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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차이가 싫은 대만 원정대 벙 -3일차 (태풍)
[시리즈] 대만벙 · 샹차이가 싫은 대만원정대 벙 후기 -0일차 · 샹차이가 싫은 대만 원정대 벙 후기 -1일차(전야제) · 샹차이가 싫은 대만 원정대 벙 -2일차 (첫 라이딩) 좆됐다. 다들 어디갔지 정신차리고 보니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전화해보려 폰을 꺼내보니 통화권 이탈 바람은 점점 세지고 경사는 가파르다. 어느샌가 3천미터 까지 올라왔고 200m를 더 올라가야한다 위에서 벌벌떨고있을 이노리땅한테 빨리 우의를 가져다줘야한다. 나머지 둘은 어디있을까 내앞? 내뒤? 모르겠다 일단 올라갈 수 밖에 https://www.youtube.com/watch?v=2E_qlyy5N-I아침이 밝았다 태풍이 오기전에 얼른 우링을 넘어가야 하기에 새벽 6시에 출발 숙소 아래의 주인 아주머니가 하는 식당은 아침부터 온 동네사람들이 다 모여있었다 대충 편의점에서 칼로리를 쑤셔박고 출발 오늘 가야하는길은 해발 3200m 정상의 우링을 지나서 일월담 호수까지 가는 160km의 여정이다. 현재고도는 약 1000m 근데 추정 상승고도가 3000m가 넘는다 그말인 즉슨 올라갔다 내려갔다 개지랄 한다는것 우리가 머무르던 마을은 배추? 같은걸 재배하는곳 같다 아침 일찍부터 다들 트럭타고 밭으로 향한다 첫번째 기점, 리산으로 가는길은 약 60km 얕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 이어진다 어느샌가 고도표를 보면 2000m가 넘어있곤 한다 다행히 비는 많이 오지않았고 태풍이 온다는게 거짓말 처럼 바람도 불지않았다 구름에 많이 가려져있지만 풍경이 멋졌다 전날부터 무릎 상태가 안좋던 이노리땅 농담으로 히치하이킹 하라고 몇번 말했다 멈춰서 쉬는데 차가 오길래 'ㅋㅋ 님 한번 태워달라고 해보셈ㅋㅋ' 이라고 했는데 진짜 태워주더라 씨발이게 왜 됨? 하지만 이노리땅은 우링정상은 커녕 리산도 못가고 15분 거리의 우링농장이라는곳에서 버려졌다 그 우링이 우링이랑은 발음이 다르다나 뭐라나 어쩐지 그 먼곳까지 태워다줄리가.... 가는동안 자주 버스가 보이길래 마을 주민만 마주치면 리산 가는 버스가 있냐고 물어보는데 다 오후 넘어서야 있다고 한다 이 시골 골짜기에 사람이 사는것도 신기한데 버스가 다닌다니 해발 1500m가 넘는데? 리산에 가기전에 편의점에서 휴식 편의점 풍경이 이상하다 이새끼 머함 ㅆㅂ 하 이새끼들은 머함 어처피 곧 끊어졌다고 한다 리산으로 가는길은 엄청난 오르막 보다는 골짜기를 따라서 만들어진 마을옆을 쭉 따라갔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살았다 리산 입구에서 잘못된 선택으로 미친고각 20퍼센트 절벽길로 왔다 ㅋㅋ 죄송요 ㅋ 리산에서의 식사 뭐파는지도 모르고 얼만지도 모르는데 일단 배고프니까 들어가서 아무거나 시키고 흡입했다 역시 본토의 볶음밥은 보법이 다르다. 주인아저씨, 왓다갓다 하는 사람들을 붙잡고서 여기서 우링가는 버스가 있나요? 하니까 진짜 뭔 개소리인가 하는 표정으로 메이요 메이요 하더라 이노리땅은 이미 죽기직전 이대로 대려가면 우링을 밤늦게 통과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목표로 한 르웨탄은 물론 못가고 너무 위험할거다. 어떻게든 돈을 내고 택시를 타건 해서 우링 정상에 보내놔야한다. 식사를 하고 편의점에서 먹을거리를 챙긴다 앞으로 우링 정상을 넘어갈 때까지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든든하게 챙겼다 그러다 편의점 앞에 쌓여있는 박스를 봤다 'ㅋㅋ 님아 히치하이킹 할거면 그래도 박스에 뭐라도 써서 들고있어야하는거 아님?' ? ??? ???????? 뭐야 씨발 왜 진짜 또 됨? 아무튼 따거덕분에 이노리땅은 무사히 우링 정상에 도착했다. 