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이유로 갑자기 다카마쓰에 가기로 결정함
다카마츠인지 다카마쓰인지 표기는 다양하지만 아무튼... 혼슈도 규슈도 아닌 시코쿠에 위치한 중소도시인데 인구는 41만명으로 한국으로 치면 구미와 비슷한 규모로 보임
출발이 금요일인데 3일 전인 화요일에 결정하고 비행기표를 예약할 정도로 갑자기 간 건데, 비행기가 싼 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음 (왕복 16만원대)
여름 방학이고, 거기 있는 친구도 만나고, 비행기 값도 싸고... 해서 간 것인만큼 딱히 레코드 스토어들을 둘러볼 생각은 아예 없었지만 하루 시간이 비어서 몇 군데 가봄
도쿄, 오사카, 나고야 같은 큰 도시는 여러번 가봤지만 다카마쓰 같은 중소도시는 처음이었는데 다행히 일본답게 여기도 레코드 가게들이 없지는 않음
바이닐 레코드를 수집하지는 않지만 CD는 꽤나 모으기 때문에, 구글 맵에 검색해서 나오는 곳들을 한번 다 찾아가봤음
1. 타워레코드 다카마쓰 마루가메
다카마쓰 시내 번화가에 위치한 곳으로 지금까지 가본 타워레코드 중에서 제일 작았음
오사카 남바 타워레코드처럼 좀 큰 곳은 메탈이나 펑크 등 마이너한 장르의 섹션도 잘 갖춰저 있는 반면, 여기는 그냥 모든 서양 대중음악을 '팝' 코너로 뭉뚱그려놨음
애초에 타워레코드는 매니아용이 아니라 인기있는 음반 위주로 들어오는, 쉽게 말하면 레코드 스토어계의 "차트 탑 40" 같은 곳이니까... 그래서 K-POP 음반은 있어도 펑크 록 같은 건 없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바이닐 유행을 반영한 듯 여기도 서양과 일본의 고전 명작 바이닐 레코드를 꽤나 잘 갖추고 있음
한국에서는 김밥 정도는 가야 만날 수 있는 음반들을 이 중소도시 타워레코드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것 같음
2. 북오프 다카마쓰 고토
일본 전역에 있는 게 북오프이니만큼 다카마쓰에도 북오프는 있음
우리나라로 치면 알라딘 중고서점에 해당하는 북오프는 당연히 음반 전문점은 아니지만 항상 고전이나 유명한 음반들을 다수 갖추고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구경 가능하고, 무엇보다 가격이 다 합리적이라는 점이 최고의 장점
꽤 큰 북오프는 장르별로 나뉘어 있는 경우도 있는데 여기는 작은 곳답게 그런 건 없었고 그냥 모든 서양 대중음악을 '팝 CD' 코너에 구비해놓음
팝 CD 코너 이외에도 500엔 코너, 300엔 코너 등등으로 나뉘어 있었지만 절대적인 수량이 그리 많지 않아서 다 둘러보는 데 오래 걸리지 않는 편
여기서 Supercar 1집을 550엔에, JUDY AND MARY의 330엔에, Blink-182의 Enema of the State를 110엔에 샀음
그러니까 북오프는 개인적으로... 기존에 음반 쇼핑을 할 때 '아 이건 너무 유명한 음반이고 자금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다른데서 찾기 힘든 것부타 사자'라는 마인드로 사다보니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들을 뒤늦게 싸게 사기 좋은 곳임
그리고 다른 지역 북오프들처럼 시내 번화가에 있는 게 아니라 열차 또는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거리에 있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아니지만 구글 맵을 보고 따라가다보면 '여기에 북오프가 있다고?' 싶은 생각이 드는 그런 동네임
3. 하드오프 다카마쓰 고토
북오프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자매업체인 하드오프가 위치하고 있음
