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백수’ 이영민씨의 이명박 후보 지지 연설 모습(위). 아래는 지난해 4월 총선 당시 한나라당의 인터넷 배너 광고.

1년전 겨울, 한 청년이 텔레비전에 나와 눈시울을 붉혔다. 부산에서 전문대를 졸업한 뒤 1년간 지원서 100장을 쓰고도 취직을 못한 ‘청년 백수 이영민’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아버지는 1997년 외환 위기 때 사업이 망하자 몸져누웠고 어머니는 차가운 시장 바닥에서 반찬을 파는데 장남인 자신은 돈 한 푼 못 벌고 있으니 환장하고 미칠 지경이라고 울먹였다. 이영민씨(30)는 2002년 대선 때 ‘없는 사람 숨통을 틔워줄 것 같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했으나 지금은 가슴을 치며 후회한다고 했다. 20분간연신 “살려주이소”를 외친 그는 연설 말미에 눈물을 닦고 힘주어 외쳤다. “저는 비정규직의 설움, 청년 백수의 불안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우리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에게 제 소중한 한 표를 던질 겁니다. 이명박 후보, 전 당신을 믿습니다.”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 1년이 지났다. 외환 위기 이후 청년 실업률이 사상 최고로 치솟고 민간과 공기업에서는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있는 일자리마저 줄일 태세다. ‘비정규직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후보’라며 청년 백수가 눈물로 지지하던 이명박 정부는 지금 비정규직 사용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최저임금을 낮추는 노동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상황이 나빠지자 ‘청년 백수’ 이씨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다. “어서 정권이 바뀌어서, 누가 어머니께 ‘당신 아들 어디 다니냐’고 물었을 때 어머니가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던 이씨는 지금 그 소원을 이뤘을까.  

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 방송연설팀에서 일하던 한 관계자는 “대선이 끝나자마자 서울 인근의 한 기업CEO가 이씨에게 연락해 곧바로 취업이 된 것으로 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것도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한나라당 측은 이씨의 근황을 체크하지도 않을뿐더러, 알아도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취직이 됐으면 정권의 후광을 입었다고 욕할 것이고 아직 백수면 또 그것대로 고소하다고 욕할 것 아니냐.” 

“조선일보에 입사했다” 헛소문 퍼져

이씨는 찬조 연설이 방송된 직후부터 언론 인터뷰를 극히 꺼렸다. “부산 사투리가 어색한 걸 보니 연기자가 틀림없다” “저렇게 징징대니 취업이 안 되지” 등 인터넷에서 각종 의혹과 인신공격성 비난이 쏟아지자 크게 부담을 느낀 것이다. 방송 직후 유일하게 이씨를 인터뷰한 곳은 이명박 후보 선거 캠프에서 만든 인터넷 블로거 기자단인 ‘엠비포터(mbpoter)’였다. 당시 이씨를 인터뷰한 블로거 기자 조 아무개씨는 “이씨는 순수하게 청년들의 답답함을 알리기 위해 방송 출연을 결심했는데 사람들이 너무 억측을 부풀려 상처를 많이 받은 것 같았다. 더는 자기가 이슈화되지 않길 바라서 나도 기사를 썼다가 이씨 본인의 요청으로 삭제하기도 했다”라고 전했다. 

또 다른 찬조 연설자인 ‘한우 할머니’는 종종 언론에 얼굴을 비쳐 이명박 정부의 농촌 정책을 비판하는 반면, ‘청년 백수’ 이영민씨의 소식은 꽁꽁 감춰졌기 때문에 항간에는 온갖 루머가 떠돌았다. 누리꾼 사이에는 “이씨가 조선일보에 입사했다”라는 헛소문이 정설로 굳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몇몇 누리꾼이 자신의 블로그에 ‘공개수배:청년 백수 이영민을 찾습니다’라는 글을 올려 논쟁이 벌어진 적도 있다. 이씨는 공인이 아니니 사생활을 침해하면 안 된다는 의견과 ‘청년 백수’의 대표 격으로 이명박 대통령 지지를 호소한 만큼 적어도 ‘지금 취직을 했는지, 또 이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두 가지 정도는 밝힐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