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레붕이들. 이번 93번째 시간에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2012년작 영화 <장고: 분노의 추척자>에서 묘사된 연방보안관에 대해 짧게 글을 갈겨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해.
영화 초반부, 노예 신분이던 '장고'와 함께 텍사스 주 도트리 마을에 당도한 순회 치과의사 '킹 슐츠'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짜고짜 마을 내 살롱에서 주인장을 협박하여 보안관 소환을 강요하는 행패를 부림.
어안이 벙벙해질 만한 슐츠의 기행에, 순진한 장고조차 그가 평범한 치과의사가 아닐 것임을 대번에 간파함.
역시나 장고의 짐작대로 그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고, 순회 치과의사는 위장용 직업일 뿐, 자신은 '현상금 사냥꾼'(Bounty Hunter)이라며 순순히 정체를 밝히는 슐츠.
인간을 사냥하고, 그 사냥한 인간을 거래한다는 점에서 노예 매매상과 비슷하다며, 현상금 사냥꾼에 대해 주절주절 설명하는 슐츠.
'사람을 죽였는데, 벌이 아닌 포상을 받는다'는 개념에 충격을 받는 장고. 과연 서부개척시대의 폭력성과 야만성의 단면을 보여주는 직업이라 하겠음. 이에 슐츠는 '범죄자에 한해서'라고 보충 설명을 해 줌.
그렇게 짧은 담소를 나누던 도중, 어느새 살롱에 도착한 보안관.
중후한 포스를 한껏 내뿜으며 걸어들어오는 저 거구의 사내가 바로, 미국의 특정 카운티(County) 및 특정 마을의 치안 유지를 담당하는 민간 자율방범대(自律防犯隊)의 장(將)인 '보안관'(Sheriff) 되시겠음.
마을 내 치안 교란 혐의로 둘을 체포하려는 보안관.
그런데 그 순간, 묵묵부답으로 멀뚱멀뚱 서 있던 슐츠가 돌연 소매에 숨겨 둔 데린저로 보안관의 복부에 총격을 가함.
백주대낮에 법 집행관에게 총격을 가하는 슐츠의 또라이 짓에, 장고를 포함한 마을 주민들은 일동 경악.
하지만 주민들의 비난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태연히 두 번째 총격을 가해 몸소 저승행 편도 티켓을 끊어주는 슐츠. 이로써 슐츠는 마을 내 치안 교란 혐의에 살인까지 더해져 법정 최고형인 교수형 확정.
어지간한 무법자들도 후환이 두려워 시도하지 않는, 보안관 살해라는 중범죄를 저지르고도 아주 의기양양하고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급기야 '연방보안관'(U.S. Marshal) 호출까지 요구하는 슐츠.
당대 연방보안관들이 어떤 존재인지는 삼척동자 코흘리개, 바보천치들도 익히 알고 있을진데, 도망은커녕 살롱 안에서 맥주나 마저 재끼면서 연방보안관의 강림을 기다리자는 슐츠. 이에 신종 자살법인가 싶어 극도의 혼란에 빠지는 장고. 구태여 호랑이굴로 기어들어가 날 잡아먹어주쇼 하고 호랑이를 도발하는 꼴이니, 장고 입장에선 '아니, 이 양반. 교양이란 교양은 다 떨더니, 그냥 순 개또라이 새끼였잖아' 싶었을 듯.
이윽고 중무장한 장정들 다수를 이끌고 친히 범죄 현장에 강림하는, 중범죄자 전문 도살꾼인 연방보안관 나리. 이들은 하는 일이 일인지라 사람 패죽이고 쏴죽이는 데에 도가 튼 살인 전문가들이며, 따라서 본 연재글 시리즈에서 숱하게 이야기한 대로 당대의 범죄자들에게 있어 연방보안관의 강림은 곧 문자 그대로 좆됐다고 보면 됐음.
자, 그럼 여기서 우선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보안관과 연방보안관의 외적 차이인데, 이전에도 서술했던 대로 당대의 보안관은 정복 차림의 정식 경찰관이 아니라 시골의 민간 방범대장에 더 가까웠던지라, 본 영화를 비롯한 수많은 서부극에서 보안관은 대부분 읍내 파출소장 느낌으로 후줄근한 사복 차림의 동네 아저씨 같은 인상으로 묘사되지만, 이에 반해 연방보안관은 과연 연방정부 사법부(Department of Justice)를 대표하는 엘리트 공무집행관답게 그 옷차림 가다와꾸부터가 딱 잡혀 있음.
사실 당대의 연방보안관들에게 어떤 표준화된 정복이나 근무복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서부극을 소재로 한 창작물에서 숱하게 묘사되듯이 연방보안관들은 대체로 검은색 계통의 정장을 즐겨 입었음. 이는 표적에게 법의 귄위와 엄중함을 시각적으로 경고하여 공포심을 심어주는 게 주 목적인데, 이를테면 현대의 특수부대원들이 생화학 공격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려는 실용적인 목적도 있지만, 겸사겸사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인 냉혹한 이미지를 적에게 강요하여 기세를 꺾고 움츠러들게 만들 심산으로 방독면을 착용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달까.
또한 굉장히 사소한 디테일이긴 하나, 검은색 계통의 정갈한 차림새와 연방정부의 대행자라는 막중한 체통에 걸맞지 않게 길바닥에 걸쭉한 가래침을 찍 하고 흥건히 뱉는 저 천박한 행태는 과연 폭력의 시대하에 길들여진 특유의 야만성을 숨길 수 없음을 나타내는 소소한 연출이라 할 수 있겠음. 말인즉 서부개척시대가 비문명시대와 문명시대의 과도기로서,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깊게 각인된 특유의 야만성과 천박함은 비단 범죄자들에게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당대의 법 집행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는 의미로써, 이를테면 법을 어기는 야만인과 법을 집행하는 야만인의 차이만이 있을 뿐.
"체포 영장 받아라 새끼야! 넌 좆됐어 이제."
사실 연방보안관들은 최일선 현장에서 대화 따위가 안 통하는 연방 차원의 흉악 범죄자들과 직접 드잡이질을 벌여 도축해 오면서 몇 번이고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었던 인간 사냥꾼 양반들이니, 거추장스러운 사소한 체통 지키기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그런 쓸데없는 걸 신경썼다간 표적에게 죽임을 당할 입장에 놓여 있으니까. 따라서 이들은 체통 따위는 사치에 불과하니 다 내던지고, 그냥 닥치고 범죄자만 잘 잡아끌고 오거나, 잘 찢어죽이면 그만이었음.
현상금 사냥꾼, 즉 같은 법 집행인 신분으로서, 당대 법 집행관들의 정점인 연방보안관의 극도로 폭력적이고 잔혹한 집행 스타일을 모를 리 없으니, 문답무용으로 진압당할 걸 우려하여 미리 언질부터 깔아두는 킹 슐츠의 모습. 해당 연출을 통해 당대의 연방보안관들이 범죄자들에게 있어 얼마나 공포스런 존재였는지 재차 실감할 수 있음. 더불어 킹 슐츠가 천하의 연방보안관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을 만큼의 비범한 카리스마를 지닌 호걸이라는 것도.
과연 연출의 귀재 타란티노답게 짧지만 강렬하게 당대 연방보안관을 묘사하고 있음. 사실상 연방보안관과 관련된 4번째 단독 주제 글이네. 당대 극강의 알파메일답게 계속해서 쓸 거리가 나오는, 서부개척시대의 화수분같은 존재임. 그럼 다들 이번 글도 읽느라 수고 많았고, 다음에도 또 재밌는 주제로 찾아오도록 할게. 또 보자 게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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