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30일 한 행사 자리 배치 두고 신경전…한동훈, 바뀐 좌석배치표에 돌연 불참 통보
尹, '韓 빼고' 원내지도부 만찬…韓은 '공격 사주' 김대남 고발…'용산' 겨냥했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9월30일 참석하기로 했던 한 언론사 창간 기념식 행사를 30여분 앞두고 돌연 불참 통보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참석이 예정돼 있던 행사여서 갑작스러운 불참 통보를 놓고 온갖 물음표가 따라붙었다. 대통령과의 독대를 거듭 요청하면서 대화의 공간을 마련하려 했던 한 대표의 노력과는 사뭇 결이 다른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한 대표가 행사 불참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오히려 윤 대통령 쪽의 '비토'(거부)가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범여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시 주최 측은 행사장에 윤 대통령이 앉을 제1테이블 바로 옆 제2테이블에 여야 대표와 정치인들의 자리를 마련했다. 그러나 대통령실 쪽에서 "윤 대통령의 바로 옆 테이블에 한동훈 대표가 앉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요청을 전달했다고 한다. 이에 주최 측은 제2테이블에는 기업인들이 앉도록 배치하고 제2테이블 건너 제3테이블을 새로 만들어 여야 대표가 앉도록 했다는 것이다. 처음 전달받은 것과 달라진 좌석배치표를 확인한 한 대표는 끝내 불참했다. 한 대표 측은 "다른 긴급한 일정이 있어 불참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불참을 통해 불쾌함을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도 나온다.
'김건희 리스크' 확산에 국정 골든타임 놓쳐
눈이 마주치는 거리에 있는 것조차 싫었던 걸까. 해결해야 할 국정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언제까지 집권여당 대표와 마주 앉길 거부하려는 것일까. 윤 대통령이 7·23 국민의힘 전당대회 때 이미 한 대표와 '헤어질 결심'을 하고 이를 위한 단계를 밟고 있다는 얘기가 여권 핵심 관계자들로부터 흘러나온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최근 당정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비상식적인' 사태는 '헤어질 결심' 끝에 나온 수순으로 읽힌다.
한 대표의 당내 입지를 좁히려는 '정치적 따돌림'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용산'은 한 대표가 의·정 갈등 해결책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낸 직후 예정됐던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만찬을 취소하고 인요한·윤상현 등 일부 의원만 초대해 식사를 같이 했다. 며칠 후 성사된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윤 대통령은 한 대표에게 단 한 차례도 발언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후 한 대표의 독대 재요청에 일주일 넘게 '무응답'으로 일관하다가 10월2일 한 대표를 제외한 원내 지도부만 불러 다시 만찬을 했다. '용산'과 건건이 다른 목소리를 내는 한 대표를 배제한 채 '김건희 특검법' 재표결에서 혹시 모를 이탈표 단속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으로 나온다.
"(명품가방 수수 사건은) 부적절한 처신이었고 사과해야 한다" "2026년도 의대 정원 증원을 유예하자" "제3자 추천 방식의 채 해병 특검법을 추진해야 한다" 등과 같은 한 대표의 목소리는 '용산'과는 달랐지만 민심에는 가까웠다. 한 대표가 매달리는 모양새까지 보이면서 줄곧 윤 대통령과의 독대를 성사시키려 했던 이유는 뭘까. '20년 지기' 한 대표만이 윤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63%(전당대회 득표율)의 기대를 실현하려 했던 걸까. 일각에서는 그가 당심·민심을 들어 윤 대통령에게 최후통첩을 하려는 게 아니었겠냐는 추측도 나온다.
"더 큰 게 나온다." 이른바 윤·한 갈등의 핵심 뇌관인 김건희 여사 문제는 시한폭탄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명품백, 주가조작, 공천 개입에 이어 정무 개입 의혹까지 김 여사를 둘러싼 사법 리스크는 갈수록 고조되는 양상이다. 특히 김대남 전 대통령실 선임행정관이 국민의힘 7·23 전당대회 당시 후보였던 한 대표에 대한 공격을 기자에게 요청했다는 의혹이 터져나오면서 윤·한 충돌은 걷잡을 수 없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사과 미루다 끌려나올라"…여권도 부글부글
김 전 행정관과 이명수 서울의소리 기자의 통화 녹취록에 따르면, 김 전 행정관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김건희 여사가 한동훈 후보 때문에 죽으려고 한다. 이번에 잘 기획해서 (한 후보를) 치면 여사가 좋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 대표가 비대위원장 시절 70억원대 여론조사를 했고, 이 중 자신을 대권주자로 놓고 조사한 것이 있는데 기업으로 따지면 횡령'이라는 내용으로 한 대표를 공격할 것을 요청했고, 실제로 이틀 후 관련 기사가 나왔다.
