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브 천국을 향해 바쳐지는 아내 , 구슬리 든 악사, 내려온 위의 두 인면조 )
11~12세기의 독일 연대기 작가들은 서슬라브족이 신들의 분노를 인간과 동물의 피로 달랜다고 기록했다.
티트마르 메르제부르크 연대기에서는 슬라브족이 "신들의 무서운 분노를 인간과 동물의 피로 진정시킨다"고 설명했다.
헬몰드 연대기에 따르면, 서슬라브족은 소와 양뿐만 아니라 기독교인을 희생하며, 특히 신 스바토비트(Svetovid)에게 매년 기독교인을 제물로 바쳤다.
3. 기독교인 희생 및 반란 시기의 인신공양
1066년, 오보드리테(Obodrites)족이 주교 요한과 여러 사제를 희생 제물로 바쳤다.
폴란드 포모제(Pomerania) 지역에서는 태어난 여자아이들을 희생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성 오토 밤베르크의 생애』에 기록되어 있다.
4. 동슬라브인의 인신공양
10세기 레오 디아코누스(Leo Diaconus)의 기록에 따르면, 키예프 대공 스뱌토슬라프의 전사들은 전투 후 적을 잡아다 희생하고, 어린아이들을 익사시켰다고 한다.
키예프에서 983년 대공 블라디미르의 원정 후, 원로들이 제비뽑기를 통해 아이를 희생 제물로 삼았다.
5. 자연재해와 기근 속의 인신공양
1024년, 수즈달에서 기근이 발생했을 때 점술가들의 주도로 노인들이 희생되었다.
1071년, 로스토프 지역에서도 기근이 발생하자 많은 여성이 희생 제물로 바쳐졌다.
13세기 세라피온은 가뭄과 추위가 닥쳤을 때 사람들이 무고한 사람을 불태워 희생했다고 기록했다.
6. 유럽 내 인신공양의 잔재
14세기까지도 "첫째 아이를 신에게 바치는" 의식이 언급된다.
18세기 러시아에서는 마녀라고 의심되는 여성을 익사시키거나 땅에 묻는 일이 있었으며, 19세기 벨라루스에서는 가뭄이 들었을 때 노인을 익사시키는 풍습이 남아 있었다.
7. 인신공양의 의미와 목적
슬라브족은 죽음을 단순한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로의 이동으로 보았으며, 희생된 사람들은 신의 곁에서 살아가고 보호자로 여겨졌다.
슬라브족뿐만 아니라 게르만족, 켈트족 등도 인신공양을 행했으며, 이는 풍요와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는 의식이었다.
고고학적 증거와 실천 사례
1. 신전과 희생 제단에서 발견된 인골
**아르코나(Arkona)**와 **즈브루치(Zbruch)**의 신전 유적지에서 많은 인간 뼈가 발견되었다.
즈브루치 신전에서는 온전한 시신, 잘린 신체 부위, 인간 두개골이 발견되었으며, 이는 인신공양과 관련이 깊다고 본다.
**비셰그라드(Wyszehrad)**에서는 희생 제단 근처에서 성인 남성 2명의 시신과 낫(수확과 관련된 상징적 도구)이 함께 발견되었다.
2. 인신공양의 방식
희생된 자를 산 채로 묻거나, 익사시키거나, 불태우거나, 머리를 자르는 방식이 사용되었다.
일부 경우에는 희생된 자의 일부 뼈를 모아 특정 장소에 배치하는 의식이 있었다.
3. 신을 위한 인간 희생
서슬라브족은 레데가스트(Radegast) 신에게 전쟁 포로와 기독교인을 희생 제물로 바쳤다.
헬몰드는 서슬라브족이 매년 스바토비트(Svetovid) 신에게 기독교인을 희생했다고 기록했다.
4. 수확과 관련된 희생
농업 신앙과 관련하여 곡물 수확을 기원하며 어린아이들을 희생하는 관습이 존재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인간을 희생하는 대신 인형을 태우거나 물에 빠뜨리는 방식으로 변형되었다. (마슬레니차 축제, 야릴라 숭배)
결론
슬라브 신화와 전통에서 인신공양은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종교적, 사회적 필요에 의해 수행된 중요한 의식이었다. 초기에는 조상 숭배와 함께 자연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졌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전쟁 포로나 기독교인을 희생하는 형태로 변형되었다.
고고학적 증거와 역사적 기록을 종합하면, 슬라브 사회에서 인신공양이 중요한 종교적 관습이었으며, 이는 10세기까지 지속되었고, 일부 잔재는 19세기까지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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