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강호동
깜짝 등장해서 씨름계 정점 이만기를 무너트리고 씨름계를 평정했다고 기억하는 사람들 많을텐데
이건 사실이 아님
왜냐하면 강호동이 실제로 활동한 기간은 단 '3년'이기 때문임 (89~92)
애초에 강호동은 이만기 전성기지나고 하락세가 왔을때 등장했고 (이만기 1963년생, 강호동 1970년생)
'모래판의 황제' 이만기의 라이벌은 '신사' 이준희 였고 이들은 80년대를 대표하는 선수들임.
강호동은 90년대도 아니고 90년도 그 앞뒤 1~2년 사이 잠깐 반짝한 유형임
물론 그걸 감안하더라도 짧은 시기동안 천하장사 9회출전 5회우승은 대단한 위업이긴하지만
결국에는 '임팩트도르'에 불과하고 강호동이 가진 실력과 별개로도 운이 좋았던 측면과 빈집털이성 측면이 강하다는거임
이를 증명하는 단적인 예시가 전성기 강호동이 이만기, 이준희와 같은 세대였던'거중기' 이봉걸 한테는 쪽수도 못쓰고 탈탈 털렸다는 사실임
이봉걸은 기술씨름을 대표하던 이만기와는 다르게
2m 5cm에 달하는 본인의 피지컬을 살린 경기를 했고
힘과 순발력을 무기로 삼은 강호동의 필살기인 들배지기가 전혀 먹히지 않는 상대였음
80년생 전성기 강호동은 이미 전성기가 지나도 한참지난 57년생 이봉걸한테 0:4로 압도적인 패배를 당함
이러한 경험이 앞으로 강호동이 내리는 결정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을 것임
아무튼 실제로 이만기 이후 씨름계를 대표한건 황대웅이었음
강호동의 4회연속 천하장사를 저지한것도 황대웅임
(안타깝게도 뇌경색에 걸린 자신의 삶을 비관하여 올해 극단적 선택을 하심)
그러니까 강호동은 실질적으로 본인 '빈집털이'형 선수였던거임
강호동이 체구에 비해 엄청난 괴력과 순발력 소유한 것은 맞지만
이만기처럼 다채롭고 변칙적인 기술을 보유한 것도 아니었고
그와 동시에 피지컬적인 한계가 뚜렷했기 떄문에
이후에 펼쳐진 무게씨름, 거인씨름에서 도태될거라고 판단하고 3년만에 본인 스스로 은퇴를 결정함
그 후에 나타난 기라성같은 후배들을 보면
강호동의 예상은 무서우리만큼 정확히 적중했고 씨름계의 평균 체중과 신장 수준이 끝도 모르고 올라가기 시작함
그러다 결국 천외천, 골리앗 최홍만까지 등장함
180cm의 체급대비 외소한 체격의 강호동이 이런 씨름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강호동이 대단한 씨름 선수였던 것은 맞지만
현재 미디어가 만들어낸것처럼 절대자 포지션은 절대 아니었고
자신의 한계를 빠르게 인정하고 업종을 변경하여 또다른 분야에서 최고가 된 레전드라고 할 수 있겠음
1줄 요약 - 강호동은 씨름보다 인생계획을 더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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