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에스프리입니다.
유럽 국가별 발작 버튼 시리즈, 이번 글은 남유럽-2편입니다.
남유럽에는 국가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구획을 나눠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도에서 서 -> 동 방향으로 나열하였습니다.)
(1) 이베리아 반도: 피레네 산맥 서쪽으로 대서양과 지중해를 끼고 있는 반도
(2) 이탈리아 반도 및 부속 도서: 알프스 산맥으로부터 지중해로 길게 뻗어나가는 반도 및 부속 도서
(3) 발칸 반도: 남유럽 동부의 지중해와 흑해를 끼고 있는 반도
이번 글에서는 발칸 반도에 있는 국가들의 발작 버튼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1) 유고슬라비아에 속하지 않았던 국가들
1) 그리스 - 마케도니아 공화국
마케도니아 (지역): 그리스와 북마케도니아에 걸쳐 있습니다
'마케도니아'라는 명칭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과 관련 있습니다.
다만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구 유고 연방)의 일원이었던 '마케도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이 '마케도니아 공화국'이라는 명칭으로 독립하면서 명칭을 놓고 분쟁이 생깁니다.
a)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과 같은 그리스계인가? 아님 (슬라브계)
b)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과 같은 그리스계 언어를 쓰는가? 아님 (슬라브계 언어)
c)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과 같은 헬레니즘 문화인가? 아님 (슬라브 문화)
d)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의 땅이라도 많이 가졌는가? 아님 (그리스에 더 많이 속해있고, 마케도니아 왕국의 수도 펠라도 그리스 땅)
우리나라로 치면 러시아인들이 연해주에 독립 국가를 세웠는데 나라 이름을 고구려, 시조를 주몽 하는 꼴이었으니 그리스가 빡친 것도 이해는 갑니다.
그리스에는 동마케도니아 트라키 주, 서마케도니아 주, 중마케도니아 주도 있으니 국가 정체성 문제에서도 양보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다만 2019년에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타협하여 '북마케도니아 공화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로 하면서 분쟁이 일단락되었습니다.
대신에 '마케도니아인', '마케도니아어'라는 명칭은 인정했는데, 그리스 측 강경파들은 여전히 불만이 많습니다.
2) 불가리아 - 러시아 알파벳?
주한 불가리아 대사관에서 만든 키릴 문자 광고
키릴 문자 (Cyrillic script/alphabet)는 러시아를 비롯한 정교회권 슬라브 국가와 중앙아시아, 몽골에서 사용되는 문자입니다.
키릴 문자는 키릴로스와 메토디우스 형제 (Cyril and Methodius)가 슬라브족 선교를 위해 고안했던 글라골 문자 (Glagolitic script)에서 유래하며, 9세기 불가리아 제1제국에서 처음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러시아가 키릴 문자를 사용하는 국가 중에서 가장 국력이 강하기 때문에 우리나라나 서구권에서는 키릴 문자하면 러시아 알파벳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불가리아 문자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불가리아가 유럽 연합 회원국이기 때문에 아직 불가리아가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음에도 유로화 지폐에 키릴문자가 들어가 있습니다.
3) 루마니아 -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처형되는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부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4) 알바니아 - 폰지사기
폰지사기
알바니아는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알바니아 인민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는데, 알바니아 인민 사회주의 공화국을 철권 통치하던 엔베르 호자 (Enver Hoxha)는 소련, 중국, 유고슬라비아, 북한 등을 모두 까는 위엄을 보이며 알바니아를 전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 1989년 동유럽 혁명의 여파로 1991년이 되어서야 공산 독재가 종식되었는데, 알바니아는 낙후되었던 경제 때문에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상황이었습니다.
다단계 회사들은 이러한 혼란을 틈타 파고들어 알바니아 정부와 유착하였고, 고수익을 보장한다면서 (폰지사기) 알바니아 사람들을 끌어모아 급기야 알바니아 인구 2/3 정도가 다단계 회사에 투자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단계 회사들이 그렇듯 정상적인 수익을 낼 수는 없었고, 결국 1997년 1월을 기점으로 다단계 회사들이 연쇄 도산하여 실체가 드러납니다.
