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날 잘못을 했을 때? 애인에게 이별통보를 받았을 때? 부조리를 겪을 때?
아니 내 생각엔 다 틀린 것 같아
바로 자신을 직면했을 때야
살면서 어느 정도는 꿈이 있었을 테고 능력이 있었을 테야
그리고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었을 기회가 주어졌겠지
하지만 수많은 기회 속에서도 나태함과 변명으로 스스로를 감춘 달팽이는 변하는 외부를 직시할 수 없고 등껍질만 자꾸 커지더래
나와 같이 급식을 먹던 그 친구는 대학원을 가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수많은 환호를 받을 때 난 그 환호조차 해줄 수 없는 비루하고 수준이 낮은 스스로란 걸 알게 될 때,
하릴없는 인생을 살아왔고 이제는 그 무엇도 될 수 없고 등껍질을 나가기가 두려워질 때,
그때 갑자기 불행해지는 거야 이 세상은 본인의 감정으로 흘러가는 주관적인 우주거든
달팽이는 적어도 스스로가 평균은 하겠지 하고 생각했을 거야
그러다 문득 나보다 성공한 사람들이 일 끝나고 마시는 시원한 맥주의 바코드를 찍고 무심하게 던진 카드를 주워 계산을 할 때 드디어 알아 버린 거야 난 불행하구나
난 불행한 인생을 살아왔구나 하고 갑자기 자기 연민에 빠지는 거야
왜냐면 난 불행하고 불우한 조건에 있다고 생각해야 자신의 실패가 오히려 정당화가 되거든
스스로가 불행하다고 생각을 하지 않으면 미쳐 버리는 거지
다른 사람에 비해 처참하게 뒤떨어지고 이룬 것 하나 없고 목표의식도 떨어졌으며 이젠 가진 거 없이 나이만 꾸역꾸역 처먹은 이유가 사실은 본인의 잘못이 아닌 이 삼라만상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가식을 꾸며야만 했던 거야
그렇게 고착화되는 거야.... 그렇게 등껍질은 이제 나갈 수 없는 문을 만들어 버리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