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의 마지막 날, 아침 8시
알람소리에 눈을 떴다.
체력적으로 가장 고된 날이자, 그동안 경험해 본적 없는 미지의 거리로 들어가는 날이다.
안장통은 다행이 더 심해지진 않았지만 어제와 동일한 강도로 계속 아파왔다.
잠을 4시간 정도 자긴 했는데 충분히 깊게 자서 컨디션이 나쁘진 않았다.
전날밤 매우 춥게 라이딩을 했기에 챙겨온 기모빕과 써멀 져지를 베이스로 입었고, 바람막이, 져지, 슈커버를 모두 챙겨 새들백에 넣었다.
혹시나 발생할 펑크에 대비해 가져온 예비 타이어를 제외한 필요없는 짐들은 모두 드랍백에 넣었다.
오일링을 하고 부지런하게 짐을 싼뒤 사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니 시간이 벌써 30분이 지나갔다.
편택을 보내기 위해 편의점을 가던중에 열은 백반집이 있어서 그곳에서 아침을 해결하기로 했다.
김치찌개가 아마 7000원이었나 8000원이었나 그랬는데 반찬도 그렇고 정말 혜자였다.
계란은 언제 먹어도 좋은 식품이기에 계란말이를 하나 더 추가해서 먹었다.
아침을 챙겨먹고 9시 30분, 영천 시내를 벗어났다. 살면서 영천을 다시 올일이 있을까?
전날은 평일이라 아침에 차가 많았는데 오늘은 토요일이라서 도로에 차가 거의 없었다.
마지막날 코스는 첫날과 동일한 360km / 3000m 정도인데 기록 욕심 없이 몸을 아껴가면서 주행해 익일 새벽 6시쯤 서울에 도착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아침부터 약오르막과 역풍이 매우 거셌다.
윈디로 예보를 확인해보니 12시는 지나야 역풍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환경이었다.
180w 이상으로 밟는데 속도가 20km/h가 겨우나왔다.
시카고랑 라이딩하면서 앞에 서달라고 한적이 잘 없었는데,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내가 컨디션에 좋아서 선두로 서달라고 했다.
뒤에 잠깐 랜도너 한분이 붙으셨지만, 약 오르막에 금새 지쳐서 떨어지셨다.
아침을 반겨주는 업힐
영천에 들어가는 노면과 달리 벗어나는 노면은 상당히 좋지않았다.
안그래도 안장통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아침부터 계속 진동으로 엉덩이를 자극시켜서 짜증이 났다.
그래도 오늘만 타면 이 지긋지긋한 안장통에서 해방이다.
건널목이 꽤나 많아서 기차를 볼 수 있었다.
서울까지만 태워주시면 안될까요?
첫날엔 밤에 영천에 진입해서 경치를 못봤는데, 고즈넉한 분위기가 꽤나 아름다웠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역풍도 처음보다는 다소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랜도너를 하면서 느낀 특이한점이, 지방에 있는 교회들은 보통 특색있고 꽤나 예쁘게 지었더라.
사진이 잘 보일진 모르겠는데 오른쪽에 있는 교회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좋은 풍경도 계속 보니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12시 10분, 60km 지점인 CP10 봉양에 도착했다.
아무래도 기모빕과 써멀 져지를 입어서 많이 더웠다.
이날은 시카고랑 보급 의견이 좀 갈렸는데, 점심을 봉양에서 먹고 가자고 했다.
나는 아침을 일찍 먹기도 했고 60km 밖에 안탔기에 가급적 1시간은 더 타고 가고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봉양까지 오는길에 음식점이 없어서 동의하고 점심을 여기서 해결하기로 했다.
돈까스가 갑자기 먹고 싶었는데, 시카고가 돈까스를 얘기해서 바로 콜했다.
돈까스 맛이 내 취향은 아니었는데 시카고는 맛있었다고 하더라.
양이 많아서 살짝 남기긴 했지만, 자전거 불변의 법칙인 잘먹어야 잘타기에 억지로 전부 쑤셔넣었다.
구름이 특이하게 쌓여있었다.
역풍이 잠잠해진줄 알았는데, 아직까지는 그래도 강했다.
