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이 대(對)러시아 경제 제재를 잇달아 공개하면서 불안에 빠진 러시아 국민이 현금 확보를 위해 은행으로 몰려들고 있다.

루블화 가치 하락과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도 심화할 전망이다.

2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달 24일 오전부터 러시아에서 현금을 인출하려는 사람들이 은행과 현금인출기(ATM)로 몰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FT는 “본지 기자가 27일 오전 일부 러시아 시중 은행을 방문했는데 미국 달러화가 바닥난 곳도 있었다”고 전했다.


러시아 국민은 패닉에 빠진 모습이다.
모스크바에 사는 예카테리나는 “24일부터 현금을 인출했고, 오늘 또 ATM에서 추가 인출을 할 것”이라며 “예금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거라고 믿지만, 지금은 그 무엇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일단 현금을 뽑아 놔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FT에 따르면 지난 25일 러시아의 현금 인출 수요는 2020년 3월 이후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서방이 발표한 경제 제재 대상에는 러시아 중앙은행과 일부 시중 은행도 포함돼 있다.
이 때문에 러시아 국민은 제재를 받은 러시아 은행의 카드를 러시아 밖에서는 쓸 수 없게 된다.
해당 은행 계좌와 연결된 애플페이, 구글페이도 쓸 수 없다.
예카테리나는 “어제 구글페이로 택시비를 내는 데 문제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을 국민을 안심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날 성명에서 러시아 중앙은행은 서 “러시아의 은행 시스템은 안정적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원활하게 작동할 만큼 충분한 자본과 유동성이 있다”며 “계좌에 현금이 있는 고객은 언제든지 인출할 수 있다”고 했다.
러시아의 외화보유액은 외화와 금의 형태로 6300억달러(약 761조원)에 달하는데, 이는 역대 최대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고 러시아 국민의 현금 인출 수요도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금융 컨설팅 회사인 코어페이의 칼 샤모타 이사는 “루블화는 바닥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이라며 “아무도 떨어지는 칼을 잡고 싶진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27일 러시아에서 루블화는 달러당 110~120달러에 거래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까지만 해도 75달러에 거래됐고, 25일만 해도 83달러에 거래됐다.
25일 대비 30% 가까이 하락한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러시아 시중 은행 관계자는 “거래가 개시되는 28일 루블화 가치가 어디까지 떨어질지 상상할 수 없다”며 “중앙은행이 루블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문제는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에 달렸다”고 밝혔다.

통화 가치 하락에 따른 인플레이션도 가속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중앙은행 고위 관료는 “통화 가치가 30~40% 떨어지면 인플레이션이 5%p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러시아의 인플레이션율은 이미 지난달 8.7%를 기록했다. 이는 러시아 중앙은행이 제시한 목표치인 4%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