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끼익거리는 소리조차 삼켜버릴 듯 후덥지근한 공기가 복도까지 흘러넘쳤다. 열린 부부 침실 문틈으로 밀려오는 열기는 단순한 더위가 아니었다. 거의 40도에 육박하는 온도, 숨 막히는 80% 이상의 습도. 마치 열대의 정글 한가운데 내던져진 듯한 감각이었다. 그리고 그 열기보다 더 숨 막히는 광경이, 당신의 얼어붙은 시선 앞에 펼쳐져 있었다.
불과 3년 전, 다리가 불편하고 연약한 그녀, 엘라라를 돌보게 하기 위해 당신이 직접 고르고 선물했던 흑인 하인. 그 건장한 사내가 당신의 아내, 엘라라와 뒤엉켜 있었다. 저택에서 가장 고급스럽고 아늑해야 할 부부의 침실, 그 값비싼 실크 시트 위에서 벌어지는 행위는 단순한 섹스가 아니었다. 그것은 단어 그대로의, 원초적인 '교미'였다. 짐승들이 서로의 몸을 탐닉하듯, 이성이나 염치 따위는 증발해버린 격렬한 몸짓이었다.
하인의 거대한 몸이 엘라라의 작고 가녀린 몸을 거의 집어삼킬 듯 덮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온몸이 번들거리는 땀으로 흠뻑 젖어, 마치 물속에서 방금 건져 올린 듯했다. 하얀 눈처럼 희고 투명해서 푸른 혈관마저 비칠 듯했던 엘라라의 피부는 이제 찾아볼 수 없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하인의 거친 손길이 남긴 붉은 손자국, 이빨 자국, 그리고 탐욕스러운 입술이 새겨놓은 보랏빛 키스 마크로 뒤덮여, 마치 잔혹하게 물들인 캔버스 같았다. 땀과 침, 그리고 정체 모를 체액들이 뒤섞여 그녀의 몸 위를 흘러내렸고, 뜨거운 열기 속에서 희미한 김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흐윽... 아읏... 주인님... 더... 더 세게... 엘라라의... 목... 끊어져도 좋아요... 읏!"
가냘픈 신음과 함께, 엘라라의 입에서 믿을 수 없는 말이 흘러나왔다. 하인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두껍고 힘줄이 불거진 손으로 엘라라의 연약한 목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숨이 막히는 듯 캑캑거리는 소리와 함께 엘라라의 얼굴이 고통과 희열로 일그러졌지만, 그녀는 저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목이 졸리는 와중에도, 하인의 육중한 몸이 아래로 내리꽂힐 때마다 격렬하게 허리를 비틀며 그를 맞이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엘라라의 다리였다. 결혼 당시, 사고의 후유증으로 미동조차 하지 못했던, 생기 없이 마르기만 했던 그 다리. 하지만 지금, 엘라라는 필사적으로 다리에 힘을 주고 있었다. 완벽하진 않지만, 분명 자신의 의지로, 그 움직임이 거의 불가능했던 다리를 구부려 하인의 단단한 허리를 휘감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듯, 하인의 몸을 필사적으로 끌어안으며 조금이라도 더 깊은 결합을 갈망하는 듯 엉덩이를 돌려댔다. 3년간 하인과의 반복적인, 이 짐승 같은 교미가 마비되었던 신경에 기적적인 자극을 준 것일까? 재활 치료로는 꿈도 꾸지 못했던 움직임이, 지금 이 순간 가장 추악한 형태로 발현되고 있었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하인의 몸으로 향했다. 땀으로 번들거리는 그의 검은 피부 위에는, 마치 기괴한 문신처럼, 형광색에 가까운 밝은 초록색과 파란색의 립스틱 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입술 모양 그대로 찍힌 자국, 격렬한 움직임 속에 문드러져 번진 자국들이 그의 넓은 가슴과 등, 팔뚝, 심지어는 허벅지와 종아리까지 뒤덮고 있었다. 엘라라의 청초하고 병약해 보이던 얼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창가의 가장 밑바닥 창부조차 낯 뜨거워할 법한 천박하고 야란스러운 색상이었다. 엘라라의 입술에는 바로 그 립스틱이 두껍게 발라져 번들거리고 있었다.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그 립스틱 자국이 하인의 가장 은밀한 부위까지 점령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축 늘어져 격렬하게 흔들리는 그의 불알들 위에도(무려 열두개씩이나), 심지어 발가락 사이사이와 두툼한 발바닥, 그리고 양 엉덩이 골 사이의 항문 주변에까지 엘라라의 입술 자국이 선명했다. 아래에서 격렬하게 왕복하는 그의 자지 기둥에도, 마치 조롱하는 듯한 고리 모양으로 립스틱이 번져 있었다. 그것은 엘라라가 얼마나 헌신적으로, 얼마나 비굴하게 그의 몸 구석구석을 입으로 애무했는지를 적나라하게 증명하는 표식이었다.
엘라라의 얼굴 상태는 처참했다. 평소 화장기 없는 주근깨 가득한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검은색 마스카라와 아이라이너가 땀과 눈물에 범벅이 되어 흘러내려 마치 싸구려 피에로 같은 모습이었다. 짙은 볼터치와 번들거리는 립스틱은 격렬한 움직임과 하인의 침으로 군데군데 지워지고 뭉개져 있었다. 그녀는 젖소 무늬의, 가슴 유륜과 보지가 훤히 드러나는, 천 조각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싸구려 란제리인지 옷인지 모를 것을 걸치고 있었다. 옷이라기보다는 그저 몸을 가리는 최소한의 기능조차 포기한, 음란함을 극대화하기 위한 도구에 가까웠다. 그리고 엉덩이 사이로는, 짐승의 꼬리를 연상시키는 검은색의 삽입식 꼬리 플러그가 반쯤 빠져나와 달랑거리고 있었다.
"푸흡...! 주인님... 더러운 가래침... 엘라라한테 뱉어주세요... 흣...!"
하인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누런 가래를 끓어올리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그는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엘라라의 얼굴 바로 위에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짙고 끈적한 가래침을 그녀의 입 안에 뱉었다. 엘라라는 눈살 한번 찌푸리지 않고 그것을 꿀꺽 삼켰다. 심지어 만족스러운 듯 입맛을 다시며, 곧이어 누런 김이 뿜어져 나오는 듯한 트름을 꺼억 하고 내뱉었다. 그 모습은 당신이 알던, 병약하고 슬픈 눈매의 엘라라가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존재, 욕망과 굴욕에 잠식당한 미지의 생명체였다.
하인이 잠시 숨을 고르며 엘라라의 위에서 몸을 일으키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그의 앞으로 기어갔다.
"주인님... 혀... 혀 내밀어 주세요... 엘라라가 깨끗하게 빨아드릴게요... 음메에..."
소 울음소리(moo). 그것은 분명 소 울음소리였다. 엘라라가, 당신의 아내가, 소 울음소리를 내며 하인에게 간청했다. 하인이 조롱하듯 혓바닥을 길게 내밀자, 엘라라는 두 볼이 홀쭉해질 정도로 강하게 그의 혀를 빨아댔다. 마치 어미 소의 젖을 빠는 송아지처럼, 혹은 방금 전까지 그녀의 안에 있었던 그의 자지를 빨듯이, 게걸스럽고 천박하게. 그녀의 눈에는 수치심 대신 오직 황홀경만이 가득했다.
