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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끝나고 집에 가는중 나름 정성글인데 집회아이템들 한번 써봤어
집회라는게 혼자 가는게 용기가 잘 안나더라ㅠ 외롭기도 하고 가고 오는 시간들이 심심하기도 하고. 근데 난 이번 정권에 윤틀러가 당선됐을때부터 치를 떨었었지만 비상계엄 내란선동 그 이후로 더 소름끼치고 너무 이 순간들이 고통스럽고 오죽하면 나는 내 카톡도 윗 사진처럼 저렇게 해놨을 정도. 2찍한 친구 혹은 정치성향 드러내는거 싫은 사람들은 나한테 거리두기를 하고 있을거라 생각들고 그래서 집회 두번이나 혼자 갔다왔어~ (저 톡 배경사진은 울집 강쥐 아니고 퍼온거~) 내가 지방이어서 집회를 두번밖에는 아직 못가봤어 거기다가 나는 뚜벅이족이어서 차가 아직 없어갖고 서울 한번 올라가려면 집에서 버스타고 ㅇㅇ역까지 대략 한시간이 넘게 걸려서 가야하고 ㅇㅇ역에서 전철을 타도 여러번을 내려서 갈아타기를 반복 ㅜㅜ 안그러면 기차를 타고 서울역까지 가서 서울역에서 내려서 지하철을 타고 가는 방법도 있긴 해서 오늘은 그렇게 해서 다녀왔어 근데 둘다 내려올때는 여긴 울 동네는 울집까지 오는 버스가 또 일찍 끊기는 좀 시골같은 외진 곳이라서 집회를 8시 넘어서까지는 참여를 못하고 빨리 일어서서 먼저 와야 하는 그런 아쉬움이 있어 암튼 한번 올라갔다 내려오려면 집에서부터 나가서 거까지 가는 시간만 세시간은 넘게 한 네시간은 잡고 가야해 내려오는 시간도 글코ㅎ 뚜벅이족이서 또 지방인이서 아쉽고 자주 못 가니까 미안하고 그래 근데 집에만 있으면 천불이 나고 아직도 뭔가 다 끝난게 아니니까 윤틀러가 명신무당이 체포된게 아니니까 여전히 불안하고 계속 잠못이루고 자다가 깨고의 반복이고 그래서 힘들어도 집회를 간거였어 근데 집회를 다녀오면 불안한 맘이 그래도 풀리고 안정돼 희망이 다시 생겨 힐링도 돼 치유받고 오는 기분이야 용기도 생겨 또 가고싶어지고 안 가면 미안해져 힘을 계속 보태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 끝날때까지 이건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멈추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리고 여기부터는 내가 참여해보고 느낀것들~ 난 일단 아이돌봉이 없어서 다이소부터 가서 둘러보다가 그냥 보이는 봉들이 다 너무 아동틱하고 사이즈들도 너무 작고~ 빛발광이 좀 약하더라고~ 그래서 나는 그냥 좀 쪽팔리긴 했는데 오천원인가? 주고 이거 샀어ㅋ 이거 뭐냐면 자동차용품 코너에 파는거구 이름은 뭔지 몰라 이거 아마 차 사고 났을때 다른 차들 지나가라고 신호주는 거시기 그거일거야ㅋㅋ 색깔이 빨간색이어서 나를 혹시 2찍으로 볼까봐서 그게 좀 신경쓰이고 눈치보이고 쪽팔리긴 했는데 저거 말고는 딱히 급하게 샀어야 했어서ㅠ 눈 딱 감고 샀어ㅋ 글구 이것들은 내가 원래 갖고있던것들인데 귀걸이랑 저 바람막이점퍼랑 저 신발은 원래 갖고있던건데 내거 사진 찍기는 귀찮아서 패스하고 어떤것들인지 사진들 퍼와서 올려줄테니까 혹시 아이템으로 킵해놓고 싶은 사람들 있을까봐서 사진으로만 올려줄께 참고햐 팔찌는 내가 이번에 집회 가려고 이번에 나도 따로 주문한거고~ 저 귀걸이는 안에 조그만 배터리가 드가있는데 내가 저 귀걸이 샀을때는 배터리만도 따로 팔았었거든? 근데 지금은 안 파나봐ㅠ 귀걸이는 아마 일주일은 못 버틸거야 안에 배터리가~ 배송비까지 해서 만원인가 그랬나 그래~ 팔찌는 저 다섯개 다 주더라 팔찌도 싸~ 팔찌도 배터리 교체해서 쓰는거더라~ 글구 저 운동화는 usb 충전함서 신는거야~ 그래서 절대 세탁하면 안돼! 