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태양광 발전 시설.
‘유럽의 엔진’ 이자 세계 3위 규모인 독일 경제가 심상치 않습니다. 지난해 다른 주요국들과 달리 나홀로 마이너스 성장을 하더니, 올해도 제자리 걸음(+0.2% 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유로존 뿐 아니라 한국, 일본 포함 주요 선진국들중 가장 낮은 성장률입니다.
일각에서는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제기되면서 ‘유럽의 모범생’ 이었던 독일이 ‘유럽의 병자’로 전락했다는 조롱까지 나오고 있죠.
제조업 시황이 악화된 와중에 터진 러-우 전쟁은 에너지 가격 급등을 초래했고,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높았던 독일에 유독 큰 타격을 안겼습니다.
최근 독일 싱크탱크 ‘신경제포럼’은 “2022년 독일의 실질 임금이 2차세계대전 이후 가장 크게 하락했다” 며 “2020년대가 독일의 ‘잃어버린 10년’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독일의 침체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겁니다.
현재 독일이 겪는 경제난에 대해 국내외적으로 여러가지 요인들이 꼽히고 있지만, 이번에는 독일 당국의 에너지 정책에 초점을 맞춰 보겠습니다.
獨, 전기료 치솟는데 임시 가동했던 화력발전소 7기 중단
발언하는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보호부 장관.
지난 1일 독일 정부는 우크라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난에 대응해 임시가동했던 화력발전소 7기 가동을 중단했습니다.
독일 녹색당은 이에 대해 “기후위기 상황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중요한 조치” 라며 “(이번 폐쇄는) 기후 정의를 위한 큰 성공” 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같은 움직임을 주도하는 인물은 녹색당 출신인 로베르트 하베크 부총리겸 경제기후보호부 장관입니다. 독일은 당초 안겔라 메르켈 정부때 2038년까지 ‘탈 석탄’을 목표로 내세운 바 있지만, 녹색당이 일정이 너무 지연된다며 2030년까지 앞당길 것을 주문했습니다.
산업계와 정치권 일각에서 이견도 있었지만 사민당(SPD), 녹색당, 자유민주당(FDP)의 소위 신호등 연립정권 성립 이후 결국 “2030년 탈석탄 달성” 이라는 문구가 정부 방침에 들어갔습니다.
지난해 독일에서 석탄이 전력 공급에서 차지한 비중은 26%로, 에너지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2022년 보다 33% 줄어들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탈탄소는 대세적 흐름 입니다. 지난해 12월 UAE에서 열린 제28차 COP28에서도 세계 각국은 석탄 발전의 단계적 감축 노력에 공감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독일의 경우 지난해 4월 전국 모든 원전을 전면 중단한 이래, 전기료 급등과 공급 불안으로 가뜩이나 불안정했던 경제가 급격히 흔들리고 있습니다.
지난달 뮌헨 세계경제연구소(Ifo)에 따르면 독일 경제는 현재 사실상 ‘빈사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주변 나라들과 비교했을때도 하락세가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獨 탈원전 달성후 탈석탄 속도...자국 산업들은 속속 해외 이전
2019년 독일의 에너지전환 정책을 다룬 독일 주간 슈피겔지 표지.
녹색당과 하베크 장관은 지난해 4월 산업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마지막 남은 원전 3기의 가동을 중단하면서 탈원전 달성을 선언했습니다.
이들은 집권하는 동안 탈원전에 이어 가급적 빠른 탈석탄도 추진중인데, 독일 전역에 깔린 가스관도 점차 철거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독일의 높은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는 우크라 전쟁이후 독일을 궁지에 몰아붙인 족쇄로 돌아왔습니다. 때문에 가스 의존도를 줄이는 방향은 옳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부족한 전력 및 가스를 대체할 에너지원에 대한 계획이 여전히 미비하다는 점입니다.
독일은 현재 3만기 가량인 풍차를 최소 10만기 이상으로 늘리는 방식 등으로 부족한 전력에 대응하겠다는 방침입니다.
하지만 풍력발전은 날씨에 따라 전력생산량이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산화탄소(CO2)를 줄이려 한다면 원전이 상당히 유용한 전력원이 될 수 있지만, 독일은 탈석탄에 앞서 이미 탈원전을 한 상태죠.