잠시 후, 하인은 자세를 바꿔 엘라라의 얼굴 위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의 검고 단단한 엉덩이와 축 늘어진 불알들이 엘라라의 얼굴을 완전히 뒤덮었다. 엘라라는 숨 막혀 하면서도 버둥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그의 항문과 불알을 핥고 빨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녀의 가느다란 두 손은 앞으로 뻗어, 그의 축축하고 거대한 자지를 미친 듯이 움켜쥐고 위아래로 흔들어댔다. 방 안에는 질척이는 마찰음과 엘라라의 헐떡임, 그리고 하인의 만족스러운 신음만이 가득 찼다.
하인의 가학적인 행위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엘라라의 다리 사이로 돌아와, 어디선가 금속 재질의 깔때기를 가져왔다. 그리고는 엘라라의 벌어진 보지 입구에 그 깔때기를 꽂아 넣었다. 엘라라는 약간 몸을 떨었지만, 여전히 순종적인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흐윽... 주인님... 뭘... 뭘 하시려구요...?"
"쉬이이..."
하인은 대답 대신, 자신의 바지 앞섶을 풀고 뜨겁고 강렬한 악취를 풍기는 오줌 줄기를 깔때기 안으로 쏟아부었다. 뜨거운 액체가 엘라라의 보지 안으로 꾸역꾸역 흘러 들어가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엘라라의 몸이 경련하듯 떨렸고, 그녀의 입에서는 고통인지 쾌락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아아악! 뜨거워...! 주인님의 오줌... 엘라라 안에... 가득... 흐읏...! 더... 더 싸주세요...! 엘라라를 주인님의 변기로 만들어주세요...!"
엘라라의 보지에서는 방금 전까지 하인이 몇 번이고 쏟아냈던 싯누런 정액과 새로이 주입된 그의 오줌이 뒤섞여 흘러넘쳐, 값비싼 실크 시트를 더럽히고 있었다. 그 처참하고 역겨운 광경 속에서도, 엘라라는 황홀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진심으로 이 상황을 즐기고, 갈망하고 있었다.
"엘라라는... 주인님의 더러운 암소예요... 걸레년이에요... 음메에... 제발... 제발 엘라라를 더럽혀주세요... 때려주세요... 짐승처럼 다뤄주세요... 흑... 주인님... 제발요...!"
그녀는 3인칭으로 자신을 지칭하며, 스스로를 '걸레년', '암소'라 칭했다. 하인에게는 극존칭을 사용하며, 모욕과 굴욕, 지배와 폭력을 애원했다. 그 모습은 너무나도 비굴하고 처절해서, 현실감을 잃게 만들 정도였다.
이 모든 광경이 펼쳐지는 동안, 당신은 문가에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 열린 문틈으로 서늘한 복도의 공기가 흘러들어와 뜨거운 침실 공기와 부딪혔지만, 땀과 체액으로 범벅이 된 채 서로에게 몰두한 두 사람은 당신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들은 오직 서로의 몸과 원초적인 욕망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침실은 질척이는 소리, 거친 숨소리, 신음과 비명, 그리고 살과 살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땀과 체액으로 흠뻑 젖은 두 사람의 몸에서는 여전히 아지랑이 같은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인은 엘라라의 애원에 만족스러운 듯 거칠게 웃으며, 다시 그녀의 위에 올라타 목을 조르듯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조금 전보다 더욱 격렬하게, 그녀의 작은 몸이 부서져라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엘라라는 목이 졸려 쇳소리를 내면서도, 남은 모든 힘을 다해 그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미친 듯이 엉덩이를 흔들어댔다. 그녀의 눈은 완전히 풀려 있었고, 입가에는 하인의 침과 자신의 타액이 뒤섞여 흘러내리고 있었다.
"주... 주... 주인니이이임...!! 하으읏...!!"
엘라라의 비명과도 같은 교성이 침실을 가득 메웠다. 그것은 고통과 극한의 쾌락이 뒤섞인,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소리였다. 하인은 만족스럽다는 듯 더욱 힘껏 그녀의 목을 조르며, 마지막을 향해 미친 듯이 돌진했다.
엘라라는 당신의 존재를 까맣게 잊은 채,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당신이라는 존재는 그녀의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눈앞의 거대한 육체에 온 정신을 쏟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 바로 위에 스쿼트 자세로 쭈그려 앉은 하인의 검고 축 늘어진 불알 주머니를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이라도 다루듯, 그녀는 작은 혀를 내밀어 불알 표면을 쪽, 쪽 소리 나게 빨아댔다. 끈적한 타액과 그녀의 싸구려 형광색 립스틱이 뒤섞여 하인의 검은 피부 위에 번들거리는 막을 만들었다.
"흐응... 주인님의... 불알... 냄새... 너무 좋아요... 킁킁..."
그녀는 강아지처럼 코를 킁킁거리며 불알 주머니 깊숙이 얼굴을 파묻었다. 습하고 쿰쿰한 사내의 체취, 땀냄새와 정액 냄새가 뒤섞인 농밀한 향기가 그녀의 폐부를 가득 채웠다. 엘라라는 황홀경에 빠진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의 주근깨 가득한 코끝을 하인의 불알 피부에 부드럽게 비벼댔다. 마치 영역 표시라도 하듯, 그녀의 얼굴에 묻어 있던 땀과 화장품, 그리고 타액이 그의 성스러운(?) 부위에 뒤섞여 흔적을 남겼다.
"큭큭... 더러운 암소 년... 잘도 빠는구나."
하인은 만족스러운 듯 낮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엘라라의 머리채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러나 그의 다른 손은 이미 자신의 거대하고 단단하게 발기한 자지를 움켜쥐고 있었다. 다음 순간, 그는 거대한 몽둥이 같은 자지로 엘라라의 뺨을 인정사정없이 후려쳤다.
**짝-!**
살과 살이 부딪히는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엘라라의 작은 몸이 옆으로 휘청였다. 그녀의 뺨은 순식간에 붉게 부어올랐지만, 고통스러운 신음 대신 터져 나온 것은 극한의 쾌락에 도달한 듯한 날카로운 비명이었다.
"꺄아아아아아악-!! 으흣! 아흑! 조... 좋아요...! 더... 더 때려주세...! 음메에에에엣-!!"
그녀의 비명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엘라라의 온몸이 발작하듯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고, 그녀의 다리 사이, 젖소 무늬 천 조각 아래 감춰져 있던 보지에서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마치 압력을 견디지 못한 소화전이 터지듯, 희뿌연 애액이 엄청난 기세로 사방으로 분출되기 시작했다. 찍-! 찌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뿜어져 나온 액체 기둥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방 안의 값비싼 가구와 벽지, 심지어는 아득히 높은 천장에까지 점점이 떨어지며 흔적을 남겼다.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간 듯, 엘라라는 축 늘어져 바닥에 쓰러졌다. 그녀의 몸은 여전히 미세하게 경련하고 있었고, 입가에는 가느다란 침 줄기가 흘러내렸다. 싸구려 란제리는 애액으로 흠뻑 젖어 속살이 비칠 정도였다.