1997년 알바니아 폭동 당시 혼란에 빠진 알바니아
국민의 2/3 정도가 전재산을 잃어버리게 되었으니 대대적인 시위가 일어났고, 폭력 사태로 번져 급기야 정부가 통제력을 잃어버리고 갱단과 폭도들이 날뛰게 되는데, 이 사건을 1997년 알바니아 폭동이라고 합니다.
결국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그리스, 튀르키예, 오스트리아가 군대를 투입하고 나서야 사태가 진정되었고, 알바니아에서 민간인, 경찰, 군인을 포함하여 2,000-3,800명 정도가 희생되었습니다.
알바니아 폰지사기 사건은 자본주의 경험이 없는 나라가 어설프게 체제 전환을 시도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적나라한 사례였습니다.
(2) 유고슬라비아에 속했던 국가들
1) 세르비아 - 코소보는 독립국
세르비아와 코소보
코소보는 13~14세기에 걸쳐 세르비아의 영토가 되었으며, 세르비아의 정치, 문화, 종교적 중심지였습니다.
세르비아 공국은 오스만 술탄국에 맞서 1389년, 1448년에 두 차례 코소보 전투를 치뤘으나 크게 패하였고, 오스만 제국에 의해 1459년에 멸망합니다.
코소보는 1455년 이래 오스만 제국 치하에 들어갔으며 무슬림인 알바니아계 주민이 많이 유입되었습니다.
이후 19세기에 세르비아는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하였고, 고토 회복을 명분으로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여 1차 발칸 전쟁을 일으켜 코소보를 확보합니다.
다만 세르비아 입장에서는 조상들의 성지를 회복하는 것이었지만, 코소보에는 이미 알바니아계가 다수인 상태였습니다.
세르비아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슬로베니아, 마케도니아 사회주의 공화국과 함께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구 유고 연방)을 결성하였고, 코소보는 세르비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자치주였습니다.
냉전 이후에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구 유고 연방)이 붕괴되고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 (신 유고 연방)이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를 구성국으로 결성되었습니다.
코소보는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와 이질적인 알바니아계가 많았고, 코소바 공화국 (Republika e Kosovës, 코소보 제1공화국)을 결성하여 세르비아에 맞섭니다.
코소보 전쟁 당시 북대서양 조약 기구의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 (신 유고 연방) 공습
결국 1998년 코소보 전쟁이 발발하여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 (신 유고 연방)이 코소보의 알바니아계 주민을 학살하고, 북대서양 조약 기구가 개입하여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 (신 유고 연방)을 코소보에서 격퇴합니다.
코소보 전쟁 이후 코소보는 유엔 코소보 임시 행정부의 관리를 받아가 2008년 독립을 선언하였는데, 당연히 세르비아는 코소보의 독립을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세르비아는 코소보를 "코소보 및 메토히야 자치주 (Аутономна Покрајина Косово и Метохиja / Autonomna Pokrajina Kosovo i Metohija)"라는 자국 소속 자치주로 간주합니다.
2-4)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세르비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구 유고 연방)을 구성하던 국가들의 현황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언어학적으로 같은 언어인 세르보-크로아트어를 사용하지만, 정치, 문화, 종교적인 요인으로 인해 서로 다른 이름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각각 세르비아어, 몬테네그로어, 크로아티아어, 보스니아어)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는 정교회, 크로아티아는 가톨릭,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이슬람/정교회/가톨릭이 혼재하고 있습니다.
세르비아 왕국은 1차 세계 대전 이후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등을 강제 병합하여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수립한 바 있습니다.
우스타샤 (좌)와 한트샤르 (우)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나치 독일의 침공으로 멸망하였는데, 이때 크로아티아인 조직 우스타샤 (Ustaša)와 보스니아인 조직 한트샤르 (Handschar)가 세르비아인을 70만 명 이상 학살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슬로베니아, 마케도니아를 요시프 티토 (Јосип Тито / Josip Tito)가 하나로 묶어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구 유고 연방)이 수립되었습니다.
