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T1의 라이트 팬이다. 그냥 경기 정도만 지켜보고 T1잘하네 젠지 잘하네 한화 잘하네 이정도로 친구들하고 카톡으로 떠들기만 한다.

어제 유튜브를 즐겁게 관람중이던 나는 10시 50분경 오늘이 T1대 GEN 전인걸 기억해냈다.

그동안 T1이 젠지에게 항상 지기만 한 걸 알고있던 나는 아무 기대 없이 꺼무위키를 켠 후 경기결과를 보기로 했다. 당연히 이번에도 T1의 패배를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결과는 T1의 1경기 승리였다. T1의 월즈 파워는 상성이던 젠지를 잡아낼 정도로 강했던 것일까?

두근두근하며 막 시작하던 밴픽부터 경기를 관람하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T1은 노 잃은 돗단배처럼 시작부터 휘청거리기 시작하더니, 큰 저항조차 못해보고 침몰하게 되었다. 22년 월즈의 결승이 떠오르고 있었다. 자신들이 강할 땐 누구보다 강력하지만, 페이스를 넘겨주기 시작할 땐 몇 번의 잽을 날려보지만, 결국에는 흐름을 뒤집지 못하고 쓸려 지나가던 그 모습을.

나는 이번에도 T1은 상성에게 잡혀 쓸려가겠지라는 예상과 함께, 경기 전까지 보던 유튜브나 마저 보기 위해 재생목록으로 들어가 보던 동영상을 틀고 이내 잠이 들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출근을 위해 버스를 타러 가며 몇 대 몇으로 T1이 침몰했을지, 혹여나 기적처럼 이기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또 다시 꺼무위키에서 전날 경기 결과를 찾아봤다.

보이는 목차에서는 4경기까지만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곤, 그 후 내리 두 판을 저항조차 해 보지 못하고 졌을 것이라는 예상과 함께 경기 내용의 요약본을 위해 목차 옆 번호를 클릭해보았다.

OXOO

T1의 승리였다. 나는 믿을 수 없었다. 그렇게나 팀 상성이 잡혀있었고, 2세트에서의 그 무력한 패배는 어디로 사라졌길래 자신의 라이벌리 팀을 짓밟은 것일까?

T1의 승리로 인해 신이 났다. 그래도 T1의 팬이니까 당연히 신나겠지. 젠지도 잘 하는 팀이지만 그래도 응원하는 팀인 T1이 이긴 것이 더 즐거운 것은 당연했다.

유튜브 들어가서 해외 스트리머 반응 영상이나 좀 찾아보고, 꺼무위키 경기 내용이나 관람하고 신나게 즐기고 있을 때, 문득 이상한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T1의 월즈 경기를 보고 있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T1은 결국 다전제에서 패배하게 되는 요상하면서도 불쾌한 사실을 말이다.

곧 뇌 속으로 부정을 날렸다. 2017년 월즈 녹아웃에서 T1의 경기는 개인 사정으로 바빴던 2021년을 제외하고 빠짐없이 챙겨보았는데, 만일 내가 경기를 보고 있을 때 T1이 패배를 했다면 지금까지의 수많은 T1의 결승전 도달과 2023년 우승은 말이 되지 않았다. 분명 내가 T1의 경기에서 패배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만든 허상같은 징크스가 분명하리라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 바꿔 보니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었다.

내가 월즈 녹아웃부터 T1의 경기를 보고 있을 때 T1이 패배하는 것은 상대가 LCK팀일 경우 성립하는 이야기었다고.

이 말도 되지 않는 징크스를 파헤쳐보고자 나는 2017년부터 T1의 녹아웃 월즈 기록을 한 번씩 살펴보게 되었다. 놀랍게도, 내가 보지 않았기에 지금까지 꺼무위키 등에서 찾아볼 생각도 않던 2021년도와, 일찌감치 마음을 접은 이번 4강의 경기를 제외하고 T1은 녹아웃에서 만난 LCK팀에게는 항상 패배하고 있었다.

물론, 당연히 나 같은 소시민 한 명이 방송으로 T1월즈 경기를 보건 말건 실제 경기 결과와는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이다. 당연히 자신이 응원하는 특정 팀이 하는 경기를 지켜보는 게 무슨 괴전파나 텔레파시로 특정 팀의 승리에 결과를 미친다는 게 무슨 가당치도 않은 소리인가?

하지만, 그럼에도 2021년의 보지 않던 경기와, 이번 4강의 2경기 후 방송을 접게 된 후 T1이 승리하는 것을 확인한 나로써는, T1의 응원을 위해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 월즈 녹아웃 이후부터 T1과 LCK의 경기가 성사될 경우, 나는 T1의 라이트 팬으로써 마음 속으로 응원하며 T1의 경기를 보지 않을 것이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하지만이라는 이 가정이 머릿 속에서 사라지지 않으니 나는 T1을 응원하기 위해 T1의 몇 경기를 쿨하게 흘려보낼 수 있다.

이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믿을 사람은 없겠지만, T1이 우승하길 바란다는 내 마음이 거짓이 아님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물론 이번주 토요일 결승전은 마음 편하게 치킨이나 시켜두고 경기를 관람할 예정이다. 이번 상대는 LPL이다.

T1의 5번째 우승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