부드러운 천이나 지우개로 닦거나 물티슈로 닦거나 그렇게 신어야해~ 비오는 날은 혹시 모르니까 고장날수도 있으니까 신지 않는게 좋을거구~ 불빛은 다섯개인가 들어와~ 파랑이 좋으면 파랑으로 해놓으면 계속 파랑색 불빛으로 고정 가능해~ 사이즈는 남자것도 팔아~ 글구 저 바람막이 점퍼는 지금은 당연히 추우니까 집회에 못 입지만 대선때나 지선때나 총선때나 전당대회때나 보궐때나 봄여름가을에는 입을수가 있고 저 점퍼도 불빛 고정도 가능하고 여러색 번쩍거리게 하는것도 돼~ 밤에 입으면 너무 이쁘고~ 근데 저 점퍼도 세탁은 안돼ㅠ고장나ㅠ 그래서 물티슈로 오물 닦음서 조심히 입거나 손소매 같은 부분은 살살 손으로 빨면 돼~ 이것도 남자사이드 팔고~ 글구 밑에부터는 내가 아직 장만하진 못했구 집회 두번 다녀오고나서 스스로 느낀 내가 필요하다고 느낀 구매를 해놔야겠다 싶어서 집에 와서 바로 검색해본것들이야 날이 너무 춥더라고 목도리 귀마개 마스크 발열내복 털신 발에붙이는핫팩 이런것들이 꼭 필요하겠다고 느껴서 찾아본것들이고 남녀공동쪽으로 찾으러 애쓰긴 했는데 여성용이어도 그냥 참고해서 검색해갖고 다음 집회 갈 사람들 있으면 잘 찾아보고 미리미리 구비하고 감기 안 걸리게 도움됐으면 좋겠어~ 귀마개는 모자 쓰고 오는 사람들도 꽤 많아서 귀마개가 불편할수도 있으니까 안 불편한 귀마개 모자에 안 걸리적 거리는 귀마개도 같이 찾아서 올려~ 마스크도 목까지 안 춥게 해주는 마스크 쪽으로 검색해서 올리구 여름용 자외선 마스크도 같이 올릴게 참고해~ 목도리는 블루쪽으로 남자도 해도 되는거로 찾아서 올려봤어~ 너무 새파랗기만 하면 또 부담스러울 사람도 있을까봐서 그냥 블루가 가미된 것도 있다고 그런것도 같이 올려~ 손장갑도 블루도 있는거 찾아서 올려~ 스마트폰 터치 되는거로 올렸어~ 글구 신발은 디자인은 영 촌시럽지만 방한운동화에 미끄럼방지 운동화를 검색해 보니까 그나마 저거가 덜 촌시럽고 가격이 저렴해서 저거로 올려ㅎ 그리고 아이돌봉 없고 아직 봉 없어서 봉 사고싶은 사람들 있을까봐 비싸지 않은 간단한 파란색 봉도 검색해봤어~ 글구 사람들 보니까 머리띠도 많이들 하고 오더라 그래서 파란색 있는 성인용 머리띠 아이템도 혹시 사고픈 사람들 있을지도 몰라서 그것도 찾아서 검색해갖고 올려~ 이거가 발에 붙이는 핫팩~ ㅋㅍ에 검색해보니까 한두개 이렇게씩은 안팔더라ㅠ 최소 열몇장씩 파는듯했어~ 그리구 이거는 배에 붙이는 핫팩은 잘못했다가는 화상 입고 그러잖아 화상 입지 않기 위한 용도야~ 여기 안에다가 핫팩을 넣구 목에 두르거나 배나 허리에 두르면 좋은 용도니까 참고해~ 아래는 모자 겸용 마스크 겸용 그런 용도~ 귀랑 목까지 따뜻하게 덮어주는~ 아래는 마스크 기능에 귀마개 기능까지~ 여기는 귀마개들 목도리~ 퍼온 사진들이 모델들이 여자기는 해도 목도리는 길이가 길고 재질이 다 거기서 거기여갖고 딱히 장식도 없어서 남자들도 착용 가능해~ 발열내복~ 스마트폰 터치되는 손장갑~ 길이가 길어서 이것도 남녀 모두 사용가능~ 이거는 여름용이긴한데 지금도 마스크 대용으로 써도 돼 자외선 차단되는 마스크야~ 아래 봉은 컬러가 저렇게 여러가지 들어가있고 한가지 컬러로 고정도 된다고 하네 건전지 교체함서 쓰는거래~ 아래 봉은 사이즈는 그닥 크진 않으니까 참고해~ 아래부터는 어른들용 머리띠~ 이 아래 머리띠는 원하는 문구 주문제작이 가능하다고 하더라고~ 이거는 털신이고 미끄럼 방지 되는거~ 남녀공용이라 남자사이즈도 있대 이 신발은 내가 오늘 발이 너무 시려웠었고ㅠ 길이 얼어서 자빠질뻔 했어갖고 내가 그냥 쪽팔림을 무릅쓰고 이거로 장만할까 싶어서 내 리스트에 올려놓고 고민중ㅋㅋ 옛날옛적에 시골에서 할머니들이 신던ㅋ 이상 오늘 내가 집회 다녀보고나서 느껴보고 필요하다 싶은것들이나 정보가 됐음 하는 여러 아이템들 내가 직접 검색해 본것들만 혹시 도움이 될 사람들 있을까 싶어서 올렸구 광고는 절대 아니니까 오해는 하지말아줘!