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은 정선에 다녀왔음.
주말 이후부터 장마가 시작되니 한동안 어디 나가 돌아다니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정선 민둥산과 자작나무숲 그리고 운탄고도를 다녀오기로 함.
1. 민둥산
요즘 인스타에 많이 뜨는 곳. 돌리네(doline)라고 하는 땅이 움푹 꺼진 풍경이 멋지더라고. 가보니까 도로정비도 하고 정상 부근에 건물도 새로 짓던데 정선에서도 관광지로 밀어주는 것 같았음.
네비에 "거북이쉼터"라고 검색하고 가면 최단 루트로 갈 수 있음. 적당한 공터에 주차하고서 한 20분 정도만 오르면 정상임.
등산로 초입에서 발견한 플래카드. 보통 이런 곳에서 이곳은 사유지입니다. 라고 시작하면 야영 취사금지 등등 경고성 문구가 따라오는데, 잣 판매하신다는 플래카드여서 신선했음.
1km의 짧은 거리이지만 경사는 꽤 있음. 이게 정상 바로 아래서 찍은 사진인데 보다 시피 나무가 많지 않아서 시야가 탁 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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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풍경.
데크는 여기 말고 뒤쪽에 2개 또 조금 떨어진 곳에 1군데 더 있었던 거 같다. 아직까지 야영금지 팻말 같은 게 안보여서 야영은 가능한 거 같았음. 이날도 백패커들 7명은 본 거 같다. 오후 6시쯤 도착했는데 그때 7명이면 저녁엔 더 많았을 거 같음.
데크는 틈이 좁아서 오징어팩은 안될거 같았다. 근데 캠장 데크가 아니라서 나사팩쓰긴 좀 미안할 거 같음. 바람 많이 안불면 걍 바위 주워다 피칭하는 게 좋아보임
정상에서 보이는 돌리네의 모습.
가운데가 푹 꺼진 지형을 돌리네라고 부른다고 함. 민둥산은 거기에 동그랗게 작은 못이 있어서 되게 이쁨. 원형 연못은 인공조성한건가 싶더라. 오후 6시쯤이라서 그늘이 생긴게 좀 아쉽. 그거 아니면 더 이쁘게 찍혔을 텐데.
여기서 야영하면 별구경하기는 진짜 좋을 것 같았음. 특히 돌리네 배경으로 은하수 같은 거 찍으면 ㄹㅇ 작품 느낌 날 것 같더라고.
2. 정선 자작나무 숲
작년에 방문했다가 반해버린 정선의 자작나무 숲. 하이원리조트 부근 트래킹 코스에 있는 숲인데 정말 멋진 곳임. 이 주변에 운탄고도와 하늘길, 무릉도원길이라는 트래킹 코스들이 있는데 전부 ㅅㅌㅊ임.
자작나무 숲은 네비에 하이원 밸리콘도 찍고 가야함. 주차료는 무료인데 입구에서 콘도 직원분이 명단 같은 걸 작성하더라. 무슨 용도인지는 물어보진 않았지만 아마 주차나 안전관련 때문에 그런듯 싶음. 조난 신고라도 당하면 필요할테니.
민둥산에서 20km 거리라 금방 갈 수 있었음. 가는 길에 해 떨어지는 것도 구경하고.
밸리콘도 주차장은 텅텅 비어있는 수준. 주차장 안쪽에 화장실이 있는데 넓고 깔끔함. 여기서 옷 갈아입고 똥싸고 등등 준비를 마친 뒤에 등산함.
등산로는 험하지 않음. 경사도 가파르지 않아서 쉬엄쉬엄 가면 40~1시간 안에 자작나무 숲에 도착한다.
한 30분 쯤 오르고 나서야 물을 깜빡한 걸 알아챔. 물통에 파워에이드 채워 넣었는데 한입 마시고 나서야 앎.
내일 아침으로 먹을 전투식량 발열팩 데우려면 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계곡에서 물만 담아가기로 함. 이 때 휴대용 정수기 생각나더라. 카타딘 좀 비싸긴 하던데 걍 사야겠음..
야영지 도착.
