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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애 대충전 아일라-캠벨타운 여행기] 6. 아일라 4일차앱에서 작성

ㅈㅆ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8.23 15:40:02
조회 6165 추천 15 댓글 34

우선 모두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회복 중이고 2주 정도 있으면 술도 마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시작하겠습니다. (feat. 위병리)


사고 직후 모든 차량들이 멈춰섰지만 처음에는 괜찮은 것 같아 차량들을 모두 보냈지만, 정신을 차리고 나니 어깨가 너무 아파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등에 메고 있는 가방은 말 그대로 걸레짝이 되버렸고, 바지도 터지고, 팔과 손바닥에는 도로에 쓸린 상처들로 가득했다. 다행히 출혈은 없었다.


그러다 한 가족이 우릴 보고 가는 길을 멈춰 아내 분과 상의를 한 뒤, 아내 분과 가족들을 다른 차로 먼저 보내고 길가에 있는 우리 자전거를 옆에 있던 한 집에 양해를 구하고 먼저 빼놓았다.

그러고 난 뒤 우리를 보모어에 위치한 병원에 데려다 주었지만 저녁 6시정도 된 시간이라 응급센터만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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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찍은 아일라 병원 응급센터. 당일은 당연히 정신이 없어 찍지 못했다.)

사실 이번 여행을 일주일 정도만 계획했기에, 번거롭기도 했고 몇 푼 아껴보겠다고 여행자 보험은 따로 들지 않았다.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병원에 도착해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금은 당장 간단한 진찰 밖에 
듣지 못하고 다음날 아침에 엑스레이를 찍는 방법 밖에 없다 하였다.

상태도 상태지만, 병원비가 가장 걱정인 나는 병원비에 대해 조심스레 물었다. 얼마나 나올것인지. 그러나 놀랍게도, 병원 간호사 선생님들은 웃으면서 "걱정하지마. 모두 무료로 해줄게. 너 상태만 먼저 생각해." 라면서, 심지어는 "너가 스스로 너무 아프고 상태가 안좋다 생각들면 에어 앰뷸런스로 글래스고로 이송시켜줄게. 물론 돈은 걱정하지마" 라 할 정도였다.

크게 감동을 받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 선생님이 들어와, 장갑을 끼고 내가 다친 부위부터 시작해서 머리, 척추, 손 등 다른 부위에 이상이 생겼는 지 체크를 해주셨다. 다행히 다른 곳에는 이상이 없고 임시 방편으로 보조대와 진통제를 처방받았다.

그 동안 동생은 첫 날에 우릴 숙소로 데려다 주었던 어머님과 연락을 주고받다가, 내가 다쳤다는 소식을 전하니 다음날 엑스레이를 찍을 때 데려다주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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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엑스레이를 찍으러 다시 아일라 병원을 찾았다. 한 가지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는데, 밑에 사진인 환자 대기실에서 브룩라디 티셔츠를 입은 한 사람이 앉아있었다. 어딘가 익숙한 얼굴인가 곰곰히 생각하고 있던 와중 떠오른 한 사람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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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바로 어제 동생이 브룩라디에서 구매했었던, 핸드필에 있는 바로 그 직원분 이었다. 예명이 Stan 이었는데, 정중하게 맞냐고 물어보니 날 어떻게 아냐는 표정으로 맞다 하더라.

너무 이 상황이 웃기고 반가워 동생은 "당신 바틀 제가 어제 샀어요!" 라니, 껄껄 웃으면서 고맙다고 했다. 같이 사진이라도 찍으려 했지만 병원에서 만난 사이길래 아쉽게도 에피소드 하나만 간직하고 간다. 그 와중에 브룩라디 직원 맞은 편에 앉아있는 한 여성 분은 그 분의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다고. 좁디 좁은 아일라다.


엑스레이를 찍고 나 결과를 들려주시는데, 인대쪽을 봐보긴 해야하지만, 다행히 골절도 탈골도 되지 않았다며 팔을 사용하지 않으면 자연스레 낫는다 하였다. 다 같이 자기 일처럼 기쁜 마음으로 소식을 전해주시며 재밌게 놀다 가라고. 그 와중에 알중이었는지, 남아있는 투어에서 술을 마셔도 되냐 물어보니, "It will be good painkiller!" 라며 웃으시며 적당히 맛만 보라 하셨다.

남은 일정을 그대로 소화하기로 하여, 오후 한시 반에 있을 보모어 테이스팅 투어 전까지 우리는 킬달튼 트리오 (아드벡, 라가불린, 라프로익)에 구경가기로 했다.