한 대표는 김 전 행정관에 대한 진상조사를 하고 형사고발 등 법적 조치까지 지시했다. 친윤계는 '개인의 과장과 일탈'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지만 당 지도부와 친한계는 '조직 플레이'에 무게를 두고 배후를 밝혀야 한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전당대회 당시 친윤계 후보로 알려졌던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해당 기사 내용으로 한 대표를 공격했기 때문에 이 같은 법적 대응이 친윤계와 용산까지 겨냥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공천 개입 의혹도 연일 새로운 퍼즐이 맞춰지는 양상이다. 의혹의 핵심 인물인 명태균씨가 지난 총선 김영선 전 의원 컷오프 당시 "다 터자뿌겠다(터트려버리겠다)"며 윤 대통령 부부를 '협박'했다는 정황이 담긴 통화 내용이 공개된 데 이어 10월2일에는 김 여사가 명씨와 공천 문제를 논의하는 내용이 담긴 텔레그램 메시지도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총선 공천 발표를 앞둔 지난 2월 이뤄진 이 대화에서 김 여사는 "경선 룰은 당원 50%, 시민 50%인데 김영선 의원이 이길 방법이 없다. 5선 의원이 경선에서 떨어지면 조롱거리가 된다"는 명씨의 말에 "단수(공천)는 나 역시 좋지"라며 공천 방식을 언급했는데, 실제 영향력을 드러내는 발언이 아니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앞서 "사실무근"이라며 김 여사와 명씨 간 통화 사실 자체를 부정했던 대통령실은 폭로가 이어지자 공개된 대화 내용에서 김 여사의 발언이 '원론적'이었다는 사실만 강조하며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10·16 선거가 고비"…책임론 누구에게?
'김건희 특검법' 본회의 재표결을 앞둔 국민의힘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108명 중에서 8명이 이탈하면 특검법이 통과되는데, 김 여사의 사과를 요구해온 친한계와 '용산'의 갈등이 이탈표에 영향을 미칠지에 촉각이 쏠린다. 이번까지는 단일대오가 흐트러지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과 이번 부결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전망이 동시에 나온다.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은 상황이니만큼 여권 내부에서도 시급한 사과와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분위기다.
"특검법이 나쁘다 하더라도 김 여사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김재섭 국민의힘 의원), "최악의 수는 야당에 끌려가서 사과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 오기 전에 입장 발표가 있어야 한다"(김용태 국민의힘 의원). 문제는 이번 재의결에서 특검법이 폐기된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검찰이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혐의를 최종 불기소 처분하면서 오히려 특검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분석도 많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전주(錢主) 손모씨가 최근 법원에서 시세조종 방조 혐의로 유죄 판단을 받으며 같은 혐의를 받고 있는 김 여사의 판결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일각에선 공천 개입 의혹은 '빙산의 일각'이라며 다음 폭로를 기다리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윤·한 간 불통과 불신이 이어지는 가운데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국민의힘 지지율은 최저치를 경신해 가고 있다. 이에 10·16 재보궐선거 결과가 한 대표에게 한 번의 고비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보수 텃밭인 부산 금정이나 인천 강화 중 한 곳이라도 지거나 압승하지 못할 경우 한 대표 책임론이 불거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지난해 10월 치러진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하면서 지도부 책임론이 나왔고 결국 김기현 대표 체제가 교체된 바 있다.
김기현 체제 당시와는 달리 지도부 9명 중 5명이 친한계로 채워져 쉽사리 체제를 흔들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당대표 재임 두 달간 별다른 성과가 없다고 공격받는 한 대표가 10월말 취임 100일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차별화 공세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한 친한계 인사는 "재보궐선거에서 진다면 그 이유가 한 대표 때문일까, '용산'과 김 여사 때문일까. '용산'이 무슨 권리로 당대표를 쫓아낼 것이며,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대표를 다시 뽑는다면 '용산'에서 내세워 당선될 만한 인물이 있나. 의원들이 눈치를 보고 있을 뿐 '용산'은 상당히 고립돼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 대표를 지지했던 원내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대표가 대선에 나서려면 당권·대권 분리 조항에 따라 내년 9월엔 대표직을 내려놔야 하는데, 지방선거 공천권이 없는 대표에게 '줄 설' 의원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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