13시경, 갑자기 왼쪽 장경인대에서 통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자전거를 타면서 처음 겪어보는 부위의 통증이었다.
무릎이 아플때는 통증이 금방 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 통증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아직 290km나 남았는데 자칫하면 dnf를 해야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두려웠다.
‘아 갈길이 아직 한참 남았는데 이러면 안되는데…’
일단 페달링을 하는것 밖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기에 시카고한테는 통증 사실을 알리고 페이스를 낮추기로 결정했다.
14시
이름모를 업힐을 하나 올라가는데 경사도가 10%를 넘고, 통증이 심해져서 무릎 관리 차원으로 시카고랑 같이 끌바하기로 결정했다.
둘이서 같이 끌바한건 처음이었다 ㅋㅋ
어제도 말했지만 상행코스는 대체로 경사가 심하지만 다운힐이 길게 보장되는 편이다.
끌바를 하면서 통증이 살짝 나아지긴 했지만 페달링을 하면 그새 올라왔다.
“제발 오늘 하루만 다리가 버텨줘라”
육성으로 조용히 혼잣말을 했는데 시카고가 들어서 기운을 복돋아줬다.
14시 30분
100km 정도 되는 지점에서 2시간 이상을 타기도 했고, 가다가 도저히 안되어서 중간에 잠시 쉬기로 했다.
몇시간뒤 이화령이랑 소조령을 넘어야하는데 이 상태로 넘을수 있을지 걱정됐다.
소염진통제를 한알 먹고 괜찮아지길 바랬다.
나 : “저는 혼자 천천히 갈테니까 버리고 먼저 가세요”
시카고 : “아니 뭔소리야 같이 가야지”
나 : “알잖아. 여기까지 와서 dnf 할건 아니니까 제 페이스대로 천천히 갈게요”
시카고가 앞에서 끌어줬지만 미안하게도 크게 도움이 안되어서 다음 CP인 예천까지는 각자 페이스로 알아서 가기로 했다.
구름이 독특하게 생겨서 한 컷
뒤에서 내가 따라가는것 처럼 보이는데, 꾸준한 페달링을 해야 통증이 덜한거 같아서 거리를 좀 두면서 탔다.
예천군 경계면 도착.
위에 올린 사진과 반대로, 반대쪽은 비가올 것처럼 구름이 형성되어서 살짝 불안했다.
여기선 진짜 각자 알아서 주행하면서 갔다.
16시, 120km 지점 CP11 예천 도착.
보급부터 빠르게 하면서 도착 일정을 대충 계산해봤다.
아침 9시 30분에 출발했고, 오늘은 점심 시간 한번에 쉬는 시간도 적었는데 6시간 30분이나 걸려 120km를 주행했는데, 이 페이스대로 계속 간다면 내일 아침 7시에나 서울에 도착할 것으로 보였다.
부족한 시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여유가 있는 시간은 아니었다.
소염제 효과로 통증이 약화되고는 있었지만 장경인대 테이핑이 필요해보여서 시카고는 먼저 보냈다.
다행히 CP 바로 옆에 있는 약국이 영업중이라 테이프를 사서 유튜브를 보면서 붙였다.
내 다리 통증이 무색하게도, 예천의 경치는 아름다웠다.
그래도 테이핑이 효과가 있었는지 주행에 불편함은 있었지만 페달링은 제법 할만했다.
소염진통제 덕분에 안장통도 살짝 줄어들었다.
근데 아프면 걍 자전거를 타지 마세요…
생각보다 되돌아가는 길에 업힐이 많았다.
그렇지만 모든 업힐에서 끌바를 할 수 없기에 최대한 천천히 올라갔다.
모노레일같이 특이한 다리가 있는데 용도가 뭔지 모르겠네
뭔지 아시는분 있으시면 댓글 부탁합니다
17시 40분, 해가 저물어가기 시작했다.
이때쯤 빵(ㅋㅋ) 먹고 있던 시카고를 다시 따라잡았다.
이화령 정상에서 일몰을 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건 조금 아쉬웠다.
18시, 150km지점 이화령 정상까지 가야 절반을 탄거라는 사실이 혹독했다.
길은 예뻤다.
우리의 걱정과 무관하게 해는 빠르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평지를 주행할때는 그나마 다리가 덜아파서 다행이었다.