~ 오늘 집회 다녀온 모든 사람들 다 너무 추웠는데 진짜 고생했구 고맙다! 글구 집회 못갔어도 여기서라도 같이 응원하고 댓글작업하고 같이 애써준 사람들도 다같이 뛴거니까 혹시나 미안해하거나 그런 맘 갖지말길~) 끝날때까지 아직 끝난게 아니고 아직도 남은 길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때까지 지치지말고 계속 다같이 잘 끝까지 싸우자! 조만간 우리 이 모습 꼭 보자
작성자 : ㅇㅇ고정닉
(장문) 구로다의 인생
2012년 6월, 뉴욕타임즈의 데이비드 월스테인 기자 구로다에게 묻는다. "고등학교 시절은 어땠나요?"월스테인이 기대한 대답은 아마 야구만화와 같은 천재의 성장기나 고시엔의 낭만 스토리였을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30대 중반의 늦은 나이에 핀스트라이프를 입었음에도 구로다는 안정적인 성적을 기록할 정도의 재능이니... 이런 선수의 고등학교 생활은 얼마나 화려했겠는가. 지레 짐작함이 이상하지 않았다. 구로다의 대답은 전혀 예상 밖이었지만 말이다. "그런 시대였습니다. 코치가 땡볕에서 훈련을 시키며 물도 못 마시게 하던 시대요. " 구로다는 씁쓸하게 웃었다. 모든 일본의 고교선수는 고시엔을 꿈꾼다. 구로다에게 그 시절은 꿈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우선 살아남아야 했다. 1. 이 물... 마셔도 죽진 않겠지?야구선수인 아버지와 투포환선수인 어머니를 둔 아이가 투수를 꿈꾸며 자라는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소위 말하는 운동 금수저. 재능을 타고났다고 다들 믿었을 것이다. 구로다 자신조차 그렇지 않았을까. 하지만 초등학교를 지나,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오면서도 구로다의 재능은 그를 외면했다. 메이저리그를 두드린 일본의 천재들은 고교시절부터 슈퍼스타인 경우가 많지만 구로다는 고시엔 출전기록조차 없다. 구로다의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모교인 우에노미야 고교에 찾아간 PD가 당시 야구부 담당 선생에게 물었다. "구로다는 어떤 학생이었나요?""솔직히 구로다가 대학에서 140을 던진다고 할 때 그 구로다? 구로다가 맞아? 라고 되물었습니다. 전혀 인상이 없어요."<고교시절 몰래 마셨던 하천을 보는 구로다>다만 구로다는, 그 시절의 우선순위가 야구보다 생존이었다고 회고한다. 일본의 여름은 살인적이다. 특히 구로다의 고향인 오사카는 더더욱. 그 폭염 속에 야구부 선수들은 수없이 뛰고 얼차려를 받았고 코치들은 아이들에게 물 한 모금 허락하지 않았다. 수많은 학생들이 실신했다. '근성'이니 '정신력'이니 하는 포장으로 야만이 자행하던 시대였다. "공 주으러 가는척하면서 몰래 하천 물 마시면서 버텼어요. 깨끗한지는 모르겠고.. 깨끗하다고 믿으면서 살았어요. 경기를 뛰려면 살아야하니까요"훈련이란 이름으로 자행된 학대 속에 구로다의 재능은 빛을 발하지 못했다. 등판 기록조차 몇 없는 패전처리조. 월스테인과의 인터뷰 말미에서 구로다는 그 시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200구를 던지라고 해도 던질 수 있을겁니다. 그렇게 배웠으니까요. 어쩌면 고교시절이 저를 있게 해줬을지도 모르겠어요.""하지만 그런 일을 겪지 않았었다면 야구를 즐길 수 있었을겁니다." 