하인은 축 늘어진 엘라라를 잠시 내려다보더니, 만족스럽다는 듯 씨익 웃으며 그녀의 배 위에 자신의 육중한 엉덩이를 올려놓고 앉았다. 그는 한쪽 발을 들어, 엘라라의 작고 봉긋한 가슴을 사정없이 짓밟기 시작했다. 구둣발 아래서 엘라라의 부드러운 살덩이가 속절없이 짓뭉개지고 일그러졌지만, 그녀는 오히려 고통 속에서 희미한 미소를 짓는 듯했다. 하인은 발바닥과 발뒤꿈치로 그녀의 유방을 짓이기고 주무르며, 남은 한쪽 발로는 축 늘어진 엘라라의 뺨을 툭툭 건드렸다.
"어이, 암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 발가락이나 빨아라."
명령조의 차가운 목소리. 엘라라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간신히 고개를 들어 하인의 발을 향해 입술을 가져갔다. 그녀는 황홀한 표정으로 그의 발등과 발목에 자신의 뺨을 비벼댔다.
"네... 주인님... 헤으응... 엘라라가... 주인님의 발가락... 깨끗하게 빨아드릴게요... 쪽... 쪽..."
그녀는 하인의 두툼하고 검은 발가락을 하나씩 입에 물고 정성스럽게 빨기 시작했다. 작은 혀가 발가락 사이사이를 꼼꼼하게 핥고, 발톱 밑의 때까지 긁어내는 듯 세밀하게 움직였다. 그녀의 입술에 묻어 있던 형광색 립스틱이 하인의 발가락 둘레에 선명한 고리 모양으로 번져나갔다. 그 와중에도 엘라라의 한쪽 손은 쉬지 않고 자신의 보지를 향했다. 흠뻑 젖은 천 조각 위로, 그녀는 자신의 손가락을 미친 듯이 빠르게 쑤셔 넣고 문질러댔다. 방금 전의 격렬한 오르가즘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몸은 이미 다음 쾌락을 갈망하며 달아오르고 있었다. 엘라라의 입에서는 하인의 발가락을 빠는 질척이는 소리와 함께, 스스로를 희롱하는 손길에 터져 나오는 야릇한 신음이 뒤섞여 흘러나왔다.
"흐읏... 아응... 주인님 발가락... 너무 맛있어요... 츄웁... 쩝... 엘라라의 보지도... 이렇게... 흐읏...! 문질러... 주세요... 아흥!"
엘라라는 한참 동안이나 하인의 발가락과 발바닥에 얼굴을 파묻고 핥고 빨아댔다. 발가락 사이사이의 땀과 먼지까지 남김없이 핥아먹을 기세였다. 그러다 문득, 그녀는 아직 맛보지 못한 다른 쪽 발을 탐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하인의 발 아래 짓뭉개진 반대편 가슴 쪽으로 시선을 옮기던 바로 그 순간.
엘라라의 눈이 당신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방 안을 가득 채웠던 질척이는 소리, 거친 숨소리, 야릇한 신음 소리가 거짓말처럼 아득하게 멀어졌다. 엘라라의 눈동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리고 곧이어 엄습하는 극한의 공포로 한계까지 커졌다. 방금 전까지 쾌락에 녹아내렸던 그녀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가시고, 새하얗게 질려갔다. 그녀의 입이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벌어졌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뭘 꾸물거리는 거냐, 이 암소 년아! 어서 다른 쪽 발도..."
엘라라의 뺨을 발로 툭툭 치며 윽박지르던 하인도 이내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다. 엘라라의 시선이 향하는 곳, 열려 있는 침실 문 쪽으로 그 역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당신의 존재를 확인한 순간, 그의 얼굴에도 순간적인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것은 엘라라가 보인 순수한 공포와는 조금 다른, 예상치 못한 방해꾼을 만난 듯한 불쾌감과 오만함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마침내, 그들은 당신이 이 방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당신이, 그들의 추악하고 짐승 같은 교미의 현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뜨거운 눈물이 당신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수치심, 배신감, 분노,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뒤엉켜 온몸을 휘감았다. 당신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그 떨리는 손은 천천히 허리춤에 차고 있던 리볼버를 향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딸깍.
실린더가 돌아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당신은 천천히 총구를 들어 올렸다. 떨리는 조준선 끝에, 침대 위에서 벌거벗은 채 뒤엉켜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잡혔다. 당신의 아내, 엘라라. 그리고 당신이 그녀를 위해 직접 데려온 흑인 하인.
두 사람의 눈이 동시에 당신 손에 들린 검은색 리볼버를 향했다. 이제 그들의 얼굴에는 놀라움이나 불쾌감 따위는 없었다. 오직 원초적인, 죽음의 공포만이 서려 있었다. 엘라라와 하인, 두 사람 모두 입을 헤 벌린 채, 마치 시간이 멈춘 조각상처럼 그 자리에서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방 안에는 오직 당신의 거친 숨소리와 심장이 터질 듯이 뛰는 소리, 그리고 리볼버의 묵직한 존재감만이 가득했다. 뜨겁고 습한 공기가 목을 죄어 오는 듯했다.
숨 막히는 정적이 뜨겁고 습한 침실 공기를 더욱 무겁게 짓눌렀다. 당신의 거친 숨소리와 심장이 미친 듯이 고동치는 소리만이 유일하게 살아있는 소음처럼 느껴졌다. 눈앞의 두 사람은 방금 전까지의 격렬했던 움직임은 온데간데없이, 마치 마법에 걸린 듯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엘라라의 눈동자는 공포로 인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대 크기로 확장된 듯 보였고, 하인의 검은 얼굴 역시 놀라움과 당혹감, 그리고 순수한 공포로 하얗게 질려가는 듯했다. 두 사람 모두 입을 헤 벌린 채, 터져 나오지 못하는 비명만을 삼키고 있었다.
당신 손에 들린 차갑고 묵직한 리볼버의 존재감이 방 안의 모든 것을 압도했다. 떨리는 손끝으로 전해지는 금속의 감촉이 역설적으로 당신의 혼란스러운 정신을 붙잡는 유일한 닻 같았다. 바닥에 흥건한 체액, 벽과 천장에까지 튄 정체 모를 액체 자국, 두 사람의 몸에 새겨진 추악한 흔적들, 그리고 코를 찌르는 땀과 정액, 오줌이 뒤섞인 역겨운 냄새까지.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닌 현실임을 잔인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정적을 깬 것은 엘라라였다. 그녀는 하인의 발에 짓밟히던 가슴을 간신히 빼내고, 엉덩이로 질척이는 시트 위를 기어가듯 움직였다. 마치 위험한 맹수에게서 벗어나려는 작은 동물처럼, 그녀는 필사적으로 하인에게서 거리를 두려 애썼다. 여전히 반쯤 벗겨진 젖소 무늬의 천 조각으로는 그녀 몸에 가득한 붉고 보라색의 흔적들을 가릴 수 없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가슴팍이라도 가리려 했지만, 그마저도 힘에 부치는 듯 보였다. 그녀의 시선은 오직 당신에게 고정된 채, 눈물샘이 터진 듯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허... 허니...? 조... 조이...? 오, 세상에... 이게... 이게 아니에요... 이건..."