구 유고 연방을 하나로 묶었던 요시프 티토가 사망한 뒤에는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발발하는데, 이 과정에서 세르비아인들이 우스타샤와 한트샤르가 돌아온다면서 민병대를 조직해 크로아티아인과 보스니아인을 학살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보스니아 전쟁 이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현황: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 (하늘색)과 스릅스카 공화국 (분홍색), 그리고 공동 통치 구역이 브르치코 행정구 (연두색)으로 사실상 갈라져 있습니다
또한 유고슬라비아 전쟁의 일부인 보스니아 전쟁의 결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 (보스니아 및 크로아티아계 중심)과 스릅스카 공화국 (세르비아계 중심)으로 개편되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세르비아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사이는 매우 좋지 않습니다.
세르비아/몬테네그로
또한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와 상대적으로 사이가 좋았던 편이라, 세르비아와 함께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 (신 유고 연방) 그리고 세르비아-몬테네그로 국가 연합을 결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세르비아-몬테네그로 해체 이후 세르비아는 친러 노선, 몬테네그로는 친서방 노선을 걸으면서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고, 특히 몬테네그로가 코소보 독립을 승인하면서 더욱 벌어졌습니다.
또한 2020년에 주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대사가 '몬테네그로가 1918년 세르비아에 병합된 것은 해방이며 국민의 자유 의지에 따른 것'이라고 말하는 바람에, 몬테네그로에서는 해당 인물을 페르소나 논 그라타 (Persona non gratta)로 선언하였습니다.
그리고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는 서로 자국 주재 상대국 대사를 추방하여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5) 슬로베니아 - 슬로바키아?
슬로바키아 (좌)와 슬로베니아 (우)의 비교
슬로베니아와 슬로바키아는 국명이 매우 헷갈리는데, 둘 다 슬라브족의 국가에다가 종교까지 가톨릭이며 국기 색깔도 하양, 파랑, 빨강을 사용해서 비슷합니다.
또한 두 국가의 자국어 명칭은 각각 Slovenija (슬로베니아), Slovensko (슬로바키아) 이기 때문에 매우 비슷합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워싱턴 DC에 있는 양국 대사관은 주기적으로 만나서 주소가 상대국으로 잘못 적힌 편지를 교환하기도 합니다.
한편 슬로베니아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일원이었고, 유고슬라비아 내전의 일부인 슬로베니아 독립 전쟁 (10일 전쟁)으로 독립했으나, 현재는 과거사 사죄와 교역으로 잘 지내는 편입니다.
6) 북마케도니아 - 마케도니아어는 불가리아어의 방언
불가리아/북마케도니아
북마케도니아는 2019년에 그리스와의 국명 분쟁을 해결하면서 대신 '마케도니아어', '마케도니아인'이라는 표현은 인정받았습니다.
그런데 마케도니아어는 불가리아어와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에, 불가리아에서는 아예 마케도니아어를 독자적인 언어로 인정하지 않고 '불가리아어의 북마케도니아식 표준 정서법'이라고 여깁니다.
당연히 북마케도니아는 마케도니아어가 불가리아어에서 파생된 언어가 아닌 역사적으로 존재해왔던 자국 언어라고 합니다.
그리고 불가리아는 북마케도니아와 2017년에 우호선린협정을 맺었는데, 이때 불가리아는 북마케도니아의 유럽 연합 가입 노력을 지지하는 대신 북마케도니아 역사 교과서에 실린 불가리아에 대한 적대적인 내용을 수정하기로 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2020년에 불가리아는 북마케도니아가 해당 협정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북마케도니아의 유럽 연합 가입에 반대하였습니다.
이후 2022년에 불가리아 의회가 북마케도니아의 유럽 연합 가입 협상을 진행하도록 허용하였으나, 마케도니아어를 독립적인 언어로 인정하지 않고, 북마케도니아가 자국 내 불가리아인에 헌법상 동등한 권한을 부여한다는 조건부 허용이었습니다.
당연히 북마케도니아에서는 이러한 형태로는 용납할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 유럽 국가별 발작 버튼 (6) 동유럽
안녕하세요, 에스프리입니다.
