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머리가 아파서 잠에서 깨었어.
수영하다가 두통을 경험한 사람이 있나 모르겠는데 그런 느낌의 두통이었어.
밤에 찬바람을 맞아서 고소증세가 나타난건가? 올라가야 할지 내려가야 할지 참 난감하더군.

일단 3000미터 이하로 내려가서 간을 좀 보기로 했어.
히말라야로 내려와 롯지마당에서 밀크티 한잔 시켜놓고 오전내내 책을 읽었어.
오르고 내려가는 여행객과 포터들이 북적거리는 마당에서 왠 삽질이었던건지...

점심을 챙겨먹으니 두통이 좀 가시는 것 같기도 하고..
더이상 시간을 죽일 자신도 없고 해서 올라가기로 했어.
어제 잤던 곳에 도착할 때쯤 되니 하늘에서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하더군.

어제의 그 롯지에 도착해서 방이 있냐니까 예약이 다 찼다네? 식당에서 자고 싶으면 재워주겠다더군..
지금 손님이 하나도 없는데..이 시간에 더 올라올 사람들도 없을텐데..올라온대도 이 큰 롯지를 다 채울 인원은 아닐텐데...
고산증으로 씻지도 못해 꾀죄죄한 동양인에게 방을 주기 싫은 눈치였어.

그래 그럼 더 올라가보지 뭐..
진눈깨비는 점점 굵어지고 비닐로 짐을 씌운 어린포터 하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엠비씨로 향했어.
바위밑에서 비를 피하다가 지나치는 나한테 덜컥 비스켓을 하나 권했는데 숫기가 없어 거절했던 것이 좀 마음에 걸리네.

데자부란건가..길은 20년전쯤 강원도를 도보여행할 때 지나쳤던 어떤 골짜기와 비슷한 느낌이었어.
진눈깨비는 싸래기로 바뀌고 다시 눈으로 바뀌고..
질척한 길에서 몸을 뽀송뽀송하게 지켜준 10년된 이마트표 고어텍스자켓과 블랙스톰 등산화에 경의를 표하고 싶네.

해가 다 져서 롯지에 도착했어.
물에 젖은 거지꼴의 동양인을 보더니 주인은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다른사람과 같이 자겠다면 방을 주겠다고 하더군.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 그러마하니 주인은 캐나다 처자가 누워 있는 방으로 안내를 하더군.

대충 눈인사를 마치고 식당으로 갔어.
오른쪽에는 카드를 치거나 담소를 나누는 영어권 여행객 10명쯤,  왼쪽에는 아이패드로 오락을 하는 일본인 너댓명..
그 사이에 껴서 거지꼴로 늦은 저녁을 먹으려니 참 뻘쭘하기가 이를데 없더군.

후딱 밥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어.
조금 있다가 캐나다 처자가 따라와 부시럭거리며 눕더군.
친구와 같이 왔는데 친구는 ABC에서 자고 자기는 여기 처졌다는군. 이 처자도 고산증이 약간 온건가...

눈발은 점점 더 굵어지고...지붕에 쌓인 눈덩이가 가끔 처마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어.
내일은 두통이 가셔야 할텐데...내일은 해가 뜨서 산봉우리들이 보여야 할텐데...
이런 저런 걱정을 하면서 잠에 빠져들었어.


오늘의 팁/
고산증은 3000미터 이상에서 나타날 수 있는데 첫 증세가 두통이고 더 심해지면 가슴이 아파지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고 해.
예방을 위해서는 천천히 고도를 높이는 것인테 일주일만에 ABC를 끝내야하는 입장에서는 가능하지 않는 일이지.
원인은 정확히는 모르지만 산소가 부족하니까 숨을 더 자주 깊게 쉬게 되는데 이런 과호흡이 이산화탄소를 날려보내서 몸이
알칼리성으로 변하는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나봐.
이렇게 알칼리성으로 변하는 것을 막아주는 일을 콩팥이 하는데 콩팥이 일을 하려면 물이 많아서 소변이 많이 나와야 되겠지?
그래서 고산으로 가면 물을 많이 많이 많이 마셔주고 두통이 오는 것 같으면 3리터를 원샷하라고 하더군.
나는 산에서 땀을 별로 흘리지 않아서 물을 많이 마시지는 않아.
그날 일리터쯤 물을 마셨고 쉴때마다 밀크티같은 걸 마셨으니 2리터정도 물을 마신 것 같은데 소변은 아주 진한 병아리오줌만큼
두번정도 본 것 같아.
평소만큼 물을 마셨는데 고산에 적응하느라 우리몸이 물을 몸에 가둬두고 소변은 적게 배출하는 것 같아.
그래서 콩팥이 일을 못해서 고산이 쉽게 오지 않았나 싶어.
각설하고.. 결론은 고산증이 올만한 높이에 가면 물을 많이 많이 마시자..이것은 꼭 기억해두면 좋을것 같아.




첫번째 사진중앙에 허연것이 포터가 메고가는 비닐씌운 짐이야. 강원도 골짜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