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반짝하고 사라진 바둑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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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반짝하고 사라진 바둑기사

ㅇ(175.117) 2013.03.04 14:19:17

조회 624 추천 2 댓글 4

장두진 프로기사를 아십니까? 제가 87년도에 조선일보 기왕전을 스크랩해둔것이 있어서 봤는데 흥미롭더군요.

조-서만 서로 식상한 도전국을 반복하던 시대에(아주 가끔씩 도전5강등이 도전하는 정도), 바둑계의 정년이 넘은 35세까지 전혀 두각을 드러내지 않다가 갑자기 87년 기왕전과 명인전에서 거의 무적이었던 서봉수를 꺾고 조훈현9단에게 도전권을 쟁취했던 기사입니다. 장두진의 기풍은 두텁게 포석을 잘 짜면서, 종반의 계산력을 장기로 마무리하는 것이었습니다.

기왕전은 당시 8명 리그전에 도전국은 7전 4선승제였습니다.

당시 장6단이 리그에 들어간것 자체만으로도 신기해했었는데, 서봉수까지 꺾고 3연승인가 달리자 주위 사람들이 조9단에게 농담을 건넸습니다. "장6단이 도전자가 되면 기왕은 양보해야겠죠?" 조9단왈 "당연하죠, 제가 장사범을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하지만 이때만 해도 장6단이 도전자가 되는것을 낙관할수 없었죠. 유력한 도전자였던 서9단은 이번기에는 부진했지만(4승 3패) 유창혁3단이란 무서운 신예가 4연승을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우려가 현실로 벌어졌습니다. 유3단이 양재호와 서봉수에게 연패하여 4승2패가 되고 장6단은 그대로 6승을 달려 도전권을 확정지어 버린것입니다.

도전권과 상관없는 장6단과 유3단의 마지막 대국에서는 유3단이 승리했지만 결국 장6단이 6승1패로 기왕전의 도전권을 획득했죠.

조9단과의 도전국이 시작되고 1,2,3국은 초반에는 우세했으나 중반에 역전당해 졌습니다. 이때 바둑을 보면 조9단은 포석이 장점이 아니구나 느껴질 정도로 초반에 밀렸습니다. 특히 3국에서는 조9단이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무리성 승부수를 날리고, 마음이 순간 약해진 장6단이 몰아칠 기회를 놓치고 물러서는 바람에 패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4국은 백을 잡은 장6단이 흉내바둑을 꺼내들었습니다. 조 9단이 초반에 축을 이용해서 흉내를 깨고 약간의 이득을 보았지만 흉내가 다시 시작되고 조9단은 "미치겠다"라고 고함을 질렀죠. 흑으로 덤을 못내면 지니까요. 결국 조9단의 실착을 포착한 장6단이 흉내를 중지하고 이득을 보아서 종반까지 우세를 유지합니다만... 귀의 확실한 8집끝내기와 애매한 중앙끝내기를 사이에 고심하다 8집끝내기를 택했지만 이것이 패착이 되어 결국 1집반을 지고 도전국을 종료하게 됩니다.

명인전에서도 0패를 당해 도전에 실패하지만 87년은 장두진의 해라고 할정도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죠. 그리고 88년에 최초의 세계대회였던 후찌즈배의 대표선발전에서도 우승하여 한국대표가 됩니다. 그런데 16강 첫판에서 마효춘에게 10집반을 지고 탈락해버렸죠.

하지만 그 이후부터 장6단은 사람이 달라진듯 미스터리하게 몰락합니다. 기왕전 리그에서도 전패로 탈락. 모든 판의 내용부터가 더위를 먹은것처럼(본인 표현) 무기력했고, 똑같이 부진했던 유창혁3단과의 대국에서 상대의 큰 실착을 틈타 1승을 거둘뻔은 했으나, 왜 안던지나 빨리 끝내고 집에 가야되는데 하고 둔 수가 말도 안되는 실착이었고 유3단의 다음수에 그대로 돌을 던지게 됩니다. 유3단이 그 수를 두면서 참 미안한듯 머리를 긁적였을 정도였으니.

근데 재미있는건 이날 유3단과의 바둑은 굳이 두지 않고도 이길수 있었습니다. 유3단이 방위근무를 시작해서 일요일대국만 가능했는데, 일요일대국을 거부했으면 부전승할수 있는 상황이었죠. 실제로 유3단이 그런 식으로 부전패도 많이 당했고.

그 이후로는 정상권에 한번도 올라오지 못하고 곧 은퇴하여 사업을 시작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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