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 김영삼과의 갈등으로 탈당
노태우는 박철언 장관을 후계자로 지목하려고 했으나
이미 여권 권력 구도가 김영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실패했고
당권 경쟁에서 김영삼이 승리하자 1992년 8월 28일 민자당 총재에서 물러남
21일 후인 9월 18일에 정치적 중립을 이유로 탈당을 선언하고
현승종을 국무총리에 임명하여 사상 첫 거국중립내각 구성
취임 1669일 만에 민주자유당 탈당
김영삼 - IMF 외환위기와 친인척 비리로 인한 레임덕 + 이회창과의 갈등으로 탈당
차남 김현철 씨가 한보 게이트에 연루, 뇌물수수 혐의로 체포되고
IMF 외환위기가 본격화하며 지지율이 크게 떨어짐.
또 이회창 측이 제기한 김대중 비자금 의혹에 검찰이 수사 유보 결정을 내리자
여당 지지층이 크게 반발하여 포항에서 김영삼 인형을 화형에 처하는 퍼포먼스까지 일어남
이런 상황에서 이회창이 김영삼에게 탈당 요구까지 하자
차기 대통령 선거를 치우침없이 관리하고 국정 수행에 전념하겠다며
1997년 11월 7일, 신한국당 탈당을 선언함.
취임 1717일 만에 신한국당 탈당.
김대중 - 측근, 아들 비리로 탈당
2001년 진승현, 정현준, 이용호 3대 게이트와
2002년 최규선 게이트 등 잇따른 측근 비리에 정권이 위기해 처하자
여당이 대선을 치르는데 부담이 되지 않기 위해서 탈당함.
김대중의 아들 김홍일, 김홍업, 김홍걸은 홍삼 트리오라고 불리며
국민의정부 권력형 뇌물 비리의 중심에 놓였는데,
김홍일은 나라종금 로비 자금 수수로 유죄,
김홍업은 2002년 이용호 로비 사건으로 유죄,
김홍걸은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대가 금품 수수로 유죄를 선고받았음.
미래 권력과의 큰 충돌은 없었으나 비리로 인해 탈당한 사례.
2002년 5월 5일, 탈당을 선언함.
취임 1532일 만에 새천년민주당 탈당.
노무현 - 선거 참패 후 여당 분열으로 탈당
2006년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16개 광역단체장 중 1석밖에 얻지 못하며 참패함.
당 분열의 책임은 지지율 하락세를 벗어나지 않은 노무현에게 돌아갔으며
여당은 노무현 탈당 요구와 신당 창당 움직임을 본격화함.
노무현은 여당 내 신당 창당 움직임에 반대했으나
결국 여러 주요 인사들이 청와대와 각을 세우며 잇따라 탈당했고
노무현은 탈당 요구에 시달리다 2007년 2월 22일 탈당을 선언함.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는 열린우리당에 길을 터주고 개헌안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명분.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노무현 때문에 표 다 떨어졌다고 하는데, 지금 나간다고 떨어진 표가 다시 돌아오겠느냐"라는 명언을 남김.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임기 중에 두 번이나 탈당한 유니크한 경험이 있는 대통령임.
취임 1462일 만에 열린우리당 탈당.
이명박 - 임기 중 탈당 없음
임기 말 새누리당 친박계에서 탈당 요구가 있기는 했지만
결국 탈당 없이 임기를 끝마침
제6공화국 이후 퇴임 후에도 당적을 유지하는 첫 대통령이었으나
정치색을 없앤다는 이유로 2017년 1월에 탈당함.
박근혜 - 국정농단으로 강제 출당
임기가 끝날 때까지 당적을 유지하기는 했으나
이후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수감되자 홍준표의 직권결정으로 강제출당.
역대 최초로 강제출당 조치를 당한 대통령이 됨.
문재인 - 임기 중 탈당 없음
문재인의 경우 딱히 여당에서 탈당 요구는 없었고
야당에서 탈당 요구가 조금 있기는 했으나 그냥 임기 끝마침.
임기 끝나고도 얼마 전까지 파란 옷 입고 나와서 선거 유세 뛰기도 했고
아무래도 임기 말 국정 지지도가 높아서 별 책임론이 없었던 사례.
과연 대석열의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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