차로 약 30분 거리였으나, 병원에 데려다주신 스코틀랜드 부부께서 아드벡까지 태워주신다고. 자신들 약속이 점심 약속이니 혹시나 먼저 끝나게 되면 우리가 있는 곳에서 보모어까지 데려다주시기로 했지만, 괜히 신세되는 것 같아 천천히 일 보시고 우리도 보모어까지 잘 가보겠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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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는 다시 첫째날에 방문했던 아드벡에 돌아왔다. 이번에는 점심에 운영하는 아드벡 트레일러에서 파니니와 샌드위치를 사먹고, 전날 사고 이후부터 계속 고생한 동생, 그리고 전날 밤 한국에서 원격진료를 해준 동생의 의대생 친구를 위해 간단한 작은 선물을 하나씩 사고 시간 관계 상 라프로익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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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를 타고 들어올 때 멀리서 봤었던 아드벡, 다시 방문해 벽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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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프로익에서도 시간이 많이 부족해, 안에서 월컴 드링크정도만 드램으로 받고, 갖고 싶었던 물통을 하나 구매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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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프로익 벽사진도 완료. 참고로 증류소들 중 개인적으로 가장 아름다웠다고 생각이 들었다.

여담이지만, 동생이 여행이 끝나고 말라가로 돌아가 블로그를 썼는데, 우리가 배에서 라가불린만 찍지 않았는데 이게 정말로 라가불린만 방문하지 못하게 된 복선이 아닐까 했다고 했다. 킬달튼 세 증류소 모두 아쉬움이 많게 있다 갔으니, 다음번에 포트앨런과 아드나호도 함께 제대로 방문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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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프로익에서 보모어까지 차로 약 30분 이상 거리라 히치하이킹을 해야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차 한 대를 얻어탔으나 중간 지점인 포트엘런까지만 가는 운전자 분이었다. 그래도 감사한 나머지 포트엘런까지 함께 갔고, 마침 운이 좋아 처음으로 아일라에서 버스를 타게 되었다. 보모어 투어 시작은 1시 반이나, 약 10분정도 늦을것 같아 미리 전화로 늦는다 양해를 구하여 증류소에 도착하니 사진과 같이 막 투어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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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 가이드를 따라 바닷가 근처 길로 따라가다 보면, 아일라에서 가장 오래된 증류소인 보모어의 보물창고, 즉 No.1 Vaults 숙성고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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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양의 오크통 맞은편에 철창에 불을 키면 이렇게 테이스팅룸이 나온다. 감옥같아 보이지만, 누구나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하는 그런 감옥이 나온다.

이번에 신청한 보모어 투어가 좋았던 점 중 하나는 1시간 반짜리 코스였지만 (휴동기 기준) 정말로 오로지 '테이스팅'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부나하벤 투어에서는 테이스팅 투어였지만 가이드 분께서 말하길, 어떤 맛이 난다고 형용하게 되면 거기에 사로 잡힐 수 있어 참가자들끼리 맛 공유를 금지시켰다.

하지만 보모어 투어는 간단하게 약 10~20분 정도만 숙성 창고에 대한 얘기, 캐스크를 공수해오는 얘기를 한 뒤 바로 테이스팅을 하러 들여보내준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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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개인적으로 영어를 엄청나게 유창하게 하지 못하고 철저하게 스몰 토크나 간단한 비즈니스 영어에만 길들여져있기 때문에 테이스팅 투어에서 제조 공정이나 다른 심도있는 이야기를 주로 다루다보면 꽤나 피곤해졌다.

보모어 투어에서는 그런 일련의 과정은 줄이고, 무언가 '우리는 이런걸 잘해. 얘기가 굳이 필요 없지? 일단 맛 먼저 봐.' 이런 느낌을 받아 좋았다. 그렇다. 우리 모두 위스키가 담고 있는 그런 본연의 향과 맛으로 여기까지 온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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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셔본 위스키는 숙성 창고에서 총 세 잔이었다. 

- 2006 버번캐스크 18년 숙성 (55.3%)
- 1999 와인캐스크 25년 숙성 (42.2%)
- 2005 아몬티야도캐스크 19년 숙성 (58.4%)

기본으로 18년 이상 싱글캐스크들로 이루어진 시음 라인업이었다.

보모어를 접해본 바로는 15년 다키스트와 18년 딥앤컴플렉스 제품이 다였는데, 솔직하게 처음 접했을 당시에는 큰 감명을 받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저도수에서 오는 볼륨감이 크게 부족하다고 생각해 보모어를 선호하지는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보모어 애호가들 얘기를 들어보니, 섬유유연제 같은 향, 그리고 섬세하고 은은한 피트감이 매력이라 말하는데 그 얘기를 처음으로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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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투어의 최대 장점 아닐까. 세 캐스크 중 마음에 드는 한 캐스크의 샘플 100ml를 기념품으로 담아갈 수 있다.

