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5일차 파트 3 : 라가불린
5일차 파트 2 : 아드벡 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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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벡에서 라가불린까지는 도보로 약 24분이 걸린다.
아일라 서쪽의 세 증류소, 쿨일라 - 아드나호 - 부나하벤 길목과 달리 라프로익 - 라가불린 - 아드벡으로 이어지는 일명 ‘킬달튼 위스키 로드’는 증류소간 거리가 상대적으로 가깝고 길이 잘 닦여있다.
아드벡에서 라가불린으로 가는 길은 포트앨런에서 브룩라디로 가는 길목과 마찬가지로 정해진 인도가 있어 편하게 이동이 가능했다.
게다가 아름다운 아일라의 해안가와 한가하게 풀을 뜯는 양들을 보면서 펼쳐진 길을 걷는다는 경험 자체도 상당히 특별하다.
도중에는 포트 앨런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이는 큰 페리를 볼 수도 있었다. 내일 오전이면 내가 저 배에 타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아일라에서의 마지막 날인 것이다.
아쉬운 마음에 카메라 셔터를 열심히 누르며 발걸음을 옮기자 어느새 저 멀리 라가불린의 특징과 같은 빨간 굴뚝이 보였다.
사실 아일라 증류소 중 가장 익숙하지 않은 증류소가 라가불린이다.
바에서 라가불린 16년을 마셔본 것이 전부로, 별 다른 이유 없이 상대적으로 손이 덜 갔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웨어하우스 테이스팅 세션을 신청한 이유 또한 라가불린이라는 증류소를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비지터 센터의 내부.
사진 우측에 따로 상품이 진열된 공간이 더 존재한다.
도착한 라가불린 증류소의 비지터 센터는 사람이 굉장히 붐볐다. 점심이 지난 시간인 동시에 투어가 시작되기 전이란 점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타 증류소에 비해 비지터 센터가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었다.
반대로 그 때문일까, 밝은 나무가 사용된 벽, 따스한 조명, 난로, 사이사이 깔린 카페트가 더해져 마치 가정집을 개조한 것 같은 따스한 분위기를 풍겼다.
판매중인 위스키들.
라가불린은 디아지오 소속의 증류소이다. 그래서 쿨일라와 마찬가지로 비지터 센터 내에 다른 디아지오 소속 증류소 제품들을 함께 판매하고 있었다.
오전에 방문한 아드벡에 이어 라가불린 또한 포스터를 만들었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비지터 센터 내부를 스윽 둘러본 뒤 만든 포스터를 전달했다.
아일라에 가져온 7장의 포스터 중 마지막 한 장이었다.
이번에도 직원분들이 나오셔서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또한 비지터 센터 안 사무실 내에 걸어두겠다며 액자 사이즈를 알려달라고 하셨는데, 명함과 SNS 계정을 함께 받아가시고 작은 선물이라며 페스아일 핀 뱃지를 선물로 주셨다.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 라프로익, 브룩라디, 보모어, 포트샬롯 유스 호스텔, 아드벡, 라가불린까지 이번 여행 속 나만의 작은 목적을 달성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직원 분들과 비지터 센터에 놀러온 분들과 함께 포스터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 뒤 투어에 참여하기 위해 안쪽의 대기 장소로 들어갔다.
비지터 센터 안쪽에 있는 테이스팅 룸.
투어 전 대기 공간으로 쓰였다.
메뉴판.
고숙성 제품군 가격이 상당히 비싸서 아쉬웠다.
라가불린 트리.
의자와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서 누가 실수로 쳐서 무너지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라가불린 또한 비지터 센터 안쪽의 문을 통해 웨어하우스로 이동하게 된다.
바닷가가 사이에 보이는 경치와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길목을 이동하고 있으니 보모어 투어가 생각났다. 아무래도 엔젤스 쉐어 때문에 웨어하우스들을 일부러 바닷가 근처에 두는 것일까? 하는 생각과 함께 웨어하우스에 입장할 수 있었다.
웨어하우스 투어에서 제공하는 3종.
내부에 들어가자 중앙에 놓인 캐스크 위에 오늘 시음할 위스키가 적힌 종이가 놓여져 있었다. 이후 투어 가이드에게 각자 물이 든 캔과 미니 캐런잔을 받았다.
웨어하우스 내부는 서늘한 편으로 보모어만큼 춥지는 않고 라프로익보다는 시원한 느낌이었다.
