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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셀라

2025.03.01 14:41:32

조회 45 추천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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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시절에 친해진 동기가 있었다.

고씨 성을 가진 고는 덕후 기질이 강했고, 어디서든 기죽지 않는 상큼한 애였다. 자기 취향을 당당히 말할 줄 아는 성격. 가끔 보면 웃기는 애였는데, 묘하게 성숙해 보일 때도 있었다.

어느 날, 고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머니가 소주를 잔뜩 마신 채 농약을 들이켜 세상을 떠났다고. 아버지는 버스 기사로 일하며 생계를 책임졌고, 새어머니를 '어머니'가 아니라 '여사님'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말투도 표정도 평소처럼 덤덤했다.

그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고가 영화를 추천해 줬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라고 있어. 남자한테 계속 버림받는 여자의 이야기인데, 한 번쯤 보면 좋아."

처음 들어본 영화였다. 이상하게 당기지 않아서 보지 않았다.

그러다 이제야 이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 오는 주말 아침, 커피를 마시며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보다 보니 짜증이 났다.

"왜 저렇게 매번 판단을 못 하지?"

"왜 스스로를 저렇게 몰아넣어?"

마츠코의 선택이 하나같이 답답했다. 안타깝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슬프지는 않았다.

그런데 마츠코가 세상과 단절한 순간부터 느낌이 달라졌다. 더 이상 사랑받으려 애쓰지 않고, 기대하지도 않고, 바닥에 붙어 있는 모습에서 오래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천장만 바라보며 소리 없이 울던 날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하루를 흘려보내던 때.

그때도 누군가는 나를 보고 답답해했을까.

오늘따라 문득 고가 보고 싶다.

그때는 몰랐지만, 고의 담담한 표정 속엔 말하지 못한 슬픔이 있었을 것이다. 고는 그냥 쿨한 애가 아니었다. 억척스럽게 밝은 모습 속에 여린 부분을 숨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고를 다시 만나면 꼭 안아주고 싶다.

그리고 말해주고 싶다. 잘 커줘서 고맙다고.

고는 지금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학기 중에도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 하고, 항상 부지런하며, 목소리는 명랑하고, 발표가 체질이던 내 친구. 내가 난처할 때 선뜻 도와주웠던 고야.

난 널 잊지 않았어. 행복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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