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엔터게임사는 한때 최고의 자리에 있었다. 인기 보이밴드 B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인 인지도를 쌓았다. 그들의 콘서트는 매진, 음반은 수백만 장이 팔렸고, H사는 한동안 문화산업의 선두주자로 군림했다. 하지만 욕심이 지나쳤다. 회사는 게임 사업에 투자해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찾으려 했고,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게임은 연이은 실패로 마무리됐고, 미국 시장에서의 야심찬 계획도 좌초되었다. 수익은 말라갔고, 회사를 향한 국민들의 반감은 커졌다.

이제 H사의 직원들은 출근조차 창피해하는 처지가 되었다.

주말 동안, 회사 사람들은 속으로 결심했다. '이제 더는 못 참아.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야 해.' 월요일 아침, 그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는 척 출근했지만, 회사는 이미 무너져가고 있었다. 온 국민이 H사의 몰락을 비웃고 있었다. 뉴스마다 H사의 실패를 조롱했고, H사 직원이란 사실이 밝혀지면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거리에서 회사 사람들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속삭이는 소리들이 들렸다. '저 사람들 H사에서 일한대. 망해가는 거 알지?' 직원들은 모른 척 걸어가야 했다.

9시 30분. 커피머신 옆에 서 있던 개발팀의 몇몇 직원들은 묵묵히 커피만 마셨다. 대화는 억지로 이어졌다.

"주말 잘 보냈어?"
프로젝트 매니저 김씨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전보다 훨씬 얇았다.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사실 김씨도 내심 자존심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박 대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뭐, 그냥 집에 있었죠. 요즘 뭐 나가기도 좀 그렇고."
그러나 그의 머릿속엔 다른 생각이 가득했다. ‘저 사람도 탈출구를 찾고 있겠지? 다들 같은 생각일 텐데…’

사실 그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이 회사에 남아있으면 바보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국민들 사이에선 H사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조롱거리가 되었다. 박 대리는 최근 지하철에서 회사 명찰을 가리며 출근하곤 했다.

10시. 개발부 이사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로 향했다.
"잠시만, 중요한 전화 좀 해야 해."
그 말에 사무실이 얼어붙었다. 모두가 그 전화가 다른 게임사에서 온 채용 연락일 거라 생각했다. H사 직원들끼리도 서로를 의심하며 견제하고 있었다. 최 과장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모니터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 저 사람도 준비 중이구나. 미국 진출 망해놓고 이제 나만 남겨두고 나가려고?'

11시. 김 팀장은 회의 도중 의도적으로 밝은 척하며 말했다.
"우리 회사가 아직 이렇게 든든한 직원들 덕에 버티는 거지. 다들 고맙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공허했다. 누구도 그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 대리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네, 뭐 다들 회사를 위해 열심히 하고 있죠."
그러나 속으로 그는 생각했다. ‘얼마나 더 이렇게 버텨야 하나? 나도 이력서 넣어둔 회사들한테서 답을 기다리고 있는데.’

점심시간. 직원들 사이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국민들에게 웃음거리가 된 회사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선, 모두가 일종의 생존 게임을 하고 있었다. 각자 먼저 탈출할 방법을 찾으면서도 서로를 탐색하고 있었다.

"최근에 모바일 게임사들이 성공하는 걸 보니까 참… 부럽더라. 요즘 스트리밍 서비스와 연계하는 것도 대세 같고." 이 과장이 말을 꺼냈다.

"너도 어디 알아본 거 있어?" 최 대리가 물었다. 순간, 그는 자신이 너무 급하게 반응했다는 걸 깨닫고 말을 덧붙였다. "아, 그냥 요즘 업계 상황이 궁금해서."
이 과장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 뭐 그냥 시장 동향이나 좀 보고 있었지."

그러나 그들 모두는 마음속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누가 먼저 좋은 자리 잡고 빠져나갈지 지켜봐야 해. 여기서 더 머무르는 건 이제 의미가 없어.'

오후 3시. 김 팀장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의 표정이 점점 밝아졌고, 급하게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잠시만요, 중요한 전화가 와서요. 아마 이게 우리 회사의 미래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겁니다."
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저 사람도 결국 먼저 나가는구나.’ 직원들은 속으로 계산을 시작했다. 그러나 김 팀장은 잠시 후 다시 돌아와 말했다.
"아, 그냥 고객사에서 문의 전화가 온 것 같네요. 큰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퇴근 시간. 직원들은 하나둘씩 사무실을 떠났다. 그 누구도 먼저 나간다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이미 모든 사람은 알고 있었다. H사의 마지막은 코앞이었다. 박 대리는 집으로 가는 길에 조용히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네, 이번 주에 면접 가능해요. 네, 가능하면 이번 달 내로 이직하고 싶습니다."

H사의 직원들은 모두 각자의 탈출구를 찾아 움직이고 있었다. 더 이상 이곳에 남는 건 무의미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