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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군부대가 떠난 뒤, 유령도시가 되어가는 최전방 시골 마을
https://youtu.be/WwPV4zZFXDQ?si=2JU67VrAy01KeXhF 군부대가 떠난 뒤, 유령도시가 되어가는 최전방 시골 마을저 여우대장은 더 이상 잘못된 선택으로 고통받는 분들이 없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여러분의 작은 응원이 모여 큰 힘이 됩니다. 커피 한 잔 값으로 여우대장을 응원하고 싶다면 멤버십에 가입해 주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abdDNbpoS...youtu.be - dc official App
작성자 : 조선인의안락사고정닉
회계사 포기하고 청소 알바 택한 30대 여성…이유 알고보니
억대 연봉 회계사, 청소 아르바이트 선택 이유• 1억 연봉의 회계사였던 이윤재씨는 삶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회계사 직업을 포기하고 병원 청소 아르바이트를 선택했습니다.• 회계사 생활의 고된 스트레스와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에 지쳐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고자 퇴사를 결정했으며, 현재는 라이프 코칭 사업을 준비하며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그는 경제적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욕구가 더 컸으며, 자신의 경험을 통해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찾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밝혔습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5/0005136043한국과 일본 내 '빅4' 회계법인에서 7년간 회계사로 근무하다 퇴사한 뒤 병원에서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30대 여성의 사연이 화제다.24일 유튜브 채널 '나는 사장님' 등에 따르면 대학교 3학년이던 지난 2015년 11월 일본에서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한 이윤재(31)씨는 일본에서 4년, 한국에서 3년간 회계사로 일하다 지난해 10월 퇴사했다.이씨는 "학창시절 때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다. 중·고등학교 때 6년 동안 전교 1등을 했다"며 "원래 회계사라는 직업을 갖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고, 고3 때 어머니가 아프셔서 전문직종을 가지면 어머니가 기뻐하지 않으실까라는 생각에 회계사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다섯 살 때부터 일본에서 생활한 이씨는 "어릴 때부터 특별한 삶을 추구했던 것 같다"며 "그러나 회계법인에 입사한 후에는 내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평범한 회계사 중 한 명이라는 생각에 힘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다만 회계사라는 직업이 워낙 바쁜 탓에 그런 고민을 이어갈 틈도 없이 지내다가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친구로부터 '윤재는 조금 특별한 삶을 살 줄 알았는데…'는 말을 들은 후 '내가 남들 보기에 전혀 특별한 삶을 살고 있지 않구나'라는 생각에 그때부터 마음이 힘들었다"고 덧붙였다.이씨는 "그 말을 들은 후 아침에 눈을 떴는데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아왔지'라는 생각과 함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며 "그때부터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이 특별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그러면서 "회사 입사 전에 썼던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모습에 관한 일기를 우연히 읽었는데, 아침을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시작하고 밤에는 산책하고 일기를 쓰며 하루를 마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문구가 쓰여 있더라"며 "회계법인 때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승진이 조금이라도 늦춰지거나 회사에서의 평가가 좋지 않으면 그 예민함을 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풀고 후회했다"고 했다.그는 "퇴사 후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뒤 화장실 청소를 하게 됐을 때는 '내 자신이 비참해지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했었는데, 해보니 하나도 비참하지 않고 지금의 삶이 회계사 때보다 훨씬 행복한 것 같다"며 웃었다. 이어 "회계사 때 마지막 연봉이 1억원이었다"며 "퇴사를 앞두고 경제적인 부분이 제일 걱정이었고, 커리어를 포기한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는데 내가 원하지 않는 삶을 살면 20~30년 후에 후회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경제적인 불안감을 이긴 것 같다"고 말했다.다만 이씨는 "청소를 직업으로 골랐다기보다는 라이프 코칭을 하고 싶어 그 사업을 준비하려고 퇴사한 것"이라며 "거기서 안정적인 수익이 창출될 때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었는데 다행히 기회가 온 것"이라고 했다. 이씨는 병원 아르바이트와 라이프 코치로서의 삶을 병행하며 지내고 있다.그는 "퇴사를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다"며 "당시에는 세상이 회색 필터가 걸쳐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지금은 세상이 뽀송뽀송해 보이는 느낌이다.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에는 타인의 눈치를 많이 보고 사회가 기대하는 모습대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며 "내가 살고 싶은 삶이 뭔지 모르고 그런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만의 삶을 찾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작성자 : ㅇㅇ고정닉
