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주는 바삐 살다보니 로또 구입을 잊었다.
나는 매주 고정된 번호로 천원짜리 하나를 산다.
그냥 하나의 부여잡을 희망을 상정해놓고
일주일을 견딜 수 있게 해준다.
어쨌거나 토요일에 집에 돌아와 번호를 확인했다.
설마 내가 구입을 빠뜨린 날
내가 찍던 번호가 1등은 아니겠지
그런 생각하며 사이트에 들어갔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내가 찍던 번호는 아니다.
만약 내 번호가 1등이었다면
그 때는 정말 운명을 받아들이고 삶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
거의 하늘이 버린 셈 아니겠는가.
기회가 왔음에도 먹지 못하니 삶의 고달픔은 계속될 것이다.
아니지. 아니야.
내가 로또를 샀다면 시공간은 다르게 흐를 것이니
꼭 내가 당첨되지는 않는다. 쓸데없는 생각이다.
어제 저녁에 오천원짜리 순대국을 사먹었다. 맛있다.
사먹기 전 잔고는 8039원.
사먹고 나니 3039원.
난 내 잔고를 모르고 싶다.
부자들은 그런다지 않는가.
잔고 3039원에 천원짜리 석 장. 가진 것의 전부다.
현금만 가져가서는 밥을 먹을 수 없다.
카드만 긁어서도 마찬가지다. 삼천원짜리 밥은 없다.
계좌와 현금은 각각 눈이 하나뿐인 대마다.
이 둘이 만나서 살아야 한다. 두 눈이 나야 한다.
어느 한쪽만 가지고서는 밥을 먹을 수 없다.
ATM기를 찾았다.
가지고있던 삼천원을 넣었다. 이제 잔고는 6039원.
자 이제 밥을 먹을 수 있다.
인간이 먹어야 한다는 것은 역시 가혹한 굴레다.
먹고 산다는 것. 밥벌이.
언제부턴가 두려운 단어들이 되었다.
어쩌면 나는 매주 로또에 천원을 쓰기보다
그것을 아껴 생활하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건 역시 하나의 희망.
1등되면 뭐할까.
애국군자한테 가서 가지고 있는 모든 책 사겠다고 해야겠다.
그 바가지를 감당할 수 있는 여유가 되니까.
아니면...
삼성배 총규모가 15억이던가.
그 정도 세계대회 열만한 돈은 되겠군. 다만 1회로 끝나서 문제지.
방금 나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계좌에 이천원만 넣고 로또 구입비 천원은 남겨뒀어야 했던 것.
트루먼쇼 같이 내 삶이 중계되고 있다면
그래서 혹시 바둑티비에서 방송하고 있다면
유창혁 해설위원이 말하지 않을까 싶다.
"네 저 삼천원 다 넣은 수는 악수에요. 로또를 못 사지 않습니까."
왜 내가 하는 생각은 다 정신질환자 같을까.
나는 정신질환자가 맞나보다. 그런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