유럽 국가별 발작 버튼 시리즈, 이번 글은 동유럽 편입니다.
1) 러시아 - 크림 반도는 우크라이나에 언제 돌려줄 것인가?
흑해의 긴장: 친서방파 우크라이나 시민들과 친러파 우크라이나 시민 (크림반도)이 갈라집니다.
친러 성향이 강했던, 크림 반도에서는 우크라이나의 유로마이단 운동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컸습니다.
당시 크림 반도는 크림 자치 공화국 (중심 도시: 심페로폴 (Симферополь))과 세바스토폴 특별시 (Севастополь)로 행정구역이 나눠져 있었습니다.
크림 반도에서는 친서방 성향의 우크라이나 과도 정부에 반대하는 친러 시위가 이어졌고, 러시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군대를 진주시켜 크림 반도를 사실상 장악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크림 자치 공화국 의회 의원이었던 세르게이 악쇼노프 (Сергей Аксёнов)가 친러 민병대를 이끌고 크림 자치 공화국 의회를 장악한 뒤, 의원들을 겁박하여 총리로 취임하였는데, 크림 공화국이 러시아 연방의 자치 공화국으로 편입된 현재에도 크림 공화국 수반입니다.
이윽고 크림 자치 공화국과 세바스토폴은 2014년 3월 11일에 우크라이나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여 '크림 공화국'이 되었고, 2014년 3월 16일에 주민 투표를 감행하여 러시아로의 귀속을 결정하였고, 2014년 3월 18일에 러시아로 편입됩니다.
러시아-크림 공화국 합병 조약 체결. 좌측부터 우측으로 세르게이 악쇼노프 크림 공화국 수반, 블라디미르 콘스탄티노프 (Владимир Константинов) 크림 공화국 의회 의장, 블라디미르 푸틴 (Владимир Путин) 러시아 연방 대통령, 알렉세이 찰리 (Алексей Чалый) 세바스토폴 시장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 그리고 미국은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을 강도 높게 비난하였고, 국제법을 위반한 것으로 간주하였습니다.
또한 러시아는 이를 계기로 주요 8개국 정상회담 (G8)에서 배제되었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에 나섰습니다.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은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을 침해한 것으로 사실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의 시발점으로 봐도 될 것입니다.
2) 우크라이나 -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일개 지방
우크라이나 전치사 논쟁
우크라이나 (Україна)'에서 '크라이 (краї)'는 슬라브 계통 언어에서 '영역', '땅', '토지 구획'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러시아에서는 '지방'을 뜻하는 표현으로 '크라이 (край)'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на'는 접미사이며, 'У'에 대해서는 전치사 у (영어의 'in')가 그대로 쓰였다는 의견과 о (영어의 'about, around')에서 바뀌었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그래서 크게 보면 '지역, 영역'이라는 뜻 또는 '주변 지역'이라는 뜻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름의 어감 때문에 러시아에서는 우크라이나를 나라가 아닌 일개 지방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데, 러시아어 표현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러시아어에서 보통 나라 이름 앞에는 전치사 в를 쓰고, 지역의 명칭 앞에는 전치사 на를 사용합니다.
나라 이름 앞에 на를 쓰는 경우는 쿠바, 키프로스, 필리핀 등 일부 섬나라를 제외하고는 우크라이나가 유일합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1993년 우크라이나 정부에서는 러시아 정부에 국명 앞의 전치사를 на 대신 в를 쓰도록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주미 우크라이나 대사관에서 내세운 표어: "Ukraine"이고, "the Ukraine"이 아닙니다.
영어로는 'Ukraine'이라고 하는데, '주변 지역'이라는 말이 일반 명사라서 우크라이나가 소련 소속일 때는 'the Ukraine'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다만 이러한 어감을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싫어하기 때문에 영어로 부를 때는 'Ukraine'이라고 하는 게 맞습니다.
3) 벨라루스 -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는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키예프주 프리피야트 (현. 우크라이나 키이우주 프리피야티)에 위치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로, 사고 레벨 7등급의 최악의 원자력 사고였습니다.