2. 히로시마 도요카프. 역지명하겠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거지'가 별명인 팀들은 꼭 있다. '약팀', '기피팀', 'ㅄ팀' '비인기팀' 등의 수식어와 함께 말이다. 당연히 유망주들의 기피대상. 원하는 팀에 지명되지 못하면 재수하는 문화까지 있던 그 시절 NPB에서 일본의 '거지팀' 히로시마 도요카프에게 좋은 유망주란 하늘의 별과 같았다. 그런데 그곳에 스스로 걸어들어간 멍청이가 있었다. 구로다 히로키. 흙탕물을 마시던 그 고등학생이 대학을 거쳐 어느덧 드래프트 대어 중 한 명으로 성장해있었다. 지옥같던 고교시절을 보낸 구로다. 야구를 포기할까 고민하던 그의 마음을 다잡은건 아버지였다. 고향인 관서를 떠나 도쿄에서 뛰어보자는 아버지의 말에 구로다는 도쿄 센슈대학에서 새로운 커리어를 쌓아나간다. 그리고 결과는 대박. 140도 넘기지 못하던 구속이 150KM를 찍고 졸업했다. 대학야구 150은 스피드건이 도입된 이래 일본 최초였다고 한다. 드디어 재능이 빛나기 시작한 것이다. <히로시마에 입단하는 구로다 히로키>드래프트 대어로 떠오른 구로다에겐 선택권이 있었다. 당시 일본은 직업 선택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선수가 팀을 지명하는 역지명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하도 선수들이 요미우리만 가니 현재는 폐지되고 없다. 어쨋든 역지명 제도가 있던 당시, 히로시마 입장에선 유망한 투수가 자신들을 선택하리라고 기대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가난한 팀, 우승이 없는 팀, 인기도 없는 팀이었고 심지어 고향팀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구로다는 히로시마의 유니폼을 입는다. 지금의 사사키가 제발로 애슬래틱스에 걸어들어간 것과 마찬가지니.. 이 정신 나간 선택에 사람들이 의문을 표하자 구로다는 히로시마와의 소소한 인연을 전한다. "제가 무명이던 대학교 1년 차부터 저를 지켜봐주던 히로시마의 스카우터가 있습니다. 히로시마의 관심이 있었기에 제가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그렇게 구로다는 훗날 히로시마의 영구결번이 될 15번 유니폼을 입게 된다. 3. 힘이 다하기 전에 꼭 다시 돌아올게. 구로다의 낭만에 감명받은 히로시마 선수들은 분기탱천하여 일본 시리즈를 우승.... 하는 그런 야구만화 같은 일은 없었다. 구로다가 입단한 1997년부터 2006년까지 히로시마는 단 한번도 가을야구를 해보지 못했다. 그 기간 구로다의 성적 243경기 1660이닝 3.59 WAR 30.6 67완투 13완봉 91승 81패... 이름 가려놓고 성적만 봐도 팀 꼬라지가 보인다. 그렇게 구로다의 도요카프 1기는 흔한 '좆망팀 에이스'의 고군분투기로 마쳐지고 있었다.06 시즌이 끝나고 그는 큰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FA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히로시마의 팬들이야 당연히 구로다를 붙잡고 싶었지만 앞서 말했듯 히로시마는 거지다. 그 시점까지 단 한 명의 FA를 잡아본 적이 없었기에 팬들도 반쯤 포기상태였으며 게다가 구단은 구로다에 10억엔 + 감독 보장이란 후려치기 오퍼를 날려 팬들의 자조에 기름을 붙는다. 많지 않나..? 싶을 수 있겠지만 이미 부자구단으로 유명한 요미우리가 30억엔을 제의했단 소문이 들렸었다.06시즌의 마지막 경기 9회 2아웃. 