이제부턴 영웅호걸들의 시간이다 우링으로 가는길은 두개의 파트로 나뉜다 1. 리산 ~ 무서운터널 2. 무서운 터널 ~ 우링 정상 터널까지 가는길은 비가 슬슬 내리기 시작하고 해발 2천미터가 넘으니 추워졌다 차도 많이 다니지 않는길이고 곳곳에는 지진의 여파로 산사태가 일어난 곳이 많았다 잠시 쉬는 도중 이노리땅한테 전화가 왔다 우링 정상에 도착했는데 오는길이 개좆되니 조심하라는것 그리고 정상에 아무것도 없어서 비도 못피하고 ㅈㄴ춥다는거다 여기서부터 우링까진 20km 상승은 약 1500m가 남았다 거의 3시간은 족히 걸릴듯한데 그때까지 우비도 없이 버텨야한다니, 차라리 우리가 나은거같다 어쩌저찌 무서운 터널에 도착 정말 추웠다 태풍 영향권에 들어온건지 바람도 강하고 비도 많이 온다. 구글 지도상에는 이 터널을 건너가면 작은 가게 같은게 있는것처럼 보이니 그곳에서 먹을거랑 우비를 잔뜩 사겠다는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그딴건 없었다 진짜 뒤질거같아서 히치하이킹 할때 썻던 박스를 꺼내서 옷 안에 쑤셔넣었다. 여기서부터 정상까지 10km 한시간이다 한시간만 버티면 된다 하지만 터널 이후는 진짜 본격업힐이었다 평균 8퍼센트 간간히 15퍼센트 정도의 절벽 지금까지 타고온 다리의 피로와 해발 고도가 2000m를 넘기때문에 엄청난 추위 그리고 태풍의 비바람 많이 힘들었다 특히 2500m를 넘어가기 시작하니 고산병인지 뭔지 머리도 아프고 숨이 많이 찼다. 난 너무 추워서 뭔가 입을게 필요했다. 이상태로 올라가는건 그렇다쳐도 내려갈때 너무 힘들거다. 구글지도를 켜보니 전방 3km지점에 우링 관광안내센터, 연구소 등이 있다 하지만 이미 폐점시간을 지났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나머지 두명을 뒤에 두고 빠르게 올라가봤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전부 불이 꺼져있다. 건물 주변을 빙빙돌고있으니 어떤 도어락같은게 달린 문을 발견 혹시 몰라서 두드려보니 누군가가 나왔다. 아마 그 안내센터에서 상주하면서 관리하시는분 같다 '어... 우리 쫌 위험하다. 우링정상으로 가는중인데, 너무 춥다. 혹시 우비같은걸 쫌 살수있을까?' 하니까 일단 들어오라고 하신다. 다른 사람들한테도 전화로 오라 하려했지만 전화가 되지않았다 주인 아주머니는 영어를 잘하셨다. 우비좀 사고싶다니까 2개를 꺼내주셨고 안입는 셔츠랑 수건, 핫팩 3개, 뜨거운물 까지 챙겨주셨다 얼마냐고 물어보니 '돈은 필요없다. 대신 나중에 너네나라에서 어떤 외국인이 도와달라고 하면 그때 도와줘라' 라고 하셨다 정말 위험한 순간에 큰 도움을 받아 감동이었다. 어디까지 가냐고 물어보길래 '아ㅋ 우링 넘어서 르웨탄 호수까지 가요 ㅋ' 하니까 존나놀라서 미쳤나고 어두워서 못간다 태풍오는데 거까지 어케가냐 걍 니친구들 다 불러서 여기서 자고가라 라고 하셨다. '아 괜찮습니다 저희 미친사람들이에요' 우비를 한겹더 입고 셔츠도 입고 물건들을 바리바리 챙겨서 다시 정상으로 출발 우링 정상 근처는..... 정말 황천길 같았다 바람때문에 자전거가 휘청거리고 비가 아래에서 올라와 싸대기를 때린다. 다들 어디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인터넷도 안된다. 심지어 도로옆은 바로 까마득한 절벽. 도로는 좁은데 맞은편에선 간간히 존나 큰 트럭이 브레이크도 안잡고 내려온다 이야... 이거 진짜 위험하겠는데....? 자전거를 10년 동안 타고 많은곳을 다니고 많은 경험을 했지만 이번엔 진짜 목숨이 위험할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도 난 지금 옷을 껴입어서 따듯하지만 다른사람들은 엄청 추울거다 위에있는지 아래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얼른 올라가서 이걸 전해줘야한다 그렇게 우링 정상에 도착 다른 사람들은 이미 도착해있었다 내가 전화도 안되고 보이지도 않아서 뒤진줄 알았다는 씨발 아무것도 안보인다 에 실망할 상황이 아니다. 