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과 김대중은 의외의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둘 다 장면(張勉)에 의해 천주교에 귀의했다는 것.
정확히는 장면 씨가 바로 이회창의 아버지인 이홍규 씨와 김대중의 대부(代父)였습니다.
1950년, 당시 검사였던 이회창의 부친인 이홍규 씨가
상부의 지시를 어기고 시국사범을 풀어줘 구속되었다가
주미대사를 맡고 있던 장면 박사의 변호로 두 달만에 풀려난 일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계기로 1951년, 이홍규 씨는 온 가족이 함께 카톨릭에 입교했고,
장면 박사를 그 대부(代父)로 삼았습니다.
이홍규 씨는 검사에서 물러난 후에도 가톨릭법조인회 회장을 맡아 오랫동안 무료 법률상담, 변론활동을 해왔으며,
이런 공로로 무궁화장을 수훈하기도 하는 등 천주교 원로로서 많은 행보를 보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장면 박사를 대부로 삼은 것은 그보다 조금 나중의 일입니다.
청년 사업가 출신으로 목포일보 사장을 맡아 <사상계> 등에 사설을 기고하며 1950년대 당시 시사평론가로 이름을 날리던 김대중은
1956년 5월 대선 무렵 친구 최서면 씨의 소개로 장면을 알게 되었고
그에게 영향을 받아 1956년 7월 4일, 중림동본당에서 장면 부통령을 대부로 영세, 가톨릭에 입문하고, 같은 해 9월에 민주당에 입당합니다.
(김대중이 언제 입교했는지는 사료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1956년 7월 4일은 카톨릭 신문의 기록입니다.)
여담으로 이때 받은 김대중의 세례명은 '토마스 모어'
그 유명한 유토피아의 저자이자 헨리 8세에 맞서 교황권을 옹호하다가 순교한 가톨릭 원칙주의자인데,
김대중은 세례명을 받고서는 '왜 하필 목 잘린 사람 이름을 세례명으로 주는가'라고 생각하며 섬뜩해 했다고 합니다.
김대중이 민주당에 입당한 날로부터 딱 사흘 후인 1956년 9월 28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연설을 마치고 퇴장하는 장면을 괴한이 저격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홍규 씨는 검사로서 이 살인미수 사건의 수사를 맡아
사건의 배후에 자유당 정권의 내무부가 개입했다는 것을 밝혀냈으며,
김대중은 이 사건을 계기로
장면을 영수로 하는 민주당 신파 소속 정치인으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이어가게 됩니다.
이홍규 씨의 신앙은 이회창 총재에게 이어졌고
김대중과 이회창은 모두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서 신념을 가지고
각각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되었습니다.
장면 이후 그의 대자와 제자들에 의하여
우리나라 천주교 진영은 민주화 운동과 빈민 구제 등에 앞장서며
정치, 사회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백 세가 되도록 자손을 가지지 못한 노인 아브라함.
창세기에 따르면, 하느님은 어느날 그런 아브라함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서 하늘을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그 축복대로, 아브라함은 훗날 수십 억에 달하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신자들에게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게 됩니다.
본인은 결국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짧게 무너진 내각을 이끈 총리로 역사에 남았지만,
수많은 사람의 대부로서, 스승으로서 한국 정치, 사회에 천주교 정신을 뿌리내린 장면 박사야말로
진정 승리한 '믿음의 조상'이 아닐까요?
정치인으로서 가치있는 삶이란 과연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며 긴 글 갈음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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