하나 남은 아웃카운트를 잡기 위해 구로다가 등판한다. 구장의 모두가 아는 고별무대였다. 팬들은 외야에 "우리는 함께 싸워왔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미래의 빛나는 그날까지 그대가 눈물을 흘린다면 그대의 눈물이 되어주리 카프의 에이스 구로다 히로키"라고 적힌 현수막을 손수 써서 외야에 붙이고 육성응원으로 마지막 가는 길을 빛냈다. 다만, 히로시마 팬들의 눈물겨운 작별인사가 정말 고별무대가 되진 않았다. 미국 진출이란 구로다의 목표와 암투병중이던 아버지의 병간호 등 여러 사정이 겹쳐 구로다는 히로시마가 제안한 그 말도 안되는 계약을 받았다. 거인의 30억엔을 걷어차고 체결한 4년 12억엔의 연장계약. 원하면 언제든 미국에 진출할 수 있다는 옵션을 넣은 채로 말이다. 그리고 2007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며 그는 히로시마를 떠날 결심을 한다. 태평양을 건너 더 큰 무대에서 뛰어보자고. 팀의 영웅을 적으로 만나지 않게 된 카프 팬들도 기쁜 마음으로 미국행을 환영했다. LA 다저스로 떠나며 팬들에게 구로다도 한 가지 약속을 남긴다."돌아온다면 히로시마 밖에 없다. 힘이 다 하기 전에 돌아오겠다."4. 33살에 미국 진출이 가능할까요..?33살. 사회에선 몰라도 야구선수로선 절대 적은 나이가 아니다. 비관적인 시선도 꽤 많았지만 구로다는 다저스란 명문팀에 입단하여 4년간 안정적인 성적을 보여준다. 4년 통산 성적은 700이닝 3.44 41승 46패. (왜 히로시마 때보다 씹창난거지..?) 33세부터 36세 시즌까지 구로다는 그야말로 계산이 서는 선발투수였다.물론 마냥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구로다가 190이닝 이상을 던지지 못한 유일한 시즌인 09시즌 그는 정말 목숨을 잃을만한 타구에 맞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Tp50zvl8UN4 Hiroki Kuroda Takes A Liner Off His Head I own nothing, I collect nothing.www.youtube.com애리조나와의 원정경기에서 타자가 친 하드힛이 그대로 구로다의 머리로 향했다. 즉각 들것이 들어왔고 구로다는 들것에 몸을 고정한채 경기장에서 실려나간다. 이 부상이 메이저리그 7년간 유일하게 규정이닝을 뛰지 못하게 만든 유일한 부상이었다. 천운으로 큰 후유증은 없었으나 그야말로 아찔했던 순간이었다. 이후 다저스를 떠나 양키스에 입단. 양키스에서 뛴 3년간 단기계약만을 고집하며 다시 한 번 저새끼 뭔가..? 싶은 행보를 보인다. 왜 그런 짓을 하냐는 질문에 구로다의 대답은 간략했다. "내년을 위해 야구할 나이는 아니다. 당장 지금만을 위해 불사르고 싶다."(새겨들었으면 하는 새끼들이 다들 응원 팀에 한 명 씩 있을듯하다...) 결과적으로 구로다의 미국행 결정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교진이 제안한 30억엔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벌었으며 우승은 못했지만 커리어 처음으로 가을야구에 진출했다. 통산 성적은 212경기 1319이닝 3.45 79승 79패. 더 놀라운건 은퇴에 가까울 나이인 서른 일곱에 양키스로 건너가 기록한 3년간의 성적이 97경기 619이닝 3.45 38승 33패였단 것이다. 선발이 귀한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그가 40세에도 미국에 남을거라 확신했다. 