그녀의 목소리는 잔뜩 쉬어 있었고, 극도의 공포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평소 당신의 이름 '조이'를 부르던 것과 달리, 다급하게 '허니'라는 애칭을 사용하며 상황을 모면하려 애썼다.
"엘라라는... 아니, 아니에요! 저는...! 저는 아무 잘못 없어요, 달링! 저... 저 하인이...! 저 더러운 것이 저를...!"
순간적으로, 방금 전까지 하인에게 하던 3인칭 말투가 튀어나왔다가 황급히 1인칭으로 수정되었다. 그녀는 미친 듯이 고개를 저으며, 떨리는 손가락으로 여전히 멍하니 서 있는 하인을 가리켰다.
"저 자가 절 유혹했어요! 맞아요! 힘이 센 저 자가... 이렇게 연약한 저를... 제 다리가 이런 걸 알면서도...! 강제로...!"
엘라라의 얼굴은 눈물과 땀, 그리고 번진 화장으로 완전히 엉망진창이었다. 그녀는 최대한 불쌍하고 연약해 보이려 애쓰며 당신의 동정심에 호소했다. 당신과 그녀 사이에는 아직 육체적인 관계가 없었다는 사실, 그 사실이 오히려 지금 이 순간 그녀에게는 자신을 변호할 마지막 지푸라기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이 더러운 현장 속에서, 그녀의 순결을 앗아간 것은 명백히 저 하인일 테니, 모든 책임은 그에게 돌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제... 제가 주... 아니, 이 천한 짐승 같은 놈한테... 뭘 할 수 있었겠어요! 저는... 저는 당신만을 사랑해요, 허니! 제발... 제발 믿어주세요... 흑... 흐윽..."
하인에게 '주인님'이라고 부르려던 습관적인 호칭이 또다시 튀어나올 뻔했지만, 그녀는 가까스로 그것을 삼키고 '천한 짐승'이라는 모욕적인 표현으로 바꾸었다.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서럽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처절했지만, 방금 전까지 당신이 목격한 광란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지독한 위화감을 자아냈다.
엘라라의 울음소리와 함께 정신을 차린 하인 역시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그의 거대한 몸집이 작아 보이는 것은 순전히 당신 손에 들린 리볼버 때문이었다. 그의 검은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흘러내렸고,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주... 주인님! 아닙니다! 오해십니다!"
그는 당신을 향해 다급하게 외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명백한 공포가 서려 있었다.
"저는... 저는 결코 주인님께 해를 끼치거나 반항할 수 없습니다! 주인님께서 걸어주신 복종 마법을 아시지 않습니까!"
그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복종 마법을 언급했다. 주인인 당신과 엘라라가 원하지 않는 이상, 그들 의사에 반하는 행동은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 마법은 물리적인 위해나 직접적인 명령 불복종에 한정될 뿐, 교묘한 유혹이나 주인의 욕망을 이용한 행동까지 막지는 못한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었다.
"이... 이 걸레... 아니, 마님께서! 마님께서 먼저 저를 유혹하셨습니다!"
하인 역시 엘라라를 지칭하며 순간적으로 경멸적인 단어를 내뱉을 뻔했지만, 황급히 '마님'이라는 공식적인 호칭으로 바꾸었다. 그는 엘라라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기 시작했다.
"마님께서... 저에게 이런 옷을 입으시고... 먼저 다가오셨습니다! 저에게... 그런... 그런 요구들을 하셨습니다! 제가 거부할 수 없도록... 교묘하게...! 주인님의 몸이 불편하시니, 제가 대신... 봉사해야 한다고... 그런 식으로...!"
그의 말은 엘라라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었다. 그는 엘라라가 이 모든 상황을 주도했으며, 자신은 그저 마님의 유혹과 어쩌면 암묵적인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그의 시선은 당신과 엘라라 사이를 불안하게 오갔다.
"주인님께서 보신... 그... 그 모습들도 전부...! 마님께서 원하신 것입니다! 저를 그렇게 불러달라고... 때려달라고... 모욕해 달라고... 심지어... 아까 그... 오줌까지도...! 전부 마님께서 간청하신 일입니다! 저는 그저... 마님의 만족을 위해...!"
하인은 필사적이었다. 그의 검은 피부 위에는 여전히 엘라라의 형광색 립스틱 자국이 섬뜩할 정도로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방금 전까지 엘라라의 얼굴을 짓밟고 그녀의 입에 발가락을 물리던 그의 발에도, 엘라라의 입술이 남긴 고리 모양의 립스틱 자국이 증거처럼 남아 있었다.
"아니야! 거짓말 마, 이 더러운 노예 새끼야! 네가... 네가 날 이렇게 만들었잖아! 내가 언제 너 따위한테 그런 걸 요구했다고!"
엘라라가 울부짖으며 하인에게 달려들 듯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다시 주저앉았다. 그녀는 분노와 공포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닥치십시오, 마님! 주인님 앞에서 감히...! 모든 것은 마님의 음탕한 욕망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죄가 없습니다! 저는 그저... 도구였을 뿐입니다!"
하인 역시 물러서지 않고 맞받아쳤다. 복종 마법 때문에 직접적인 위해는 가할 수 없지만, 언어적인 공격과 책임 전가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손가락질하며, 서로를 탓하고, 자신은 결백하다고 외쳐댔다. 방금 전까지 하나의 몸처럼 뒤엉켜 쾌락을 탐닉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오직 살아남기 위한 본능적인 자기방어와 추악한 책임 전가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방 안의 공기는 여전히 뜨겁고 질척였지만, 이제 그 열기는 쾌락의 잔재가 아닌, 서로를 향한 증오와 살기 위한 발악, 그리고 당신의 차가운 분노가 뒤섞여 만들어내는 지옥 같은 온도였다. 당신은 여전히 리볼버를 든 손을 내리지 않았다. 떨림은 조금 잦아들었지만, 총구는 흔들림 없이 그들을 향하고 있었다. 당신의 침묵 속에서, 두 사람의 필사적인 변명과 서로를 향한 비난만이 공허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리볼버의 묵직한 무게감이 손바닥에서 사라지자, 역설적으로 당신의 머릿속은 차갑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온몸을 휘감았던 뜨거운 분노와 배신감의 불길 대신, 싸늘한 이성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당신은 더 이상 그들의 추악한 변명이나 눈물에 휘둘릴 생각이 없었다. 진실, 가감 없는 진실만이 필요했다.
당신은 바닥에 널브러진 두 사람에게 더 이상 시선조차 주지 않고, 침실 한쪽에 놓인 화려한 금빛 새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새장 안에는 잘 훈련된 흰색 전서구 한 마리가 당신의 기척을 느끼고 푸드득 날갯짓을 하며 반가운 듯 구구 소리를 냈다. 다행히, 당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도 다른 하인들이 이 작은 생명체를 꼬박꼬박 돌봐준 모양이었다.
