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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야만인들 서울올라와 범죄--(2)

라도킬러(121.140) 2007.09.23 12:23:19
조회 1471 추천 0 댓글 2

강력반장의 수사백서 - 잊을 수 없는 그 사건 <1화>] 86년 서진룸살롱 살인
피끓는 운동부원 객기가 부른 ‘피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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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룸살롱 사건으로 검거된 범인들 앞에 104점의 압수된 무기와 증거물들이 놓여 있다. 사건을 담당했던 안석호 경위는 “피끓는 젊은이들의 객기와 영웅심리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연재를 시작하며
지난 2006년 한 해 동안 전국에서 일어난 이른바 ‘5대 범죄’(살인·강도·강간·절도·폭력) 사건은 48만 9575건. 하루 평균 1341건의 강력 사건이 우리 주변에서 벌어졌던 셈이다. 가히 ‘범죄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처럼 수많은 사건들과 하루하루 부딪쳐야 하는 게 일선 형사들의 ‘숙명’. 하지만 아무리 베테랑 형사라도 가슴 한 켠에 오래도록 간직하게 되는 ‘특별한’ 사건은 그리 많지 않다. 애환, 긍지, 안타까움, 회한 같은 것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그런 사건 말이다.

이제 시작하려는 이야기가 바로 베테랑 강력반장들이 세월의 갈피 속에 꼭꼭 담아두었던 사건들에 대한 것이다. 과연 이들이 꺼내놓는 ‘범죄의 추억’ 속에는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을까. 아무쪼록 이번 연재가 범죄를 경계하고 사회의 빛과 그늘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986년 8월 14일 밤 서울 강남의 한 룸살롱에서는 마치 조폭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잔인한 장면이 펼쳐졌다. 일단의 건장한 20대 청년들이 야구방망이와 회칼을 휘두르며 또 다른 한 무리의 청년들과 집단 난투극을 벌였던 것. 룸살롱 내부는 순식간에 피바다로 변해버렸고 이 와중에 4명이 끔찍하게 살해되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5공화국 말 우리 사회를 충격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었던 일명 ‘서진룸살롱 살인사건’이다. 당시 이 사건은 ‘조직폭력배들의 치열한 이권다툼’ ‘복수와 응징으로 점철된 어두운 조직세계의 단면’ 등의 제목으로 연일 매스컴을 장식했다. 탈법적인 삼청교육을 강행할 만큼 ‘민생치안’을 정권의 특장으로 삼으려 했던 5공 정권에겐 곤혹스러운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사건 직후 정부는 전국 경찰에 폭력배 일제 소탕령을 내렸고 주먹세계에는 거대한 검거 회오리가 몰아치기도 했다.

‘집단탈주범 인질사건’ ‘원혜준 양 유괴살인사건’ 등과 함께 80년대를 뒤흔들었던 대표적인 대형 사건으로 꼽히는 서진룸살롱 살인사건. 과연 20여 년 전 활자화된 ‘사실’ 뒤에는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을까. 지난 1월 16일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안석호 경위(53·광진경찰서 수사폭력 2팀장)를 만나 기억의 편린을 들춰봤다.

안석호 경위는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바로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기만 하다. 이따금 역삼동 그곳을 지나갈 때면 여전히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는 듯하다”는 말로 서진룸살롱 사건의 ‘추억’을 떠올렸다. 안 경위는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근무하던 시절 이 사건을 담당했다.

당시 언론 등이 전한 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86년 8월 14일 밤 10시 30분경 서진룸살롱 20호실에서는 정요섭, 장진석, 고금석, 김동술 등 일명 ‘서울목포파’ 12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같은 시각 17호실에서는 조원섭, 고용수, 송재익 등 이른바 ‘목포맘보파’ 7명이 동료의 출감을 축하하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서로 다른 룸에서 술자리를 갖던 이들은 모두 전남 목포 출신으로 평소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하지만 화장실을 오가며 우연히 복도에서 마주친 양측 일행 간에 사소한 시비가 벌어지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왜 쳐다보냐.” “똘마니 주제에….” “너 많이 컸다.”

유독 목소리가 큰 서울목포파 고금석이 목포맘보파 조원섭의 측근들과 욕을 하며 시끄럽게 싸우는 소리가 20호실 문 너머로 들려왔다. 방에 있던 김동술이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김동술이 돌아오지 않자 또 다른 몇몇이 따라나갔다. 시간이 지나도 일행이 돌아오지 않자 서울목포파의 선임자 격인 장진석이 밖으로 나섰고 일행으로부터 “별 일 아니다. 원섭이 애들이 먼저 때렸다”는 말을 듣게 된다. 순간 분노한 장진석은 룸으로 돌아와 콜라병 두 개를 쥐고 복도로 나갔다. 이렇게 시작된 싸움은 양측간 집단 난투극으로 번지며 돌이킬 수 없는 참극을 만들어내게 된다.