그런데...5. 힘이 다 하기 전에 돌아왔습니다!그는 약속을 지켰다. 샌디에이고의 2000만 불에 가까운 오퍼를 뿌리친 채 히로시마에 고작 1년 4억엔을 받고 돌아온 것이다. 팬들은 프랜차이즈 스타의 복귀를 열렬히 환영했다. 히로시마의 연간회원권은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매진됐으며 히로시마 현내 카프 경기의 TV 점유율은 39%에 달했다고 한다. 구로다 역시 전혀 녹슬지 않은 기량을 뽐내며 화답했다. 15년 40세의 구로다가 기록한 성적은 169이닝 2.55 ERA. 11승 8패 4.4WAR. 히로시마 1기를 포함해도 2번째로 낮은 평균자책점이었다. 그러나 팀은 아쉽게도 1승 차이로 한신에 밀려 가을야구를 하지 못했다. (7년간 전혀 성장하지 않았나..?)히로시마의 16시즌도 낙관하긴 어려웠다. 무엇보다 구로다의 바통을 이어받아 개같이 갈려준 마에다가 미국으로 떠났기 때문이다.(그리고 거기서 또 갈린다) 히로시마는 7년 후에도 거지였기 때문에 빈자리를 채우는건 꿈도 꿀 수 없었고 구로다 역시 시즌이 시작 되기 전 은퇴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다. 히로시마 팬들 입장에선 하루아침에 1,2선발이 사라지게 될 판이었으니 희망찬 오프시즌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히로시마는 비관적인 전망을 완벽하게 바꾼다. 1선발 크리스존슨은 그 해 사와무라상을 수상하라 정도로 완벽한 피칭을 보여줬다. 노무라 유스케가 최다승, 구로다가 151이닝 ERA 3.09로 그 뒤를 받쳤고 탄탄한 야수진과 선발 불펜의 조화로 히로시마는 89승 52패 2무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찍으며 25년만의 센트럴리그 우승을 차지한다. 동시에 구로다는 히로시마에서 13시즌을 뛰는 동안 드디어.. 드디어.. 가을야구를 경험하게 된다. <센트럴리그 우승 당시 헹가레를 받는 구로다> 구로다의 첫 가을야구 상대는 요코하마 DENA 였다. 파이널스테이지(MLB의 챔쉽)에서 히로시마는 시종일관 요코하마를 압도하며 4대1로 완파. 진즉 일본시리즈 티켓을 확보하고 퍼시픽 리그 파이널시리즈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퍼시픽리그 파이널 시리즈 5차전. 일본 시리즈 진출까지 아웃카운트 3개만을 남겨둔 감독은 세이브 상황에서 야구 역사상 누구도 상상못한 투수교체를 단행한다. 장내 아나운서의 안냇말에 관객들이 술렁인다."9회 파이터즈의 수비교체 알려드립니다. 지명타자 오타니가 피쳐. 3번 투수 오타니 쇼헤이"https://www.youtube.com/watch?v=MGw44ZSNt_I 오오타니 쇼헤이 최고구속165km기록영상 오오타니 쇼헤이 최고구속165km기록영상www.youtube.com9회 삼자범퇴. 2K. 이날 기록한 165KM는 일본 프로야구 역대 최고구속이었다. 6. 구시대의 마지막과 새시대의 시작은퇴를 발표한 노장의 마지막과 이미 리그 MVP가 기정사실이였던 젊은 선수. 히로시마 도요카프와 니혼햄 파이터즈의 맞대결. 먼저 단두대에 오른건 오타니였다. 오타니는 1차전 선발이자 8번 타자로 등판하며 6이닝 3실점, 3타수 2안타 (2루타 1) 이란 호성적을 기록했으나 팀은 패배했다. 이어진 2차전 역시 니혼햄은 무기력하게 패배. 히로시마에서 열린 2경기를 모두 내주며 삿포로로 넘어왔다. 