이 같은 상황에 전력 및 가스 소비가 많은 독일 기업들은 불안함을 느끼다 보니 서둘러 공장을 국외로 이전하고 있습니다. 탈원전에 급속한 탈석탄 추구가 독일 국내 산업의 해외 이전을 부추키는 형국인 것이죠.
1960년대 독일에 파견된 한국인 광부들이 현장 교육을 받고 있다.
원래 독일은 전통적으로 석탄을 통해 경제와 산업을 발달시켰던 나라입니다. 서부 루르 공업 지대나 동부 라우지츠 지역은 탄광을 중심으로 100년 역사가 있는 공업지대가 형성돼 있습니다. 루르 지역의 경우 과거 1960~70년대 양국 정부간 합의에 따라 많은 한국인 광부들이 파견된 지역이기도 합니다.
대체산업을 모색하고 있는 독일에게 탈석탄이라는 과제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닌 배경 입니다.
마이너스 성장에 경제수장 반응 “숫자가 나쁘게 나왔을 뿐”
더 큰 문제는 독일경제를 이끄는 경제수장이 상황이 심각하다고 인식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지난 2월 하베크 장관은 의회에서 경제부진에 대해 추궁받자 “단지 숫자가 나쁘게 나왔을 뿐” 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는 2년전 한 공영방송에 출연해서도 진행자가 전쟁 여파에 따른 “기업들의 도산 가능성” 에 대해 묻자 “몇몇 업종과 기업들이 생산을 멈출수 있지만 도산하는 상황은 아닐 것” 이라는 모순되고 이해하기 어려운 발언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죠.
대신에 그는 지난 3월 독일의 지난해 CO2 배출량이 전년대비 10% 줄었다고 밝히며 “우리의 성과”라고 홍보하기에 바빴습니다. 실제로 독일의 CO2 배출량은 특히 발전분야에서 20%나 급감했습니다.
일견 홍보할 만한 성과로 보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리 좋아할 일은 아닙니다. CO2 배출량이 줄어든 가장 큰 이유가 에너지를 대량 소비하는 기업들의 생산량 감축, 공장 국외 이전, 도산 등이기 때문입니다. 전력량 소비는 경기와 관련이 있어 일반적으로 불황일 경우 CO2 배출량도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현상황을 타개하려면 날씨 등에 좌우되지 않는 안정적이고 저렴한 에너지원이 필요하나, 탈원전은 이미 되돌릴수 없는 상황이고 2030년 탈석탄 달성을 목표로하는 마당에 화석연료를 쓸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독일 정부는 오는 6월까지 화력발전소 운용으로 늘어난 CO2 배출량을 상쇄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는데, 뾰족한 수가 나올 가능성은 적어 보입니다. 이에 독일 국민들 사이에서는 “이대로면 세계 3위 경제대국 지위가 위태롭다”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원전 복원 추진해온 한국...총선후 다시 탈원전 조짐 ‘고개’
현재 한국정부는 원전 복원 및 확대를 추진중입니다. 산자부는 탈원전 기간 동안 어려움을 겪은 원전 생태계를 완전 정상화하기 위해 일감 확보와 금융·투자 지원에 나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 정부 정책기조와 상반되는 정책을 내세우고 있는 야권이 지난 총선에서 3분의 2에 가까운 의석을 차지하면서 변수가 발생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민주당은 2035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40%, 조국혁신당의 경우 2030년까지 30%, 2050년엔 80%까지 확대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당장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규 원전 규모가 2기로 축소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특히 이번 국회에서 무산 위기에 놓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 처리는 여소야대 국면이 더 노골화 된 다음 국회에서도 통과가 힘들것으로 보입니다.
전문가들은 대량의 전력을 필요로 하는 반도체 등 첨단분야를 국가 핵심과제로 꼽은 상황에서 신재생 발전에만 의존하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고 입을 모읍니다. 탄소중립이라는 대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신재생만큼 원전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장을 역임한 박주헌 동덕여대 교수는 “현재 재생에너지 비율이 10%정도지만 봄가을만 되면 출력제어 문제로 진통을 앓는다” 며 “고준위 폐기물 특별법은 에너지 백년 대계를 위해 국회가 꼭 통과시켜야 한다” 고 강조했습니다.
https://m.mk.co.kr/news/world/10994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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