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디로 내려가느냐 나야풀로 내려가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어.
나야풀로 내려가면 빠르고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경치를 보면서 내려갈 수 있겠지만..
포카라에서 하루를 죽일 자신이 없어서 산에서 하루 더 머물려고 왔던 길로 내려가기로 했어.

한 번 지나왔던 길이라 지루하지 않을까하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어.
안나푸르나를 보겠다는 욕심이 없어지니 그냥 지나쳤던 풍경들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어.
란드룩은 간드룩만큼이나 아름답더군. 규모가 더 작고 집들도 더 아담하고 소박하고...

한 처자가 소먹이풀을 등짐에 메고 계단길을 오르고 있었어.
외딴 외양간에서 남편과 소 한마리를 키우던 올라올 때 만났던 그 새댁이어.
이마에 등짐끈을 멘 그 앞모습을 찍고 싶었지만 실례가 될 것 같아 차마 그렇게 하진 못하겠더군.

구관조 비슷한 새가 있어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데 두 소녀가 모델이 되어주겠다고 했어.
사진을 찍고 나니 기어들어가는 듯한 작은 목소리로 no photomoney? no sweet? 라고 묻더군.
사진은 고맙지만 사탕은 없다고 지나치는데 아주아주 살짝 실망한 기색이 보였어.

조금 더 가다 길가 수도에서 설겆이하던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어.
부리나케 마당으로 달려가서 메리골드를 꺽어 가슴에 꽂아주더니 사진을 찍으라고 포즈를 취해줬어.
그리고는 뭐 줄게 없냐길래 1/3쯤 남은 비스켓을 건네줬어.
썩 만족한 눈치는 아니었지만 몇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하더군.

해질 녘 담프스에 도착했어.

논에서 벼 아니면 수수 비슷한 것을 키우는데 수수는 낫으로 이삭을 하나하나 베어서 바구니에 담아 수확해.
한 여인이 애기를 데리고 수수를 베는데 몇이삭만 베고나면 애기가 장난을 걸어서 안아서 얼러주고는 또 수수를 베어.
해는 져 가는데 언제 저 논의 수수를 다 베려는지...

모녀를 보며 잠시 평화로왔던 유년의 추억에 빠져들었어.




사진/ 란드룩의 집/ 소키우던 처자 / 모델이 되어 주었던 소녀들 1.2


 
오늘의 팁/
한 할머니가 소먹이풀을 등짐에 지고 걸어가는데 몇몇의 유럽인들이 같이 지나가게 되었어.
한 여인이 할머니옆에서 같이 팔을 잡고 포즈를 취하면 일행은 유쾌하게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할머니가 먹을 것 좀 달래니까..20루피짜리 빵을 비닐에 담아들고 가다 이 빵 할머니 주면 자기 먹을것 없다고 그냥 가더군.

네팔의 아이들, 처녀 총각들, 등짐진 사람들. 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든 것들이 외국인에게는 좋은 사진 소재겠지.
그래서 워낙 남들이 사진기를 들이대는데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지...
그런 상황에서 화를 내지 않고 모델이 된 댓가를 받아내는게 이익이라고들 생각하는 거 같어, 못받으면 그만이고...

근데 입장바꿔서 잘차려입고 부유해보이는 외국인이 자기 일하는거 찍으려고 카메라 들이대면 불쾌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네팔사람들 사진이 거의 없는데..혹시 사진을 찍으려면 미리 양해정도는 구하는 것이 예의일 것 같아.
돌아다니다 어디선가...네팔인이 네팔인에게 하는 것 만큼만 하시오. 카메라를 들이대지 마시오. 이렇게 적어놓은걸 본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