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래간만에 머리가 많이 긴 거 같아서(약간 옛날에 데스노트의 L 느낌을 주는 더벅머리 상태) 청담동에 있는 미용실을 갔었습니다..
미용실 문을 열자마자 청량한 도어 벨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고도의 훈련을 받은 숙달된 헤어디자이너들이
"어서 오세요 고객님~"이라고 외치는데 부담스럽더군요.. 두리번거리던 도중 모든 시선들이 저에게 주목되고
얼핏 봐도 수십은 되어 보이는 손님들과 헤어디자이너들이 갑자기 웅성이기 시작하더군요
심지어 어떤 디자이너 분은 하던 일을 멈추고까지 저를 쳐다봤다는..; (펌 열처리를 하고 있던 여자 손님은 남자친구랑 통화하는 걸로 보였는데 저를 보더니 전화를 갑자기 끊음)
뭐 평소에 자주 들어서 딱히 듣고 싶지 않아도 듣게 되는
"우와.. 박 선생 저 남학생 한 번 봐봐 "
"어머 완전 내 스타일인걸? 엄청 귀엽고 잘생겼잖아"
"우리 미용실 모델로 쓰고 싶다"
"오빠 나 전화가 안 들려 일단 끊어봐"
랄까.. 이런저런 소리들을 하시는데 뭐 기분은 나쁘지 않더라고요(후.. 이런 잡음.. 길 가다가 매장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같다고나 할까)
저는 대충 머리를 자르러 왔었기 때문에 그쪽들의 잡담은 반쯤 접어두기로 했고 제 눈앞에 바로 보이는
약간 트와이스의 사나를 닮고 키가 한 170 되어 보이는 긴 생머리를 가진 미인의 여성 디자이너에게 용건을 말했습니다
"머리를 자르러 왔습니다만..?"
한마디 했을 뿐인데 여성분의 얼굴이 붉어지면서 제 시선을 조금씩 회피하더니
결국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오른손으로 갑자기 자기 얼굴에 손바닥 부채질을 하더군요;;
"저.. 저기로 가시면 되는데.. 찾으시는 디자이너 선생님이 계신가요.."
아아, 참고로 저는 그 미용실에 처음 갔던지라
어떤 분이 2020 트렌디한 최신식 스킬을 보유한 헤어디자이너로서 자신의 기량을 뽐내고
저의 니즈를 충족시켜줄지는 미지수였죠..랄까.. 불찰이라고나 할까..
근데 나름 유명하다고 정평 났던 곳인지라
그냥 제 눈앞에 보이는 미인의 여성 디자이너분께 제 머리를 맡기도록 했습니다
"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저의 머리"
"어..? 네? 네.. 주인.. 아니.. 손님"
여성은 어쩔 줄 몰라 하며 갑자기 뒤로 돌더니 두 손을 두 뺨에 부여잡은 채로 후다닥 의자 쪽으로 걸어가더군요
물론 어떤 표정을 했었는지는 궁금하지 않았습니다(누님 미인이지만 너무 뻔한 스토리 지겨워)
그런데.. ?!?! 주인? 잘못 들었나? 싶어서 그냥 모른 척 넘어가긴 했습니다만
어이, 누님 아무리 잘생겨도 남한테 함부로 주인님이라고 하는 거 아니야(어렸을 때 가정교육을 받으면서 소유욕과 지배욕은 잠시 묻어둠)
"저.. 이쪽에 앉으 십 세요,,?? 아니 앉아주세요.."
욕설인지 아닌지 의문의 언행을 내뱉은 디자이너가 횡설수설하던 도중 디자이너가 있는 자리로 향했고 의자에 착석을 했습니다..
서로 간에 적막이 잠시 흘렀지만 결국 운을 떼는 건 여성분이더군요
"저.. 무슨 머리로.. "
"당신이 알아서 해봐, 내 스타일에 맞게"
저는 속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어이, 착각하지 마 당신이 나를 선택한 게 아니라
내가 당신을 선택한 거니까
보여줘 봐 네가 선택받은 이유를
"아.. 맵../"/"넵.. 당신에게 맞는 최상의 머리 스타일을.."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저는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숙면을 취했죠
저는 머리 자를 때 무조건 잡니다..
왜냐면.. 그 시간만큼은 내면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라고나 할까..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잤었던지라 여성분의
"다 됐습니다 주.. 손님"
아이 같은 귀여운 목소리에 감겨있던 눈이 떠지더군요
그 짧은 시간에 꿈에서 헤어졌던 전 여자친구를 만났었는데 두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더군요(자세한 설명은 생략)
그리고 거울을 봤습니다
음..? 이게 요즘 유행하는 헤어스타일인가..? 나쁘진 않군..
갑자기 뒤에서 웅성이길래 주변을 살펴보니 미용실에 있는 모든 손님과 디자이너들이 제가 있는 곳에 원을 치며 지켜보고 있던 겁니다 ㅡㅅㅡ
"우와... 진짜 대박이다.."
"언니 저 남자친구랑 헤어지려고요"
"어이, 학생! 애송인 줄 알았는데 제법 무게 좀 잡아버렸잖아!?"
"번호는 내가 딸 거야 넘보지 마셔"
하하 하랄까 동물원에서 인간들의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기 위해 하루하루 연명하는 '유인원' 이 된 기분이라고나 할까.. 좋으면서도 안 좋더군요..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친숙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뭐.. 제법 어울리네.. 뷔 같아"
뷔..? 뷔가 누구지? 감히 다른 사람과 나를 비슷하게 여기고 비교를 해?!
심란해있던 찰나에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아냈습니다 저의 오랜 여사친이었습니다..
"언제 온 거냐"
"항상 난 너의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걸"
제가 여사친과 대화를 나누니까 제 머리를 잘라주던 미인 여성 디자이너가 볼을 뾰로통하게 부풀리며 질투하더군요..
어이.. 그건 좀 귀여웠어
후.. 계산을 하려고 나가려던 찰나에
미인 여성 디자이너가 저에게 핸드폰을 건네주며
"저.. 번호.."
번호는 주지 않았습니다
".. 다음에도 잘라주실.. 거죠"
하지만 그.. 여성.. 아니 디자이너 누나는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행복한 표정을 짓더군요
"응.. 언제나 ^_^"
계산을 하고 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뒷머리를 긁었습니다
"후.. 괜찮냐 머리"
"말했잖아 뷔 같다고"
"뷔가 누군데?"
"있어. 너를 닮은 잘생긴 아이"
그 말을 뒤로한 채 여사친과 함께
말없이 그저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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