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영어학원을 마치니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이 되었다.

요근래 점수올리기 막판스퍼트다 뭐다해서 쪽지시험 때문에

밤늦게까지 붙잡아두는 탓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겁이 많아 날이 어두워지면 으슥한 길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고등학생인 지금도 그렇다. 인간이란 의외로 잘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집으로 갈 수 있는 길은 두개...

조금 시간이 걸리지만 늘상 이용하는 밝고 사람많은 번화가.

지름길이며 빨리 귀가할 수 있지만 밤이면 인적이 드문 공원 숲길.

오늘은 피로가 많이 누적된 탓인지 조금이라도 빨리 침대에 몸을 누이고 싶었다.

최근 일진애들 집합장소 소문도 돌고 원체 어두운 곳을 싫어하는 내 천성도 한몫하여

여태까지 절대 공원 숲길은 이용하지 않았지만 오늘만은 무슨바람이 분건지

내몸은 이미 눈딱감고 그 길을 걷고 있었다.

"귀신이 다짜고짜 산 사람 죽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길을 걸으니 한결 무서움이 덜하였다.

으슥한 벤치에서 키스하는 커플. 강아지 데리고 산책하시는 할머니.

여상고 애인지 얼굴이 하아얀 예쁜 여학생이 나뭇가지 사이에서 누군가와 통화중이었다.

예쁜애를 보니 괜스레 텐션이 살짝 오르는 걸 느끼며

은근 행인이 좀 있는 것을 확인한 나는 \'앞으로도 이 길 자주 이용할 만 하겠는데?\'

라고 무심코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 씻고 자리에 누웠더니 1시 30분! 개꾸ㅡㄹ!!

20분이나 단축가능하다니 앞으로 절대 거기만 가리라 다짐하며 깊은잠에 빠졌다.

다음날 아침.

아침은 당연 해가 떠있기 때문에 딱히 군것질거리가 없다면

번화가로 돌아가는 번거로움 없이 바로 숲길을 뚫고 가는 게 주요 등교루트다.

숲길을 지나며 나는 무심코

어제 그 예쁜 여학생이 서있던 가지가 큰 Y자로 벌어진 나무 주변을 기웃거렸다.

\'되게 예쁘던데 말이나 걸어볼 걸. 잘 되면 영화도 보러 가고... 나중에... ㅎㅎ\'

혼자 망상의 나래를 펼치고 몸을 배배 꼬으며 숲길을 걸어나왔더니 어느새 학교앞 철도 도착.

그런데 이게 무슨일인지.

철도는 경찰들에 의해 통행이 통제되고 있었고 그 주위를

동네주민들이 두겹 세겹 에워싼 채 서있는 굉장히 낯설은 풍경이 펼쳐지고 있는게 아닌가.

영화에서나 보던 <접근금지> 테이프 너머로는

힐끗만봐도 각막을 엄습하는 붉디붉은 선혈 낭자한 참혹한 광경이......

나는 너무 궁금한 나머지 제일 가까이 서 계신 한 아주머니께 자초지종을 여쭈었고

굉장히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고 말았다.

"에구 쯧쯧쯧... 총각 또래 여자애라네 글쎄? 전화통화한다고 신호를 못봤나봐~
그대로 치었는데 아 글쎄 시체가 산산조각이 났다지 뭐야?"

"네에?!"

"하반신하구 오른팔, 가슴부분은 찾았다는데 왼팔이랑 머리부분을 못찾았다네 그래...
아직꺼정 품안에 휴대폰도 발견되지 않아 신원조회조차 안된다니 어쩌누...으이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