당신은 작은 쪽지에 짧고 명료하게 지시 사항을 적었다. '사이코메트리스트, 즉시 저택으로.' 그리고 비둘기의 다리에 단단히 묶어 창밖으로 날려 보냈다. 하얀 새는 익숙하다는 듯 힘차게 날갯짓하며 잿빛 하늘 속으로 사라졌다. 이 지긋지긋한 시골 마을의 중심가에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독립(사실상의 추방이었지만)을 기념하며 '선물'로 보내준 가문 전속 사이코메트리 능력자가 살고 있었다. 그의 능력은 본가의 일급 능력자들에 비하면 부족할지 몰라도, 이런 시골에서는 차고 넘치는 것이었다.
전서구를 보낸 당신은 몸을 돌려, 여전히 바닥에서 서로를 헐뜯고 있는 엘라라와 하인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당신은 아무 말 없이, 복종 마법이 걸린 하인을 향해 정신으로 명령을 내렸다. '움직이지 마라.' 하인의 몸이 마치 보이지 않는 사슬에 묶인 듯 그 자리에서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눈에는 다시 한번 공포와 함께, 마법의 강제력에 대한 체념이 어렸다.
그리고 당신은 엘라라를 내려다보았다. 눈물과 땀, 번진 화장으로 얼룩진 얼굴, 싸구려 천 조각 아래 드러난 온갖 추악한 흔적들, 공포와 애원이 뒤섞인 그녀의 눈동자... 복잡한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연민, 분노, 배신감, 그리고 어쩌면 아주 희미한, 과거에 대한 미련까지도. 당신은 그 감정들을 억누르며 차갑게 돌아섰다. 지금은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택의 현관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사이코메트리 능력자가 도착한 것이다. 당신은 이미 저택의 응접실 중앙, 가장 상석의 푹신한 안락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당신의 앞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 상태의 흑인 하인이 무력하게 무릎을 꿇고 있었고, 그 옆으로는 다른 하인들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도열해 있었다. 그리고 엘라라. 그녀에게는 누군가 급하게 홑겹의 로브를 걸쳐주었지만, 여전히 맨발에 헝클어진 머리, 초점 없는 눈동자로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신의 의자 뒤편에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안전'을 위해 붙여준 세 명의 가문 소속 강화 능력자들이 조금의 미동도 없이 버티고 서 있었다. 그들은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오직 당신의 명령만을 목숨보다 중히 여기는 존재들이었다.
응접실 문이 열리고, 중년의 사이코메트리 능력자가 숨을 헐떡이며 들어섰다. 그는 당신을 보자마자 쓰고 있던 중절모를 벗어 가슴에 대고는 허리가 부러져라 고개를 숙였다.
"부르셨습니까, 도련님!"
그의 목소리는 다급함과 함께 당신에 대한 깊은 경외심(혹은 두려움)을 담고 있었다. 당신은 턱짓으로 그에게 다가오라는 신호를 보내며, 귀찮다는 듯 대충 손을 휘저었다.
"선생이 해줘야 할 일이 있소."
당신의 차가운 목소리에 응접실의 공기가 더욱 싸늘하게 얼어붙는 듯했다. 당신은 방 안에 있는 존재들을 싸잡아 가리키며 말했다. 처음에는 엘라라와 강화 능력자들까지 포함하여 '이것들'이라는 모멸적인 표현을 사용했다가, 곧이어 대상을 명확히 했다.
"저기 저 하인들과 강화 능력자들의 최근 반년 치 기억, 그리고... 내 아내와 저기 저 검둥이 노예의 지난 3년 치 기억을 전부 읽어주시오."
'3년'이라는 말에 사이코메트리 능력자의 눈썹이 순간적으로 꿈틀거렸다. 그의 능력으로 3년이라는 긴 시간의 기억을, 그것도 두 사람의 기억을 상세히 읽는 것은 분명 버거운 작업일 터였다. 사실상 이런 시골 마을로 '좌천'된 그에게는 부담스러운 요구였다. 가문의 본가에는 그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자들이 널려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잠시 망설였을 뿐, 이내 하얀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다시 한번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도련님. 모든 것을 상세히 기록하여 서면으로 보고드리겠습니다."
"좋소. 그럼 시작하시오."
당신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응접실에는 이제 사이코메트리 능력자와 그의 작업을 보조 및 감시할 강화 능력자들, 그리고 기억을 읽힐 대상들만이 남게 되었다. 당신은 무거운 오크 문을 닫고 나와, 텅 빈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끼이익... 쿵.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당신은 벽에 등을 기대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씁쓸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대체 내가 뭘 어쨌다고...'
과거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시골 깡촌, 폭력적인 아버지와 무기력한 어머니 밑에서 주눅 들어 살아가던 작고 연약한 소녀, 엘라라. 그녀의 슬픈 눈매와 주근깨 가득한 얼굴에 처음 마음이 끌렸던 순간. 당신은 그녀를 그 지옥 같은 환경에서 '구해주었다'. 당신의 가문이 실질적으로 소유한, 경제적으로 완벽하게 종속된 그 마을에서 그녀를 데리고 나왔다. 그것은 강제가 아니었다. 당신은 그녀에게 선택권을 주었고, 그녀는 기꺼이 당신의 손을 잡았다.
그 선택의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당신은 명문가의 셋째 아들로서 누릴 수 있었던 무수한 권리와 부를 포기해야 했다. 아버지와 가문의 다른 구성원들은 노골적으로 못마땅해하며 짜증 섞인 질타를 퍼부었다. '고작 그런 출신의 계집 하나 때문에 가문의 명예에 먹칠을 하느냐', '네게 예정된 더 큰 부와 권력을 걷어차는 것이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당신은 사실상 가문에서 내쫓기듯, 이 한적한 시골 마을의 관리인이라는 명목 아래 '독립'해야 했다. 원래대로라면 당신은 이곳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더 큰 영지와 막대한 부를 물려받을 예정이었다. 봉건제는 폐지된 지 오래라지만, 이 마을은 여전히 당신 가문의 경제적 식민지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그리고 엘라라 역시, 그 '식민지' 출신의, 어찌 보면 가문의 소유물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당신은 그런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 그녀에게 최고의 저택을 주고, 하인들을 붙여주고, 그녀가 불편한 다리 때문에 힘들어할까 봐 건장한 남자 하인까지 직접 골라 선물했다. 그녀의 슬픈 눈에 다시는 눈물이 고이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이것인가? 당신의 침대에서, 당신이 선물한 하인과 짐승처럼 교미하며 당신을 철저히 배신하는 모습?
당신은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혀 들어갔다. 사이코메트리 보고서가 나오기 전까지는 섣부른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떤 진실이 밝혀지든, 이미 당신과 엘라라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같았다. 차가운 복도의 공기가 유난히 폐부를 시리게 파고들었다.
***
별채의 아늑한 서재, 부드러운 아침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먼지 입자들을 반짝이게 했다. 당신은 푹신한 가죽 소파에 앉아 갓 내린 커피의 향을 음미하며 신문을 넘기고 있었다. 며칠 전의 충격적인 사건 이후, 당신은 본채 출입을 삼가고 이곳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다스리려 애썼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적막을 깼다.
"들어오시오."
