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멘마하 성의 여자들



프롤로그



내가 이멘마하 성의 입구에 들어선 때는 봄이 완연한 월요일 아침이었다. 나는 문지기가 신원을 확인하며 문을 열어줄 때까지 나의 여동생인 에안나와 함께 성을 올려보았다. 성은 회색의 돌로 반듯하게 깎아 세워져 있었다. 그 매끈한 테두리를 보고 에안나는 푸딩 같다고 하였다.

잠시 기다린 뒤, 갑옷을 입은 문지기는 나와 에안나의 통과를 허락해주었다. 하지만 나를 훑어보는 눈초리에는 하얀 가운을 걸치고 있는 아시카스가 의사라는 사실에 대한 불신이 숨겨져 있었다. 나는 왼손에는 가방을, 오른손에는 에안나의 왼손을 잡아 성문 안으로 들어갔다. 눈앞으로 큰 길과 거대한 계단, 양 옆으로 생기발랄한 초록빛 정원이 펼쳐졌다.

“오빠! 이제 우리 여기서 사는 거야?” 에안나가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신나했다. “나 이렇게 큰 성에서 사는 게 꿈이었어! 나 이제 공주님이야?”

“음, 물론이란다. 에안나는 언제나 내 귀여운 공주님인 걸.” 나는 흰 이를 보여주며 에안나에게 답했다.

그녀의 말대로 우리는 이제 이멘마하 성에서 살게 되었다. 내가 영주의 거주 주치의로서 함께 주거하게 된 것이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 혼자만의 계약이었으므로 에안나를 데리고 오는 데는 영주의 개인적인 자비를 구해야 했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이멘마하의 영주가 된 여성은 흔쾌히 승낙해주었다.

“아시카스님 맞으시죠?”

계단을 올라가자 본성 입구에 서서 기다리고 있던 자이언트 메이드가 나를 보고 물었다. 메이드였지만 불친절해 보이는 메이드였다. 자이언트라는 거대한 몸이 불친절하다고 보였고 어딘가 퉁명 맞은 목소리가 또한 그러했다. 검은색과 하얀색으로 된 메이드 복이 아니었다면 이 자이언트를 메이드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으리라.

내가 짤막하게 대답하자 메이드는 아무 말도 없이 본성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나와 에안나는 아무 말 없이 따라 들어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싱글벙글 함박웃음을 지었던 에안나의 표정이 약간 시무룩하게 굳어 버렸다. 나는 안쓰럽게 미소를 지으며 에안나의 회색빛 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여기서 잠시 기다려주세요. 그리고 그 짐은 제게 주세요. 미리 방에 가져다 드릴게요.” 메이드는 내 왼손에 든 갈색 가죽 가방을 보며 말했다. 이 가방에는 내가 의사로서 사용할 도구와 서적들, 그리고 약간의 생필품이 들어 있었다.

나는 왼손을 들어 가방을 메이드에게 주었다. 메이드는 두 손으로 받지 않고 한손으로 받았는데, 자이언트의 손은 내게 약간 큰 가방을 한손으로 무리 없이 삼킬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드는 한편, 벌써 내 방이 정해졌다는 것에 약간 기쁨을 느꼈다.

“지금은 월요일 아침 조례 중입니다. 조례 순서 중에 아시카스님이 불릴 때가 있을 거예요. 그때 문을 열고 들어가시면 되요.”

메이드는 영주의 가족들이 하는 작은 조례라고 덧붙였다. 매주 월요일 아침에 열리는 것이라고 한다.

메이드는 내 가방을 들고는 홀연히 우리를 중앙 홀과 연결되어 있는 입구에 두고 걸어 떠났다. 처음 온 손님을 이렇게 홀대해도 되나 잠시 불만이 튀어나왔다.

나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에안나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에안나의 큰 회색 눈이 반짝였다. 나는 에안나가 입은 검은 드레스를 양 손으로 정리해주었다.

“에안나, 이제 우리는 중요한 인사를 할 거니까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

“응!” 사뭇 진지해진 내 어조에 반응하듯 에안나도 목소리에 잔뜩 힘을 넣었다.

“웃어도 안 되고 꼼질거려도 안 되고 내 옆에 가만히 서 있어야 해. 알았지?”

옷을 다듬어주고 마지막으로 에안나를 등에서부터 꼭 껴안았다. 그것은 에안나를 위한 행동이 아니었다. 나를 위한 행동이었다. 이제 에안나와 방랑 생활을 마치고 어엿한 곳에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축복에 대한 내 감동을 억누르기 위해서였다. 지금까지 해왔던 떠돌이 생활을 생각하면 에안나에게 너무 미안하여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또 앞으로 해갈 행복한 나날을 생각하면 행복의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나는 갑작스런 내 행동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에안나를 등으로 지고 문 너머로부터 신호가 오기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