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쓰에이 전쟁>
1862년 9월 14일 일본의 사쓰마 번 (현재의 카나가와현)과 영국 사이의 전쟁. 영국 등 서양에서는 가고시마 포격전(Bombardment of Kagoshima)이라고 칭한다.
사쓰마 번 다이묘의 아버지가 행차하는 길에 영국 상인들이 예를 갖추지 않고 말을 탄 채로 행렬에 끼어들자 호위하던 사무라이들이 무례하다며 1명을 살해하고 2명에게 중상을 입힌 사건이 일어났다.
영국은 이에 대한 보상금을 에도막부와 사쓰마번에 각각 요구하였고, 에도 막부는 보상을 하였으나 사쓰마 번은 거부하였음.
이에, 영국은 7척의 군함을 이끌고 사쓰마 번 앞에서 무력시위로 위협만 하면서 배상금을 뜯어내려고 했는데 격노한 사쓰마 번은 실제로 전쟁을 개시함.
병력
- 사쓰마 번 : 증기선 3척,해안 포대 10개
- 영국 : 증기선 7척
영국 함대는 2일간 사쓰마 번의 10곳의 해안 포대를 초토화 시켰고 항구와 근대식 무기공장에도 피해를 입혔으나 거친 날씨와 예상 밖으로 강력한 사쓰마군의 화력에 결국 전투를 포기하고 요코하마로 퇴각했다.
피해 규모
- 사쓰마 번 :증기선 3척 소실,25여명 사상, 막대한 재산 피해
- 영국 : 증기선 3척 소실, 60여명 사상
이 전쟁의 결과로
당시 서양 열강들은 세계최강이라는 영국 해군이 겨우 일본의 일개 지방정부를 상대로 전투를 포기하고 퇴각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으며,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1863년 10월 4일호에서 일본이 의외로 서구의 무기와 전술에 익숙하니 그 전력을 만만하게 봐선 안 된다라는 평을 남겼다.
그리고
영국과 사쓰마는 서로를 높이 평가했다.
사쓰마 측은 영국으로부터 군함과 무기를 구입한다는 조건으로 배상금을 지불하기로 제안했다.
서구문물의 우수함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서구문물 도입에 더욱 더 박차를 가했고, 영국은 사쓰마 번과 관계를 강화하기 시작함.
사쓰마 번에서는 영국에 유학생을 보내고, 영국인 기술자들이 사쓰마에 머물도록 지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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