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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의 체스계 슈퍼스타, 하워드 스턴튼 上 - 영웅편 -

김첨G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8.08 18:00:02
조회 14944 추천 67 댓글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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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스턴튼(Howard Staunton, 1810-1874)

19세기 영국의 체스 마스터.


체스의 역사나 옛날 체스선수들에 그리 관심을 갖지 않는 체갤러들도 그의 이름은 한번쯤 들어보았을 법하다.

체갤 스크롤만 잠깐 내려도 끝없이 언급되는 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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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House of Staunton 할 때 나오는 그 Staunton이다.



그런데 왜 체스 기물 세트에 이 사람 이름이 박혀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오늘날의 체스 기물들의 표준 디자인이 된 Staunton Chess Set이 처음 출시될 때, 스턴튼이 이름을 빌려주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김창렬 도시락처럼 유명인의 이름을 빌린 마케팅이었다.


그런데 그가 대체 어떤 인물이었기에?

그가 이름을 빌려준 것만으로 그 체스 세트가 엄청난 인기를 끌어모아 체스 세계의 표준이 될 정도였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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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하워드 스턴튼이 19세기 체스 세계를 휘어잡았던 진정한 슈퍼스타였기 때문이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그가 어떻게 후대의 역사가들까지도 매혹시킨, 체스 세계의 영원한 호감고닉이 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첵메1


우선, 하워드 스턴튼이 가진 유명세에 비해 그의 체스 입문 이전의 삶에 대한 정보는 극히 드물다.


젊을 적 극단에서 배우 생활을 하기도 했다는 정보 정도가 그의 체스 입문 전의 확실한 행적으로 보인다.

스턴튼은 한때 자기가 옥스퍼드에서 공부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젊은 시절에 옥스퍼드 대학 교구에서 활동한 이력이 확인되며(공식적인 재학생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임),

셰익스피어에 대한 높은 이해도로 나중에 학계에서 인정받기도 하는 등, 분명 어느 정도의 교육을 받았으며 평범한 집안 출신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는 평생동안 자신의 출생에 대해 침묵하거나 거짓말을 해왔다. 어떤 이유에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수많은 체스 역사가들이 이 가십거리에 달려들었지만 여전히 오늘날에도 그의 출생에 대한 정보는 정확히 알려져있지 않은데,

가장 널리 퍼져있는 가설은 하워드 스턴튼이 어느 귀족의 숨겨진 사생아라는 것이다. (이 또한 증명되지는 않았다.)

아무튼 벌써 주인공 냄새가 솔솔 나는 캐릭터임은 분명하다.



하워드 스턴튼은 1836년, 26세에 돌연 런던 체스세계에 모습을 드러낸다.

당시에 스턴튼은 체스를 전혀 모르는 쌩 뉴비였고, 웨스트민스터 체스 클럽에서 비서 일을 하며, 또 간간히 체스와 셰익스피어에 대한 글을 쓰며 밥벌이를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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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스 선장 이야기 때 올렸던 당대의 신문 자료인데, 잘 읽어보면 에반스 선장의 상대가 뉴비 시절의 스턴튼임을 알 수 있음)



그러나 여느 재능충들이 그렇듯, 그는 쳐맞으면서도 엄청난 속도로 실력을 쌓아올려가는데,

5년이 지난 1841년쯤에는 이미 런던 최고봉의 체스 플레이어들 중 하나로 인정받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런던에서 체스 좀 잘 두는 선수 한 명, 정도로 남게 될 운명이었을지도 모르나,

얼마 안 가 그를 런던의 슈퍼스타로 등극시킨 사건이 있었으니...



우선 사건의 맥락을 알기 위해, 당대 체스 세계의 분위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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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경까지, 체스 세계의 중심지는 원래 이베리아 반도와 이탈리아였다.

루이 로페즈 오프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16세기 중엽의 체스 최강자 루이 로페즈 데 세구라(Ruy López de Segura)도 스페인 출신.