여기 유명한 박지인데 아무도 없었음. 진짜 사람이 단 한명도 없더라. 저 멀리서 하얀 불빛 보이길래 사람인가? 싶었는데 고라니 눈빛 반사된거 였음.
아무도 없는 박지에서 혼자서 야영하는게 처음은 아닌데, 산 중턱 숲이니까 좀 으스스하더라.
박지세팅완료.
본격적으로 해먹캠을 해보려고 모기장이 있는 해먹을 준비함. 타프가 해먹과 되게 가까워 보이는데 아래 처진 부분에 눕고 무게 때문에 눌리는 거 생각하면 답답한 느낌은 별로 없음.
해먹캠에서 제일 걱정한 건 허리통증 문제. 난 허리질환 세개나 있고 의사성생님들도 엑스레이상으로는 70대 노인이랑 다를 바 없다고 할 정도로 안좋아서 통증에 민감함. 그래서 혹시라도 허리 아프면 바로 손절치려고 일반 텐트도 한개 챙겨서 왔다.
나무가 많은 박지라 해먹 설치는 간단하게 끝냄. 지난번에 와서 보니까 여기가 몇군데 말고는 평지가 아니라서 텐트 자리 찾는데 고생했는데 해먹은 그런 고민은 없어서 좋았다.
해먹에 누우니까 뭔가 작은 우주선 안에 혼자 들어와 있는 것 같아서 재밌었음. 천장에 있는 줄에다 이것 저것 주렁주렁 메달아 놓는 것도 재밌고. 근데 흔들리는데다 저번에 썼던 해먹이랑 다르게 살짝 불편한 거 같았음.
고라니 조리돌림(영상 비명소리 주의..)
세팅을 다 끝내고 해먹에 누워 쉬다가 갑자기 들리는 비명소리에 깜짝 놀람.
지금에 와서 영상을 다시 보면 고라니 소리가 확실한데, 처음 들었을 때는 녹음된거랑 다르게 소리가 더 저음이었고 울림이 심했음. 그래서 난 멧돼지인가?? 싶었다. 여태 캠핑하면서 고라니 소리 좀 듣긴 했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듣는 건 또 처음인데다 그때 들었던 거랑 좀 다른 느낌이었음. 그리고 이새끼가 내 해먹 바로 근처까지 와서 발자국 소리가 다 들리는데 땅이 조금 울리는 게 느껴졌음. 그거 때문에 ㄹㅇ 멧돼지인 거 같아서 이대로 도망을 가야하는지 아니면 걍 쥐죽은 듯이 있어야 하는 건지 고민했는데 괜히 움직였다가 성질 건드려서 달려들까봐 찌그러져 있기로 함.
움직임이 불편한 해먹에 있으니 어딘가 갇힌 느낌인데다 하필 이때 갑자기 핸드폰도 먹통이 돼버려서 불안함도 더해져서 아주 최악이었음.
이 비명소리같은 울음 소리는 새벽 3시까지 주기적으로 들려옴. 야영객이 나 하나뿐이니까 만만해보였나 봄. 계속 내 근처까지 와서 처 울어대면서 조리돌림 당함. 한마리가 아니고 적어도 세마리였음. 내 주변에서 한마리가 와서 울면 저 멀리서 울는 놈이 또 있고.... 그렇게 번갈아가면서 괴롭힘 당함.
결국 새벽 4시가 다 돼서 새들 지저귀는 소리 들려오고 나서야 잠에 들었음. 그렇게 3시간 정도 자고 일어남.
기상.
3시간도 못잔거 치고는 아주 개운하게 깸 ㅋㅋㅋ 그리고 날이 밝으니까 밖에 멧돼지가 있건 고라니가 있건 별로 무서울 거 같지도 않더라.
아침식사
해먹에서 나와서 전투식량부터 데움.
하나는 비프 어쩌고 인데 맛은 그.. 고추장참치에서 고추 뺀 느낌임 ㅋㅋㅋ 그리고 아래 사진은 메뉴 이름은 기억이 안나지만... 역겨운 비쥬얼에 비해 맛은 좋았다. 단맛이 강한 팥죽느낌이었음.