우선 르웨탄까지 가는건 불가능했다 존나추웠거든 2,30km정도 다운힐을 내려가면 칭칭농장이라는 곳이 나오는데 거기가 숙소촌이라고 하니 일단 내려간다 내려가는길은 당연히 존나추웠다 다들 존나힘들고 추웠을꺼다 그래도 서로 힘든걸 알고있으니 웃음을 잃지않고 집중해서 내려간다. 아마 혼자였으면 못내려가지 않았을까 절반정도 내려왔을까 뜬금없이 무슨 불빛이 보인다 의자를 펴놓고 앉아있는 두사람 뭐하냐고 물어보니 사슴벌래를 채집중이라고 한다. 시발 이시간에 이날씨에 여기서...? 라고 생각했지만 그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니였을까 그렇게 계속해서 내려오다보니 점점 따듯해지고 해발 2천미터 지점에서 칭칭농장에 도착 불켜진 아무 숙소나 가서 방을 달라고 했다 4인실 1박 4만원? 씹혜자 심지어 아래 층에는 식당이라 바로 밥도 먹을수있다 다들 꼴이 말이 아니다 그래도 살아남은 나의 승리네? ㅋ 자전거도 실내에 보관할 수 있었다. 다른 숙박객도 있었는데 필리핀 눈나? 동생? 들이었다 인사해주니까 존나 좋아하더라 씻고 나와서 진짜 영웅호걸타임 존나맛있는 훠궈였다 술 한잔 하고싶어서 편의점에가 과자랑 맥주를 샀다. 역시 해발 2천미터인지 과자들이 전부 빵빵레후다 그렇게 방으로 돌아와서 술마시고 기절 아마 혼자였으면 그 터널에서 올라갈 생각을 안했을거다 그래도 다같이 있었으니까 올라갈 수 있었다 내일은 비가 안오면 좋겠네~
작성자 : 쟙쟙이고정닉
역사 속 <적군에게 존경받은> 군인들..jpg
《줄루족 전사들》 1879년 1월 11일부터 7월 4일까지 벌어진 대영제국과 줄루 왕국의 전쟁. 이 전쟁으로 줄루 왕국은 멸망했고 영국령 남아프리카 식민지에 흡수 병합되어 남아프리카 연방의 토대가 되었다. 영국은 끝까지 싸우는 줄루군의 용기에 감동 받아 울룬디(Ulundi)에 줄루족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웠다. 《에르빈 롬멜》 나치 독일의 군인으로 최종 계급은 육군 원수. 속칭 사막의 여우(Wüstenfuchs)라 불린다. 영국군에게 롬멜은 정말로 무섭고 미운 적이지만, 동시에 군인으로서 존경할만한 인물이기도 했다. 당시 영국 수상 처칠이 의회 연설에서 “이 전쟁의 참상과 상관없이 개인적 평가를 해도 된다면 나는 그를 위대한 장군이라고 말하고 싶다”라고 말할 만큼 독일뿐만 아니라 연합군에서도 명장으로 추앙받는 장군이었다.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 1차대전 독일 공군 의 전투기 조종사였다 . 그는 80 회의 공중전 승리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아 그 전쟁의 에이스 중 에이스로 여겨진다 . 속칭 붉은 남작 (Red baron)으로 불린다. 1918년 4월 21일 오전 11시 직후 솜 강 근처에서 치명상을 입은 추격전에서 폐를 관통당해 추락 후 사망했다. 호주 제3비행대 AFC 사령관 데이빗 블레이크 소령은 붉은 남작을 큰 존경심으로 대했으며 군사 장례식을 주관했다. 근처에 주둔하고 있던 협상 함대는 추모 화환을 바쳤는데, 그 중 하나에는 "우리의 용감하고 가치 있는 적에게"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토마스 프랭크 듀런트》 제2차 세계 대전 중 영국군 군인이었고 , 영국 및 영연방 군 에 수여될 수 있는 적에 맞선 용맹에 대한 최고의 상인 빅토리아 십자 훈장을 사후에 받은 영국인이다. 1942년 3월 28일 밤 생나제르 공습당시 소형 군용선박 모터런치 306의 루이스 기관총 사수였는데 추격해 오는 독일군 구축함 재규어 상대로 물러서지 않고 싸우다 전사했다. 듀런트 상사의 용감한 싸움은 독일 장교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이를 전해들은 독일의 오거스터스 뉴먼 중령은 직접 영국군에 훈장수여를 추천했다. 《존 켈번 로슨》 홍콩 전투 중 서부 여단 사령관을 지낸 캐나다 군 장교 . 그는 준장으로, 전투 중 전사한 가장 고위 장교였다. 1941년 12월 19일 오전 10시 홍콩 섬 방어도중 일본군 기관총에 사망한다. 