나 근대 기술과 외부와의 무역으로 체급을 급격히 키우게 된 중남미, 동남아, 중동, 아프리카. 이전에는 대부분 서구의 식민지로 반 서구 감정이 강하며 전근대에는 워낙 인구밀도가 낮아 존재감이 떨어지던 지역들. 유일한 예외는 글로벌 사우스의 수장격인 인도지만 인도는 전근대에는 정치적인 통합을 이룬 시기가 적었고, 근대에는 영국의 식민지였음.[ 생산인구가 급감하는 동아시아와 유럽 vs 폭증하는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 vs 근소하게 증가하는 미국 ]현재 글로벌 사우스 지역들의 인구는 세계 인구 88% 에 경제 규모로는 세계 gdp 약 40% 에 달함. 시진핑이 인도네시아에 대해 극진한 환대를 한 이유도 그거고.실제로 트럼프의 콜비가 패권이 결정나는곳은 유럽과 대서양이 아니라, 세계 gdp 60% 가 몰리는 인도-태평양등 아시아 지역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런 글로벌 사우스 지역의 인구와 경제 비중이 커진게 가장 근본적 이유.3줄 요약 :1. 미국은 체급을 30년전과 같이 유지하고 있으나 유럽 일본의 초고령화와 신산업 실패로 인한 쇠락이 너무 심각해 서방의 세계 gdp 비중은 30년전 대비 반토막 수준이며 날로 하락중.2. 선진국이 싼맛에 외주를 주었던 중국이 자본도 축적하고 기술개발도 막대하게 해서 유럽 일본의 고부가가치 제조업도 석권중이며, IT와 인공지능에서도 세계 2위급.3. 한국은 관심 없어하는 중동, 인도, 동남아, 아프리카등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인구 폭증으로 인해 미국 유럽 일본에게 쏠려 있던 힘의 추가 상대적으로 역사의 변방이었던 국가에게로 옮겨가고 있음.
작성자 : 싱붕이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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