저 해먹에서 대충 8시간 찌그러져 있었는데, 이상하게 허리는 멀쩡했음. 불편하긴 했는데 뻐근한거 하나도 없더라.
그리고 밥 먹는데 어떤 여자 등산객이 불쑥 나타나서 깜짝 놀람. 간 밤에 고라니들한테 당한 거 때문인지 놀랄일이 아닌데 놀라더라. 돌이켜 보면 여기 산에 들어오고나서 봄 사람은 저 사람 하나 뿐임.
해먹 풍경샷.
자작나무 숲은 저 더러운 연못이랑 데크 사이가 제일 평평해서 텐트 설치하기 좋아보이더라.
하산.
날이 밝으니 악몽같았던 박지의 풍경이 낭만 가득찬 숲이 돼버림. 원래 계획대로라면 여기서 별사진 찍고 타임랩스도 찍고 그랬어야 했는데 고라니 한테 쫄아서 암것도 못하다니...
하산길은 기분 좋았다. 자작나무 숲에서 한 500미터 까지는 아주 잘 다져진 임도길에 톱밥같은게 쌓여있어서 걸을 때 푹신푹신함. 그게 정말 힐링이더라고.
3. 운탄고도
다음 목적지는 운탄고도. 여기서 자전거 라이딩을 하기로 함. 잠을 제대로 못자서 할까 말까 망설이다 강행했다. 운탄고도는 자전거로 꼭 다녀와 보고 싶었던 곳이었거든. 힘들면 중간중간 걷고 쉬면서 타자는 생각으로 감.
야영지로도 유명한 도롱이 연못에서 2km정도 떨어진 공터에 주차하고 자전거로 이동함. 하이원 콘도 밸리에서 대략 8km인가 10km거리에 있어서 차로 10분 걸리더라.
전투식량 중 매인요리 제외한 간식같은 걸 보급으로 챙겨서 출발함.
깜빡하고 자전거 헬멧을 안챙기는 바람에.. 공도구간은 아예 패스하고 여기서부터 만항재까지 쭉 이어지는 임도를 왕복하기로 함. 거리는 대략 30km정도인데 고도가 상당해서 3시간이 넘게 걸렸다.
도롱이 연못.
공터에서부터 도롱이 연못까지는 정신 나갈것 같은 오르막이 이어졌음. 경사도 상당하지만 노면이 미끄러지는 파쇄석 같은 거라서 힘 전달도 안되고... 하여간 죽을 맛이었다. 자전거에서 내려서 끌바한 건 이 구간이 유일함.
도롱이 연못은 지금은 야영이 안되는 거 같더라. 저 플래카드에 야영금지는 안적혀있는데 산림청에서 박아놓은 팻말엔 야영금지라고 돼있음. 백패킹하러 온 사람들이 있긴 하던데..
여기 인스타로 볼때는 낭만 뒤지는 곳이었는데 실제론 좀 똥물이더라고. 안그래도 내가 도롱이연못 이야기 하면 거기 실물은 좀 별로일수도 있으니 실망할 거란 분들이 있긴 했었음.
만항재
연못 이후부터는 그래도 견딜만한 오르막들만 나와서 무사히 만항재까지 올 수 있었다.
오는 동안 경치가 진짜 좋았음. 장마 전 선물이라도 받은 느낌이었다.
집으로 가기 전에 정선에 있는 목욕탕에서 씻고 감. 정선에선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목욕탕들이 있는데, 찜질방같은 시설은 없지만 깨끗하고 저렴해서 좋음. 작년에 여량면이었나? 거기선 3500원에 이용했고 이번에 갔던 곳은 4000원이었음. 여기서 씻고 탕에 잠깐 들어가니까 노곤한게 아주 좋더라. 죽을 때 이런 기분으로 죽으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았음.
그 뒤로 집까지 오는데 250km 내내 한번도 안쉬고 내달림. 비가 살벌하게 쏟아지더라. 선자령까지 올라가서 1박을 더 할까 고민했는데 안하길 잘했다 생각 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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