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호공
신라 초기에 재상, 외교관을 맡았던 사람으로
삼국사기에서 분명하게 본래 왜인이라고 기록된 사람이다.
마한에 사절로 갔을때
"변한과 진한은 우리의 속국이거늘
어찌 제대로 공물을 바치지 않는가? "
라고 질책하는 마한왕에게
" 우리나라(신라)는 천시가 조화로워 창고가 충실하고 인민은 공경하며 겸양하니,
진한의 유민으로부터 변한과 낙랑, 왜인에 이르기까지 경외의 마음을 갖지 않음이 없습니다.
우리 왕께서 겸허한 마음으로 저로 하여금 교빙(交聘)을 하게 하셨으니
지나칠 정도로 예를 차린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왕께서 불같이 노하셔서 군대로 겁박하시니 이 무슨 뜻입니까?"
라고 일갈하자 분노한 마한왕이 죽이려고 하던걸
주변 신하가 만류하여 살아남았다고 한다.
마치 훗날의 쇼토쿠 태자가 수양제에게
'해 지는곳의 천자에게 해 뜨는곳의 천자가 안부를 묻는다.'
라고하여 수양제를 분노케 한 일화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특이한 점은 석씨의 시조 석탈해에게 집을 뺏긴다든지,
김씨 시조 김알지를 처음 발견한다든지
신라의 박석김 족단의 시조 모두와 엮이는 전설이 있다는 점이다.
아마 신라 초기에 유이민 집단의 지도자로서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2. 모노노베노 마카무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인물.
백제의 5방중 동방의 방령(장관)을 맡고 있던 인물로
성왕의 명을 받고 신라의 관산성을 공격해 함락시켰다고 한다.
실제로 삼국사기 신라본기를 보아도
초기에 신라가 관산성에서 맞서싸웠으나 패하였다고 하였으니
마카무 장군의 선제공격은 효과적이었던것 같다.
그러나 이후 성왕이 실수로 신라의 비장 고도에게 사로잡히게 되고
성왕이 전사한 소식을 들은 백제군은 그 기세를 몰아친 신라군에게 처참히 패배한다.
훗날 백제 부흥군의 지도자였던 흑치상지의 둘째딸과 결혼한 사위이자,
흑치상지를 따라 백제부흥군을 버리고 당으로 귀순한 인물로
모노노베노 슌(물부순)이라는 장군의 공덕비가 중국에서 발견되었는데
아마 이 사람은 모노노베노 마카무(물부막가무)의 후손으로 추정되며
모노노베씨는 백제 멸망기까지 백제에서 살았던 것 같다.
3. 츠쿠시노 미야츠코
츠쿠시노 쿠니노 미야츠코(축자국조)는 이름이 아니라
츠쿠시국(축자국)의 국조(미야츠코) 라는 직위를 의미한다.
비슷한 케이스로 당군과의 전투에서 활약했으나 이름을 전하지 못한 '안시성주'가 있다.
기록에 의하면 관산성 전투에서 패하고
포위당한 여창(위덕왕)의 군대를 도와서
뛰어난 활솜씨로 신라군을 무찌르고
위덕왕의 퇴각을 도왔다고 한다.
이에 위덕왕은 츠쿠시노 미야츠코에게 감사하여 '안교군(쿠라지)'라고 높여 불렸다고 한다.
성왕이 말한 불화살을 잘 쏘는
'츠쿠시국의 모노노베노 마카와사카' 라는 자가 이 사람일 수도 있다.
4.여여문
선조의 신임을 받은 항왜로서
정확히 어떤 경로로 조선에 투항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선조가 보통 왜인이 아니니 특히 우대하라고 명한 것으로 보아
원래 일본군에서도 꽤 높은 직위를 가졌던것 같다.
본래 이름은 야에몬 정도로 추정된다.
중국의 포술이나 일본의 검법같은 타국의 우수한 군사기술을 수입하여 가르치던
아동대(兒童隊)의 책임자 역할을 했으며
일본군의 전술을 조선측에 귀띔해주기도 했다.
특히 울산성 전투에선 직접 전선으로 나가
일본군으로 위장해 정탐하여
적병 숫자를 파악하고 지도를 그려오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군으로 착각한 명군의 착오인지
아니면 그의 공을 가로챌 심산이었는지
명군 지휘관의 손에 의해 살해당한다.
그를 총애한 선조가 이 소식을 듣고 특히 비통해 했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조선측에서 활약한 항왜장군이고
명군에 의해 살해당한 인물인데
국산게임 임진록 2에서는 이상하게 명나라측 장군으로 나온다.
5.김충선(사야가)
항왜로서 너무나도 유명한 인물
그 정체는 논란이 많으나
유력한 설로 사이카슈 출신의 요시유키(善之) 라는 자라는 것이다.
실제로 김충선의 자는 선지(善之) 이므로 신빙성이 높다.
사이카슈는 일본에서 철포(조총)로 유명한 용병집단이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적대한 적도 있으므로
그가 조선에 투항할 이유는 충분 했을 것이다.
조선에 철포(조총)를 보급하고 군대를 육성한 것도 김충선의 공일 것이라고 추정된다.
임진왜란때 직접 부대를 이끌고 울산성 전투 등에서 활약했다.
이괄의 난에서 서아지(徐牙之)란 항왜는 검술이 뛰어나 조선군이 대적하기 힘들었는데
김충선이 직접 조총부대를 이끌고 맞서싸워 물리쳤다고 한다.
또한 병자호란때는 66세의 노구를 이끌고 직접 부대를 지휘하며
쌍령 전투에서 청나라 기병 500기를 무찌르며
후퇴하는 조선군을 지켰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이 항복하자 통곡하였으며
훗날 청나라측의 항의로 강제 해직되고 낙향하여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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