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이후에는 늘 명퇴 바람이 분다.

그나마 명절날 친인척 한테 나 삼성이요 현대요 SK요 대답은 하게 해 주고 명절 끝나면 칼을 빼든다.

사실 참으로 가혹하다.

너 나가면 돈 줄께. 

이 얼마나 가혹한 형벌이냐.

넌 새끼야 이 회사에 있는거 보다 나가는게 회사에 득이라는거 아니냐. 

급여 3년치 한번에 준다는게 얼마나 가혹하냐. 넌 여기서 3년동안 회삿밥 쳐먹는거 보다 나가는게 득이라니.

하지만 모든 아빠들은 잠못드는밤 지세우다 출근하고 명퇴 신청서를 작성한다.

대부분 가족이랑 상담 없이 혼자 결정한다.

가족들과 상담하면 나올 이야기는 뻔하기 때문이다.

가족들과 이야기 하다 보면 결국 내 뱉어야 하는 말은 내가 지금 여기서 사표 안쓰면 결국 난 아무것도 없이 짤리는게 수순이라는걸 비참 하게 자기 입으로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명퇴 신청서 쓰고 하루 이틀 지나면 같은 부서내에서 소문나고 그 소문은 일주일이면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퍼져나가 몇 몇은 나를 피하고, 또 몇 몇은 나에게 찾아와 인사를 한다.

그리고 퇴사 당일날.. 영화나 드라마 보면 모두가 꽃다발 주고 박수쳐 주고 인사하고 떠나지만 그건 내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냥 평소 처럼 출근한다며 집을 나와 떠돌다 보니 나도 몰래 오게된 남한산성 산 앞에 서있다.

산에 올라가려는데 꼴이 우습다. 넥타이 양복 입고 구두 신고 산 입구에 서있다.

저기 몇몇 나같은 사람도 우구커니 서있다.

저 사람도 명퇴자인가 보다.

아침에 회사가 아닌 이런 밖에 나와 있어 보는건 거의 20년만에 처음이다. 

아침 10시의 세상은 이리도 평화롭고 조용했구나.

집에다가는 언제 말해야 하나..

애듫은 뭐라 할까. 이제 첫째가 겨우 고등학생인데.

씨발.. 쓰다 보니 감정 이입되서 눈물난다.

모두 무탈들 하시길.

그냥 뜬금없이 IMF 때가 생각나서.. 그땐 20 후반인데도 명퇴는 커녕 그냥 다 짤림.

회사의 내 자리가 없어진게 아니라 출근해 보면 회사가 없어져있었음.

그랬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