히로시마 2 VS 니혼햄 0 구로다와 히로시마 팬들의 눈에 32년만의 우승이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반전을 꾀하는 니혼햄 파이터즈를 막아내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등판한 3차전 선발투수는 구로다였다. 가난한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돈을 포기하고 낭만을 택한 그가 커리어의 마지막을 팀의 우승으로 마친다는 만화같은 결말이 눈앞에 있었다. 역경과 인내, 희생으로 점철된 야구인생은 그런 영광스런 마무리를 누릴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야구가 늘 낭만적이지는 않다. 구로다는 이날 5.2이닝 1실점으로 대호투했지만 13시즌동안 응답해주지 않았던 히로시마의 타선은 그날도 조용했다. 결국 히로시마는 3대 3으로 진행된 10회말 오타니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으며 3경기에서 패배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oH-jcy9ug_M 【日本シリーズ】10回裏 大谷翔平 劇的サヨナラタイムリー!全球フル! 【日本シリーズ】10回裏 大谷翔平 劇的サヨナラタイムリー!全球フル!www.youtube.com 히로시마는 급속도로 무너졌다. 이후 이어진 모든 경기에서 전패하며 시리즈 스코어 4대 2로 니혼햄의 10년만의 우승을 지켜봐야 했다. 단 한 게임만 더 잡았더라면 7차전 구로다의 등판을 기대할 수 있었지만 히로시마는 결국 그 한 경기를 잡아주지 못했다. 그렇게 구로다 히로키란 대투수의 커리어는 마침표를 찍었다. 히로시마에서의 13시즌. 가을야구는 단 한번. 트로피 진열대는 텅텅 비었지만 아무도 그를 탓하지 않았다. 어떤 히로시마 팬들도 그를 무관딱 정규 스찌라고 조롱하지 않았다. 7. 마치며얼마 전 구로다는 자신을 일본시리즈 문턱에서 좌절시킨 오타니를 향해 진심어린 조언을 한다. "오타니도 분명 힘들거다. 그는 많은 것을 짊어지며 그라운드에 서있다. "책임감. 구로다는 빈 말로라도 야구가 즐겁다고 하지 않았다. 혹독한 유년기의 경험 탓도 있겠지만 필자는 구로다의 성향 자체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선발투수로서 매 경기를 지켜내야 한다는, 히로시마의 기둥으로써 팀을 버릴 수 없다는 책임감. 늘 그 과업에 짓눌려 야구를 하니 즐거울 수가 없었을터. 단기계약만을 고집했던 태도 역시 늙어서 팀에 민폐가 될 수 없다는 그 성격 탓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 덕에 구로다의 커리어는 누구보다도 멋졌다. 바다 건너 한국사람이 그의 삶에 경탄할만큼 말이다. 선수에게 최고의 영광인 우승을 손에 넣지 못했고, 야마모토처럼 많은 돈을 벌지도 못했지만 그는 히로시마의 가장이었고 자식같은 팬들은 늘 존경과 박수를 보내줬다. 구로다는 히로시마에게나 가족에게나 영광스런 아버지였다. 사람마다 꿈은 다르다. 돈이 꿈인 선수에게, 우승이 꿈인 선수에게 구로다의 커리어는 실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구로다는 분명 자신의 꿈을 이뤘다. "훗날 내 인생을 돌이켜 볼 때 가족들에게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나의 꿈입니다"-히로시마로 돌아올 때 자신의 꿈에 대해 말하며, 성공한 야구선수. 구로다 히로키-
작성자 : 글쟁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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