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여행을 다녀왔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시간이 잠깐 남아서 바로 출발했다.
월요일 1시에 수업 끝나고 학교를 나서는데 날씨는 또 왜 이렇게 좋니.
서울에 살다 보니 속초 강릉에 대한 애정이 생긴다.
둘다 크게 멀지도 않고, 한적하게 바다 보면서 맛있는 거 먹고 오기엔 짱인 듯.
사람들도 모두 친절해서 아주 편안한 여행을 할 수 있기도 하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저렴하면서 괜찮은 숙소가 있어서 1박 하는 게 크게 부담되지 않는게 좋다.
주변에 친구들 보면 하룻밤에 수십만원짜리 특급호텔이나 펜션을 곧잘 가는 것 같던데, 나는 도저히 못가겠더라.
1박에 20만원 넘으면 강력한 심리적 저항선이 생기는 느낌.
속초 강릉은 5만원 내외에 멋진 에어비앤비들이 많다. (비수기 기준)
그리고 특급호텔들도 세일을 자주 한다^^
이번에 잡은 숙소도 고층에 정면 오션뷰인 오피스텔이었다.
숙소 발코니 정 중앙으로 해가 떠올랐다.
덕분에 오전 5시부터 눈이 부시긴 했지만 사진 찍는 사람 입장에선 좋았다.
핫셀로 컬러네가 / 인스탁스 / 슬라이드 바꿔 가면서 즐겁게 찍어 댔다.
팬티 바람으로 편하게 오메가 일출을 찍을 수 있는 기회가 또 얼마나 있겠어~
동해안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포인트는 음식이다.
이번 여행의 음식 테마는 오징어였다.
오징어난전이 열렸다는 소식에 싱싱한 통찜이랑 오징어회가 너무 먹고싶었다.
뼛속까지 서울 사람인 여자친구가 통찜을 좋아할지 걱정했는데 엄청 맛있게 먹어주더라.
지난 겨울 양미리에 이어 속초 오징어난전은 2연속 안타를 때려냈다.
오징어난전에서 통찜이랑 회를 먹고 중앙시장에 가서는 오징어순대까지 포장해 와서 먹었다.
우연한 인연을 만나는 것도 여행의 묘미다.
인스탁스는 이런 인연을 쉽게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진 한장 찍어드릴까요?' 하는 말이 쉽게 나오기 때문이다.
일반 필름이나 디지털 사진이면 내가 후처리해서 연락처찾아서 보내줘야되지만, 인스탁스는 그자리에서 줘버리면 돼서 쉽다.
다른 분들 사진을 찍을 땐 허락을 구하고 두장을 찍은 다음 한장을 드렸다.
첫 번째 아저씨는 핫셀을 보더니 먼저 다가왔다.
아저씨가 핫셀 보고 호들갑떨길래 눈치를 줬다.
여친한테 자세한걸 들키면 괜히 골치만 아파진다.
두번째 사진의 할아버지는 아바이마을로 가는 갯배에서 만났다.
이번 여행 인스탁스 중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다.
늙어버린 실향민의 눈빛 뒤로 아바이마을을 상징하는 갯배꾼(?)들이 보인다.
마지막으로는 아바이 마을에 살고 계신 함경도 신포 출신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는 신포 앞에 있는 '마양도'라는 섬 출신인데, 동란 때 피난오셨다가 속초에 눌러앉게 되었다고 한다.
첫째로, 아직까지 실제 실향민들이 아바이마을에 살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아바이마을은 그런 실향민들의 이야기를 등에 업은 순대타운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게 아니었다.
둘째로, 저녁 노을이 지는 찰나 할아버지께 들은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할아버지는 마양도 출신으로, 피난을 내려왔다가 다시 고향으로 복귀하는 중이셨다고 했다.
그러나 그때쯤 휴전이 되어 더이상 북상하지 못하고 눌러앉은 곳이 속초라는 것이다.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대부분의 아바이마을 실향민들이 마양도 출신이라신다.
신포와 마양도는 여기에 있다.
해군 출신인 나는 이 지역이 꽤나 익숙한데, 그 이유는 신포에 조선소가 있고 마양도는 그 섬 전체가 북한의 해군기지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저 지역에는 북한의 주요 잠수함 기지가 있다. (구글지도 검색하면 나옴)
나는 저기가 군사 지역인줄로만 알았는데,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원래 살던 주민들을 모두 몰아내고 요새화 한 것이라 한다.
할아버지가 더듬더듬 말씀하시는데, 분명하게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이 느껴졌다.
서울 살면서 집까지 멀어서 자주 못간다고 징징거리던 나랑은 차원이 다른 그리움이라 말문이 턱 막혔다.
동시에 대 지구촌 시대에도 존재하는 저런 암흑지대를 없애는데 내가 뭘 할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런 스토리를 듣고 아바이 순대랑 오징어 순대를 먹으니까 '존나공장제맛별거없노' 하던 생각은 쏙들어가고 뭔가 남의 그리움 속에 있는 음식을 먹는 듯 했다.
좋은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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