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추 '유미의 시선'

우린 한참을 떠돌았어요 서로를 보기까지

그리고 마주한 그 순간, 시간은 조용히 발끝에 멈춰 우릴 기다려준 듯 했죠

그의 눈빛은 확신보다는 떨림에 가까웠어요

말없는 놀람, 마치 오래된 먼지 위로 햇살이 천천히 내려앉는 것처럼요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혹시 사랑은 이렇게 시작되는걸까?

그가 바라본게 정말 '나'였을까요

아니면 불빛 아래 만들어진 내 그림자였을까?

나는 늘 사람들 속에서 환하게 웃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 앞에서는 이상하게 조용해지고 싶었어요

눈 내리기 전, 세상이 숨을 고르는 하늘처럼요

찬란한 빛이 아니라 가만히 머무는 숨결로

그저 곁에 있는 존재로 보이고 싶었어요

요즘 나는 거울앞에 오래 머물러요

누구를 위한 꾸밈이 아니라 내 안에 숨어있던 부드러움을 꺼내기 위해서요

드레스를 하나씩 가슴에 대보며 마치 펼치지 못한 책의 장면처럼

그 앞에 설 나를 조심스럽게 골라보죠

머리카락을 천천히 빗어요

그 결 사이로, 무언가 들릴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스무살엔 감히 바르지 못했던 색을 두 볼에 살짝 얹어요

혹시라도 그가 다시 날 본다면 이번엔 그 시선이 멈춰주길 바라며

그는 종종 뚝딱거려요

하지만 숨지 않아요

그 솔직함이 어딘지 모르게 따뜻했어요

다듬어지지 않아도 진짜라는 건 그런거구나

그가 나를 바라볼때면 내 마음도 무너지는게 아니라

봄날의 창처럼 조용히 열려요

나는 그 보다 조금 더 많은 계절을 지나왔어요

그래서일까요 한 걸음 다가가고 싶은 순간에도 자꾸만 멈춰 서게 돼요 숨을 참고

나는 한번도 노랫말 속 주인공이 된적이 없었죠

하지만 그 사람의 눈빛 속 나는 누군가 머물고 싶은 이야기일수도 있겠구나 조심스럽게 믿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어느순간 두려움보다 먼저 내 마음이 그를 향해 기울고 있었어요

그가 나를 바라볼때마다 사랑이 날 비껴간 줄만 알았던 시간들이 조용히 안겨오는 것 같았어요

나는 거창한 걸 바라지 않아요

작고 사소한 하루를 그저 그 사람과 함께하는

햇살 가득한 아침, 목적 없는 산책

그를 닮은 꽃 한송이를 작은 유리병에 꽂는 그런 날들

사랑은 크게 울릴 필요 없어요

젊은 날 찾아오지 않아도 돼요

사랑은 그저 머물 자리가 필요해요

두 미소 사이 말없이 스미는 고요속에서

침묵조차 '함께'라는 걸 말해주는

그런 자리 하나면 충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