특히 젊은 혈기에 감정을 제어할 수 없었던 김동술과 고금석 등이 흉기를 휘두르면서 사건은 유혈사태로 번지고 만다. 이들은 평소 지니고 다니던 회칼로 상대방의 하체 부위를 찔렀고 다른 일행들도 차량에 싣고 다니던 야구 방망이 등을 가져와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했다. 조원섭 등 목포맘보파 일행은 흉기를 갖고 있던 이들의 기습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목포맘보파의 조원섭, 고용수 등 4명이 그 자리에서 살해되는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김동술 등은 4구의 시체를 승용차 두 대에 나누어 싣고 현장으로부터 약 8㎞ 떨어진 사당동의 한 정형외과에 버리고 달아났다. 당시 목격자와 언론보도 등에 따르면 이들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남자 4명을 들쳐업고 정형외과에 뛰어들어와 2명은 1층 계단에, 나머지 2명은 2층 수술실 앞에 던져놓고 “교통사고 환자”라고 외친 뒤 사라졌다고 한다.

피살된 4명의 상태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처참했다. 특히 하체 부위를 집중적으로 난자당했고 워낙 많은 피를 흘려 온몸이 피로 뒤범벅돼 있었다고 한다. 갖가지 강력사건을 맡아온 안 경위조차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강력반 형사들 중에서도 그렇게 피가 낭자하고 끔찍한 사체를 본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을 정도. 안 경위는 당시를 회상하며 “상처는 생명에 지장을 주는 급소와는 거리가 있는 하체 부위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어찌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그 피비린내는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며 얼굴을 찌푸리기도 했다.

수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사건 이틀 후 조직의 우두머리 격이던 정요섭 등 7명이 자수를 해왔고 주범인 장진석과 김동술 등 나머지는 전북 임실군 운암면의 작은 섬에 숨어 있다가 경찰에 검거됐다. 유혈 참극이 벌어진 지 4일 만에 사건이 해결된 것이다. 8월 22일 경찰은 수사 결과를 발표했고, 관련자 12명은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이 사건은 장진석 등이 중심이 된 서울목포파와 조원섭 등이 중심이 된 목포맘보파 두 조직 간의 이권다툼 끝에 일어난 살인사건으로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또 숱한 루머들과 뒷얘기들을 낳으며 오랫동안 세간에 오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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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동아일보> 지면. 우발적 사건이 유흥가 세력다툼으로 과장돼 있다.

하지만 안 경위는 가해자인 김동술 등을 조직폭력배로 지칭한 당시 매스컴의 보도는 과장된 면이 있다며 이 사건이 전문 조직폭력집단 간의 세력싸움은 아니었다고 설명한다. “그들은 경찰의 감시를 받는 폭력조직의 일원이 아니었고 조직의 명칭 역시 수사과정에서 편의상 붙여진 것일 뿐 실제로는 그런 조직이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이 동향 출신으로 대학 때 상경해 합숙생활을 하며 뭉쳐다니던 패거리였을 뿐이라는 것. 당시 가해자인 김동술 등은 대부분 유도대학 재학생으로 밝혀져 더욱 충격을 주었는데 이 사건으로 한때 유도대학은 ‘깡패양성소’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하지만 안 경위에 따르면 가해자인 김동술 등은 사실 덩치만 컸지 전문 싸움꾼도 조직원도 아니었다. 이들은 체격이 큰 데다가 운동을 하면서 생긴 객기로 거들먹거리고, 조폭세계의 ‘의리’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품고 조직의 생리를 추앙하던 인물들이었다고 한다. 즉 김동술 등은 소위 ‘운동 좀 했다’는 객기로 똘똘 뭉친 선후배 체대생들이었을 뿐 계보가 있는 폭력조직의 일원이 아니었다는 것.

안 경위는 “김동술 등은 당시 다른 무리들로부터 공격받을 것을 우려해 각자 생선회칼 등을 몸에 지니고 야구방망이 등을 차에 싣고 다녔는데, 이것도 애초 살인을 계획해서가 아니라 ‘섣불리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식의 한낱 객기성 제스처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운명의 그날 순간적인 분을 이기지 못한 김동술 등이 지니고 있던 흉기와 야구방망이를 이용해 상대편 일행에게 무차별적인 가격을 가했고 이것이 예기치 못한 살인으로 이어졌다는 게 안 경위의 설명이다.

