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지친몸을 이끌고 출근하고 저혼자 집에서 쉬면서 여행기를 씁니다. 게다가 오늘 도저히 빠질 수 없는 회식이 있다고 전화왔네요. 3번정도 나눠쓸까 했는데 아무래도 더 길어질 듯 하네요 ^^ ============================================================================== 산에서의 두번째 아침이 밝았다. 불편한 잠자리와 코고는 소리로 인해 잔 시간이 길었는지 깨있는 시간이 길었는지 잘 모를정도다. 그래도 공기좋은 산에서 자서 그런지 졸립다는 느낌이 전혀들지 않는다 아마 도시에서 이정도로 잤더라면 하루종일 비몽사몽했을 것이다. 6시 경 밖으로 나오니 아내는 이미 짐을 꾸려서 바깥에 나와 있었다. 이틀째 세수, 양치 못한 몰골은 서로 용서해 줄 도리밖에 없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전투식량류의 1회용 음식들은 제법먹을만 했다. 김치국밥과 라면하나를 끓여서 산속에서의 아침식사를 마쳤다. 설겆이는 물휴지와 두루마리 휴지로 간단히 마치고 달작지근한 커피믹스를 준비했다 산에서 마시는 1회용 맥심커피맛은 뉴욕 록펠러센터 스타벅스에서 마시는 커피와 비길바 아니었다 7시 정각 이틀째 산행을 시작한다. 동쪽으로 난 약간 경사진길을 따라 가면 오솔길같이 호젓하고 아름다운 길이 나타난다. 오른쪽으로는 바라보면 아침 옅은안개 너머로 겹겹히 펼쳐진 봉우리 사이로 운해들이 사이사이 머물러 있었다. 10분정도 걷는데 아내가 점점 뒤쳐진다. 어제 아팠던 관절부위가 너무 아파서 걷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많이 걷다보면 근육통이야 있기 마련이고 근육통은 그냥 참고 걸으면 되지만 관절통을 참고 견디기란 정말 쉽지않은 일이다. 달리 다른 방법도 없어서 타이레놀 두알을 먹고 약효가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수 밖에 없다. 조금 지나니 걸음걸이가 다시 정상속도를 회복하고 있다. 괜찮냐고 물어보니 괜찮다고 입방정을 떨면 다시 아플수 있으니 나보고 조용히 하랜다. 20분 정도 지나니 언제 그랬냐는듯이 험한길이 시작된다. 1521 미터 덕평봉 옆구리를 지나면서 샘이 하나 나타났다. 선비샘이다. 이름은 샘이지만 작은 호스로 물이 졸졸 흘러나오는 모양이다. 짐을 내려놓고 오랜만에 세수도 하고 머리에 물도 적시니 정신이 말끔해진다. 물병에 물을 채우고 다시 동쪽으로 조금 더 걸으니 다시 사방이 확트이는 봉우리가 나타난다.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쉬노라니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라오던 두명의 남자 일행이 도착해서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한다. 사진을 찍고나서 지금까지 밟아온 길을 돌아보니 언제 이만큼 왔나싶을 정도로 멀리와있었다. 한걸음 한걸음 땀방울을 흘리며 정직하게 밟아온 사람의 걸음걸이가 참 위대하다고 했더니 아내는 그것은 걸음걸이의 위대함이 아니라 시간의 위대함이라고 한다. 아득한 연봉을 바라보면서 지리산에 대한 첫기억이 언제인지 되짚어 보니, 아마 오래전에 문순태의 소설을 각색해서 TV문학관에서 방영했던 '철쭉제'이었던 것 같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1983년에 방영한 것으로 나와있다. 내용도 좋았지만 그당시 TV로 처음본 지리산의 모습은 다른 여느 산들과는 격을 달리하는 장엄함이 느껴졌다.지금도 어느 산장에서 털보 산장지기와 노을이 비끼는 지리산을 바라보며 얘기를 나누는 장면이 기억날 듯하다. 잠시 쉬고나서 칠선봉을 향해 무거운 발을 다시 딛는다. 산에서의 걷는일은 숨을 헉헉거리며 아무생각 없이 걸을때 가장 잘 걷게 된다. 쉬다가 다시시작하는 걸음이 제일 무겁고 쉬다가 다시 일어서서 메는 배낭은 이렇게 무거웠나 싶을 정도지만 조금만지나면 배낭이 한몸이 되어 무게감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7개의 바위가 마치 일곱선녀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그리 크지 않아 실감이 나지는 않는다. 이제 영신봉까지만 가면 넓디 넓은 세석평전이 나타날 것이고 거기까지가 오전 산행계획이니 별 무리없이 도착할 것 같다. 계단을 오르고 밧줄을 타고 절룩거리며 걷다보니 영신봉에 도착했다. 드디어 세석평전의 장관이 눈아래로 시원하게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