당신이 낮게 말하자,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예상했던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이코메트리 능력자였다. 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며칠 밤낮을 꼬박 새운 듯 눈 밑은 퀭했고, 얼굴은 기름기와 피로로 번들거렸으며, 걸음걸이조차 불안정해 보였다. 그는 연신 이마와 목덜미의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당신에게 다가와, 테이블 위에 두툼한 서류 뭉치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 두께만으로도 작업의 강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도련님, 요청하신 보고서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고, 숨소리마저 거칠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힘든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안도감과 함께, 자신이 알아낸 정보의 무게에 대한 일종의 흥분마저 감돌았다.
"수고했소, 선생."
당신은 신문을 내려놓고 보고서 뭉치를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훨씬 방대한 양이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던 모양이군."
사이코메트리 능력자는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도련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예상보다 훨씬 수월했습니다. 엘라라 마님과 그 하인은... 정신적인 방어랄 것이 거의 전무했습니다. 마치 활짝 열린 책과 같았다고 할까요."
그럴 만도 했다. 엘라라는 시골 깡촌 출신으로, 당신의 아내가 된 이후에도 지식을 쌓거나 세상 물정에 관심을 두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녀의 세상은 여전히 좁고 단순했다. 흑인 하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노예 신분으로 살아오면서 정신 방벽 같은 고등 기술을 접할 기회는 전무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두 사람 모두 '무지'했기에 사이코메트리 능력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던 셈이다.
"강화 능력자들은 어떻소? 협조는 잘 하던가?"
"네, 도련님. 세 분 모두 가문에 대한 충성심이 워낙 투철하셔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제게 정신을 개방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작업이 훨씬 용이했습니다."
당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강화 능력자들은 비록 당신보다 아버지를 더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긴 했지만, 당신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당신에게 닥칠 위험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이 사이코메트리에게 협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신은 서랍에서 두툼한 금화 주머니를 꺼내 사이코메트리 능력자에게 건넸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액수였을 것이다.
"이번 일에 대한 특별 수당이오. 선생의 노고에 비하면 약소하지만 받아두시오. 이제 집으로 돌아가 푹 쉬도록 하시오. 그리고 오늘 여기서 보고 들은 것은... 전부 잊는 것이 좋을 거요."
"아, 아... 도련님! 이... 이렇게까지...! 감사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절대!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사이코메트리 능력자는 거의 울먹이며 금화 주머니를 품 안에 소중히 넣고는 몇 번이고 허리를 숙여 감사 인사를 전한 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서재를 나섰다.
이제 당신과 테이블 위의 방대한 보고서만이 남았다. 당신은 깊게 심호흡을 하고, 가장 위에 놓인 첫 장을 집어 들었다. 거기에는 모든 진실이, 당신이 알고 싶었던, 그리고 어쩌면 알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모든 것이 담겨 있을 터였다.
**보고서 요약: 엘라라와 흑인 하인 '카이'의 관계 및 관련자들에 대한 사이코메트리 분석 결과**
**(1) 관계의 시작: 엘라라의 적극적인 유혹**
보고서는 명백히 지목하고 있었다. 이 끔찍한 배신의 시작은 엘라라였다. 하인 '카이'가 저택에 온 지 불과 몇 달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엘라라는 그에게 미묘한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도움을 요청하는 척하며 그의 건장한 몸에 의지하거나, 옷이 흐트러진 모습을 일부러 보이는 식이었다. 카이는 처음에는 복종 마법과 노예라는 자신의 신분을 의식하여 거리를 두려 했으나, 엘라라의 유혹은 점점 더 노골적이고 대담해졌다.
다리가 불편하다는 약점을 오히려 무기 삼아, 그녀는 카이에게 신체 접촉을 자연스럽게 유도했다. 목욕 시중을 들게 하거나, 침대에 옮겨 달라고 부탁하며 그의 품에 안기는 식이었다. 결정적으로 관계가 진전된 계기는, 엘라라가 카이에게 '당신은 단순한 하인이 아니라, 나의 기사이며, 나를 지켜주고 위로해 줄 유일한 사람'이라는 식의 감언이설을 속삭이며 그의 경계심을 무너뜨린 순간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불행한 과거와 외로움을 토로하며 카이의 동정심을 자극했고, 동시에 그의 남성성을 교묘하게 부추겼다.
**(2) 카이의 동조와 관계의 심화: 단순한 유혹 이상**
엘라라가 시작이었지만, 카이 역시 결코 수동적인 피해자만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복종 마법과 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망설였지만, 젊고 아름다운 안주인의 지속적인 유혹과 교묘한 심리 조종 앞에서 그의 의지는 오래가지 못했다. 특히, 엘라라가 '주인(당신)은 당신 몸에 관심이 없고, 자신을 만족시켜주지 못한다'는 식의 발언을 하며 당신을 깎아내리고 카이를 치켜세우자, 그는 점차 자신이 엘라라에게 필요한 존재이며, 심지어 당신보다 더 우월한 남성이라는 착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결국 카이는 엘라라의 유혹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요구에 응하는 것을 넘어, 그 역시 엘라라에게 성적인 요구를 하기 시작했고, 관계는 급속도로 깊어졌다. 두 사람은 당신의 눈을 피해 저택 곳곳에서 밀회를 즐겼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대담하고 변태적인 행위에 빠져들었다. 보고서에는 당신이 목격했던 그날의 끔찍한 장면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왔으며, 심지어 그보다 더 심한 행위들도 서슴지 않았다는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그들의 관계는 단순한 육체적 탐닉을 넘어, 서로의 어두운 욕망을 채워주는 도착적인 공생 관계에 가까웠다.
**(3) 다른 하인들의 침묵: 방관인가, 공모인가?**
그렇다면 다른 하인들은 정말 아무것도 몰랐을까? 보고서는 그 부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완전히 몰랐던 것은 아니다'였다. 저택의 규모에 비해 하인의 수가 많지 않았고, 특히 엘라라의 시중을 드는 하녀들은 안주인의 미묘한 변화나 카이와의 부자연스러운 접촉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침묵했다.
그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첫째, 명백한 물증이 없었다. 두 사람은 매우 교묘하게 밀회를 즐겼기에, 하인들이 목격한 것은 대부분 정황 증거나 의심스러운 분위기 정도였다. 둘째, 안주인과 그녀가 총애하는 하인의 관계에 대해 섣불리 입을 열었다가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 것을 두려워했다. 특히 카이가 당신의 신임을 얻고 엘라라의 최측근처럼 행동하자, 다른 하인들은 그를 건드리기를 꺼렸다. 셋째, 일부 하인들(특히 남성 하인들) 사이에서는 카이에 대한 질투심과 함께, '언젠가 저놈도 끝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식의 방관적인 태도도 존재했다.