내가 좋아했던 새재길이지만, 머리속엔 빨리 이화령을 넘어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문경으로 진입하는 길인데 항상 낮에만 여길 지나서 잘 몰랐지만 꽤나 야경을 잘 조성했더라.
중간에 근데 문경으로 진입하는 길에서 시카고가 길을 잘못 들어섰다.
물론 2차로 확인하지 않은 내 잘못도 있었다.
그래도 네비게이션을 보니 큰길 따라가면 문경이 나오길래 대충 따라가자고 했다.
올해 초에만 해도 300, 400 탈때는 정규 코스가 아닌 다른길로 우회하는게 정말 싫었는데, 몸이 정말 힘드니 현실과 타협하게 되었다.
19시, 문경 시내 도착.
이화령 바로 밑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할까 고민했는데, 만약 그 식당이 문을 안열면 정말 낭패이기에 여기서 저녁을 먹는것으로 결정했다.
메뉴는 딱히 땡기는게 없어서 바로 옆에 있던 한우육회비빔밥 집에서 가서 해결했다.
비빔밥 맛이랑 된찌는 맛있었는데 밥이 질어서 꽤 아쉬웠다.
그래도 소화는 잘되니까 아무튼 좋았쓰!!! ← 진짜 이랬음
밥 먹고 나오니까 살짝 추워서 나는 방한 용품을 모두 착용했다.
20시, 잘있어라 문경.
앞쪽은 영남대로라고 한자로 써있지만, 뒤쪽은 이렇게 문경새재라고 한글로 써있음
처음 알았다 ㅋㅋ
20시 10분, 오늘의 메인 업힐인 역이화령을 오르기 시작했다.
소염진통제랑 테이핑 덕분에 통증은 크게 줄어서 올라갈때 큰 부담은 없었지만, 큰 무리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정방향보다 역방향이 더 쉬운거 같기도 하고…
드가자~!
20시 40분, 180km 지점 CP12 이화령 정상 도착.
드디어 절반왔다. 남은 CP도 여주 하나밖에 없다.
이화령부턴 익숙한 길이기에 180km나 남았지만 벌써 완주한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기존 계획보단 많이 늦어지긴 했지만 SBS도 슬슬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랜도너스에서 행사를 고지한건지, 정상에는 경찰분들이 계셨고 대충 알고 계셨다.
경찰 : “지금 서울에서 부산찍고 올라오시는거죠?”
나 : “네 다시 서울 가는 길입니다”
경찰 : “정말 대단하시네요…”
나 : “아닙니다, 저희 때문에 밤늦게 고생하시네요, 감사합니다.”
경찰 : “아닙니다, 조심히 내려가세요”
근데 9시가 넘는 늦은 시간이지만 국종 하시는 분들이 제법 있으셨다.
다운힐할때 그분들이 올라오면서 화이팅을 해주시는데 힘이 났다.
소조령을 올라가던 도중 랜도너 한분이 코스를 잘못 알고 계셔서 셋이서 충주까지 같이 가기로 했다.
소조령까지 빠르게 올라가고, 수안보에서 보급하기로 결정했다.
22시 5분, 수안보 도착
여기서 실수를 하나 하는데, 다음 CP인 여주까지 보급할 곳이 거의 없었지만 그걸 모르고 수안보에서 보급을 조금했다.
이후에 충주를 지나서 가는데 꽤나 고생하게 되었다.
편의점에서 나오니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져 매우 추워지기 시작했다.
억지로 인터벌을 밟아 체온을 올렸다.
수주팔봉 그 다리인데 야간 주행이라 그런지 제대로 안찍혔다.
새재길을 거의 다 벗어났다.
22시 50분경, 충주에 진입했다.
자주 와봤던 코스를 오게되니 마음이 다소 편안해졌다.
서울까지도 140km밖에 안남은 상황이기도 했다.
이틀전, ㅇㅇ이 dnf를 하면서 헤어졌던 그 사거리
타는 내내 셋이서 같이 완주를 하지 못한게 정말 아쉬워서 머리속을 맴돌았다.
충주 중앙탑으로 향해 가는길.
분량 조절 실패로 2부는 작성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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