라가불린 미니 캐런잔.
자리에 앉고 잔까지 받자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미국 텍사스에서 온 제이크였는데 업무로 글래스고에 올 일이 있었는지라 앞에 휴가를 붙여 아일라에 왔다고 했다.
첫번째 잔.
라가불린 재즈페스티벌 2023, 15년 숙성, 올로로소 쉐리 벗 피니쉬, 53.9도
짜다. 해조류의 짭짤함에 가까움. 스모키는 아니고 메디시널..보다도 역시 해조류스러운 느낌. 너티함이 뒤에 나오는 편. 별로 단지는 모르겠다. 피니쉬도 살짝 짧은 편.
첫번째 잔을 마시고 있으니 건조된 피트를 전달받아 구경할 수 있었다.
건조된 피트.
라프로익이나 다른 곳에서도 봤지만 피트 그 자체로는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 태워서 연기를 내고, 그걸 입혀야 피티한 위스키가 된다.
라가불린 재즈 페스티벌 2023과 라가불린 D.E 배치 1.
두번째 잔. (잔 사진 없음)
라가불린 2023 D.E 배치 1, 엑스 버번, 차링한 아메리칸 캐스크, 56.5도
일단 향부터 더 달다. 일부 버번처럼 바나나가 느껴졌다. 그런데 바나나 우유 같이 좀 은은하게 뒤섞인 느낌? 라가불린 특유의 짠맛이 뒤에 깔렸는데 첫 잔보다 균형이 잘 맞은 느낌이었다.
캐스크에서 위스키를 뽑아내는 방법을 설명해주는 가이드.
원하는 사람은 직접 위스키를 뽑아볼 수 있게 해줬다. 나는 어제 보모어에서 직접 해봤는지라 패스했고 제이크는 경험해보거 싶다며 손을 들었다.
세번째 잔.
라가불린 11년 2012, 리필 혹스헤드 캐스크, 52.1도
향신료를 뿌린 수박향이 느껴진다. 피니쉬에서도 멜론이 떠오르는 달달함이 느껴졌다. 앞선 두 잔보다 맛이 좋냐고 묻는다면 살짝 애매하지만 확실히 독특했는지라 재밌다.
사실 이쯤이 되자 잔 간의 간격이 짧아서 슬슬 피로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반쯤 노트 작성을 포기하고 옆자리의 제이크와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술을 마셨다.
캐스크에 든 위스키의 양을 확인할 때 사용하는 망치.
절대 취한 관광객을 때려잡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고 했다.
라가불린의 제품은 7~8년 정도가 지나면 스피릿 자체보다 통의 힘이 원하는 정도보다 많아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무조건 오래 숙성하기보다는 짧게 숙성하는 것도 특성을 잘 살린 위스키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투어 가이드 또한 40년이 넘은 캐스크 속 위스키를 테이스팅 해봤는데 과숙성되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했다. 뭐든 균형이 중요한 것 같다고.
네번째 잔. (사진 없음)
라가불린14년 2010, 리필 쉐리 벗, 56.3도
다섯번째 잔.
라가불린 16년 2007, 리필 셰리 벗, 54.3도
개인적으로는 마셨던 5잔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
제이크도 같은 의견이었는지 "라가불린은 사실 16년을 숙성하면 통 속에서 무슨 마법이 일어나는 걸지도 몰라"라며 함께 웃었다.
그만큼 취기가 상당히 올라왔는데도 맛있는 한 잔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잔을 마시고 있자 라가불린 로고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라가불린의 로고에 종이 있는 이유가 세관원이 탄 배가 보이면 바로 종을 쳐서 알렸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마을 전체가 위스키 제작에 참여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교회도 참여했기 때문에 망보는 사람이 종을 울리면 목사가 가장 먼저 뛰어가서 증류소에 세관원이 왔다는 사실을 알렸다고 했다.
목사가 가는 이유는 바로 소식을 들은 직원들이 증류소의 장비와 제품들을 관 속에 숨기고 장례식을 진행하는 척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가뜩이나 작은 마을에 올 때마다 장례식이 치뤄지고 있으니 당연히 의심을 사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 사실은 서로 다 알고 있었을거라 이후에는 결국 보모어를 시작으로 라가불린도 세금을 본격적으로 내며 증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5잔의 위스키와 2캔의 물을 비운 뒤 취기가 만든 즐거움과 약간은 아쉬움이 뒤섞인 기분으로 투어를 마친 뒤 숙성고에서 빠져나왔다.