일본군이 도착하여 그의 시신을 발견했을 때, 그들은 그의 용기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군장례를 치렀다. 《이시노 세츠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 가미카제 조종사였다. 오키나와 전투가 한창이던 1945년 4월 11일 기쿠스이 작전 2호에 포함된 2등 비행부사관 이시노 세츠오는 250kg 폭탄이 장착된 제로센을 타고 출격한다. 엄청난 화망을 뚫고 USS 미주리를 겨냥해 접근한다. 대공포화를 피하기 위해 선미에서 배의 우현 쪽으로 날아갔고 상부구조물에 충돌 시키려할때 왼쪽날개가 부러져 갑판위로 추락했다. 세츠오는 즉사했고 미군은 잔해속에서 시신을 발견했다. 미주리 사령관 윌리엄 M. 칼라한 대령은 다음날 아침 조종사를 바다에 매장하는 결정을 내렸다. 시체 위에 임시 일본 해군기를 드리우고, 전통적인 3연발 소총 경례를 포함한 작은 의식이 거행되었다. 그리고 칼라한 대령은 일본 조종사가 보여준 의무, 명예, 희생 정신에 대해 확성기 시스템을 통해 승무원들에게 연설을 했다. 《토미야스 슌스케》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 가미카제 조종사였다. 1945년 5월 14일 오전 6시 57분 구름사이에 숨어 기회를 노리던 그는 맹렬한 대공포화를 피하고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 (CV-6)의 전방 엘리베이터에 충돌했다. 이 공격으로 장교와 병사 14명이 사망하고 68명이 부상당했으며 함재기 8대가 함께 파괴당했다. 대파된 엔터프라이즈는 수리를 위해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나머지 전쟁에서 제외되었다. 엔터프라이즈는 당시 모든 전투에 참여해 훈장 20개를 받은 미해군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당시 배에 탑승한 2급 조선공이었던 노먼 L.자프트의 증언과 전쟁일지에 따르면 1945년 5월 14일 오후 2시 10분 승무원들은 죽은 가미카제 조종사를 바다에서 단순하지만 예의를 갖춰 장례를 치뤄주었다. 《마쓰오 케이우》 태평양 전쟁당시 일본군 잠항정 조종사였다. 1942년 5월 31일~6월 8일 사이에 일어난 시드니 만 공격에서 제 2차 특별공격대의 특수잠함정 정장으로 선발되어 공격을 갔지만 어뢰 발사관이 고장나자 중순양함 <시카고>로 돌진하여 동체충돌로 어뢰를 폭파시키려 했다. 그러나 실패 후 권총으로 자결한다. 6월 9일에 호주해군은 시드니 교외의 록우드 크리머트리아 장례식장에서 일본군의 유체를 해군장으로 치루었다. 시드니에선 적국의 군인을 정중하게 장례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호주해군 사령관이던 제라드 뮤어헤드 굴드 소장은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구리바야시 다다미치》 일본 제국 육군의 군인이다. 최종 계급은 육군 대장. 미해병대 역사상 가장 힘든 전투중 하나인 이오지마 전투를 지휘하였다. 반자이 돌격을 금지시키고 동굴을 이용한 게릴라 방어전술을 구사해 무려 10배 이상의 병력차이와 전함,공중포격 상대로 한달이상을 버텼다. 미해병대 홀랜드 스미스 대장은 전투 직후 이렇게 말했다. “태평양에서 우리가 만난 적을 통틀어 구리바야시는 가장 무서운 적수였다." 그가 이오지마에서 가족들에게 쓴 편지를 바탕으로 2006년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영화로 제작했다. 국가를 떠나서 진짜 용기있게 싸운 군인은 상대방조차 리스펙 하는듯. - dc official App
작성자 : leeloo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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