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밤 자고 났더니 거짓말처럼 두통이 사라졌어.
물을 많이 마셔서인지...3000미터 밑으로 내려와서인지..
그동안 고산증으로 씻지 못해 떡졌던 머리를 감고 나니 조금 거지꼴을 면한 것 같더군.

혼자 여행하는 한국인을 만났는데 인사를 나누니 바로 아래의 가게에서 네팔 술 락시를 사라고 하더군.
살림집에 겸해서 지나다니는 포터를 상대로 과자같은 것을 파는 곳인가 본데 정식 롯지보다 무지 싸다고 나보고 꼭 사야한대.
직접 담근 술인데 일리터에 120루피 우리돈 2천원이 조금 못되는 정도였어. 병이 없다니까 부엌에 있는 꾀죄죄한 pet 병에 담아주더군.

12도 정도라는데 고량주 비슷한 향이 났어.
그런데 병 윗부분이 찢어져 있어서 배낭에 담으니 눌려서 그리로 줄줄 새더군.
다시 들고 들어가니 요리를 하던 안주인이 뭐가 우스운지 깔깔 웃고 사내는 병이 없어 난감해하더군.

궁리를 하던 사내가 조금 남은 망고주스를 따르고 거기다 옮겨 담으려기에 기겁을 하고 뺏어다 수도물에 헹궈 갔다줬어.
뒤돌아서 있으니 병이 작아서 다 못 따르겠다고 다른 pet 병을 헹궈오라고 주더군.
700ml쯤 담긴 병에서는 희미한 망고쥬스냄새가, 300ml쯤 담긴 병에서는 희미한 참기름 냄새가 났어.

시누와에서 촘롱 사이의 계곡에 놓인 다리에 이르를 때쯤..
처녀하나가 마대자루가 담긴 등에 진 바구니를 패대기 치면서 먼저 온 친구하고 깔깔거리며 웃는 걸 봤어.
눈이 마주치니 겸면쩍어 하길래 웃으며 나마스떼를 해 줬지.

한참 계곡을 올라오다 숨을 돌릴겸 뒤돌아서니 아직 다리옆에 앉아있던 두 처녀가 멀리서 손을 흔들어줬어.
나중에 알고보니 그 마대자루가 30kg짜리 시멘트포대였던 것 같아. 그 애리애리한 몸의 처녀들이...
힘든 노동에도 불구하고 네팔 처녀들은 천성적으로 쾌활하고 낙천적인 성격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촘롱의 그 롯지에 돌아오니 이번에는 혼자 여행하는 프랑스여자가 묵고 있더군.
아프리카, 마다가스칼, 네팔 소녀들의 자립을 돕는 NGO와 관련된 일을 하는데 잠시 네팔들른 김에 ABC를 가볼 예정이라더군.
어디사냐? ABC가 어땠냐? 여행은 자주 다니냐..등등 말을 시키는데 영어가 짧아서리...

그 여자는 일년에 휴가가 한달인데 이주는 혼자 여행하고 이주는 가족과 여행을 떠난다고 하더군.
일본, 중국, 유럽 이후 네번째 여행이라고 대답하는데 좀 쪽팔렸어.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을 너무 많이 하는것 같다고 둘이서 결론을 내렸지...



마지막 사진은 락시를 샀던 구멍가게.


오늘의 팁/
팁이랄거도 없는데...
정식 롯지는 대부분 좋은 경치를 끼고 있어서 마실것 하나 시키고 의자에 앉아서 여유롭게 쉬기가 좋아.
이런 정식 롯지가 아니고 동네 애들이나 포터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구멍가게들도 많은데...물건도 변변찮고 앉아서 쉴 의자도 없지.
좀 싸게 팔기도 하나본데 가격을 떠나서 가끔 롯지주인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네팔사람들의 순수함을 언뜻 언뜻 경험할 수도 있으니 비스킷이나 초콜렛, 사탕, 물 이런 거 살때 한번씩 이용해보기를 권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