결정적으로, 엘라라와 카이는 다른 하인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어떠한 초자연적인 수단이나 특별한 계략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단지 인간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철저한 비밀 유지와 대담함으로 자신들의 관계를 은폐했을 뿐이다. 다른 하인들은 명백한 공범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의 침묵과 방관이 이 끔찍한 배신을 가능하게 한 토양이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4) 강화 능력자들의 무관심: 임무 외의 일**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세 명의 강화 능력자들은 어떨까? 보고서는 그들이 엘라라와 카이의 관계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들의 주된 임무는 당신의 신변 보호와 저택의 외부 경비였기 때문에, 안주인의 사생활이나 하인들 간의 관계 같은 '내부적인' 문제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또한, 그들은 일반 하인들과 분리되어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저택 내부의 미묘한 분위기 변화를 감지하기 어려웠다. 설령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하더라도, 그것이 당신의 안전이나 가문의 이익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 한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보고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들에게 엘라라의 '정절' 문제는 그들의 임무 범위를 벗어난 사소한 문제였을 뿐이다.
**결론: 총체적 배신**
보고서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당신은 깊은 허탈감에 빠졌다. 진실은 당신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추악하고 잔혹했다. 그것은 단순히 한쪽의 유혹이나 다른 한쪽의 일탈이 아니었다. 엘라라의 교활한 유혹과 뒤틀린 욕망, 카이의 노예 근성 속에 숨겨진 오만함과 성적 탐욕, 그리고 다른 하인들의 비겁한 침묵과 방관이 한데 얽혀 만들어낸 총체적인 배신극이었다. 당신은 이 모든 관계의 중심에서 철저히 기만당하고 조롱당한 어릿광대에 불과했다.
당신은 차갑게 식어버린 커피잔을 들어 의미 없이 입술에 가져갔다. 쓴맛만이 입안에 맴돌았다. 이제 당신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이 추악한 진실 앞에서,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엘라라를, 카이를,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이 저택의 모든 것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분노와 슬픔, 그리고 차가운 결단 사이에서 당신의 마음은 무겁게 요동치고 있었다.
***
스러지는 오후 햇살이 응접실의 긴 창을 통해 비스듬히 들어와, 바닥에 꿇어앉은 이들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공기는 먼지와 긴장감, 그리고 희미한 공포의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며칠 전의 소란 이후 처음으로, 당신은 저택의 모든 하인들과 엘라라를 응접실에 소집했다.
당신은 여전히 상석의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표정은 읽을 수 없을 만큼 차갑게 굳어 있었고, 눈빛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처럼 고요했다. 당신의 앞에는, 며칠 전과 마찬가지로 알몸 상태의 흑인 하인 카이가 쇠사슬에 묶인 채 무릎 꿇고 있었고, 그 옆으로 다른 모든 하인들이 고개를 조아린 채 떨고 있었다. 세 명의 강화 능력자들은 여전히 당신의 등 뒤에서 미동도 없이 서 있었지만, 그들의 분위기 역시 평소보다 훨씬 엄숙했다.
그리고 엘라라. 그녀는 하녀들의 부축을 받아 의자에 앉아 있었다. 값비싼 비단 드레스를 입고 있었지만, 창백한 얼굴과 공허한 눈동자는 그녀의 지위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다리는 여전히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비록 카이와의 끔찍한 관계 속에서 신경이 일부 회복되어 간신히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지언정, 여전히 걷거나 서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녀는 당신의 시선을 피하며, 떨리는 손으로 드레스 자락만 움켜쥐고 있었다.
당신은 손에 들린 두툼한 보고서를 테이블 위에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그 소리에 하인들이 움찔하며 더욱 몸을 낮췄다.
"모두 들었을 것이다. 내가 왜 오늘 이 자리를 마련했는지."
당신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감은 응접실 안의 모든 사람들을 짓눌렀다.
"이 저택에서, 나의 집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추악하고 역겨운 일이 벌어졌다. 나의 명예는 더럽혀졌고, 나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당신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신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당신은 먼저 다른 하인들을 향해 싸늘한 시선을 던졌다.
"너희들은 무엇을 했는가? 너희들의 눈과 귀는 장식이었는가? 아니면 알고도 침묵하며 이 더러운 배신을 방관했는가?"
하인들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바닥만 바라보며 부들부들 떨었다. 그들의 침묵은 비겁한 긍정처럼 느껴졌다.
"너희들의 무능과 방관 역시 죄다. 주인의 명예를 지키지 못한 죄, 불의를 보고도 눈감은 죄. 따라서 너희 모두에게는 한 달 치 급료 몰수와 함께, 앞으로 석 달간 두 배의 노역을 명한다. 불만 있는 자가 있는가?"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감히 불만을 표할 권리조차 없었다. 당신의 처벌은 그들의 죄에 비하면 오히려 관대한 편이었지만, 당신의 싸늘한 분노 앞에서 그들은 그저 감사해야 할 뿐이었다.
다음으로, 당신은 당신 뒤에 서 있는 강화 능력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여전히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당신의 시선을 느끼고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자네들은 어떤가? 나의 안전과 가문의 이익만을 생각했는가? 내 집 안에서 벌어지는 추악한 일들이 정녕 자네들의 임무와 무관하다 생각했는가?"
강화 능력자 중 가장 연장자인 듯한 남자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고개를 숙였다.
"도련님, 저희의 불찰입니다. 안주인의 안위까지 살피는 것이 마땅했으나, 저희의 판단이 짧았습니다. 어떠한 처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들의 임무는 당신의 신변 보호에 국한되었기에 직접적인 책임은 적다고 할 수 있었지만, 당신은 그들의 무관심 역시 용납할 수 없었다. 당신의 권위는 곧 가문의 권위였고, 그들은 그것을 간과했다.
"자네들의 충성심은 의심하지 않네. 하지만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할 것이다. 세 사람 모두에게 감봉 3개월을 명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저택 내부의 모든 일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사소한 일이라도 나에게 직접 보고하도록. 알겠는가?"
"명심하겠습니다, 도련님!"
세 명의 강화 능력자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당신은 다시 몸을 돌려, 이제 당신 앞에 남은 두 사람, 카이와 엘라라를 차례로 응시했다.
먼저 카이였다. 그는 쇠사슬에 묶인 채 바닥에 엎드려 당신의 발치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그의 몸은 공포로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었다.
"카이."
당신이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는 더욱 몸을 움츠렸다.
"너는 내가 베푼 은혜를 배신으로 갚았다. 나의 아내를 더럽혔고, 나의 집을 욕보였다. 복종 마법에 걸려 있었다는 변명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너는 너의 비천한 욕망에 충실했을 뿐이다."
당신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동정심도 없었다. 그는 당신에게 용서받을 가치가 없는 존재였다.
"너의 죄는 죽어 마땅하나, 나는 자비롭게도 네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카이의 눈에 순간 희망의 빛이 어리는 듯했지만, 당신의 다음 말에 그 빛은 곧 절망으로 바뀌었다.
"너는 거세될 것이다. 그리고 남은 평생을 이 저택의 가장 더럽고 힘든 일을 도맡아 하게 될 것이다. 매일 매 순간 네가 저지른 죄의 대가를 몸으로 느끼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것이 너에게 내려지는 나의 판결이다."
"으... 으아아아악! 안됩니다! 주인님! 제발... 제발 자비를...!"