이슬람 세계와 가까워 체스의 전파와 유행이 빨랐던 만큼, 스페인과 이탈리아에는 강력한 플레이어들이 많았고,

다미아노(Pedro Damiano)나 루세나(Luis Ramírez de Lucena), 루이 로페즈,와 같은 선구적인 체스 분석가들이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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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러한 분석가들은 정작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는 그리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오히려 북유럽에서 이뤄진 인쇄술의 발전 덕분에,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체스 텍스트들은 프랑스, 특히 파리에서 많이 읽혀 체스 플레이어들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또한 17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카페 문화의 번성 덕분에, 파리의 여러 카페들에서 체스를 두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파리는 확고하게 체스 세계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18세기 중엽부터 그 경쟁자로 급부상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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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영원한 라이벌, 런던이었다.



영국은 줄곧 체스 세계의 변방이었지만, 산업혁명기의 경제 발전과 함께 여가활동의 여유가 생긴 새로운 중산층들이 대거 체스에 유입되면서,

체스 세계에서 가장 두터운 플레이어층을 가지며 조직화된 체스클럽들을 가진 도시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도 여전히 체스 중심지로서의 파리의 위상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전 세기, 파리의 전설적인 체스마스터 프랑수아 앙드레 다니캉 필리도어(François-André Danican Philidor, 1726-1795)가 쌓아올린 업적은 너무나도 위대했다.

그는 언제나 파리와 런던의 사교계의 중심에 있었고, 루소와 디드로를 비롯한 당대의 유명 학자들과도 친분이 있었으며,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의 궁정에 초대받기까지 했던 체스계의 신화적인 인물이었다.

여전히 런던의 체스 플레이어들도 필리도어의 책으로 체스를 공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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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잠시 주춤하기는 하였지만 19세기에도 여전히 뛰어난 체스 마스터들을 배출하고 있었다.

알렉상드르 데샤펠(Alexandre Deschapelles)와 그의 제자 라 부르도네(La Bourdonnais)가 그 중심격 인물이었다.

런던의 최정상급 체스 플레이어들은 계속 파리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물먹기 일쑤였다.


윌리엄 루이스(William Lewis)와 존 코크란(John Cochrane)이 데샤펠에게 도전했으나 좀 둬보니 아예 수준이 안 맞았는지 데샤펠이 폰을 하나 빼주고 맞붙었으며,

알렉산더 맥도넬(Alexander McDonell)은 라 부르도네에게 졌잘싸를 거두는 수준에서 만족해야 했다.

(참고로 코크란은 인디언 디펜스 편, 맥도넬은 에반스 갬빗 편에서 이미 출연한 바 있음)


이러한 경기들의 결과로 인해,

체스의 인프라가 런던이 더 우수할지언정, 여전히 체스 최강은 파리다, 라는 지워낼 수 없는 인식이 1830년대까지만 해도 여전히 남아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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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1843년, 한 가지 사건이 터진다.

이때에는 이전 파리 최강자 라 부르도네가 죽어, 생아망(Pierre Charles Fournier de Saint-Amant)이 파리의 체스 최강자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파리의 체스 잡지 Le Palamède의 발행인이었고, 본업은 와인 판매업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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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판매업 때문에 정기적으로 런던을 방문하던 중, 그는 우리의 주인공 하워드 스턴튼과 비공식적으로 대국을 벌일 기회를 갖게 됐는데,

스턴튼이 2.5-3.5(2승 3패 1무)로 아쉽게 패배했다.


신이 난 생아망은 자신의 잡지 Le Palamède를 통해, 자기가 스턴튼을 이겼노라고 자랑을 했는데,

자존심이 강했던 하워드 스턴튼은 여기에 매우 크게 긁혀서, 생아망에게 공식적인 매치를 신청한다.

내가 파리로 찾아가겠다. 훨씬 큰 상금을 걸고, 나랑 한판 제대로 붙자.

생아망은 매치를 수락했고,

이 소식이 파리와 런던의 체스 플레이어들에게 널리 알려지자,

졸지에, 이 대국은 양국과 양 도시의 자존심을 건 국제매치의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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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신진 체스 선수 vs 파리의 체스 최강자.