이 사고로 인해 소련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결국 소련 붕괴로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로 인한 방사능 (세슘-137) 오염
그런데 의외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보다는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현. 벨라루스)였습니다.
사고 당시 남풍이 불었기 때문에 방사능 낙진의 80% 가량이 인접한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떨어졌습니다.
그 결과 현재도 벨라루스 국토의 20% 이상이 방사능 오염으로 출입금지 구역이며, 이는 벨라루스 국토 개발에 있어 큰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4) 몰도바 -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독립국
몰도바 내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위치
몰도바에는 루마니아계가 다수이고, 루마니아어가 국어이며, 원래 루마니아와 한 나라였기 때문에, 루마니아와 통합하자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소련 해체 당시 이러한 움직임에 반발하는 러시아계가 분리주의를 내세우며 세운 것이 미승인국인 트란스니스트리아입니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1992년에 몰도바와 전쟁을 벌였고, 같은 해 휴전하면서 사실상 독립하게 됩니다.
몰도바는 당연히 트란스니스트리아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트란스니스트리아에 주둔한 러시아군의 철수를 강력히 요구하기도 합니다.
또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자 우크라이나 측에서 트란스니스트리아로 가는 물류를 끊어버려서,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 유럽 국가별 발작 버튼: 번외편
안녕하세요, 에스프리입니다.
유럽 국가별 발작 버튼 시리즈, 이번 글은 번외편으로, 유럽으로 분류되기도 하고 분류되지 않기도 하는 국가들을 다룹니다.
1) 튀르키예 - 아타튀르크에 대한 모독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Mustafa Kemal Atatürk)는 갈리폴리 전투와 튀르키예 독립 전쟁의 영웅으로 '아타튀르크'라는 성 자체가 '튀르크인의 아버지'라는 뜻이 있을 정도로 튀르키예의 국부로 칭송되는 인물입니다.
특히 튀르키예 독립 전쟁은 오스만 제국이 1차 세계 대전 이후 세브르 조약으로 해체 위기에 몰렸을 때 일어난 전쟁으로, 그를 중심으로 튀르키예 대국민의회 (Türkiye Büyük Millet Meclisi)가 결성되어 그리스, 영국, 프랑스, 아르메니아 등의 협상국을 몰아내어 튀르키예 공화국이 수립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튀르키예의 화폐는 아타튀르크 도안으로 통일되어 있고, 튀르키예 각지에서는 아타튀르크의 사진, 어록, 동상 등을 볼 수 있습니다.
튀르키예 형법에는 아타튀르크 모독죄라는 게 있어서, 아타튀르크의 업적을 공공연히 모욕하거나, 아타튀르크를 대표하는 기념물을 훼손하거나, 이를 선동하면 처벌을 받습니다.
2) 키프로스 - 북키프로스 튀르크 공화국
키프로스 분단: 남부에는 키프로스 공화국, 북부에는 북키프로스 튀르크 공화국이 있으며, 키프로스 섬 남쪽/동남쪽에 영국 해군 기지인 아크로티리 데켈리아도 있습니다.
키프로스 섬에는 그리스계 주민과 튀르키예계 주민이 있었는데, 다수를 차지하는 그리스계 주민이 정치/경제적 우위를 점하며 튀르키예계 주민을 차별하자 갈등이 심각해집니다.
결국 내전이 발발하고, 그리스와 튀르키예가 개입한 결과 키프로스는 남북으로 분단되었습니다.
남부에는 국제적인 승인을 받았으며 그리스계가 다수인 키프로스 공화국이, 북부에는 국제적으로 튀르키예만 인정하며, 튀르키예가 다수인 북키프로스 튀르크 공화국이 있으며, 수도인 니코시아도 남북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남북 키프로스 사이에는 국제연합 완충지역이 있으며, 키프로스 섬 남쪽과 동남쪽 끄트머리에는 영국 해군 기지인 아크로티리 데켈리아 (Sovereign Base Areas of Akrotiri and Dhekelia)가 있습니다.
3-4) 아르메니아 - 아제르바이잔 / 아제르바이잔 - 아르메니아
소련 치하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내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주의 영역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역사적으로 매우 좋지 않은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두 나라는 특히 소아시아와 캅카스를 연결하는 길목에 있는 나고르노-카라바흐 (Нагорно-Карабах)의 영유권을 놓고 오랜 세월 대립해왔습니다.
