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략적인 줄거리: 사람마다 제각각 다른 색으로 보이는 히구라시 토츠코는 파란색을 띠고 있는 사쿠나가 키미에게 이끌리게 된다. 그러던 중 어느 순간 키미는 학교에서 사라지게 되고, 왜 사라졌을까 끙끙대던 토츠코는 키미의 친구들에게 키미가 자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더 이상 만날 방법은 없을까 아쉬워하던 차에, 토츠코는 키미가 서점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이곳저곳 찾아 나서게 된다. 그렇게 서점에서 키미를 찾아서, 키미를 찾아왔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카운터 앞의 매대에 있는 악보를 사러 왔다고 허둥대며 말하는 순간, 그 시간에 서점에 있던 카게하라 루이가 "너희 악기 연주도 하니?" 라며 밴드를 결성하자고 제안하게 되고, 머뭇거리는 키미에게 토츠코가 밴드를 하자고 확실하게 제안하면서, 셋은 밴드를 결성해 비어있는 교회를 연습실 삼아 노래를 만들게 된다.
작중 눈여겨 볼 점: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의 구별.
작중 토츠코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는 성당의 수녀님은, 토츠코에게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토츠코는 계속해서 고민하게 된다. 내가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무엇을 바꿀 수 없는지를. 그러면서 밴드 활동은 비밀리에 시작된다.(토츠코가 다니고 있는 학교가 남녀 교제 금지이므로)
- 세 캐릭터의 밴드 활동을 통해 알아보는 각자의 결핍.
1) 키미와 루이는 밴드활동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지만, 같이 밴드를 할 친구가 없어 혼자 기타와 작곡, 다른 악기를 연습하고 있다. 토츠코의 결핍은 수녀님의 말씀 그대로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이 결핍돼 있다. 토츠코는 키미와 루이에게 제안해 셋이 함께 밴드활동을 하게 된다.
2) 키미에게는 원래 학교 내의 성가대를 하도록 할머니께 기대받고 있고, 루이는 어머니께 장차 병원을 물려 받아야 하니, 의과대학에 진학해 의사가 되는 것을 기대받고 있다.
3) 키미는 성가대 대신에 밴드 활동을 하고, 루이는 공부도 공부대로 열심히 하고, 입시가 끝나기까지의 임시 기간 동안 밴드 활동을 하기로 부모님께 말씀드리면서, 밴드 활동을 약속받게 된다.
- 그리고 각자의 결핍이 채워지는 과정과 채워지지 않는 과정과 결과.
1) 루이는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되고, 해야만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마음먹게 된다.
2) 루이는 작품 마지막까지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해야만 하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찾지 못하게 된다.
3) 토츠코는 결국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별할 수 있게 된다. 심지어 자신의 색도 찾게 된다. 자신의 색은 '빨강'이다.
4)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곡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방황'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그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누구는 깨닫지 못하고, 누구는 깨닫는ㅡ하지만 고민과 방황의 시간, 그리고 고통을 겪는ㅡ정신적인 성장을 이루게 된다.
- 파랑, 빨강, 초록이라는 빛의 삼원색 키워드
여기서 파랑은 키미, 빨강은 토츠코, 초록은 루이로 설정돼 있다.
이 빛의 삼원색으로 흰색이 만들어지면서, 이제 이 세 가지 색으로 모든 색을 만들 수 있게 된다.
- 빛의 삼원색 키워드를 적용하고, 더 나아가보는 키워드를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영화 내 인트로에서 토츠코는 빨간 사과, 초록 나무, 파란 물고기를 언급한다.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한다" 결국 이 메세지는 맹자가 살던 때의 전국시대의 키워드 중 하나이기도 한데, "불가능한 일을 하려고 함." 정도로 해석된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이 문장을 "사과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한다."라고 해보자. 그리고 빛의 삼원색 키워드를 적용해보자.(예를 들어, 모든 색을 만들 수 있다는 키워드를) 그렇다면 이런 말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셋이 힘을 합치면 불가능한 일도 해낼 수 있게 된다."
-작품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메세지
1) 결국,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계속해서 고민하게 되고, 못 찾을 가능성이 높다. 계속 고민해도 답은 안 나오는 문제일 가능성이 너무 높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떠한가. 키미처럼 그렇게 방황하며 살아가도 그것이 어때서? 우리는 작품을 감상하며 뭔가 주인공은 토츠코처럼 보이지만, 막상 진정한 주인공은 키미와 루이인 거 같은데? 왜지? 그런 혼란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야마다 나오코 감독님이 의도하신 바가 아닐까 한다. 결국 우리는 살아가면서, 1> 루이처럼 내가 무엇을 할 지 찾아버리게 될 수 있고, 그것을 위해 나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2> 키미처럼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지 막막할 수도 있고, 앞으로 못 찾아나갈 수도 있다. 찾아도 좋고 못 찾아도 좋다. 그럼에도 살아간다. 우리는 생각하고, 고민하는 사람이고 방황하는 존재이다.
2) 결국 그렇기에 사람은 각자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삶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남들과의 주고받는 도움과, 서로의 선의에 의해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삶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닌, 모두가 서로를 생각하며 서로를 도와주며 살아가는 것이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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