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말이 안된다. 아니 대가 없이 도왔는데, 도리어 무기징역으로 답한다는게 말이 되는건가?
하지만 북한에서는 말이 된다.
임현수 목사, 신상정보를 간단히 짚고 넘어가자면 1955년 2월 16일생으로 서울에서 태어나 토론토에서 신학을 공부하였고, 1986년 캐나다로 이민하여 시민권을 얻은 뒤 한인교회 '큰빛교회' 의 목사가 되신 분이다.
임 목사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1996년부터 가보자
고난의 행군을 겪어 인민들이 굶어가던 1996년의 북한을 보고 안타까워하던 임 목사
LA에서 만난 한 부유한 독지가에게 300만 달러를 기부 받게 되었는데, 이를 받은 임 목사가 그대로 중국 선양에 위치한 한국 브랜드 라면 공장으로 향하여 300만 달러 어치의 라면을 구매, 북한으로 보내며 임 목사의 대북 사업이 시작됐다.
라면을 실은 트럭이 하루에 천 대씩 북한에 들어가기도 했고, 의약품 상자를 북한 고아원에 보내기도 했지만 중국을 거쳐서 대북 지원을 한다는 점 때문인지 어느 교회의 누가 지원하는건지 김정일에게까지는 알려지기 어려운 상황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이야기가 김정일과 장성택의 귀에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어찌된 일인고하니 임 목사의 교회에 나오던 사업가가 우연히도 김정일의 측근과 연결된 사이였고, 임 목사의 이야기를 들은 사업가가 측근에게 그대로 이 이야기를 전달, 그 측근은 김정일과 장성택에게 또 이야기를 전달... 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퍼진 것이다.
당시 김정일이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임 목사의 이야기를 들은 김정일은 이내 임 목사와 관련된 종이 한 장을 쓴다.
종이의 내용은 크게 2가지
"이분들이 하는 일은 누구도 방해하지 말 것"
"이분들이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게 할 것"
김정일이 내린 일종의 '마패' 가 수여되면서 다른 대북 사업 단체들이 일반적으로 겪던 어려움이 사라지자, 임 목사의 대북 사업은 크게 활기를 띄기 시작했고 농업 개발, 의료, 수산업, 컴퓨터, 영어 교육 등등 다양한 범위로 넓어지기 시작했다.
북한 고아 10,350명이 임 목사가 세운 육아원과 애육원에 수용됐다.
나진에 양계장과 유치원이, 회령에 유기농 비료공장이, 함흥에 선봉연유판매소가, 백두산에 들쭉농장이, 평양에는 즉석국수 공장과 가발 공장이 세워졌다.
대형 어선 2척과 소형 어선 50척이 북한의 수산업 수출을 위해 지원됐다.
심지어 나진에 2000명이 한번에 들어갈수 있는 대중목욕탕까지 지어내는데 성공한다.
국가 규모의 지원을 단 한 명, 임 목사 주도로 18년 동안 150번을 넘게 방북하면서 일궈낸 것이다.
이러한 노력에 무언가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2015년 1월 28일, 나진에 건설한 대중목욕탕을 정식으로 열기 위해 방북한 임 목사에게 북한이 한가지 부탁을 한다.
"하루만 평양에 오셔서 장군님 신년 행사를 도와주십시오"
처음에는 거절하려 헀으나 간곡히 부탁하는 북한 측의 요청에 자신과 같이 방북한 사람들은 중국으로 보내고, 임 목사 혼자 평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임 목사를 잡기 위한 함정이었으니... 임 목사가 잠든 밤을 틈타 보위부(현 보위성)가 임 목사가 있던 방에 들이닥쳐, 임 목사를 끌고 간 것이다.
며칠 뒤 임 목사의 죄목을 재판소에서 읆기 시작하는데... 이게 참으로 가관이다
ㅡ 최고존엄모독죄 (미국 기독교 대회에서 김일성 대신 야훼를, 김정일 대신 예수를 믿어야한다고 해서)
ㅡ 특대형 국가전복음모죄 (북한 정부를 전복시키고 신정 국가를 세우려했다는 이유)
ㅡ 탈북 반동분자들을 도운 죄
ㅡ 뉴욕 주재 북한 외교관에게 복음을 전한 죄
ㅡ 캐나다 정부에 탈북자 신분 문제를 부탁한 '국제적 구걸죄'
상식을 거스른다고밖에 설명이 안된다. 다른것도 다 기가막히기 그지없지만, 도대체 '국제적 구걸죄' 란게 뭔가?
'국제적 구걸죄'라는 죄목이 있다면, 태 의원의 책에 나오는 그 북한 외교관들의 '구걸' 부터가 중죄가 아닌가?
하지만 북한은 언제나 상식을 들이대서는 안되는 나라였다. 북한 검사는 임 목사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다행히 변호사의 변호 아닌 변호로 종신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지만... 애초에 임 목사가 캐나다 시민권자였던걸 생각해보면 함부로 사형시킬수도 없으니 벌이는 짜고치는 고스톱에 불과했다.
애초에 변호 내용부터가 "태양 민족의 나라가 번영해가고 강성대국으로 나아가고 있는 모습을 직접 볼수 있도록" 이다. 어이가 없다.
임 목사는 그렇게 18년을 피땀모아 도와줬던 나라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노예의 신분으로 떨어졌다.
일주일에 6일. 한겨울에도 2시간 동안 쉼없이 곡갱이로 얼은 땅을 파고, 30분 겨우 쉬었다가 다시 파는 걸 4번이나 반복하는 중노동.
간수 50여 명의 끊없는 감시와 언어폭력에 석 달이나 설사.
팔다리 인대가 나가고, 동상에 걸려도 쓰러져야만 겨우 병원에 보내고 조금 나으면 다시 돌려보내 중노동을 재개시키고...
물론 시민권자가 잡혀갔는데 캐나다 외무부가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종신형 선고 이틀 후 캐나다 외교관이 임 목사와 만나기도 했고, 이듬해인 2016년 2월과 12월에는 임 목사를 영사접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어떤 변화도 없이 어느덧 케네스 배의 735일 억류 기록을 갱신하면서 희망을 잃어가던 찰나... 사건이 하나 터진다.
임 목사가 수감되고 몇 개월 뒤 노동교화 15년형을 선고 받았던 오토 웜비어, 그가 식물인간 상태로 송환된지 며칠 뒤인 2017년 6월 19일에 사망한 것이다.
오토 웜비어가 사망하면서 세계적 이슈가 되었고, 그동안 알빠노 모드로 일관하던 그 북한에서 드디어 서방의 시각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캐나다 총리 쥐스탱 트뤼도의 특사단이 평양을 방문한 다음날인 2017년 8월 9일, 드디어 임현수 목사가 병보석으로 석방됐다.
비록 석방 15분 전에야 그 사실을 알아 번개불에 콩 볶아먹듯이 정리해야했고, 영양실조, 고혈압, 관절염, 위장병 등을 여전히 치료 받지 못한 채 풀려나야했지만 말이다.
참고로 북한은 끝까지 북한이었다. 수용소에서 있었던 그 치료같지도 않은 치료에 대해 귀국 후 임 목사에게 치료비 약 2억 5천만 원을 청구했다.
919일을 노동교화소에서 억류당했던 임 목사의 손가락은 여전히 접을수 없는 상태임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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