나오는 길에 벽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을 물어보자 방향을 안내해줘서 제이크와 함께 이동했다.
라가불린 또한 아드벡, 부나하벤과 같이 부둣가의 쭉 뻗어나온 장소에 일종의 포토존이 존재했다.
더니백 성.
고개를 돌려보니 바로 옆에 더니백 성이 보였다. 다니벡 성은 12세기경에 지어진 성이다. 이후 13세기에는 맥도날드 클랜이 소유했다고 한다. 이후 모든 것들이 그렇듯 더니벡 성 또한 17세기 경에 주인을 잃고 시간에 따라 역사가 되어 이제는 하나의 관광지로 남았다.
위스키와 증류서 역사 설명에서 볼법한 이야기가 맞닿아 있을 장소를 직접 보고 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주었다.
더니벡 성은 위치 상으로는 라가불린과 아드벡 사이에 있다. 원래 예정은 아드벡에서 걸어오는 길에 먼저 들를 생각이었으나 점심이 늦어져 라가불린에 먼저 도착했다. 버스 시간이 맞으면 가볼까, 정도의 생각을 했다.
따로 막혀있지는 않은지 성 위에 올라간 사람들이 있었다.
이곳에서 제이크와 함께 사진을 찍으며 한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에는 아이슬란드에 가보고 싶다고 하자 자기는 전에 북극해 근처로 가본적이 있다고 알려줬다.
제이크는 정유 회사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라고 했다. 그래서 1년에도 몇 번씩 헬리콥터를 타고 해상 플랜트에 가기 때문에 수상 생존 훈련을 받는다고 했다.
그런데 훈련을 시작하기 전 북극해 근처로 가는 사람들이 있냐 묻길래 손을 들자, '여러분은 훈련이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거기선 물에 빠지면 바로 죽어요' 라고 했다며 같이 한참을 웃었다.
오른 취기에 멋진 경치, 재밌는 친구까지 그저 즐거운 시간이었다.
다시 돌아온 비지터 센터.
재즈 페스티벌 제품 패키지가 새삼 멋지다.
올해로 26회째, 9월 즈음에 열리는 라가불린 재즈 페스티벌은 5월 하순에 열리는 아일라의 전체 위스키 축제인 페스 아일(Feis Ile) 만큼이나 큰 아일라 섬의 주요 축제다.
이름에 라가불린이 붙지만 아드벡, 라프로익, 브룩라디와 같은 타 증류소도 참여하며 보모어 시내, 포트나하벤(포트앨런보다 서쪽에 위치한 아일라 섬의 최서단) 등 섬의 곳곳에서 행사가 진행된다.
맛있는 위스키와 재즈라니 괜히 아일라가 낭만의 섬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제이크, 그리고 같은 투어에 있었던 사람들과 함께 라가불린 재즈 페스티벌 22년과 23년을 나란히 시음했다. 원래 약 5ml 정도 제공되는데 투어는 어땠냐며 10ml는 넘게 따라주셨다.
개인적으로는 22년이 확실히 맛있었던 것 같은데, 솔직히 혀 상태가 말이 아니라 자신은 없다.
디아지오 소속의 다른 위스키 일부도 무료 시음이 가능하다.
다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당연하게도 라가불린 제품들을 시음하고 있었다.
라가불린 위스키 시계.
시계를 파는 증류소는 처음이라 신기했던 제품이다. 위스키 캐스크와 스코틀랜드 가죽을 사용했다고 한다. 가격이 너무 비싸 조금 곤란해 보였지만 정말 특별한 굿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굿즈들.
라가불린은 셰이커와 스트레이너 같은 칵테일 장비를 판매한다는 점이 독특했다.
그렇게 마저 구경을 마치고 라가불린 비지터 센터를 나왔다.
제이크는 이제 아드벡으로 간다며 인사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더니벡 성을 갈지, 버스를 타야할지 고민을 하던 중 함께 투어를 했던 독일인 부부가 내 행선지를 물었다. 다행히 본인들도 보모어로 간다며 감사하게도 나를 차에 태워주셨다.
아일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5일차 파트 3 : 라가불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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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라 여행기 마지막, 5일차 저녁 + 6일차 오전 후일담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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