책, CD, DVD, 비디오 게임 등등 작은 '소프트웨어'를 퓌급하는 북오프와는 달리 악기, 음향장비, 레코드 플레이어 등 커다란 '하드웨어'를 취급하는 곳인데
그럼에도 CD, 바이닐, 게임 등 븍오프에서 취급하는 품목들이 다수 있음
무슨 기준으로 어떤 건 북오프에 있고 어떤 건 하드오프에 있는지 잘 이해가 안 됨... 이 동네에 하드오프만 있는 것도 아니고 둘은 고작 3분 거리인데도
물론 CD도 바이닐도 북오프에 비하면 수량은 절반 이하로로 적은 편이나 둘러봐서 나쁠 건 없음
무엇보다 다카마쓰 시내에서 약간 떨어져 있기 때문에 열차로 2000원대, 버스로 3000원대라는 일본답게 애1미2뒤진 대중교통비를 내고 와야하는 곳이니만큼 한번 왔다면 북오프 뿐만이 아니라 하드오프도 가서 뽕을 뽑을 필요가 있음
그렇게 먼 것도 아니고 열차로 고작 1개 정거장, 버스로도 10분 정도의 아주 가까운 거리라서 더 빡쳤음
한여름이라 도저히 밖에서 30분 이상 걸을 날씨가 아니었지만 만약 걸을만한 계절이라면 왕복차비 5000원을 아끼기 위해 산책삼아 1시간 정도 걸어가볼 의향은 있음
열차는 지금까지 타본 것중에 가장 작은 듯... 고작 2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체감상 김포골드라인보다 작았음
4. 루츠 레코드
여기가 다카마쓰 레코드 스토어의 왕인 것 같음
찾아가면서 구글 맵 리뷰를 보니까 "가격이 합리적이며 의외의 물건도 찾을 수 있다"는 평가가 여럿 있어서 기대하면서 갔음
입구를 보자마자 내가 찾던 곳임을 바로 알 수 있었음
처음에는 메탈과 펑크 코너가 입구 주변에 자그마하게 있어서 "뭐야 별 거 없네..." 했는데 거기는 신규 입고작들일 뿐이었음
팝, 록, 메탈, 펑크, 힙합, 재즈, 소울 등 각 장르별로 잘 분류되어 있으면서도 많은 양의 CD와 바이닐을 갖추고 있었음
구글 맵 리뷰처럼 뭔가 의외의 물건을 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으로 계속 뒤지다 보니까 한국 하드코어 밴드 바세린 1집의 초판이 나왔음
네이버 검색해보니까 중고가 3만원대인 것 같은데 (이걸 이 가격 주고 사는 사람이 있나?) 여기서 550엔으로 건지니까 꽤 재밌었음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본인은 바이닐 레코드를 수집하지 않아서 막 뒤져보진 않았지만, 바이닐 레코드는 CD 이상으로 충실하게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한번 가보기를 추천함
나도 의외의 CD를 찾은 것처럼, 아마 바이닐 레코드를 모으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재밌는 발견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함
그리고 저 문제의 음반 표지는 아주 교묘하게 진열하여 자체검열을 하는 것이 인상깊었음
다 좋았지만 하나 걸리는 점은 (여기만의 문제는 아닌데) 일본 음악이라면 장르에 상관없이 전부 J-POP으로 분류를 해놓았다는 점
Number Girl이던 Bloodthirsty Butchers이던 간에 딱히 일본 록 같은 걸로 분류된 게 아님
그래서 BOA와 BOOWY 사이에 Boredoms가 위치하거나... 그랬음
5. 왁스 게이트 레코드
번화가에 위치한 곳으로 구글 맵에는 영업시간이 20시까지로 나와 있었는데 가니까 닫혀 있었음
가게 앞에 붙은 종이를 보니까 토, 일, 월, 화요일에만 영업하며 시간은 18시까지라는 것 같음
구글 맵에 트위터 링크가 있던데 가기 전에 한번 확인해볼 걸 그랬음
그렇다 하더라도 트위터 설명에 따르면 바이닐 100프로이기 때문에 나 같이 CD 모으는 사람은 아이쇼핑 말고는 못했을 것 같음
아예 가게 이름부터 '왁스'가 들어가있구나...