스턴튼은 칼을 갈았고, 1843년 11월, 대국이 막을 올리자,

생아망을 상대로 자신이 준비해온 새로운 오프닝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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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4.


이때가 바로 잉글리시 오프닝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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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턴튼은 결국 생아망을 11-6으로 꺾었다.


이날부로 세계 체스의 중심지는 확고부동하게 파리에서 런던으로 이동했으며,

스턴튼은 런던의 영웅이 되어 돌아온다.

우리식으로 치면 대충 80년대 축구 한일전에서 혼자 세 골을 터뜨려 일본을 침몰시킨 축구영웅 정도를 상상해봐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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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으로 인해 런던 체스계에서는 스턴튼의 광신도들이 무수히 양산되었는데,


하워드 스턴튼의 이름을 내걸었다는 이유로 체스 세트가 무수히 팔린 나머지, 결국에는 체스 세계의 표준이 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워드 스턴튼은 런던 체스계에서 제일 가는 유명인사가 되어,


Chess Player's Chronicle이라는 체스 잡지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체스 칼럼 작가 겸 편집자로 활동한다.


그가 자신의 잡지와 The Illustrated London News에서 연재한 칼럼들은 이후 수십 년간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체스 칼럼의 지위를 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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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생아망이 정말로 뛰어난 체스 플레이어였을까?


당대인들이 그렇게 받아들이긴 했지만, 그가 남긴 기보들을 분석해본 오늘날의 연구가들은 대부분 생아망이 그렇게 뛰어난 플레이어가 아니었다고 평가한다.


잘나갔던 선배들의 후광, 그리고 국가간 경쟁의 열기에 휩싸여 잠시 고평가받았을 뿐, 결코 정상급의 선수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생아망을 이긴 것이 하워드 스턴튼 체스인생의 최고 업적이었다.


엥? 그러면 스턴튼 이 새끼도 물로켓 아닌가요?



그렇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스턴튼의 기보도 여럿 남아있기 때문에 그의 실력 또한 후대 연구가들이 평가해볼 수 있는데,


확실히, 그의 실력은 진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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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물을 마구 꼬라박으며 전술각 하나로 게임을 이기려 들었던 낭만주의 체스 속에서,


하워드 스턴튼은 독보적으로 뛰어난 포지션 이해도를 보여줬다.


전술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분석력이 남달랐고, 이로 인해 그가 집필한 The Chess Player's Handbook은 반세기동안 영미권의 체스 교과서로 여겨지기도 했다.



후대의 그랜드마스터들 중에서도 그를 극찬한 인물들이 있는데,


사비엘리 타르타코워는 그가 이미 중앙 확장 지연, 피앙케토 등의 초현대적 아이디어를 알고 있었노라고 평가했으며,


바비 피셔도 하워드 스턴튼이 동시대인들과 비견될 수 없는 포지션 이해력을 갖추었고, 그를 최초의 현대적 체스 선수로 간주해야 한다는 극찬을 남긴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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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z2DHpW79w0Y?si=FkV3v

 



실제로 기보 분석을 통해 레이팅을 추정하여 시기별 체스 세계 최강자를 가려놓은 영상들을 보면,


짧은 기간이기는 하지만 하워드 스턴튼은 분명히 세계 최강의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다만, 그는 안타깝게도 심장병을 앓고 있어,


컨디션 문제로 실제 경기에서는 자신의 분석력만큼의 퍼포먼스를 내기 어려워 했고, 진지한 경쟁 체스에 자주 참가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그는 1843-1851년 사이 8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만 세계 체스 최강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하워드 스턴튼의 체스인생 행적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사실, 그를 체스 역사상 제일 가는 레전드 호감고닉으로 만든 행보는, 이 뒤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그는 이제 체스계에서 제일 가는 인플루언서가 되었고,


가장 영향력 있는 체스계 언론사를 손에 넣게 되었으며,


휘하에 무수한 광신도들을 거느리게 되었다.



그렇다.


이로써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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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결코 가져서는 안 됐던


"좌표의 능력"을 손에 넣고 만 것이었다.



- 하워드 스턴튼 下 악귀편에서 계속 -






출처: 체스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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