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보면 사립 대학교 내부의 문제일 뿐인데 생각보다 큰 이슈가 되는 것 같습니다. 남녀갈등, 여성 인권, 역차별 같은 소리가 나오고 감정적인 얘기들도 많이 나오고요.

우선 이슈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시위의 격렬함에 있는 것 같습니다. 30년 전엔 대학생이 시위할 때 건물 점거하고 락카칠하고 계란 던지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었고 오히려 각목을 들고 화염병을 던지기도 했을텐데 최근 몇 년을 생각해보면 그런 시위는 거의 사장된 듯하죠.

그렇다면 그 명분은 뭘까요? 이유가 뭐길래 요즘 찾아보기 힘들만큼 격한 시위를 할까요? 솔직히 여대 내부의 분위기는 잘 모르겠지만, 당연히 여대의 의의와 관련된 명분을 내세우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성의 교육권을 보장해야 하고, 여성 인권이나 페미니즘 등의 담론을 자유롭게 논할 수 있는 장으로서 여대는 존속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 근거는 여전히 한국의 성평등 지수는 낮은 편이고, 일본이나 미국에도 여대가 존재한다는 것이고요.

하지만 여기서 몇 가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 째로 동덕여대는 어떤 이유로 공학 전환이 논의되는 것이고, 그것이 진짜 실현되는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우선 동덕여대의 공학 전환은 이념적인 것과는 상관 없는 학령 인구 감소라는 현실적 상황에 대한 대응으로 보입니다. 아시다시피 저출산의 여파가 본격적으로 닥칠 이후에는 대학에 들어올 신입생이 대폭 줄어듭니다. 동덕여대 뿐 아니라 대부분의 대학이 이에 대한 대처방안을 생각해야 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대학 운영이 현실적으로 힘들어지죠.

동덕여대측은 이러한 상황에서 공학 전환을 하나의 여러 방안 중 하나로 제시한 것일 뿐이고 공학 전환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계획도 없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외부인의 입장에서는 학교 측도 사정이 있고, 구체적인 실행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저렇게까지? 라는 생각이 들법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저런 모습이 남녀의 상황이 과거와는 정반대가 된 양상을 보여주지 않나 싶습니다. 사실 불합리함은 어느 집단에서든 흔히 마주칩니다. 특히 남자라면 군대에서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더 드물 겁니다. '군대는 특수 집단이니 당연한 것 아니냐?' 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 군대의 의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소위 엘리트들이야말로 군대의 불합리함을 수용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병들은 군대가 특수집단이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그냥 불합리함을 인내하는 법을 배우는 것에 더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만약 비슷한 나이의 남초 집단에 동덕여대보다 훨씬 더 큰 불합리함이 주어졌을 때 남자들이 동덕여대생들이 한 것처럼 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아닐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남자들이 더 수용적이고 유약해졌고 여자들이 더 개혁적이고 드세진 것을 보여 주는 게 동덕여대 시위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자들은 건물을 점거하고 모여서 집단 행동을 하는데, 남자들은 인터넷에서 뒷담화를 하는... 정말 성역할이 완전히 뒤바뀐 듯한 모습들이 보이니까요.

개인적으로는 동덕여대생들이 설령 조금은 억지스럽더라도 패기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불합리함을 참기만 하는 요즘 사회에 좋은 선례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녀를 떠나서 개인이 모여서 기존 체제를 견제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퍼지는 것은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봅니다.

다만 먹고 사는 문제는 여자한테만 힘든게 아닌데 종종 여성 운동이 지나치게 이기적이거나 심지어 남자를 적처럼 생각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여성 인권에나 사회에나 별 도움이 안 될 거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