실제로는 야구방망이와 회칼 앞에 속수무책으로 살해당한 조원섭 측이 오히려 훨씬 더 강한 상대였다는 것도 잘 알려지지 않은 뒷얘기 중 하나. 뜨내기 체대생들은 흉기만 없었다면 사실 조원섭 측에 상대가 안 됐다는 것. 특히 조원섭은 당시 지방에서 알아주는 싸움꾼이었으며 뒤를 봐주는 비호세력이 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회칼 앞에서는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이 사건은 검사조차 논고에서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이라는 표현을 썼을 정도로 당시 사회를 충격 속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특히 김동술 등은 검거 후 카메라를 빤히 쳐다보며 웃음을 짓거나 욕설을 하는 등의 뻔뻔스러운 태도를 보여 전 국민의 분노를 샀다. 하지만 이들을 직접 대면해 취조했던 안 경위는 이들에 대해 여지껏 알려진 것과는 사뭇 다른 증언을 하고 있다.

안 경위는 주범인 김동술 등에 대해 “운동을 한 애들답게 체격이 크고 훤칠하게 생긴 건장한 청년들로 기억된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이들은 검거 직후 매스컴 앞에서는 일부러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객기를 부려 여론의 질타를 받았지만 막상 조사를 받을 때에는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죽일 생각은 절대 없었다”며 눈물을 쏟아냈다고 한다. ‘영웅심리’에 빠져 한순간의 실수로 인생을 망쳐버렸다며 후회하더라는 것.

하지만 법의 심판은 냉정했다. 1987년 10월 주범 김동술·고금석은 사형, 김승길·장진석은 무기징역 등의 확정판결을 받았고, 사건 발생 3년 만인 1989년 8월 14일 김동술과 고금석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어지는 안 경위의 술회.

“그들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그들은 분명 살인을 했으니 비난받아 마땅하고 그래서 이미 법정 최고형의 죄 값을 받았다. 결국 그들은 스스로를 자제하지 못해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우발적이었다는 말이다. 요즘도 운동을 하거나 힘 좀 쓴다는 사람들 중에는 욱하는 성질과 객기에 크고 작은 사고를 치는 이들이 종종 있다. 나도 젊을 적에 운동을 해서 잘 안다. 그들도 그런 생각에 몰려다니다가 결국 사고를 치고 만 것이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그들이 꼭 그런 꼴이었다. 폭력조직에 정식으로 몸담은 적이 없었던 그들은 ‘의리’를 운운하고 몰려다녔을 뿐 조직의 생리를 몰랐다. ‘이렇게 일이 커질 줄 몰랐습니다. 피를 보게 되니 눈이 뒤집혀서 그만…’이라던 그들의 절규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4명을 무참히 살해한 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김동술과 고금석에 대한 뒷이야기는 두 손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앞날이 창창한 20대의 젊은 나이에 사형수가 된 두 사람은 모두 종교에 귀의, 자신의 과오를 뼈저리게 뉘우치다 죽음을 맞았다.

고금석은 법정 사실심리에서 모든 범행을 자신이 주도했다고 진술, 선배인 장진석을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구치소 내에서 불교에 귀의해 27세에 사형이 집행될 때까지 자신의 영치금과 사역비를 불우한 재소자나 나병환자 등에게 내줄 정도로 거듭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 후에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안구와 콩팥을 기증했다는 사실이 한 교도관을 통해 알려지면서 잔잔한 감동을 던졌다.

또 다른 주범 김동술도 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검찰 조서에는 ‘김동술이 피해자 정 아무개를 야구방망이로 머리와 몸통을 10여 회 강타하고 생선회칼로 팔을 2회 찌르는 등 가장 주도적인 행위를 하였고… 고 아무개의 이마, 팔, 허벅지 등을 11회나 찔러 살해하는 등 무자비하고 잔혹한 가해행위를 하였다’고 나와 있다. 사건 당시 그의 범행이 얼마나 잔인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김동술 역시 옥중에서 가톨릭에 귀의, 짧지만 새로운 인생을 살았다. 그는 참회의 나날을 보내다가 “주여, 이 몸을 거두어 주소서”라고 외치며 26세의 나이에 사형대에 올랐다.

안 경위는 “사형 소식을 듣고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착잡했다”며 “그렇게 후회할 것을 왜 좀 더 일찍 어둠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안 경위는 “언론에서는 조직폭력배와 회칼 등을 들먹이며 떠들어댔지만 정작 수사를 진행한 우리들에게는 한창 피끓는 젊은이들의 객기와 영웅심리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며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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