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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는 도서관 사서의 골뱅이볶음

Nitro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12.08 14:04:47
조회 171 추천 6 댓글 9
														

도서명: 마지, 『퇴근 후 한 잔』, 지콜론북, 2019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소설 ‘태엽 감는 새’에서 “하루의 끝자락에서 마시는 차가운 맥주야말로 삶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인지도 모른다.”라고 열변을 토했습니다. 과연 맥주 애호가다운 발언입니다.


하지만 굳이 맥주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퇴근 후 한 잔 하는 것이 소소한 일상의 행복인 사람은 많습니다. 


인생 최고의 선물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따뜻한 (혹은 시원한) 위안 정도는 된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식탁 위에 덩그러니 놓인 술병과 술잔은 왠지 삭막해 보입니다. 


일상의 행복이라기보다는 알코올 중독자가 떠오르는 풍경입니다. 


하다못해 볶은 땅콩이라도 한 접시 곁들여야 분위기가 부드러워집니다. 


마른 안주가 아니라 갓 튀겨서 바삭바삭한 후라이드 치킨 한 마리 정도면 왕이 부럽지 않습니다. 


그래서 “닭 한 마리로 연회를 벌이는 데 필요한 것은 좋은 포도주 한 병 뿐 It needs only a good bottle of wine for a roast chicken to be transformed into a banquet”이라는, 술과 그럴듯한 안주의 조합을 찬양하는 서양 속담도 있을 정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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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닭을 요리하는데 만만찮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는 사실입니다. 


스마트폰 배달 앱을 눌러 치킨을 주문하기는 쉽지만, 온종일 회사에서 쳇바퀴 굴려 가며 고생한 사람이 퇴근 후에도 배달 음식으로 하루를 마감하기엔 지나치게 레디메이드 인생이라는 기분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직접 요리하자니 번거로운 것은 둘째치고 제대로 맛을 내려면 전날부터 닭을 소금물에 담가 두어야 하니 시간적으로도 무리가 따릅니다.


그래서 이 책, ‘퇴근 후 한 잔’처럼 가벼운 요리법을 담은 책들이 잘 팔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내용만 본다면 수많은 요리책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그 요리들이 하나같이 지향하는 목표가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안주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호프집 메뉴판이 떠오르며 하루 일과를 끝낸듯한 기분이 듭니다.


골뱅이 통조림에 양파, 마늘 정도는 굳이 힘든 몸을 이끌고 시장을 가지 않아도 쉽게 준비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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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 집에 돌아와 냉기가 밴 외투를 벗고 김이 뿌옇게 서린 안경을 닦으면서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요. 


지금 막 식탁 위에 올려놓은 비닐봉지 속 맥주와 어울릴만한 음식이 뭐가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가장 그럴듯합니다. 


저자가 “이보다 더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재료는 없어서 늘 갖춰둔다”라고 강조하는 골뱅이 통조림은 유통기한이 길어서 찬장에 몇 개 쌓아뒀다가 하나씩 꺼내 먹기도 좋습니다. 


영화 '괴물'에서 나왔던 것처럼, 통조림을 까서 그대로 집어먹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약간의 수고를 더해 양파와 마늘 약간 썰어서 기름 두른 팬에 함께 볶아주면, 재빨리 만들 수 있고 따뜻한데다가 맛있기까지 한, 삼박자를 고루 갖춘 골뱅이 볶음이 완성됩니다. 


그저 골뱅이 통조림 국물을 사용하면 되니 육수도 따로 만들 필요 없고, 공들여서 썰거나 다질 필요 없이 양파와 골뱅이를 그냥 한 입 크기로 대충 썰기만 하면 준비는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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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두른 팬에 양파와 다진 마늘을 볶다가 골뱅이를 넣고, 얼추 볶아지면 골뱅이 국물과 맛술, 소금, 후추로 간을 합니다.


갓 만들어서 지글거리는 골뱅이 볶음을 배경으로 찬 기운이 가시지 않은 맥주를 그대로 유리잔에 따르면 하얗게 올라오는 거품이 마치 구름처럼 떠오릅니다. 


아담 샌들러는 샌드위치를 옆에 두고 맥주를 따르지만(링크), 역시 쌀쌀한 계절에는 샌드위치보다 따뜻한 골뱅이 볶음이 제격입니다.


뜨거운 안주를 후후 불어가며 씹다가 차가운 맥주 한 모금 마시면 맥주잔에 가득한 거품을 밟고 우화등선하는 기분이 따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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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한 골뱅이 볶음 곁들여 술 한 잔 하면서 책을 뒤적거립니다.


기분이 우울한 날, 회사에서 스트레스받은 날, 바닷가가 그리워질 때, 시험 끝난 날 등 요리 제목에 붙은 부제를 보고 있으면 ‘맞아, 이럴 때는 이 음식이 최고지’라며 공감이 되기도 하고 ‘이건 잘 안 어울리는데?’라며 고개가 갸우뚱거려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직접 만든 맛있는 음식에 반주 한 잔 곁들이면 때와 장소를 막론하고 기쁜 일은 더 기쁘게, 슬프고 화나는 일은 훌훌 털어 넘길 수 있게 도와준다는 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도서관 홈페이지에 올릴 서평 원고를 끝냈으니 기념 삼아 맥주 한 잔에 골뱅이 볶음 곁들여 먹을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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