역대 간지나는 일본인들의 명언 TOP 10..jpg
10위 <구로사와 아키라> "일본이 패전할 것 같다. 만일 일본 국민 전체가 싸워야 한다면, 우리 역시 죽어야 해. 죽기 전에 결혼 생활이 어떤지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자신의 2번째 감독작 가장 아름다운 자(一番美しく)의 주연 배우인 여배우 야구치 요코에게 청혼할때 보낸 청혼문. 이후 두사람은 결혼했다.) 일본의 영화감독. 세계 영화계에 큰 족적을 남겼고, 특히 스티븐 스필버그, 마틴 스코세이지, 조지 루카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등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쳐서 오늘날 헐리우드 영화의 문법에 직접적인 기여를 했다. 9위 <나쓰메 소세키> "난 중국인이나 조선인으로 안 태어나서 다행이다." 일본 최초의 근대 문학가이자 메이지 시대의 대문호로, 근현대 일본 문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다. 8위 <가츠시카 호쿠사이> "내게 5년이라는 생명이 더 주어진다면 진정한 화공이 되었을 것이다” 일본 에도 시대 말기의 우키요에 화가이다. 고흐,모네같은 서양 인상주의 화가들이 존경했고 엄청난 영향을 받았다. 7위 <유카와 히데키> "재앙의 불이여 두 번 다시 이곳에 오지마라 평화를 기원하는 사람만이지 이곳은”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 있는 평화의 상 〈와카바〉(若葉)의 대좌에 새겨진 유카와가 지은 글귀) 일본의 이론 물리학자. 일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다. 중간자 이론을 제시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6위 <오다 노부나가> "의미 없는 일은 하지 마라. 돈만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영혼을 잃기 쉽다. 명예를 구하여 일하는 사람은 기쁨을 잃기 쉽다. 권세를 탐하여 일하는 사람은 친구를 잃기 쉽다. 자기가 사랑하는 일을 하고, 일을 위하여 일하라. 그러면 나머지 것들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일본 센고쿠 시대의 다이묘(大名), 오와리 오다 단주노초 가문의 당주, 우대신 겸 우근위대장, 그리고 천하인(天下人). 무로마치 막부를 종결시키고 센고쿠 시대의 양상을 완전히 변화시켰기에 이 인물을 빼고 센고쿠 시대의 역사를 논하는 것이 힘들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다. 5위 <미야모토 무사시> "승리에 우연이란 없다. 1천 일의 연습을 단(緞)이라 하고, 1만 일의 연습을 련(鍊)이라 한다. 이'단련'이 있고서야 비로소 승리를 기대할수 있다." 일본의 검호로 두 자루 칼을 쓰는 니텐이치류(二天一流)의 시조이다. 소설,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각종 대중문화 매체에서 수없이 등장한다. 말년에 저술한 오륜서로도 유명하다. 4위 <구스노키 마사시게> "일곱번 다시 태어나더라도 천황의 적을 반드시 멸망시키겠다" 일본 가마쿠라 막부 말기와 남북조 시대의 무장으로 천황과 황실에 끝까지 충성을 바쳤기에 충성심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가 남긴 말은 칠생보국의 유래가 된다. 3위 <후쿠자와 유키치> "일신독립하여 일가독립하고, 일가독립하여 일국독립한다." "인간 사바세계의 지옥이 조선의 한양에 출현했다. 나는 조선을 보고 야만국보다는 요마악귀의 지옥국이라 평하고자 한다." 근대 일본의 계몽운동가 겸 철학자로, 메이지 유신의 주역 중 한 사람이다. 게이오기주쿠대학의 전신인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를 설립한 교육인, 지지신보(時事新報; 시사신보)를 창간한 언론인이자 Democracy(→民主主義), Government(→政府) 등 영어의 여러 어휘를 번역해 한자문화권에 소개한 언어학자이기도 하다. 2위 <사카모토 료마> "저 간사한 관리들을 한 판 싸움으로 쳐 죽이고, 일본을 다시 한번 세탁해야겠소이다." 일본 에도 막부 막말 시기에 활약한 인물로, 에도 막부 타도 및 메이지 유신에 영향을 끼쳤다. 쇄국과 개화의 갈림길에서 과감한 결단으로 역사를 개척한 료마의 드라마틱한 모습은 오늘날 일본인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1위 <후지야마 쓰네아키> 부모님께, 제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으시더라도 절대 슬퍼하지 마십시오. 처음부터 그렇게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우리 아들이 훌륭하게 쓰러졌다는 말만 해주십시오. 쓰러진 후에도 18년 동안 사랑으로 키워주신 당신의 큰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오키나와 전투 출격 전야에 남긴 마지막 편지) 일본 제국의 가미카제 특공대원. 1945년 5월 25일, 후지야마 쓰네아키는 제58신부 특공대 소속으로 미야코노조 동부 비행장에서 이륙하여 오키나와 서쪽에서 18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그가 남긴말은 2015년 미국 하와이주 진주만, 전함 미주리 역사관에서 열린 가미카제 기념회에서 많은 미국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 dc official App
작성자 : 이시라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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