나는 버번캐스크의 향수같은 섬유유연제 향과 적당한 알콜볼륨, 그리고 은은한 꽃향기에 섬세한 피트감이 취향이었다.

함께 온 동생은 아몬티야도 캐스크의 광팬인지라, 한 모금 마시자마자 처음부터 "난 얘" 이러고 챙겨갔다.

물론 가장 고숙성이었던 와인캐스크도 세 캐스크들 중 가장 섬세하고 적포도와 청포도를 오가는, 그런 레이어드가 가장 두터운 매우 훌륭한 맛이었다. 하지만 우리 둘다 고도수를 선호했기에 선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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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끝이 아니다. 웨어하우스에서 기념품까지 모두 챙겨주고, 자신이 마신 잔들을 함께 가지고 올라와 비지터센터 2층에 위치한 바로 우리를 데려간다.

참가자들을 앉혀놓고 25년, 19년 feis ila, 핸드필 제품 중 한 잔을 고를 수 있게 해주었다.

나와 동생은 한 잔씩 골라 나눠마시려 했는데, 앞에 있는 중국에서 온 누나가 다 마셔보고 싶어하는 눈치라 셋이 나눠마시겠냐 물어보자, 기다렸다는 듯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 해주네!" 하며 웃으면서 세 잔을 부탁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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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맛있게 마시고 우리는 2층 초입에 있는, 그 유명한 방문객 지도에도 하나 표시해왔다. 제주에서 온 사람이 처음일 줄 알았으나, 내가 두 번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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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도 생각보다 괜찮았고, 너무 재밌는 투어를 끝내니 기분좋게 증류소를 나왔다. 나오면서 한국에서부터 생각해놓았던 바틀을 하나 더 구입했다. 아까 2층 바에서 시음했던 2024 feis ila 19년 제품이었다. 그리고 2층 바에서 나올때 미니 잔도 공짜로 받고, 위스키까지 샀으니 기분이 너무나 좋아 아쉬운 맘에 증류소 사진 한 번 더 찍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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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 쉬고 난 뒤, 오전에 우릴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던 부부가 저녁 식사를 제안해주셨다. 다음날 아일라를 떠나는 우리에게, 7시반에 브리젠드 호텔 식당을 예약해 두셨다고 시간 나면 같이 저녁이라도 한 끼하지 않겠냐고 하셨다.

아일라에 들어올 때부터 너무나 많은 신세를 졌던지라, 식사를 대접할 생각으로 저녁 식사 자리에 참석했다. 아, 물론 숙소까지 또.. 데리러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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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피타이저부터 본식, 그리고 사진은 누락됐지만 디저트까지 제대로 먹고 나왔다. 영국은 개인적으로 세 번째였지만, 가장 퀄리티 높고 맛있는, 그런 만족스러웠던 식사는 처음이었다.

약 두 시간 동안 디저트까지 다 먹을 무렵, 남편분께서 "부담스러워 하지말고. 이건 우리가 사는거야." 라는 말씀과 함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카운터로 가셨다.

어안이 벙벙해진 우리는 "신세를 너무 많이 져서 제가 사려 했어요. 멀리서 온, 처음 본 동양인인 저희에게 왜 이렇게 잘해주시는 거에요?" 라고 물으니, "우리도 너희만한 딸들이 있어. 여행 다닐 때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얘기를 들으면 우리도 기분이 좋아져서 너희들에게 베푸는 거야." 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면서 내일 페리 시간을 물으시고, 아침에 선착장까지 태워주신다까지.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스페인에서 유학하는 동생은 올해 내로, 그리고 나는 내후년 초 정도에 있을 신혼여행 때 부부가 있는, 아니, 스코틀랜드 부모님이 있는 스털링을 찾아가기로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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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기분이 너무 좋아 맥주를 함께 마시고 잤다.

술을 사서, 맛있는 위스키를 마셔서, 증류소를 가서 좋았던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지구 반대편에서 위스키가 좋아 찾은 아일라였지만 내가 찾은 건 잃어버렸던 인류애였다. 사람으로 감동받고 치유받았던 아일라였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잠에 들었다. 내일 일찍 아일라를 떠나는 아쉬움보다, 다시 찾아겠다는 다음번의 기대감과 함께 아일라에서의 마지막 밤이 끝났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은 캠벨타운 후기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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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위스키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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