아무튼 바이닐 애호가라면 가볼 가치가 있을 듯
이번에는 못 갔지만 다음에는 한번 가볼 수 있을지도
6. 머쉬룸 레코드
구글 맵으로 영업시간이 나오지 않고 무엇보다 리뷰나 기타 정보가 아예 없어서 좀 걱정하면서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닫아 있었음
위의 왁스 게이트와는 달리 다음에 갈 수 있다는 보장이 없음
7. 보너스 - 애니메이트 다카마쓰
아니 시팔 나는 구글 맵에 레코드 스토어를 검색했는데 이건 대체 왜 뜨는 거냐
위에서 나온 타워레코드랑 같은 건물 같은 층, 바로 옆에 있는 곳이라서 한번 들어는 가봤다
저런 CD 몇 개 있으면 레코드 스토어라고 불러도 되는 거냐
삼겹살집에 냉면이 있다고 냉면 전문점이 되는 것도 아니고
오리고기집에서 된장찌개가 있다고 한정식 전문점이 되는 것도 아닌데
왜 여기에 씹덕 애니음악 CD 몇개 있다고 이게 레코드 스토어 검색 결과에 뜨는 것인지 그 이유는 아마 죽을 때까지 알 수 없을 것이다
혹시나 해서 들어가봤다가 후회하면서 나왔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애니메이트인지 니1애2미웨이트인지 뭔지에 갈 일은 없을 것이다
보너스로... 친구와 함께 공연을 보러 갔다가 공연장 벽면에서 Tricot의 작년 투어 플라이어를 봤음
그 공연장은 한국의 클럽 샤프나 빅팀보다도 약간 더 작은, 100명은커녕 80명만 들어가도 좁아터질 것 같은 가정집 안방 크기였는데
그럼에도 Tricot가 여기서 공연했다는 게 신기했음... 엄청 옛날도 아니고 작년인데도
대도시에서는 500~600명 공연장에서 공연하고 서양에서도 그 정도를 모을 수 있는 능력이 되는 밴드가 고작 안방만한 곳에서 공연한다는 점에서 이 도시의 음악 씬 규모를 알 수 있음
그럼에도 되게 멋있더라... 만약 내가 좋아하는 밴드를 600명 규모의 큰 장소에서 볼 기회와 60명 규모의 작은 장소에서 볼 기회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후자로 하겠음
그래서 Tricot가 안방만한 공연장에서 공연할 정도로 작은 도시인 다카마쓰에 관한 잡얘기를 덧붙이자면
예상보다 꽤 재밌었고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등 대도시를 여러번 가봤으며 슬슬 다른 중소도시, 특히 좀 더 조용하고 평화로운 느낌을 좋아한다면 한번쯤 가볼만하니 추천함
서양인들의 셀카로 가득한 시부야의 큰 횡단보도와 중국인 알바가 맞이하는 오사카의 드럭 스토어에 질린 사람들이라면 다카마쓰를 생각해보셈
외국인 관광객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대도시에 비하면 확인히 적음
그럼에도 에어서울 직항편도 싼 편이고, 또 최근에 진에어도 운항을 시작한 걸 보면 분명히 수요가 점점 늘고 있는 것 같음
그 때문인지 서양인이나 중국인 관광객들은 거의 못 봤지만 한국인 관광객들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음
그리고 다카마쓰는 우동으로 유명한 도시라고 해서 가서 우동만 먹고 왔다
꺼라위키 보니까 공항에 우동국물 수도꼭지가 있다고 하던데 진짜 있어서 신기했음
공항에서는 로이스 초콜릿이나 도쿄 바나나 같은 식상한 선물 말고 우동이랑 뇌우동사리 열쇠고리를 샀음
숙소 바로 옆이 바닷가라서 밤에 한번 나가봄
저기는 뭐하는 곳이길래 밤에도 저렇게 밝게 조명을 켜고 광고중인가... 해서 가까이 가봤더니 밤에만 영업하는 업종들이 위치한 곳이었다
삐끼형님들이 말 걸길래 무서워서 벗어남
방학이라고 이상한 뻘짓이나 하면서 개같이 시간낭비 했으니까 앞으로는 시간낭비 그만하고 열심히 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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