두 나라는 19세기 말에 러시아 제국으로 편입되었다가, 러시아 제국이 멸망한 뒤 일시적으로 독립하여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영유권을 놓고 1918년부터 1920년까지 전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 전쟁은 두 나라가 각각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아르메니아 SSR)과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아제르바이잔 SSR)이라는 소련의 구성국이 되는 것으로 종결되었습니다.
소련은 1923년 아르메니아계가 많이 거주하는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아제르바이잔 SSR 산하 자치주로 만들었고, 아르메니아 SSR이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아르차흐 공화국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 NKR)의 판도 (1994년-2020년)
결국 소련 해체 직전인 1988년에 아르메니아 SSR과 아제르바이잔 SSR 사이에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이 발발하고, 이 전쟁은 소련이 해체되고 아르메니아 SSR과 아제르바이잔 SSR이 각각 아르메니아 공화국과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으로 대체된 후인 1994년까지 이어집니다.
이 사이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주는 1991년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하여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이 되었고,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자치주 지위를 폐지합니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에서는 아르메니아와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이 승리하였고, 휴전 협정 결과 아르메니아와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 사이 영토가 연결되었습니다.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은 2017년에 대외적인 명칭을 '아르차흐 공화국'으로 바꾸었습니다.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직후 판도. 아르메니아 (분홍)과 아르차흐 공화국 (주황)은 아제르바이잔 (연두)에 패배하여 진한 녹색과 파란색 부분을 상실하였고, 라츤 회랑 (보라색)을 통해 이어져 있었습니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 이후에도 무력 충돌을 간간히 하다가, 2020년에는 전면전이 발발합니다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이 전쟁에서는 아제르바이잔이 아르메니아에 설욕하는데 성공하여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 이후 아르메니아와 아르차흐 공화국이 점유하던 상당 부분의 영역을 탈환하였고, 아르메니아와 아르차흐 공화국은 라츤 회랑을 통해서만 간신히 연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제르바이잔은 2022년 말부터 라츤 회랑을 봉쇄하기 시작했고, 결국 2023년 9월 28일에 아르차흐 공화국 대통령이 국가 소멸 법안에 서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제르바이잔 경찰이 아르차흐 공화국의 수도였던 스테파나케르트 (아제르바이잔어로는 '한캔디')에 2023년 9월 29일에 입성하고,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이 2023년 10월 15일에 한캔디에 도착해 아제르바이잔 국기를 게양하면서 아르차흐 공화국은 공식적으로 소멸하였습니다.
아르차흐 공화국의 수도였던 한캔디 (스테파나케르트)에 도착하여 아제르바이잔 국기를 게양하는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
5) 조지아 -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는 독립국
조지아 내 남오세티야, 압하지야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는 각각 그루지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현. 조지아) 산하의 자치주/자치 공화국이었습니다.
다만 그루지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은 소련이 해체되기 직전인 1990년에 남오세티야의 자치권을 박탈하고, 남오세티야는 1991년에 그루지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여 남오세티야와 그루지야 사이에 전쟁이 발발합니다.
이후 러시아의 중재로 1992년에 휴전 협정이 맺어지고, 남오세티야는 사실상 독립하게 됩니다.
압하지야의 경우, 그루지야가 독립할 때 상당 수준의 자치를 유지할 것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하였고, 압하지야는 1992년에 그루지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여 압하지야와 그루지야 사이에 전쟁이 발발합니다.
이후 러시아의 중재로 1994년에 휴전 협정이 맺어지고, 압하지야는 사실상 독립하게 됩니다.
남오세티야 전쟁 풍자화
그러다가 2008년에 그루지야는 남오세티야를 상대로 전면전을 벌이지만, 러시아에게 탈탈 털리고, 대외적인 명칭을 '조지아'로 바꾸게 됩니다 (남오세티야 전쟁).
이와 동시에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는 조지아로부터 완전히 독립을 선언하게 됩니다.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