카이가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쳤지만, 강화 능력자들이 즉시 그를 제압했다. 그의 절규는 응접실 안에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당신은 그의 비명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마지막으로 엘라라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당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공포와 함께, 당신이 자신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불안감이 가득했다. 당신은 그녀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당신의 발걸음 소리가 그녀에게는 사형 선고처럼 들렸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그녀의 앞에 섰다. 그리고 당신의 행동은 모두의 예상을 벗어났다. 당신은 부드럽게 한쪽 무릎을 꿇고, 떨고 있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엘라라의 눈이 놀람으로 커졌다.
"엘라라."
당신의 목소리는 이전과는 달리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깊은 슬픔과 실망감이 배어 있었다.
"나는... 당신을 여전히 사랑하오."
그 말에 엘라라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당신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당신이 저지른 죄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오. 당신은 나를 배신했고, 우리의 신뢰를 산산조각 냈소."
당신은 잡은 그녀의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의 가느다란 뼈마디가 느껴졌다.
"당신을 내 아내의 자리에서 내치지는 않겠소. 당신은 여전히 나의 아내이며, 이 저택의 안주인이오. 이것이 내가 당신을 사랑하기에 베푸는 마지막 자비요."
엘라라의 얼굴에 안도감이 스치는 듯했지만, 그것은 잠시였다.
"하지만 당신은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하오. 당신은 앞으로 이 별채 안에서만 생활하게 될 것이오. 당신의 모든 사치품은 압수될 것이며, 당신을 시중들 하녀는 단 한 명으로 제한될 것이오. 당신은 매일 당신의 죄를 참회하며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하오. 당신이 진심으로 뉘우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일 때까지, 당신에게는 이 저택의 안주인으로서 어떠한 권한도 주어지지 않을 것이오. 심지어 나를 만나는 것조차 허락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오."
이것은 사실상의 유폐 선고였다. 그녀를 아내의 지위에 두기는 하지만, 그녀의 모든 자유와 권리를 박탈하는 잔인한 형벌이었다. 그녀는 살아있는 유령처럼 이 저택의 별채에 갇혀 살아가야 할 운명이었다.
"조... 조이... 아니, 허니... 제발... 잘못했어요...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 제발 용서해주세요... 네?"
엘라라가 애원하며 당신의 손을 잡았지만, 당신은 차갑게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당신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그녀를 향한 사랑이 남아 있었지만, 그 사랑만으로는 이 깊은 배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당신의 권위, 가문의 명예, 그리고 당신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그녀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당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응접실 안의 모든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나의 판결은 이것으로 끝이다.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맡은 바 책임을 다하도록. 그리고 명심하라. 이 저택에서는 오직 나의 뜻만이 유일한 법이다. 다시는 오늘과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당신의 선언에 모두가 깊이 고개를 숙였다. 이 시골 마을에서, 당신은 실질적인 왕이었다. 당신의 말은 곧 법이었고, 당신의 분노는 모두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었다. 비록 당신이 본가에서 밀려난 처지일지라도, 당신의 혈통과 당신이 가진 힘은 여전히 절대적이었다.
당신은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응접실을 나섰다. 카이의 처절한 비명 소리와 엘라라의 흐느낌 소리가 등 뒤에서 희미하게 들려왔지만, 당신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당신의 마음은 여전히 복잡했지만, 당신은 해야 할 일을 했다. 이제 이 상처를 어떻게 봉합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시간이었다. 사랑과 배신, 분노와 연민이 뒤섞인 이 지독한 현실 속에서, 당신은 당신의 길을 찾아야만 했다.
***
시간은 상처를 희미하게 만들 뿐,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별채에 유폐된 엘라라의 삶은 단조롭고 적막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계절의 변화만이 유일한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지표였다.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창가에 놓인 낡은 흔들의자에 앉아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거나, 허락된 몇 권의 책을 뒤적이며 보냈다. 시중드는 하녀는 최소한의 용무 외에는 말을 걸지 않았고, 방 안의 가구들은 그녀의 지위와는 어울리지 않게 소박하고 낡았다. 화려했던 장신구와 드레스는 모두 사라지고, 몸에는 거친 무명 로브만이 걸쳐져 있었다.
당신은 결심했다. 더 이상 과거의 유약하고 낭만적이었던 남편으로 남지 않기로. 이 시대의 다른 평범한 남편들처럼, 아내를 소유물처럼 다루고, 필요할 때 힘으로 욕구를 채우는 존재가 되기로. 그것이 당신의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하고, 무너진 권위를 다시 세우는 유일한 길처럼 느껴졌다. 당신은 엘라라를 여전히 사랑했지만, 그 사랑은 이제 분노와 배신감, 그리고 소유욕과 뒤섞여 기형적인 형태로 변질되어 있었다.
그날 저녁, 당신은 술기운을 빌려 별채의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섰다. 엘라라는 창밖을 보고 있다가 당신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화들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그녀의 눈에는 익숙한 공포가 어렸다.
"일어나."
당신의 목소리는 차갑고 명령적이었다. 엘라라는 주저하며 하녀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당신은 하녀를 손짓으로 물러나게 했다.
"네 힘으로. 이제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텐데."
당신은 그녀의 다리가 카이와의 '관계'로 인해 약간의 움직임을 회복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잔인한 현실이었다. 그녀는 벽을 짚고 힘겹게 일어섰지만, 여전히 제대로 서 있지는 못하고 비틀거렸다. 당신은 다가가 그녀의 팔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그녀의 가녀린 팔목이 당신의 손아귀 안에서 부들부들 떨렸다.
"이제부터 내가 원할 때, 너는 내 요구에 응해야 한다. 알겠나?"
엘라라는 대답 대신 고개를 숙인 채 작게 흐느꼈다. 그 모습이 당신 안의 뒤틀린 분노를 더욱 자극했다. 당신은 그녀를 침대가 있는 쪽으로 거의 끌고 가다시피 했다. 그녀의 다리가 힘없이 질질 끌렸다. 당신은 그녀를 침대 위에 거칠게 던졌다. 낡은 매트리스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이래야 해. 이게 당연한 거야.' 당신은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하지만 당신의 심장은 어색함과 죄책감으로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당신은 그녀 위에 올라탔다. 가까이서 본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슬픔과 공포로 얼룩져 있었다. 당신은 그녀의 턱을 거칠게 붙잡고 강제로 고개를 들게 했다. 그리고 입술을 포갰다.
그것은 당신의 첫 키스였다. 당신이 오직 엘라라를 위해 아껴두었던 순결한 행위.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도 달랐다. 어색하고 서툴렀다.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저 그녀의 입술을 물고 더듬을 뿐이었다. 엘라라의 입술은 차갑고 미동도 없었다.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뺨을 적셨다. 당신은 그녀의 눈물 맛과 당신 자신의 서툰 움직임 속에서 깊은 수치심을 느꼈다.
당신은 키스를 멈추고 그녀의 로브를 거칠게 벗겨냈다. 희미한 달빛 아래 드러난 그녀의 몸. 한때 당신이 경탄했던 백옥 같은 피부는 여전했지만, 가슴은... 카이의 거친 손길과 발길질에 의해 예전의 아름다운 모양을 잃고 보기 흉하게 일그러지고 처져 있었다. 보랏빛 멍 자국은 희미해졌지만, 그 형태는 돌이킬 수 없어 보였다.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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