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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노동이야기] ‘과로’는 ‘긴 노동시간’이 아니다

만남의광장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03.27 1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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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야기] ‘과로’는 ‘긴 노동시간’이 아니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故 이찬희 책임연구원 산재 불인정과 남양연구소 조직문화 개선위원회의 보고서https://vop.co.kr/A00001610354.html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디자인센터에서 2020년 9월 돌아가신 故 이찬희 책임연구원. 유족들이 고인을 대신해 산업재해보상을 신청했지만, 산업재해(이하 ‘산재’)에 해당하는지의 여부를 판정하는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이하 ‘질판위’)는 회사 근무기록 상 나온 노동시간의 양이 ‘통상적인 수준’이었다며, 과로를 인정하지 않았다.

현대자동차는 자신들의 소송을 맡아 온 법무법인 화우를 통해 남양연구소 조직문화 개선위원회(이하 ‘개선위’)를 구성했고, 개선위는 故 이찬희 책임의 과로자살과 관련한 진상조사와 회사 문화개선안을 담은 보고서를 지난 3월 4일 제출했다. 해당 보고서 28쪽에는 “‘(공식 근무기록에는) 기록되지 않은’ 야간 및 새벽, 주말 근무를 한 사실을 인정하였다. 그렇지만 (중략) 산발적인 시간 외 근무만 가지고 과로가 정신질환의 발병 원인이 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결국 개선위원회도 질판위의 판단을 뒤집을 정도의 판단을 하기는 어려웠다”며, 이찬희 책임연구원의 죽음이 과로와 무관한 것으로 봤다.

질판위와 개선위는 공통적으로 ‘일한 시간이 얼마인가’를 기준으로 과로 여부를 판단하려 했다. 하지만 과로란 단순히 노동 시간의 길이만을 두고 판단하는 개념이 아니다. 노동 시간의 길이와 야간 노동과 같은 노동 시간대, 요일 등 배치의 영향을 포함해, ‘노동자의 신체, 정신을 불건강하게 만들거나 기존에 있던 질환을 악화시키는 수준의 노동강도’로 판단되어야 한다.


따라서 ‘한 노동자가 극단적 선택을 한 원인이 과도한 노동 때문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노동 시간의 길이를 따질 것이 아니라 노동강도를 증가시키는 방식의 업무 시간대, 업무 특성, 성과 평가, 동료 관계, 조직 문화, 역할과 책임 부여 같은 질적 요인을 모두 검토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찬희 책임 연구원이 속해있던 남양연구소 디자인센터는 과로를 강제하는 노동환경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5115620_2.jpg현대차그룹 사옥 (자료사진) ⓒ뉴시스



아쉽게도 면밀한 분석이 되어 있지 않다. 다만 진상조사위가 진행한 설문조사와 심층인터뷰 결과에서 이미 ‘승진, 보상에서의 불이익’ ,‘과도한 업무’, ‘직장 내 괴롭힘’ ,‘상사와 센터장의 변화 필요(상사의 문제란, 면접 내용을 봤을 때 업무 능력에 대한 상사의 폭언이나 차별, 기타 스트레스 유발 언행들과 연관되리라 추측한다)’, ‘차별’ ,‘수직적 위계질서’ ,‘경쟁’ ,‘디자인 품평회와 리뷰 일정에 따른 과도한 업무 지시’ ,‘지나친 정도의 근무 강도’ , ‘실적과 성과에 대한 심정 압박감’ 등 디자인센터 내부에서 노동 강도를 증가시키는 요인들이 언급돼 있다. 한 달 여의 짧은 시간 동안 진행한 간단한 수준의 연구에서도 디자인센터 노동자들의 신체와 정신의 불건강을 유발하는 요인들이 드러난 것이다.

위에 나열한 노동강도 강화 요인 키워드들은 ’성과 압박‘ 이라는 용어로 묶을 수 있다. 과도한 실적을 목표치로 잡은 조직은 노동자를 쥐어 짜서 어떻게든 그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고, 그 과정에서 직장 내 괴롭힘, 실적을 중심으로 한 차별, 과도한 경쟁 등 극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환경이 형성된다.


실적 중심 문화에서는 노동자 개개인이 ‘실적을 내는 도구’로 취급되기에, 실적이 곧 그 사람의 인간적 가치의 경중을 따지는 기준이 된다. 실적이 좋게 평가되는 이든 아닌 이든, 모두가 쓸모없는 인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모멸감을 피하기 위해 발버둥 치게 된다. 이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야기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이어질 수 있는 원인이 된다. 그러니 직장 내 괴롭힘을 개인의 인성 차원의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된다.

센터장이 故 이찬희 책임 연구원에게 “창문 밖으로 밀어버릴까?”, “지하실로 보내버릴까?” 등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이는 명백히 잘못된 일이며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그 센터장마저도 성과와 실적 압박 하에 있는 한 사람이다. 강력한 성과 중심 문화가 온존하는 한, 센터장이 교체돼 다른 사람이 오더라도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故 이찬희 책임 연구원은 통상적 수준의 노동을 했으므로 과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질판위와 개선위의 판단은 틀렸다. 과도한 실적 압박과 그로 인한 불안, 두려움은 온종일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그를 고통스럽게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14022449_11.jpg일터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상사의 괴롭힘은 모두 과로의 요인이 된다 ⓒ일러스트: 박지윤



그럼에도 진상조사위는 보고서 결론과 권고에서 고인의 사망 관련 진상조사 결과와 직장문화 개선 조사 결과 영역을 별도로 구분해 놓았다. 이는 조사위의 의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구분 하에서 디자인센터의 성과 중심 문화는 고인의 사망 원인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된다. 심지어 직장 내 문화 개선 조사 결과에서는 위에 언급한 ‘성과 압박’과 관련한 내용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고, ‘상사들이 바뀌어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는 사실만 간단히 언급하는데 그쳤다.

상사들과 관련한 스트레스가 많다면, 어떤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으며, 그것이 왜 발생하고 있는지 근본 원인을 찾아야 조직 문화를 개선할 수 있다. 그런데 결과엔 그러한 분석이 전혀 포함돼 있지 않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수 있는 상사의 언사에 대한 권고 조치가 필요하다는 수준의 제안만 하고 있다. 결국 조직 문화 문제를 개인 인성 문제로 치부하고 있는 셈이다. 

이찬희 책임의 과로자살에 대한 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질판위의 산재 불승인에 이어, 진상조사위의 보고서 내용이 공식 내용으로 채택된다면 디자인센터의 노동 조건에는 별다른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몇몇 관리자에 대한 형식적 권고 조치와 ‘리더십’ 교육 정도가 시행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또 다른 과로 자살이, 업무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을까. 

현대차 노조는 조사위의 조사 결과에 불복하고, 고용노동부의 재조사를 요구하는 진정을 냈다. 과로자살한 노동자의 죽음은 해당 회사 내부에 현재도 상당한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는 다른 노동자가 있을 것임을 추정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니 현대차와 현대차의 노동환경을 관리·감독할 의무가 있는 노동부는 ‘과로자살’의 문제를 제대로 다뤄야 한다. 결코 지금까지 해왔던 데로, 사건이 잊혀지길 기다리는 방식으로 다뤄서는 안 될 것이다. 극단적 선택에 내몰린 노동자들이 온몸으로 드러낸 극악한 노동환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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