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인공호수 가운데 가장 넓은 '세종호수공원'을 배경으로 들어선 국립세종도서관. 호수에 헹궈진 바람이 도서관을 휘감는다. 정부종합청사와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지만 도서관 주변은 딴 세상이다. 공기가 신선하고 머리가 맑아진다. 책 속에서 책을 읽는 느낌은 어떨까. 꾸벅꾸벅 졸음을 몰고 오는 심오한 철학책도 술술 읽힐 것 같다. 책벌레가 아니어도 책과 '썸' 타고 싶은 생각이 든다.
국립세종도서관은 세종시 어진동 일대 2만9871㎡ 터에 지하 2층~지상 4층 연면적 2만1076㎡ 규모로 지어졌다. 총공사비 1015억원을 들여 2011년 8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공사를 했고 지난해 12월 문을 열었다. 건축 디자인은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가 맡았다.
국립세종도서관은 전 세계 3대 디자인상(레드닷, iF, IDEA) 중 올해 `레드닷` 디자인상 본상을 확정한 상태다.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디자인센터가 주관하는 상으로 디자인의 혁신성과 기능성 등을 평가한다. 앞서 열린 `2013 아이코닉 어워드(ICONIC Award)`에서 계획작 분야 상을 받았다. |
이우용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건축가는 "건물 외관은 인터넷 공간에서 자료를 전송할 때 송신자 폴더에서 수신자 폴더로 파일이 한 장씩 휘리릭 날아가는 모습에서 착안한 것"이라며 "책장을 넘길 때 종이가 살짝 구부러지는 모습도 형상화했다"고 말했다.
도서관 출입문이 열리면 널찍한 로비가 모습을 드러낸다. 건물이 모두 통유리로 이뤄져 있고 4층까지 뚫려 있어 로비 중앙에 서면 가슴이 탁 트인다. 유리 너머로 건물 전면에서는 정부종합청사가 보이고 후면에서는 푸른빛 호수가 펼쳐진다.
기존 도서관은 각층이 단절됐지만 국립세종도서관은 유리벽을 두거나 어른 키 높이 유리 펜스를 설치해 아래층에서 위층을, 위층에서 아래층을 볼 수 있도록 열린 공간으로 설계한 점이 단연 돋보인다. 서로 다른 공간이 흐르는 강물처럼 계속 이어진다. 이우용 건축가는 "도서관 이용자들이 스스로 어디에 서 있는지 공간을 인식하고 길을 빨리 찾을 수 있어(way-finding) 감각적으로 편안함을 느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하 1층은 어린이 도서관으로 꾸며졌다. 건물 후면에서 보면 1층이 되며 호수공원과 연결된다. 지하 1층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천장에 줄로 연결된 작은 배 모양의 전등 수십 개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1층 세미나실 두 곳도 큐빅 형태로 돌출시켜 공간에 입체감을 더하고 아이들 상상력을 자극한다.
예사롭지 않은 건물 외관은 내부 공간을 다채롭게 꾸미는 데 일조했다. 사실 평평한 건축물 가운데는 공간을 만들어내기에 문제가 없지만 경사진 양쪽 날개 부분은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도서관 내부를 거닐다 보면 양 날개는 건축가의 반짝이는 아이디어 덕분에 도서관 이용자들이 가장 탐하는 공간으로 탄생했다.
한쪽 날개 부분은 층계를 만들어 계단마다 책상을 뒀다. 계단 아래에서는 책상이 거의 보이지 않아 몰래 숨어 책 읽기에 딱 좋다. 계단을 따라 성인열람실이 자리한 1ㆍ2층과 연결된다. 호수공원을 향하도록 배치한 노트북 열람석만큼 도서관 이용자들에게 인기가 좋다는 후문이다.
[사진 제공=사진작가 박영채] |
국립세종도서관의 백미는 4층인 것 같다. 기존 도서관에서 식당은 으레 1층이나 지하에 있지만 세종도서관은 식당을 꼭대기층에 뒀다.아름다운 호수공원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건축 디자인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거다!'라며 무릎을 탁 치게 되는데 호수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레스토랑을 만들었을 때 건축가들이 이 같은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국립세종도서관의 디자인 콘셉트는 'e-브러리(감성 도서관)'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국립중앙도서관은 전통적 아날로그 라이브러리, 바로 옆에 위치한 국립중앙디지털도서관은 디지털 라이브러리다. 국립중앙도서관 분관이면서 첫 번째 지역도서관인 세종국립도서관은 미래 도서관 모습을 담아야 하지 않을까.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융합된 '이모션 라이브러리'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이우용 건축가는 "미래 도서관은 지식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와 함께 인간의 감성과 체험 등이 어우러진 역동적 공간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국립세종도서관은 조용하면서 다소 엄숙한 옛 도서관 이미지를 깼다. 건물 외관도 독특하지만 활짝 열린 공간에 발을 들인 이용자들 감성을 계속 깨우니 말이다.
◆ 이우용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팀장
"행복한 건축"이라는 철학 담아 계획도시에 생명력 넣어 줄 것
이우용 삼우종합건축사무소 팀장 |
이우용 건축가는 "편안함과 즐거움처럼 행복을 위한 감성적 체험이 가능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라며 "건축은 인간의 행복과 맞닿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일까. 국립세종도서관에서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이용자들 표정에서 행복이 읽힌다. '행복 도서관'이라는 별칭도 생겼다. '행복의 건축'이라는 그의 건축 철학을 도서관에 잘 녹여낸 셈이다.
이우용 건축가는 예술작품 같은 아름다운 건축물이 도시의 아이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박물관과 미술관, 도서관 등 문화 건축물은 도시의 이미지를 전달하고 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며 "도시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어 준다"고 설명했다. 거대한 책을 펼쳐 놓은 듯한 혁신적 디자인은 세종시를 대표하는 '얼굴'을 만들고 공사가 한창인 신도시에 활력을 주려는 건축 시도였다.
국립세종도서관을 제대로 설계하기 위해 전 세계 유명 도서관 20여 곳을 신발이 닳도록 찾아다녔다고 한다.
이 기간에 찍어 스마트폰에 저장한 사진도 수백 장이 넘는다. 역작을 내놓기까지 머리를 깨나 싸맸을 것 같지만 "일은 항상 즐겁게, 재미있게 하자는 게 직업 모토"라며 소년처럼 눈을 반짝였다. 건축을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도 즐거움이 묻어났다.
이우용 건축가는 현재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글로벌사업부 해외설계2팀장을 맡고 있다. 박물관과 미술관 등 문화시설과 관련된 국내외 건축 설계 프로젝트에 다수 참여했다. 건축물 이용자 중심의 공간 창출에 관심이 많은 건축가다. 인천 송도 국제 글로벌 캠퍼스와 일본 강제동원 역사전시관, 대통령기록관 등도 그의 손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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