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젬 등에서 두면 기력을 알 수 있지.

하지만 대회 같은데선 갑조 을조 병조 나뉘어져 있긴 하지만 실제 기력은 모른다.

을조를 타이젬5단 이하로 제한시켜도, 7-8단이 나타나는 곳이 을조이기도 하고..

4년 전엔가 모 대학 명인전에서의 내 이야기 잠깐 해보려 한다.

내 앞에 앉은 상대가 타이젬 몇 단인지는 몇 수 좀 둬봐야 대강이나마 파악이 된다.

그럼 이제 포석을 짜나가며 기력 파악을 좀 해보려 한다.

막바둑은 일단 정석을 모른다.

바둑티비 정석 강좌할 때, '여기서 백이 이렇게 두기가 쉬운데 이러면 안 되거든요' 하면서 짚어주는 곳을

너무도 당연하다듯이 둔다.

순간적으로 어 뭐지..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포석의 ABC를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에

내가 삼삼 들어갔을 경우에도 상대는 틀린 방향쪽으로 막게 된다.

게다가, '이렇게 진행되면 흑이 좋은 포석입니다' 하는 모양을 내가 만들어두고 시작하게 된다.

기분이 매우 좋다.

초반이 성공한 듯 보이고, 상대는 정석도 모르는 무지렁이같고, 기리(棋理)라고는 아예 모르는 상대 같다.

두는거 보아하니 타이젬 2-3단 정도 되겠구만 생각되며 마음이 슬슬 풀어진다.

상대는 자기가 불리한 줄도 모르는지 휙휙 둔다.

당연하겠지.. 형세판단이나 목산같은건 아예 안 할 테니까.. ㅡㅡ

오십여수 지나 중반으로 돌입할 무렵 이미 필승지세의 바둑.

작은 곳에서 시비가 붙었고 내가 양보해주면 그만이었지만

상대가 강하지 않음을 느꼈기에 싸워보지 뭐~ 하면서 전투 발생.

그리고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읽기가 너무도 탄탄했다.

한치의 빈틈도 허용치 않고 내 대마 드리블을 시작하는데..

맥을 정확히 짚어가며 공격하는게 아주 유창혁이었다.

나 같은 '바둑책 학구파' 들은 수근사전 같은 책에서 맥을 익혀놓은 상태라 맥 구사가 쉽다.

헌데 이 상대는 시간을 좀 쓰면서 두는 걸 보니.. 오로지 '수읽기' 하나로 맥을 짚는 것이었다.

ㄷㄷ한 수읽기였다.

그리고 왜 수읽기 쎄면 바둑이 깡패라는 것인지 내 몸소 체험했다.

결국 전멸은 면했지만 난 대마 반토막을 크게 떼어주고야 지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미 형세는 크게 기울었지만 막바둑은 끝내기를 잘하진 못할거야 하는 기대로 일단 두어나갔다.

역시 정교한 면은 떨어졌다.

두면 안 된다고 가르치는 끝내기 악수, 보리선수 등을 해 주었다.

끝내기에서 꽤나 따라잡았지만 애초에 큰 차이라 추격이 안 되었다.

내가 흑이었는데 반면으로도 석 집인가 졌던 거로 기억.

그 당시엔, 와 뭐 이딴 놈한테 지나? 하는 생각이었지만

지금와서 나는 그저 반성할 뿐이다.

물론 전체적인 능력치를 종합해보면 내가 좀 더 낫겠지만.

승부라는 건 언제나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도 깨달았고

그동안 내가 강좌로 배워왔던

흑이 좋은 정석, 백이 좋은 포석 어쩌고 하던 것은

결국 타이젬8단 급의 고수들에게나 통용되는 것일뿐

우리네 하수들 바둑에선 의미없음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